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초기 기독교의 가정교회
 
An Analysis of Documents for the Early Family (House) Churches


(by Dr.theol. Byoung Soo Cho)


  1939년에 Filson이 초기 기독교 가정교회의 의미에 관하여 발표한 짧은 논문1)은 비록 당시에는 큰 반응을 얻지 못하였지만2) 이 주제에 관한 논의의 시발점을 놓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Filson이 가정교회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가정교회들의 공헌을 염두에 두지 않고는 사도 교회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3). 그 이후로 가정교회에 관한 관심은 꾸준히 고조되면서4) 결국 1980년대를 전후로 하여 이 주제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5). Klauck은 이 시기에 가정교회의 주제가 갑자기 붐을 일으키게 된 이유를 위하여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고 말하면서 특히 현실적인 문제들, 예를 들면 오늘날의 가정에 대한 염려라든가 새로운 생동력있는 교회형태에 대한 추구가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6).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볼 때 신약학계에서 1980년대를 중심으로 초기 기독교에 대한 사회학이 활성화되면서 가정교회에 대한 관심이 더욱 촉진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7). 이제는 가정교회에 관한 문헌이 엄청나게 되었다8). 이 주제는 신약학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이 되었다9). 본고는 초기 기독교의 가정교회를 면밀히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이 글에서는 사도행전과 서신서들 그리고 속사도 문서에 나오는 가정교회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여 분석하고, 이후 다음 글에서는 자료분석에 근거하여 가정교회의 의미를 파악하며 문제점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이 논문의 유익은 두 가지이다. 첫째로 이 논문으로 말미암아 초기 기독교의 교회현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둘째로 이 논문은 오늘날의 교회들이 지향해야 할 성경적인 교회관을 설정하는데 일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I. 자료분석


  초기 기독교에서 가정교회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살펴보기 전에 자료를 수집하여 분석하는 것이 우선적이다. 우리는 신약성경으로부터 능력에 따라 자신의 집을 전교회의 회집이나 개별 그룹모임을 위하여 제공할 수 있었던 그리고 제공할 준비가 되어있었던 남자와 여자들의 이름이 구별없이 언급되는 것을 볼 수 있다10). 이들을 사도행전, 바울서신, 기타서신, 속사도시대 문서의 순서대로 정리해보자.


1. 가정교회에 대한 사도행전의 증거


  사도행전은 초기 기독교의 가정교회에 관한 역사적인 사실들을 상당수 제공하고 있다11). 사도행전에 의하면 초기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정 중심활동과의 연속성 속에서 예루살렘 교회에서부터 가정집회를 중시하였다. 사도행전은 처음에 다락 (u`perw|/on)에 관한 진술 (행 1:13)과 마지막에 셋집 (mi,sqwma)에 관한 진술 (행 28:30)로 괄호법 (inclusio)을 이룸으로써 마치 가정 (집)이 없으면 기독교도 없다는 듯한 인상을 제공한다12).


1) 팔레스타인의 가정교회 (사도행전 1-12장)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초기 기독교의 모습을 진술하면서 가정을 기반으로 하는 교회의 상황을 여러 곳에서 언급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후에 제자들은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한 집의 일부인 “다락” (u`perw|/on)에 올라갔다 (행 1:13)13). 그러나 머지않아 집회는 한 집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를 사용하는 규모로 발전하였다. 누가는 사도 베드로가 사도보충설교를 할 때 120명의 성도가 모인 것과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실 때 제자들이 모인 것을 가리켜 evpi. to. auvto, (행 1:15; 2:1)라고 한다. 문맥을 살펴볼 때 분명한 것은 누가는 이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의식적으로 기독교 공동체의 집회 (한 장소에 모인 그룹이건 전체 공동체이건)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다14). 이 표현이 건물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를 의미한다는 사실은 성령강림의 현상이 “온 집에 가득하였다” (evplh,rwsen o[lon to.n oi=kon)는 것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15). 

  처음에는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집회가 성전회집과는 상이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성전에서 행한 일과 가정에서 행한 일이 선명하게 구별되어 진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전에서와 달리 가정에서는 주로 식사교제가 이루어졌던 것 같다. 이것은 행 2:46f.의 구조를 살펴보면 선명하게 드러난다.


행 2:46f.의 구조:


2개의 분사 (46a)    주동사 (46b)    2개의 분사 (47a)

proskarterou/ntej                      aivnou/ntej

                    metela,mbanon

klw/ntej                              e;contej


첫째로 두 개의 분사 (proskarterou/ntej, klw/ntej)가 나오고 다음에 주동사 (metela,mbanon)가 따르고 결국에 두 개의 분사 (aivnou/ntej, e;contej)가 이어진다. 처음 두 개의 분사는 장소 (성전과 가정)를 지시하고, 나중 두 개의 분사는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태도 (찬미와 칭송)를 묘사한다16). 이것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성전에서 한 일과 가정에서 한 일이 달랐다는 것을 입증한다. 성전에서의 집회는 모든 신자의 공개적인 모임인 반면에 가정에서의 집회는 식사교제에 치중해있었다17). 본 절의 주동사 (metela,mbanon)에 의하면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공동식사가 매우 중요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 공동식사는 주로 집에서 떡을 떼는 일로 시행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하면서 초기 기독교에서 가정집회의 성격은 상당히 변화 또는 발전한 것 같다. 가정에서도 교육이 이루어졌다. 이런 사실은 행 5:42에서 분명하게 엿보인다. 이 구절에서는 가정이 성전과 마찬가지로 교육과 전도가 시행된 장소로 소개된다. dida,skein과 euvaggeli,zein은 하나의 개념으로서 설교를 가리키는 것이었을 것이다18). 이런 이중표현은 행 15:35에도 등장한다. 또는 euvaggeli,zein은 dida,skein을 내용적으로 자세히 규명하는 것일 수 있다19). 이제 가정집회는 단순히 교제의 차원을 넘어서 교육의 차원으로 전진하였다.

