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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와 기도만이 이슬람과 영적전쟁서 승리하게 한다”
루터, 기독교 타락이 이슬람이라는 징계 불러왔다고 판단 …
칼이 아닌 개혁이 진정한 무기임을 강조했다

 
▲ 유해석 선교사(총회이슬람대책위원회 전문위원)

현재 기독교 안에 이슬람을 바라보는 네 가지 입장이 있다.

첫째는 이슬람에 대한 공포가 혐오적으로 나타나는 이슬람포비아(Islam phobia) 입장이다. 이슬람포비아라는 말은 1980년대에 만들어졌으나 실제로는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일어난 9·11테러 이후에 많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둘째는 무슬림들에게 다가가기 위하여 이슬람권 안에서 현지의 삶의 방식과 문화를 그대로 따르면서 은밀하게 마음 안에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는 내부자 운동(Inside Movement)적 시각이다. 셋째, 다원주의(pluralism)적 입장이다. 두 종교가 서로 공존하기 위하여 기독교와 이슬람의 공통적인 부분을 강조하며 이슬람의 알라와 기독교의 하나님은 똑같은 하나님이라는 주장이다. 넷째, 개혁주의적(reformism)입장이다. 이는 무슬림들이 이슬람을 떠나서 기존의 기독교로 들어오라고 초청하는 입장이다. 이슬람은 진화론적 종교관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무슬림들에게 기독교인이 되라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기독교의 전통적인 방법이다. 우리는 개혁주의적 입장을 이해하기 위하여 이슬람에 대한 종교개혁자들의 견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불편한 관계의 역사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A.D. 570년에 아라비아 반도의 메카에서, 쿠라이쉬(Quraish) 부족의 하심가문에서 태어났다. 이슬람에 의하면 그가 나이 40이 되었을 때, 메카에서 2마일 떨어진 히라산 동굴에서 계시를 받고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쿠라이시 부족의 신(神)이었던 ‘알라’만을 섬기라고 주장하면서 새로운 종교를 시작하였다. 무함마드는 70여 차례 전쟁을 치렀으며, 그 가운데 직접 군대를 지휘한 것도 27차례나 된다. 무함마드는 칼을 들고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했다. A.D. 632년 무함마드는 62세로 메디나에서 고열과 폐렴으로 죽었다.

 

무함마드가 사망한 이후에 그의 후계자들을 통하여 무슬림 세계는 아라비아 반도를 넘어서 비잔틴 기독교 제국을 정복해 나갔다. 10년 후 이슬람 군대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 대부분을 점령했다. 이후 70년 동안 서쪽으로 진군하여 북부 아프리카 전체를 정복했다. 그리고 15세기까지 이슬람 군대는 이베리아 반도와 남부 이탈리아, 그리고 남부 프랑스와 지중해 서부를 점령했다.

 

오스만과 터키의 술탄 메멧 2세(Mehmet II, 재위 1452~1481) 때인 1453년에 고대 로마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됨으로, 비잔틴 제국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메멧 2세는 여세를 몰아 발칸 반도 안으로 유럽의 중심부를 향해 터키 제국의 경계를 넓혀 나갔다. 1475년에는 크림반도(the Crimea)를 탈취하였다. 나아가 1500년에는 알바니아(Albania)를, 1512년에는 몰다비아(Moldavia)를, 1516년에는 루마니아(Romania)를, 1517년에는 몬테네그로(Montenegro)를 복속시켰다. 1517년은 바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34살의 나이로 종교개혁의 기치를 든 때다. 1529년 비엔나에서 그 걸음을 멈추게 되기까지, 이들은 계속하여 유럽 중앙으로 전진해 들어왔던 것이다. 이 절박한 상황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이다. 이슬람 군대인 오스만 터키와의 전쟁이 종교개혁의 다양한 배경을 형성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슬람에 대한 루터의 저서들

마르틴 루터가 이슬람에 대하여 최초로 언급한 것은 종교개혁이 일어난 그 다음 해인 1518년에 쓴 <사면의 능력에 대한 논쟁의 해답들>(Resolutione Disputationum de Indulgentiarum virtute)이다. 또한 서신 등을 통하여 이슬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으나, 본격적으로 이슬람에 대하여 써서 출판한 작품은 1529년 <터키인들에 대항하는 전쟁에 대하여>(Vom Kriege wider die Turken) 이었다. 그 후 루터는 터키군대의 움직임을 전해듣고, 또 하나의 작품을 출판하게 되는데, <터키인들에 대항하는 군대설교>(Heerpredigt wider den Turken)이었다. 세 번째 작품은 <터키인들에 대항하는 기도에 관한 훈계>(Vermahung zum Gebet wider den Turken). 이 작품을 총 세 번(1539년, 1541년, 1543년)을 썼다.