  누가는 스데반의 순교사화를 마무리하면서 회심 전의 사도 바울의 기독교 핍박사건을 압축적으로 묘사한다. 사도 바울은 회심 전에 “교회를 잔멸할 때 각 집마다 다니며 남자들과 여자들을 끌어다가 옥에 가두었다” (행 8:3). 이 구절은 교차대조의 구조가운데 각각 하나의 분사를 지닌 두 개의 동사로 이루어져있다20). 첫째로 “교회를 잔멸한 것” (evlumai,neto th.n evkklhsi,an)과 “각 집마다 다닌 것” (kata. tou.j oi;kouj eivsporeuo,menoj)이 연결되어 있으며, 둘째로 “남자들과 여자들을 끌어간 것” (su,rwn a;ndraj kai. gunai/kaj)과 “옥에 가둔 것” (paredi,dou eivj fulakh,n)이 연결되어 있다. 후자의 경우에서 중요한 것은 남자들과 여자들이 교회의 구성원으로 나란히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잠시 멀리하고 먼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전자의 경우에 나타난 교회와 가정의 관계이다. 이것은 초기 기독교가 가정 복음화에 얼마나 주력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 만 아니라, 초기 기독교의 교회가 가정을 근거로 하여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진술이다21). 누가는 회심 전의 사도 바울이 교회를 파괴한 것과 성도의 각 집에 진입할 것을 동일한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언급된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를 가리킨다 (행 8:1 th.n evkklhsi,an th.n evn  `Ierosolu,moij). 예루살렘 교회는 성도의 가정들로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가정들은 일종의 가정교회였을 것이다. 이 구절에서 동사들을 제외한다면 th.n evkklhsi,an kata. tou.j oi;kouj는 가정교회를 나타내는 바울의 표현법과 거의 다를 바가 없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22). 누가에 의하면 회심전의 사도 바울은 가정집회를 파괴하는 것이 예루살렘 교회를 파괴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가정교회와 관련하여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로마군대의 백부장 고넬료의 회심사건이다. 고넬료는 기독교의 진리에로 회심하기 전에도 “온 집이 더불어” (su.n panti. tw/| oi;kw| auvtou/) 하나님을 경외하던 사람이었다. 고넬료는 기독교의 진리를 듣기 위하여 사도 베드로를 자신의 집으로 (행 10:22,30; 11:12) 초대하였다. 이때 고넬료는 자신의 집에 그의 “일가와 가까운 친척들” (tou.j suggenei/j auvtou/ kai. tou.j avnagkai,ouj fi,louj)을 모았다 (행 10:24). 고넬료는 사도 베드로를 통하여 구원을 얻을 말씀을 들어야 할 대상이 자신 뿐 아니라 “온 집” (pa/j o` oi=koj, 행 11:14)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것을 매우 폭넓은 범위로 이해했던 것이다. 이것은 고넬료의 가정이 실제로 그의 집에서 살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포함하는 확대가정이었던 것을 의미한다23). 그들은 사도 베드로의 구원설교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기독교에 입문하였다 (행 10:48)24).

  사도행전에서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 (oivki,a)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진술된다. 그 집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였다 (ou- h=san i`kanoi. sunhqroisme,noi kai. proseuco,menoi)” (행 12:12). 이 구절은 마리아의 집이 두 가지 목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선 마리아의 집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집회소로 사용되었다25). 여기에 집회를 위하여 사용된 동사 sunaqroi,zein는 누가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으로서 특별한 모임을 서술하고자 할 때 사용되는 것이다26). 이 집에서 충분한 수의 사람들이 집회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집이 상당한 규모를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로 이 단락이 대문과 여종을 언급하는 것으로부터 이 사실은 분명하게 입증된다27). 둘째로 마리아의 집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는 기도처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마리아의 집이 핍박의 시기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은밀한 예배처소로 제공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28). 마리아의 집은 예루살렘 교회에 속한 여러 가정교회들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헤롯은 예루살렘 교회 (h` evkklhsi,a, 행 12:1)를 파괴시키기 위하여 야고보를 처형하고 (행 12:1), 베드로를 체포하였다 (행 12:4). 이때 예루살렘 교회 (h` evkklhsi,a)는 체포당한 베드로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행 12:5). 예루살렘 교회의 기도는 여러 개의 가정교회에서 행해졌던 것이 틀림없다. 베드로가 천사의 도움으로 해방되어 찾아간 마리아의 집은 분명히 여러 개의 가정교회들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이것은 베드로가 마리아의 집에 도착한 후에 자신의 해방에 관하여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전하라 하고 다른 곳으로 갔다” (행 12:17)는 사실로부터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두 가지 점이 돋보인다. 첫째로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 vIakw,bw| kai. toi/j avdelfoi/j)는 다른 가정교회들이 집회장소와 예배처소로 제공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로 베드로가 “다른 곳으로” (eivj e[teron to,pon) 갔다는 것은 제3의 가정교회를 의미할 수 있다는 것이다29). “누가는 (오순절 후에) 공동체 전체가 한 장소에 회집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기록이 정확하다고 할 때, 신자의 수는 오순절의 결과로 3000명에 달하였다 (행 2:41; 참조. 4:4; 5:14; 6:7). 이렇게 많은 숫자는 신자들이 한 집에 모이지 못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베드로 자신이 마리아의 집에 모인 그룹에게 자신이 해방되었다는 것을 아마도 다른 곳에서 모이고 있는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말하라고 지시한 것은 집회장소가 여러 곳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예루살렘의 초대교회 내에 (잠정적으로건 그밖에 무엇으로건) 분쟁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이것으로부터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모든 신자 (심지어 다수를 이루고 있는)를 한 지붕 아래 모이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는 사실이다”30).


2) 이방선교의 가정교회 (사도행전 13-28장)

 

  누가는 이방선교에서 가정교회의 형성을 팔레스타인의 가정교회보다도 훨씬 더 분명하게 기록한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가 루디아의 경우이다31). 빌립보에서 사도 바울의 말을 듣고 기독교 신앙에 들어오게 된 루디아는 집과 함께 다 세례를 받았다 (행 16:15 “저와 그 집이 세례를 받고” evbapti,sqh kai. o` oi=koj auvth/j). 여기에서 누가 “집” (o` oi=koj)의 구성원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32). 어쨌든 루디아가 자신의 집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이 사건으로 이미 가정교회가 건설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33). 루디아의 집은 사도들이 빌립보에서 활동하는 동안 거점이 되었고, 나아가서 빌립보 초대교회의 본부가 되었으며34), 빌립보에서 선교교회의 중심이 되었던 것이 틀림없다35). 이러한 사실은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나온 후에 “루디아에게 가서 형제들을 보고 위로하였다” (eivsh/lqon pro.j th.n Ludi,an kai. ivdo,ntej pareka,lesan tou.j avdelfou,j, 행 16:40)는 말에서 분명하게 입증된다36).

  사도 바울이 복음사역에서 가정을 매우 중요시하였다는 것은 빌립보 감옥의 간수장과의 대화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감옥의 간수장에게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행 16:31 swqh,sh| su. kai. o` oi=koj sou)고 말하면서 “그 사람과 그의 집에 모든 사람에게” (행 16:32 su.n pa/sin toi/j evn th|/ oivki,a| auvtou/)37) 복음을 전하였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개인전도만큼이나 가정전도에도 총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로 말미암아 빌립보 감옥 간수장은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았다” (행 16:33 evbapti,sqh auvto.j kai. oi` auvtou/ pa,ntej). 결국 간수장과 함께 그의 “온 집이 하나님을 믿게” (행 16:34 panoikei. pepisteukw.j tw/| qew/|) 된 것이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감옥의 간수장을 대상으로 사역한 가정전도는 그의 온 집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는 놀라운 열매를 맺었다.

  사도행전은 가족이 복음화되었다는 증거를 많이 제시한다. 사도 바울이 드로아에서 작별하기 전에 마지막 집회를 가졌을 때 (행 20:7-12), 청년 (행 20:9 neani,aj)이자 아이 (행 20:12 pai/j)인 유두고가 그 집회에 참석한 것은 가족이 함께 참석한 것임을 암시한다. 이런 의미에서 드로아 집회는 가족교회들의 연합집회였을 것이다. 사도 바울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기 위하여 두로를 통과하였을 때 (행 21:4-6), 두로의 제자들은 “다 그 처자와 함께” (행 21:5 su.n gunaixi. kai. te,knoij) 사도 바울을 전송하였다. 이것은 두로의 신자들에게 가족이 복음화되어 있었던 것을 보여준다. 결국 가족의 복음화는 가족교회 (Family church)를 형성하게 되었다. 가족교회는 신약성경이 제시하는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조직이다38).

  누가는 사도 바울이 전체 집회만큼이나 가정집회를 중시했다는 것을 증거한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 대한 설교 (행 20:18-35)에서 자신의 사역을 요약하면서 자신의 목회는 전파 (avnaggei/lai)와 교훈 (dida,xai)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표현되었다고 말한다 (행 20:20). 사도 바울이 거리낌없이 전파하고 가르친 것은 “유익한 것들” (행 20:20)이었다. 그런데 이 전파와 교훈은 “공중 앞에서나 집에서나” 행해졌다 (행 20:20)39). “공중 앞에서” (dhmosi,a|)는 아마도 전체집회를 의미하는 것이며40), “집에서” (kat v oi;kouj)는 가정집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목회에서 전체집회 뿐 아니라 가정집회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2. 가정교회에 대한 바울서신의 증거


  사도행전 못지 않게 바울서신도 가정교회에 관하여 상당히 많은 자료를 제공한다. 이것을 성경의 순서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로마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6장에서 초기 기독교의 가정교회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41). 로마서 16장은 로마에 여러 개의 가정교회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증거한다42).


(1) 발신자의 상황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에 아마도 최소한 두 개의 지역교회와 관련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첫째로 겐그레아 교회이다. 이 교회는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 (집사)으로서 여러 사람과 사도 바울의 보호자가 되었던 뵈배의 집을 거점으로 형성되었을 것이다 (롬 16:1-2)43). 둘째로 고린도 교회이다. 이 교회는 가이오의 집에서 형성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롬 16:23). 그래서 가이오는 “온 교회의 식주인”이라고 불린다. 바울의 동역자 디모데를 빼더라도 바울의 친척 누기오, 야손, 소시바더를 비롯하여 (롬 16:21), 대서인 더디오 (롬 16:22), “이 성의 재무”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 (롬 16:23)이 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 외에도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자신의 주위에 또 다른 교회들이 있다는 것을 명시한다 (롬 16:4 “이방인의 모든 교회들”; 롬 16:16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들”). 이것은 지금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쓰고 있는 지역의 가족교회들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 수신자의 상황에서

  사도 바울은 이 단락에서 “문안하라”는 말을 16번 사용하고 있다 (롬 16:3, 5, 6, 7, 8, 9, 10a, 10b, 11a, 11b, 12a, 12b, 13, 14, 15, 16).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인사의 말을 가지고 때로는 한 개인에게44), 때로는 두 인물에게45), 때로는 여러 사람에게46) 문안을 한다47).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문안하라”는 말은 아마도 로마교회 안에 있던 여러 가족그룹들을 대상으로 삼고 있는 듯이 보인다는 것이다. 로마교회 안에는 여러 개의 작은 교회들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48). 이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입증해주는 것은 다음과 같은 가정들이다.