 

이와 함께 1530년 출판된 책 <터키의 의식과 윤리에 대한 책>(Libellus de ritu etmoribus Turcorum)의 서론을 썼다. 또 기억할 만한 것은 루터가 1542년에 편집 번역한 작품인데, 이 책은 1300년 경에 도미니칸 수도사인 리콜도(Riccoldo de Monte Croce)가 쓴 <꾸란에 대한 반박>(Confutatio Alcorani)이다. 본래 루터는 이 책을 부정적으로 보았으나, 그가 꾸란의 라틴어 번역본을 읽은 후에 이 책을 긍정적으로 보았으며 그 후에 루터는 이 책을 편집하여 번역하였다. 또한 1530년 헝가리의 게오르기우스(Georgius)가 출판한 <무슬림의 의식과 도덕에 대한 책>에서 루터는 ‘경건한 독자에게’(Lectori pio)라는 서문을 썼다. 이 책은 도미니크 수도사인 게오르기우스가 1480년 터키에 사로잡혀서 오랜 기간동안 노예로 있으면서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을 적은 책이다. 루터는 이 책을 이슬람에 대하여 알 수 있는 매우 유익한 책으로 여겼다. 이슬람에 대한 또 다른 작품의 서문이 있는데 1542년에 아랍어에 능통했던 취리히의 신학자 테오도르 비블리안더(Theodor Bibliander)가 독일어로 번역한 꾸란의 서문이다. 루터는 1543년 초에 나온 이 책의 서문을 썼다. 다양한 루터의 글을 통하여 루터가 이슬람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이슬람에 대한 루터의 이해

첫째, 루터는 이슬람의 침략에 대항하는 십자군을 반대하고 있다. 유럽을 정복하려는 이슬람에 대항하는 십자군을 루터가 반대한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살기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떠난 기독교인들을 징계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슬람 군대를 보낸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루터는 이슬람을 하나님의 채찍으로 이해하였다.

따라서 루터는 이슬람을 향해 칼을 들고 벌이는 전쟁은 하나님에 대항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여기에서 루터는 ‘이슬람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가나안에 입성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통하여 이들을 징계하시고,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하고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했듯이, 기독교의 타락이 이슬람이라는 징계를 불러 왔다고 본 것이다.

 

둘째, 루터는 이슬람과의 외적인 전쟁보다는 먼저 내부의 적(敵)인 ‘기독교인들의 부패와 타락’을 회개할 것을 촉구했다. 외부의 적인 이슬람보다 내부의 적인 교황청이 더욱 악하다는 것이다. 교황청의 사기꾼들이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이슬람 군대와 싸우도록 부추기는 것을 비판하면서, 이슬람 군대보다 내부적인 부패와 거짓과의 싸움이 우선이라고 보았다. 즉, 기독교인의 부패와 타락에 대한 회개가 이슬람보다 더 시급한 문제라고 루터는 보았던 것이다.

 

셋째, 루터는 이슬람과의 전쟁은 영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오스만 터키 이슬람 군대와의 전쟁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사탄과의 전쟁이라고 확신하였다. 루터는 이슬람의 신(神)을 사탄으로 보았고, 이 영적인 전쟁은 기독교인들이 회개와 기도를 통해서만 승리를 거둘 수 있으며, ‘기독교인들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이슬람이라는 채찍을 빼앗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루터는 기독교인들이 회개와 기도로써 이슬람과의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넷째, 루터는 이슬람을 종말론적인 적(敵)으로 인식하였다. 1529년 이슬람 군대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Vienna)를 포위한 소식을 들으면서, 루터는 임박한 종말을 의식하며 이슬람을 종말론적인 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터키인에 대항하는 군대 설교>에서 루터는 말세에 예언된 두 폭군을 교황과 이슬람으로 해석하고, 다니엘서 7장의 4번째이자 마지막 짐승을 로마 제국으로, 열 뿔을 제국 내의 나라들로, 그리고 뿔들 사이에 있는 ‘작은 뿔’을 이슬람으로 이해하였다. 교황을 “위선의 가면을 쓰고 성전에 앉아서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는 적그리스도”로, 이슬람을 “선하고 정결한 덕목을 지닌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 사단의 계략을 가진 적그리스도”로 이해했다.