  첫째로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가정에 교회가 있었다 (th.n kat v oi=kon auvtw/n evkklhsi,an, 롬 16:5).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본래 본도에서 출생하여 로마에 거주하다가 클라우디우스 (Claudius) 황제의 추방령에 의해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체류한 후에 (행 18:2) 에베소로 이동하였고 (행 18:18f.) 결국은 다시 로마로 돌아간 것 같다. 고린도에서 사도 바울은 처음에 체류와 직업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사용했던 이 부부의 집에서 고린도의 도시선교를 전개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바울과 이 부부를 중심으로 하는 가정교회가 형성되었다. 사도 바울의 직업은 생계유지를 가능하게 했을 뿐 아니라 선교사업을 결실시키는 사회적인 접촉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이다49). 이 부부는 사도 바울과 함께 에베소로 건너가서 또 다시 가정교회를 설립하였는데 (고전 16:19), 여기에서 심지어 아볼로와 같은 인물을 깊은 신앙으로 양육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행 18:26)50). 어떤 이들은 브리스가와 아굴라에 대한 인사에 이어 언급된 에배네도 (롬 16:5)가 이 부부의 일군 또는 노예로서 복음을 받아들여 이 부부와 함께 가정교회의 일원이 되었다고 추정한다. 왜냐하면 이 구절에서 에배네도는 “그리스도를 위한 아시아의 첫 열매” (avparch. th/j  vAsi,aj eivj Cristo,n)로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51). 이것은 가능한 해석이다. 그렇다면 에배네도는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로마로 귀환할 때 동행하였을 것이다 (이 때문에 에배네도는 이들과 함께 사도 바울의 로마교회 문안목록에 등장하는 것이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로마에 도착하여 새로운 가정교회를 설립하고 로마방문을 계획하고 있는 사도 바울을 영접할 준비를 했을 것이다52).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이 가정교회를 근거로 하여 두 가지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로 그들은 사도 바울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이라도 내놓았고, 둘째로 이방인 교회들이 감사할 정도로 봉사를 하였다 (롬 16:4). 이렇게 볼 때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가정교회는 사도 바울의 선교본부로서 충실한 임무를 감당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놓여서 안될 사실은 사도 바울이 아내 브리스가를 남편 아굴라보다 먼저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그녀가 더욱 뛰어난 활동을 전개했다는 것이다53).

  둘째로 사도 바울은 “아리스토불로의 권속에게” (tou.j evk tw/n

vArisobou,lou, 롬 16:10b) 문안한다. 아리스토불로가 헤롯 가문의 일원이라면54), 그가 기독교인 노예들을 이끌고 유대로부터 로마에 옴으로써 기독교가 로마에 유입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55). 바로 이어서 언급되는 헤로디온은 유대인으로서 (바울의 suggenh,j) 아리스토불로의 권속과 모종의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롬 16:11a).

  셋째로 사도 바울은 “나깃수의 권속 중에 주안에 있는 자들” (tou.j evk tw/n Narki,ssou tou.j o;ntaj evn kuri,w|, 롬 16:11b)에게 문안하고 있는데, 이것은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나깃수의 사람들 (evk tw/n Narki,ssou)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님 안에 있게 (tou.j o;ntaj evn kuri,w|)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 의 사람들” (oi` NN)이라는 표현은 가족 또는 가솔을 가리킨다.

  넷째로 아순그리도, 블레곤, 허메, 바드로바, 허마에게는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 (tou.j su.n auvtoi/j avdelfou,j, 롬 16:14)이 있었다. 이 이름들 가운데 몇은 신화적인 이름들이다 (허메와 허마). 이것은 이 사람들이 노예이거나 노예상태로부터 풀려난 사람들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가정교회는 부분적으로 이런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섯째로 빌롤로고, 율리아, 네레오, 그의 자매, 올름바를 중심으로 하는 가정교회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들” (tou.j su.n auvtoi/j pa,ntaj a`gi,ouj, 롬 16:15)이 있었기 때문이다56). 네레오와 그의 자매가 이 가정교회에 속했다는 사실로부터 이 가정교회가 부분적으로 가족들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것은 만일에 빌롤로고와 율리아가 부부라면 더욱 확실한 일이다57).

  이로부터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끄집어 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로마에는 전면에 드러난 가정교회 지도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로 이러한 가정교회 지도자들은 로마의 여러 신앙지도자들은 먼저 자신들의 가족을 중심으로 최소단위의 교회를 이루고 있었다. 이것은 가족교회 (Family church)이다. 셋째로 이 가족교회에 방문자들과 손님들이 가담하여 가정교회 (House church)가 되었다. 특히 위의 마지막 두 경우를 살펴볼 때 가족교회가 가정교회로 확대되었다는 사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아순그리도, 블레곤, 허메, 바드로바, 허마에게는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 (롬 16:14)이 있었고, 빌롤로고, 율리아, 네레오, 그의 자매, 올름바는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들” (롬 16:15)이 있었다. 여기에 언급된 “형제들” (롬 16:14)과 “성도들” (롬 16:15)은 불특정인을 가리키는 표현처럼 보이지만 분명하게 이름을 제시하고 있는 사람들의 집에 예배하러 모여 두 개의 가정교회를 이룬 방문자들과 손님을 의미한다58). 이 사람들과 함께 사도 바울이 중요하게 여기는 로마의 여러 신앙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집에 로마에 가정교회를 건설했던 것이다. 이것은 처음에 가족으로 시작된 교회가 가정교회로 발전하여 성장한 증거를 보여준다. 넷째로 로마에 있는 가족교회들 또는 가족교회들로부터 발전한 가정교회들은 연합하여 한 지역교회를 이루었다. 이것이 로마교회이다 (롬 1:7). 이렇게 로마 교회에는 여러 개의 작은 가족교회들 또는 가족교회들로부터 발전한 가정교회들이 소속되어 있었다59).


2) 고린도전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의 도입부분에서 분쟁의 소식을 전달해준 “글로에의 사람들”에 관하여 언급한다 (고전 1:11). 글로에는 성별이 분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이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따라서 글로에의 집이 가정교회로 사용되었는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또한 사도 바울은 그리스보와 가이오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것을 명시한다 (고전 1:14). 사도행전에 의하면 그리스보는 회당장으로서 “그의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었다고 한다 (행 18:8). 이것은 그가 자신의 집을 가정교회로 제공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60). 가이오는 로마서에서 “온 교회의 식주인” (롬 16:23)으로 소개되었다. 이것은 가이오의 집이 가정교회로 사용되었지만 때때로 전체 교회의 회집장소로 제공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61). 만일에 이런 추측이 옳다면 고린도에는 하나의 지역교회와 여러 가정교회들이 병존했으며 다양한 회집형태가 있었다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62). 이것은 지역교회가 성장하게 되어 여러 가정에서 집회를 가지게 되었다는 의미보다는63), 여러 가정교회들이 연합하여 지역교회를 이루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자면 가정교회가 지역교회보다 시간적으로 우선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가정교회들은 중요한 결정이나 성찬을 위하여 전체교회의 모임을 가졌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고전 14:23에서 잘 드러난다64).