종교개혁 당시의 이슬람 군대의 침략은 온 유럽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족한 사건이었다. 심지어 루터는 세상의 종말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러나 그는 신학적, 정치적 눈을 가지고 교회와 세속권력이 이 위기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차분하게 조언한다.

 

이 조언은 지금의 한국교회에게도 유용하다.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교회는 루터의 조언에 따라서 내부적으로 말씀과 거룩을 따르며 교회가 가지고 있는 신앙고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싸움은 루터의 견해처럼 영적인 전쟁이다. 따라서 회개와 인내가 그 모습이 되어야 한다. 만일 힘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교회가 사용할 것이 아니라, 세속정부의 영역에 있는 기독교인들의 역할로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혼돈될 때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잃게 될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사랑의 모습으로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우리는 기독교가 발전하고 융성했던 곳들이 이슬람으로 대체된 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기독교가 변질되고 골고다 산상의 십자가를 자신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킬 때 이슬람이 몰려왔고, 그에 대항할 만한 능력을 상실한 채 시간이 흐르면서 기독교는 그 주권을 이슬람에게 내어 주고 말았다. 중동이 그랬고, 유럽이 그 길을 가고 있다. 우리 곁에 이슬람이 다가오고 있다. 이 중요한 시기에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은 다시 개혁을 논해야 한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이슬람으로 인하여 종교개혁을 가속화시켰던 마르틴 루터의 말로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내 말은 이슬람에 대항하여 싸우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자비로우신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더 개선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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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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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교회의 이슬람대책 실패 교훈은 현재진행형이다

유례없이 급증하는 국내 이슬람 인구와 문화, 교리적 경계 강화하며 동시에 선교적 과제도 적극 모색해야

과거 한국 이슬람의 역사

 

 


▲ 권순직 목사
(총회이슬람대책위원장)

한국에 이슬람이 들어온 것은 통일신라시대로 알려져 있다. 페르시아 우편 관리인이었던 이븐 후르다드비(Ibn Khurdadbid)는 자신의 저서 ‘도로들 및 왕국들 안내서’에서 신라를 묘사하고 있는데, 그는 신라의 지정학적 위치뿐만 아니라 신라에는 이슬람교도들이 거주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그리고 그들은 신라의 아름다움에 빠져서 영구히 정착하고 싶어 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맨 끝에 신라라는 나라가 있는데, 금이 풍부하다. 이슬람이 이 나라에 상륙하면 그곳의 아름다움에 끌려서 영구히 정착하고 떠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한국의 기록에 이슬람이 등장하는 시기는 고려시대였다.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에는 예궁이라고 불리우는 이슬람 사원이 있었고 무슬림들이 그 주변에 살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중국의 원나라는 중앙아시아에서 이동한 유목민이 세운 나라로서 많은 무슬림들이 살고 있었다. 또한 무슬림들이 한국으로 귀화하는 일도 빈번하게 있었다. 그러나 원나라에 이어서 명나라가 들어서고 한국에 조선이 들어서면서 이슬람은 대중 속에 정착되지 못하고 자생력을 가지지 못한 채 사라져갔다.

오늘날의 한국 이슬람

1950년 한국 전쟁에 유엔군 소속으로 이슬람공화국인 터키 군인 1만 5000명이 참전하게 되었는데 당시 압둘가푸르 (Adulgafur)라는 터키 제6여단 사령부의 군 이맘(Imam)은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선교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압둘라 ‘김유도’와 우마르 ‘김진규’ 등이 개종하였고, 이들은 1세대 한국인 무슬림들로 형성되었다.

이후 김유도와 김진규는 1955년 9월 15일 ‘한국이슬람협회’를 결성함으로서 적극적인 이슬람 선교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슬람 선교 활동은 교육에도 이르렀는데, 한국 전쟁 당시 후방에서는 ‘앙카라 학교’를 건립하여 전쟁고아의 양육과 교육활동을 하였고, 1956년 4월에는 ‘청진학원’을 설립함으로서 중등교육과 이슬람 교리교육을 무료로 실시하기도 하였다. 1956년 주베이르 코치(Zubeyr Koch)가 2대 이맘으로 부임하면서 입교자는 ‘208명’에 이르게 되었다.

오늘날 한국에 이슬람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이후이다. 또한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기 바로 전, 7월 11일 아랍연맹이 발행하는 아랍신문(Arab League News)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한국에는 기독교인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현재 전체 인구의 25%에 달하는 약 1000만 명이 기독교인으로 보고되고 있다. 사상 유례없는 놀라운 증가 추세를 보면, 한국은 상당히 종교성을 가진 나라이다… 한국에는 현재 3만 명의 무슬림들이 있다. 한국인의 종교 성향에 비추어 볼 때 향후 수십 년 안에 이슬람이 기독교를 앞지를 수 있을 것이다. 머지않아 한국은 이슬람 국가 중의 하나로 불리게 될 것이다.”

마치 예상이라도 했듯이 1990년부터 한국에는 이슬람 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하게 되었다. 2016년 기준 한국의 이슬람 인구는 이주노동자와 유학생 및 결혼이주자를 포함하여 약 23만 명이다. 한국인 무슬림들은 이슬람권에 근로자로 가서 그들의 포교를 받아서 이슬람을 믿게 된 경우, 이슬람권에서 언어를 배우거나 학위를 받기 위해 공부하러 가서 이슬람을 믿게 된 경우, 국내에서 이슬람을 믿게 된 경우, 무슬림과 결혼을 통해서 믿게 된 경우 등 다양하다.

외국인 무슬림들은 합법체류자와 불법체류자로 나눌 수 있는데 불법 체류자들은 약 2만 5000명으로 추정된다. 그들은 40~50여 곳에 모여 살며 한국에 정식 모스크는 16개, 기도처소는 101개 정도 된다. 최근에 출판된 미래학자 최윤식 박사의 ‘2030 대담한 도전’에 의하면 한국에 있는 무슬림 인구는 40만 명에 이르고 2050년 한국의 이슬람 인구는 300~400만 명에 이르며 이슬람은 기독교인구보다 많아질 것으로 본다.

이슬람의 교리는 무엇인가?

이슬람의 교리는 네 가지 영향 아래 형성되었다, 첫째 무함마드가 살았을 당시 아라비아에서 행하던 토속종교, 둘째 A.D. 70년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하여 함락되면서 유대인들이 살 수 없게 되자 아라비아 반도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그 유대교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셋째 페르시아의 종교였던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았고, 넷째 비잔틴 기독교제국 당시에 이단으로 정죄되었던 에비온파, 네스토리안파, 마리안파, 콥트파, 영지주의 등이다.

따라서 꾸란의 약 60%는 구약성경에서 왔으며, 약 6~7%는 신약성경에서 인용되었다. 그래서 이들의 교리는 기독교랑 비슷한 점도 있으면서도 반기독교적인 교리가 혼합되어 있다.

이슬람의 신앙은 믿음과 행위에 근거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슬람의 6가지 믿음으로 첫째 알라에 대한 믿음, 알라는 아라비아 전통의 신들 중 하나였다. 무함마드는 알라의 개념을 유일신으로 정리하였다. 둘째 천사에 대한 믿음, 천사는 알라가 창조한 영적인 존재들이다. 셋째 책에 대한 믿음, 알라는 인간에게 104권의 책을 주었는데 모든 책들은 분실되었기에 그 내용을 알 수 없고 꼭 필요한 내용은 꾸란에 있다고 가르친다. 넷째 선지자에 대한 믿음, 12만 4천 명의 선지자와 315명의 사도가 알라에 의하여 보냄을 받았다고 한다. 6명의 선지자에게 특별한 사명이 부여되었다. 그들은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무함마드이다.

이들 선지자들 중에서 최고의 선지자는 무함마드이다. 다섯째 마지막 날에 대한 믿음으로서 세상에 심판이 임할 것으로 믿는다. 꾸란 전체 가운데 약 14%가 심판에 관한 구절이다. 마지막으로 숙명에 대한 믿음이다. 인간의 운명은 판에 새긴 것처럼 이미 알라의 뜻에 의하여 분명하게 결정되어 있다.

무슬림의 행동규약은 6가지가 있는데, 첫째 신앙고백(Shahada)이다. 이슬람 신자들은 “알라 외에 어떤 신도 존재하지 않으며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이다“라는 신앙고백을 한다. 둘째 기도(Salat)는 하루에 다섯 번씩 메카를 향하여 기도한다. 셋째 무슬림은 그의 재산에서 이슬람세, 즉 구제금(Zakat)을 2.5% 내야한다. 넷째 금식(Saum)인데 이슬람력으로 9월은 라마단 달로서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금식을 한다. 다섯째 메카에 있는 알라의 집 즉 카바신전을 방문하는 것으로서 능력있는 무슬림은 일생동안 한번 다녀온다. 이를 성지순례(Haji)라고 한다. 그러나 능력이 안되면 성지순례를 가는 이들을 도우므로 대신할 수 있다. 여섯째 알라를 위하여 싸우는 지하드(Jihad)는 이슬람 종파에 따라서 종종 6번째 행동규약에 포함되기도 한다.