  고린도전서에서 가정교회 개념은 스데바나와 관련하여 가장 분명하게 발견된다65).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스데바나의 가족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고전 1:16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 [오이코스]에게 세례를 주었고” to.n Stefana/ oi=kon; 참조. 고전 16:15 “스데바나의 집” [오이키아] th.n oivki,an Stefana/)66). 마찬가지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집도 가정교회로 사용되었다 (th|/ kat v oi=kon auvtw/n evkklhsi,a|, 고전 16:19)67).


3) 갈라디아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게 자선을 강조하면서 특히 “믿음의 가정들에게” (tou.j oivkei,ouj th/j pi,stewj) 착한 일을 하라고 권면하고 있는데 (갈 6:10), 이것은 가족교회들을 고려할 것을 말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4) 골로새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골로새와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에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을 언급한다 (골 4:13,16). 특히 라오디게아에는 최소한 여러 개의 가정교회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68). 왜냐하면 눔바라는 여성의 집에 있는 교회가 설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녀의 [auvth/j]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골 4:15). 라오디게아 교회는 눔바라는 여성의 가족교회가 확대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만일 이 구절을 사본읽기에 따라서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들의 [auvtw/n] 집에 있는 교회”라고 읽는다면 라오디게아 교회는 형제들의 집을 거점으로 삼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서 가정규칙 (Haustafel)을 제시한 것은 가정교회를 전제로 한 것일 수 있다 (엡 5:22-6:9; 골 3:18-4:1). 다시 말하자면 가정규칙은 가정교회들의 생활과 윤리를 위한 지침이다69). 특히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설명한 것은 가족교회의 정당성을 더욱 확실하게 해준다 (엡 5:22-33)70).


5) 빌레몬서

  빌레몬서에서도 가정교회가 발견된다. 사도 바울이 문안하는 동역자 빌레몬과 자매 압비아와 군사된 아킵보가 한 가족이라고 생각할 때, 빌레몬의 집에 있는 교회 (몬 2, “네 집에 있는 교회”)는 일차적으로 가족교회를 가리킨다. 빌레몬의 가족교회는 “성도들” (몬 5,7)이 가세하여 가정교회가 되었다. 빌레몬서가 골로새서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골로새 교회는 빌레몬의 가족교회가 확대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71).


6) 데살로니가전서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를 마치면서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들리라” (살전 5:27)고 권면한 것은 전체집회를 염두에 두었다기보다는 각각의 가정교회에 있는 부분집회를 고려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72).


7) 목회서신

  사도 바울이 디모데전서에서 직분자들을 세우는 일과 관련하여 집을 잘 다스리는 것을 조건으로 삼은 것은 가족교회의 지도를 말하는 것일 수 있다 (딤전 3:4,12). 이때 사도 바울이 감독의 직분을 위하여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서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딤전 3:5)라고 말한 것은 가족교회를 지도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집” 딤전 3:15)도 지도할 수 없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또한 사도 바울이 디모데후서에서 축복했던 오네시보로의 집도 가정교회의 경우에 속할 것이다 (딤후 1:16; 4:19). 특히 사도 바울이 거짓 교사들은 신자들의 집에 침투하여 (딤후 3:6 오이키아) 전복시킨다 (딛 1:11 오이코스)고 말한 것은 단순히 신자의 가정을 의미한다기보다는 가족교회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3. 히브리서

  히브리서에서 가정교회에 관한 자료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열어두어야 한다73).


4. 요한서신

  만일에 요한이서의 수신자인 evklekta,를 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실제인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한다면74) 자녀들과 함께 (요이 1,13) 이룬 가정교회를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요한삼서에는 발신자인 장로의 교회 (요삼 6) 외에 수신자가 속해있는 교회가 언급된다 (요삼 9)75). 그런데 후자의 교회는 최소한 두 개의 가정교회로 구성된 것처럼 보인다. 이 교회에는 장로를 지원하는 가이오 (요삼 1)와 장로를 반대하는 디오드레베 (요삼 9)가 중요한 역할을 점유하고 있었다. 가이오와 디오드레베는 각각 가정교회의 지도자로서 활약을 했던 것이다. 가이오의 가정교회에는 데메드리오를 비롯하여 “친구” (fi,loi)들이라고 불리는 신자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요삼 15), 디오드레베의 가정교회에는 “그들” (auvtw/n)이라는 총칭 하에 디오드레베의 추종자들이 있었다 (요삼 9). 그런데 이 두 가정교회는 장로의 선교정책에 대하여 서로 다른 입장을 취했다.

 

5. 속사도시대


  가정교회 (또는 이보다 앞선 형태로서의 가족교회)는 신약성경 직후의 속사도 시대에도 계속되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디다케 (Didache)는 기독교의 교사들이 순회하는 중에 어느 가정에 숙박하게 되었을 때 세례와 성찬을 갖춘 예배를 인도했던 것으로 증거한다 (Did 11). 이것은 순회전도자들의 방문을 받는 가정들이 가족교회와 같은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가족교회 또는 가정교회의 모습이 이그나티우스의 서신들 (IgnSmyr 13:1-2; IgnPol 8:2)76), 헤르마스의 목자 (Sim 5,3,9), 빌립행전 (ActPhil 69)에서도 언뜻 발견된다77). 저스틴의 순교사에 의하면 2세기 경 로마에 가정교회가 있었다. 저스틴은 모든 성도가 한 장소에 모일 수 없었다고 말하면서 “나는 Timiotinian 목욕소 근처에서 어떤 Martinus라는 사람의 윗층에 살고 있는데 그의 집 외에 다른 곳에도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MartJustin 3,3)고 증언한다78). 이 말은 로마에 여러 개의 가정교회가 있었다는 것을 설명한다. PsClemRecg 71,2는 안디옥의 Theolphilus에 관하여 말하면서 “아주 큰 열정을 가지고 자기 집의 큰 공간을 교회의 이름 하에 헌물했다”고 한다. 이 말로부터 예배를 드리도록 자신의 집을 내놓은 경우들을 발견하게 된다79).


결론


  초기 기독교는 지역교회와 가정교회라는 이중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초기 기독교에서 지역교회와 가정교회는 서로 별다른 관계없이 존재하는 단순한 공존을 넘어서 때로는 단절을 보이고 때로는 연결을 보이는 복잡한 상생을 실현하였다. 지역교회는 가정교회들에 의하여 구성되면서 동시에 가정교회들은 지역교회에 의하여 보호되었다. 가정교회들이 상합하여 전체적인 지역교회로 발전하였고, 지역교회는 가정교회들에 개별적인 가치를 인정하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중구조 속에서 가정교회는 보다 근본적인 형식으로부터 유래하였다. 그것은 가족교회이다. 가정교회의 근간에는 가족교회가 있었다. 가족교회는 초기 기독교에서 최소단위의 교회였다. 가족교회는 더 이상 분할될 수 없는 가장 작은 교회형식이었다. 초기 기독교에서 지역교회가 강력한 인상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배경에 가정교회가 있었기 때문이며, 가정교회가 강력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근간에 가족교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초기 기독교가 가정복음화에 힘을 기울인 이유이다. 신약성경 (그리고 속사도시대 문서)을 살펴보면 초기 기독교가 가정집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발견하게 된다80). 가정에서 교회가 시작되었다81). 그러므로 초기 기독교는 가정교회의 시기였던 것이다. 이제 이와 같은 자료분석에 이어 초기 기독교에서 가정교회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포괄적으로 살펴보고 문제점을 생각해보면서 오늘날의 교회를 위하여 어떤 의미를 제공하는지 고찰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


참고문헌


Banks,R., Paul's Idea of community: The Early House Churches in Their Cultural Setting, Peabody: Hendrickson 1980, 1982

Barth,M./Blanke,H., "House Churches", The Letter to Philemon. A New-Translation with Notes and Commentary, Grand Rapids: Eerdmans 2000, 260-262

Blue,B., "Acts and the House Church", in D.W.J.Gill/C.Gempf (eds.), The Book of Acts in Its Graeco-Roman Setting (The Book of Acts in Its First Century Setting vol. 2), Grand Rapids/Carlisle; Eerdmans/Paternoster 1994, 119-222

*Branick, Vincent P, The House church in the writings of Paul, Wilmington, Del. : M. Glazier, 1989 (BS2655.C5 B73 1989)

Brown,R.E., Th Epistles of John (AncB 30), Doubleday: The Anchor Bible 1982

Bruce,F.F., The Pauline Circle, Carlisle: Paternoster 1985

Burchard,Chr., Der dreizehnte Zeuge. Traditions- und kompositionsgeschichtliche Untersuchungen zu Lukas’ Darstellung der Frühzeit des Paulus (FRLANT 103), Göttingen: Vandenhoeck/Ruprecht 1970

Dautzenberg,G., "Zur Stellung der Frauen in den paulinischen Gemeinden", in G.Dautzenberg / H.Merklein / K.Müller (hg), Die Frau im Urchristentum, Freiburg: Herder 1983, 1992, 182-224

Dodd,C.H., The Apostolic Preaching and Its Development, Grand Rapids: Baker 1980 (1936)

Filson,F.V., "The Significance of the Early House Churches", JBL 58 (1939), 105-12

Gnilka,J., Der Philemonbrief (HThK 10.4), Freiburg 1982

Haenchen,E., Die Apostelgeschichte (KEK), Göttingen: Vandenhoek/Ruprecht 1956, 10. Aufl.

Klauck,H.J., "Kuri,a evkklhsi,a in Bauers Wörterbuch und die Exegese des zweiten Johannesbriefes", ZNW 81 (1990), 135-138

Klauck,H.J., Hausgemeinde und Hauskirche im frühen Christentum (SBS 103), Stuttgart 1981

Klauck,H.J., "Neue Literatur zur Urchristlichen Hausgemeinde", BZ 26 (1982), 288-94

Lampe,P., "The Roman Christians of Romans 16", in K.P.Donfried (ed), The Roman Debate, Peabody: Hendrickson 1977, 1991

Malherbe,A.J., Social Aspects of early Christianity, Philadelphia: Fortress 1977, 1983

Meeks,W.A., The First Urban Christians: The Social World of the Apostle Paul, New Haven/London: Yale Univ. Press 1983

Monxnes,H.(ed.), Constructing Early Christian Families. Family as Social reality and Metaphor, London/NY: Routledge 1997

Osiek,C./Balch,D.L., Families in the New Testament World: Households and House Church,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1997 (BS2545 F33 07 1997)

Pesch,R., Die Apostelgeschichte, 1. Teilband: Apg 1-12 (EKK V/1), Zürich/Neukirchen-Vluyn: Benziger/Neukirchener 1986

Sandnes,K.O., "Equality within Patriarchal Structures. Some New Testament perspectives on the Christian fellowship as a brother- or sisterhood and a family", in H.Moxnes, Constructing Early Christian Families. Family as Social Reality and Metaphor, London: Routledge 1997, 150-165

Schäfer,K., Gemeinde als 'Bruderschaft'. Ein Beitrag zum Kirchenverständnis des Paulus, Bern: Peter Lang 1989

Schneider,G., Die Apostelgeschichte I. Teil: Einleitung. Kommentar zu Kap. 1,1 - 8,40 (HerderThKNT 5), Freiburg/Basel/Wien: Herder 1980

Schrage,W., Der Erste Brief an die Korinther. 3. Teilband: 1Kor 11,17-14,40 (EKK VII/3), Zürich/Neukirchen-Vluyn: Benziger/Neukirchener 1999