이슬람인구 증가에 대한 한국의 대응

2015년 3월 중동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대통령은 제7차 무역진흥회의에서 제2의 중동 붐을 일으킬 것을 언급하였다. 이어서 발표된 문화체육관광부의 보도자료에 의하면 첫째 이슬람 관광객들이 올 수 있도록 인프라를 개선하고, 둘째 이슬람기도처소를 확장하며, 셋째 이슬람 음식인 할랄을 만들어서 수출하며 넷째 무슬림의료관광을 유치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제1의 중동 붐이 한국인 노동자들이 중동에 진출하여 외화를 벌어들인 것이라면 제2의 중동 붐은 한국 안에 이슬람 붐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이 발표가 나자마자 두주 만에 터키 종교청은 한국 이슬람 중앙사원을 새로 짓는데 350억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하였고, 한 달 만에 전북 익산에 49만 평 식품클러스터 단지 안에 할랄 전문 단지를 만들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런가 하면 2016년 한국에 들어온 이슬람 관광객이 30만 명이 늘었다. 이제 이슬람은 한국에서 정부의 지원 아래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유럽을 본받아서 저출산, 고령화, 노동인력의 부족을 외국인 인구를 받아드려서 해결하려고 한다. 따라서 값싼 임금을 선호하기에 이슬람 국가에서 노동력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지금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문화실패를 교훈삼아야 한다.

 

또한 한국교회는 이슬람에 대한 교육을 시급하게 실시하여야 한다. 그동안 한국에 이슬람 인구가 없었기에 이슬람은 타종교인줄 알고 배웠으나 이미 종교개혁자들에 의하여 이슬람은 기독교 이단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따라서 교회는 이슬람에 대하여 교육을 해야하며 각 교단들은 이슬람으로 인하여 무너져 가고 있는 유럽교회를 교훈삼아서 이슬람에 대하여 연구하며 가르쳐야 한다. 무엇보다도 교회가 건강해야 하며, 교회 청소년들에게도 이슬람에 대하여 가르쳐야 한다.

왜냐하면 이미 유럽과 미국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람들 가운데 약 80%가 기독교인들이라는 통계가 있다. 이슬람은 언제나 기독교와의 관계 속에서 성장해 왔다. 과거에 중동은 비잔틴 기독교 제국이었으나 오늘날 이슬람으로 바뀌었다.

마찬가지로 유럽 또한 기독교 국가들이었으나 오늘날 이슬람화 되어 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또한 한국에 와 있는 무슬림에 대한 선교정책도 수립되어야 한다. 한국 땅에 미전도종족인 무슬림들이 소리없이 정착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교단과 교회의 적극적인 대안을 수립하여야 한다. 이슬람은 한편으로는 경계해야 하며 한편으로는 선교적 과제로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이에 따라서 총회이슬람대책위원회에서는 지난 4월 21일 총회회관에서 16명의 전문위원 위촉식 및 연석회의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이슬람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기 위하여 올 해 여름 ‘종교개혁과 이슬람’이라는 주제로 2박 3일 동안 기독교이슬람대책아카데미를 열기로 하였다. 기독교이슬람대책아카데미는 국내외 최고의 강사진과 커리큐럼을 통해서 전국노회 이슬람 대책 담당자와 평신도 사역자들을 교육하고 이를 5년간 이어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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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이슬람인구 5년새 177% 증가 했다고 합니다.

 

적그리스도 정부때 한국에서 기독교인 잡아서 테러를 일으키고

살인자들이될 한국의 무슬림들...!!!

뉴월더오더가 밀어주는 이슬람

유럽의교회초토화는 교회의 무관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교회가 지금 행동하지않으면

한국교회를 이슬람들이사서 모스크로 만들고

교회를 피폐하게 만들겁니다

빨리그들의 실상을 알리는 책자들을 만들어서

교인들과 한국국민들이 피해를 보지않게 하십시오

국회에잇는 기독교인 국회위원들은 출마할땐 교회에들락거리며 그들의도움을 받으면서도

이슬람 문제에 대하여 자신의출세를 위하여 주님을 배도하는일을 서슴치않음을볼때

정치가에 기독교인들이 많아도 아무소용이 없습니다

지금 갑자기 박근혜정부가 이슬람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일하는사태를 미루어볼때

무슬림은행과 자금으로 더욱더

한국은 무슬림의 부흥이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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