Schüssler-Fiorenza,E., "The Study of Women in Early Christianity: Some Methodological Considerations", in T.J.Ryan [ed], Critical History and Biblical Faith, New Testament Perspectives, Villanova: Villanova University 1979

Strobel,A., "Der Begriff des 'Hauses' im griechischen und römischen Privatrecht", ZNW 56 (1965), 91-100

Stuhlmacher,P., Der Brief an Philemon (EKK 18), 2. Aufl., Neukirchen 1981, 70-75 ("Urchristliche Hausgemeinden")

Theissen,G., 원시 그리스도교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6

Weiser,A., "Die Rolle der Frau in der urchristlichen Mission", in G.Dautzenberg/H.Merklein/K.Müller (Hg), Die Frau im Urchristentum, Freiburg/Basel/Wien: Herder 1983, 158-181

Witherington III, B., Women in the Earliest Churches, Cambridge: CUP 1988, 1991

장동수, “로마서의 목적”, 신약신학저널 2 (2001), 395-410

조병수, “선교교회와 지역교회의 갈등: 요한삼서 연구”, in 신약신학 열두 논문, 합동신학대학원출판부 1999, 191-220

조병수, “셀 목회와 현대 목회 전략”, 신학정론 19 (2001), 305-342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
반응형

조직신학 1. 『칼빈의 5대 교리』에 대하여 설명하시오.

 

서설

 

1) 칼빈은?

1517년 로마 카톨릭에 대한 루터의 ‘95개조 항의문’이란 종교개혁이 있은 후,

칼빈(1509-1564)은 이를 더욱 조직적이고 논리적으로 개혁주의 신학을 확립했다.

 

따라서 ‘루터 없이 칼빈 없고, 칼빈 없이 루터 없다’는 평가가 따르는 것은

“루터는 바위산을 폭파한 사람이라면 칼빈은 루터가 깬 바위에 글을 새긴 사람”이란

찬사를 받는다. (Philip Schapp)

 

그의 작품으로는 <기독교 강요>(1536초판과 1559년의 최종판; 평생 보완)

<주석> <설교> <신학논문> <편지> <예배서> <교리문답> 등이 있다.

 

이같은 저술에 나타난 칼빈의 성경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사상, 칭의관, 교회관,

성례론, 기도론, 목회원리 등은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도르트 신조, 웨스트민스

신앙고백, 존 낙스 등에 영향을 끼치고 네덜란드에 최초의 개신교 국가가 세워지며

17세기 교리 지상주의에, 18세기 영성운동에, 19세기 자유주의에 영향을 준다..
 

2) 칼빈주의가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

1884년 최초로 이 땅에 미북장로교 의료선교사 알렌이 입국하고,

1885년 미북장로 목사인 언더우드와 감리교목사인 아펜젤러가 선교사로 들어왔다.

 

그 후 1890년 평양신학교 마포삼열이 세워지고, 주기철, 이기선, 손양원, 박관준

안이숙 등 시대적 환경에 따른 순교자들이 잇따랐으며,

칼빈의 영향을 받은 목회자로 박형용, 박윤선, 명신홍 등 신학자들이 배출되었다.

 

3) 칼빈주의 교리는

⓵ 오직 말씀 (Sola Scriptura)

⓶ 오직 은혜 (Sola Gratia)

⓷ 오직 믿음 (Sola Fide)

⓸ 오직 그리스도 (Sola Christo)

⓹ 오직 하나님께 영광 (Sola Deo Gloria) 이었다.
 

2. 칼빈주의 5대 교리와 알미니안 주의 5대 교리와의 비교
 

1) 신학의 2대 사조

기독교 역사 속에서 논쟁이 되고 정의되어 왔던 어울릴 수 없는 2개의 신학사조가

존재한다. 오늘날은 칼빈주의는 정통, 알미니안 주의는 이단으로 치부되어 있다.

2) 2개 사조의 비교


칼빈주의 5대교리 (TULIP)
 
 
알미니안 주의 5대 교리
 

전적 부패 혹은 전적 무능력

Total Depravity
 
자유의지 혹은 인간의 능력

1) 인간의 타락은 인간의 지. 정. 의

모두가 무력해져 전적 부패하게 되었다

(롬3:10-12, 엡2:1-3)

2) 전적으로 부패하여 무능력한 인간은 스스로 구원을 성취할 수 없다.(요8:44)

3)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고

구원함을 얻을 수 있다.(엡2:4-9)
 
1) 인간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

전적 무력해진 것은 아니다.


2) 인간의 자유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베풀어진다.


3) 인간의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선택할 수 있다.

2. 무조건적 선택

Unconditional Election
 
2. 조건적 선택
 

1)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행위여하에

달려 있지 않고, 오직 그의 주권적

의지에 따라 예정되고 결정된다.

 

2)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자발적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한다.

 

3) 하나님께서 죄인을 선택하신 것으로

예정에 따라 구원이 이루어진다.

 
 
1) 인간이 하나님의 소명에 의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예지에 의해

특정한 개인들을 선택하셨다.

 

2) 하나님의 선택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되며

제약된다.

 

3) 믿음은 오직 인간 의지의 결과이다.

4) 구원은 죄인이 그리스도를

선택하므로 이루어진다.
 

3. 제한 속죄 혹은 특별구속

Limited Atonement
 
3. 일반 속죄 혹은 보편구속


1)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은 절대적 예정으로 선택된 자들에게만 제한되어 있다.

2) 그리스도의 속죄는 특별히 택한

자들의 죄를 사하신다.

3) 그리스도의 구속은 성령의 사역을

통해 모든 택한 백성에게 믿음으로

구원함에 이르도록 한다.

(마1:21, 10:5-6, 눅19:10)
 
 

1)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은 모든 자에게

해당된다.

2) 믿음으로 응답하는 자에게만

구원이 이른다.

3) 그리스도의 구속은 인간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선택할 때에 유효하다.

4. 불가항력적 은총 혹은

성령의 효과 있는 부르심

Imesistible Grace
 
4. 성령은 실제로 거스러질 수 있다.
 
1) 인간의 외적 소명은 때때로 거부될

수 있으나, 효과적으로 성령의 사역을

통해 내적으로 부르시고 구원에 이르게

한다.


2) 성령의 내적 소명은 인간에 의해

거부되어질 수 없다.


3) 성령은 인간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회개시키며, 기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케 한다.


4) 이와 같은 성령의 은총은

인간으로서는 불가항력적이며, 마땅히

순종하기에 이른다.
 
1)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해 성령의

부르심을 거스릴 수 있다.

2) 성령은 죄인이 믿을 때까지

그를 중생시킬 수 없다.

3) 우리가 믿음으로 중생이 가능하게

된다.

 
4) 인간의 자유의지는

성령의 구속사역을 제한한다.
 

5. 성도의 견인

Perseverance of Saints
 
5. 은총으로부터의 타락
 

1) 하나님에 의해 책정되고 구속함을

받은 성도는 때때로 시험에 빠질 수는 있으나, 영원한 하나님의 은총에서

타락할 수 없다.(한번 구원은 영원구원)

 

2) 성령의 사역은 택함을 받은 성도들을

끝까지 견디어 영광에 이르도록 하며,

성도는 이와 같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끝까지 인내하게 한다. (딤후4:18)


 
1) 참 믿음을 소유한 자임에도 불구하고

인내하지 못해 하나님의 은총으로부터

타락할 수 있다.

 

2)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을 죄와 유혹

에서 능히 지키시고 보존해 주지만,

이 은혜가 상실되지 않는다는 것은

성경에 의하여 증명되지 않는다.


3) 과연 칼빈주의는 무오한가?

 

칼빈이 위대한 신학자이자 목회자인지는 몰라도 하나님 곧 예수님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그 당시의 선지자들에 의해 쓰여짐으로써

교훈(교리)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기에 그 무오성이

인정된다.(딤후3:16)
 

하지만 칼빈주의나 알미니안 주의 등 시대흐름에 따른 신학과 사상은 하나님 말씀을

대신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하물며 오늘날에는 하나는 정통이고 또 하나는 이단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는 더욱

위험한 발상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성경에 비추어 진정 성서적 교리로서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그 뜻에 합당한지를, 무엇을 받아들이고 버려야 할 것인지를 분별해야 한다.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이요(고전1:18),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20).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1:7-8)


3. 칼빈의 5대 교리에 대한 성서적 고찰

 

1) 제한 속죄와 무조건적 선택---> 예정론과 결부된 논쟁

당시 예수님은 예정에 의하여 선택된 사람들만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제한적 속죄론이 문제가 되었다.

 

특히나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오도한 ‘타락 전 예정설’에 대해

알미니우스는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선한 일의 시작이요, 계속이요, 마침이다.

그러나 이 은혜는 저항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여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자율적인 사랑의 관계이지 일방적으로 선택에 의하는

기계적인 관계가 아님’을 강조하였다.

 

또한 존 웨슬리는 인간의 이성과 의지가 죄로 인하여 비록 어두워지고 약화되어

스스로 선을 택하고 의를 행하기에는 무력하게 되었지만,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총이 임할 때 믿음으로 반응할 수 있는 것이다. 라고

항변하였다.

 

2) 도르트 종교회의-개혁교회의 종교재판이라 칭한다.

1610년 알미니우스를 지지하는 46명의 개혁교회 목사들은 5개 신조를 공인해줄

것을 국회에 제출하고, 이에 엄격한 칼빈주의자들은 즉시 반대의 입장을 표명했다.


3) 성서적 고찰과 사견

 

로마서 8장 말미에 ‘미리 정(예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8:30)

이는 어디까지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요 지혜이시며 긍휼하심이다.

 

또한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합2:4, 롬1:17

갈3:11, 히10:38) 「믿음에서 난 의」요(롬9:30-32) 선택이기에, 그에 따른 선한

행위가 있음으로 온전해지는 것 아닌가!? (약2:22)

 

따라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뢰하고 여호와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아 선을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시37:3) (롬12:2) (엡2:10)

 

그러므로 칼빈주의자들의 주장처럼 극단적인 예정론을 고집하여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거나 어떠한 경우에도 성령은 성도를 견인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을(롬9:13)

극단적인 하나님의 선택(예정)이고 유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우린 성경을 읽음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미련할 정도로 고집스럽게 자기 관점에서 자기를 위해 읽는 사람이 있다.

 

따라서 칼빈의 5대 교리는 하나님 중심의 하나님 관점에서 바라보는 입장이고,

알미니안의 5대 사조는 실제 하나님의 예지와 은혜 속에서 인간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이지만, 창조주로부터 자유의지를 허락받은 인간의 입장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주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인본주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알미니안 주의에서 예수님의 구속사역은 모든 자들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대속이고, 이를 믿고 응답하는 자에게만 구원이 이른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4. 결어

 

칼빈의 5대 교리에 대해서 결코 부정하지는 않는다.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기에 그분께서 자신이 예정하시고, 또한 부르시고,

또한 의롭다 하시고, 또한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도 확신한다. (롬8:30)

 

다만 지나친 칼빈주의자들로 자신들만 옳고 정통이며, 나머지는 다 이단이라고

배격하는 것은 현 한국 교회에 은혜와 덕이 되지 못한다.

 

지금도 OOO에 의한 세월호 사건으로 아직도 피해자들은 농성 중이고

​5대 교리 중 한번구원은 영원구원이라는 무조건적인 구속과 구원 후 죄를 지어도

끝까지 견인해 영광에 이르도록 한다는 주장은 재고되어야 한다.

 

더더욱 진정한 기독교인으로서 타 종교에 본이 되지 못하고,

나만 예수 믿어 천국 가면된다는 이기적 논리는 이제 맘먹고 믿어 보려고 교회에

발을 들여 놓는 초보자들이나 불신자들에게 염증을 느끼게 하여

믿음의 뿌리도 내리기 전에 떠나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우리는 WCC 등 다원주의에 동참하고 특히나 예수회 학자들의 기독교학계의

침투와 물타기 작전에도 영적 분별력을 키워 철저히 대비하고 척결해 나가야 한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