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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 Year's Eve Service (송구영신예배 설교)

송구영신예배 설교 (말씀 : 고후5:17)

제목 : 행복한 새해

1.행복은 마음에 있습니다.

옛날에 어느 나라의 임금님이 큰 병이 들어 나라의 용하다는 의원을 다 불러서 처방을 하였으나 백약이 무효이고 병은 점점 깊어져 생명이 위독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 소식을 듣고 한 지혜자가 찾아와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속옷을 입으면 임금님의 병은 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을 시켜 전국 방방곡곡에 다니며 가장 행복한 사람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대감들의 집을 찾아가 물었으나 누구도 내가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음에는 전국에서 이름난 부자집을 찾아다니며 물었지만 이들도 역시 제일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학문이 높은 사람을 찾아가 물어보았지만 역시 자신이 제일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권세자, 부자, 지식인 등 행복할 만한 사람들을 모조리 찾아 다녔지만 제일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낙심하며 돌아오며 산길을 걷다가 오두막을 발견하고 거기서 묵게 되어 주인 영감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는데 뜻밖에도 이 산골 오두막에 사는 노부부가 자신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신하는 너무 반가워 그러면 당신들의 속옷을 좀 달라고 하자 노부부는 우리는 너무 가난하여 지금까지 속옷을 입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행복은 결코 권력이나 지식이나 돈이나 잘 생긴 외모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행복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과 조건에 관계없이 행복을 담을 수 있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 행복하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마음을 갖지 못한 사람은 천하를 가지고도 행복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마음에 있습니다. 그래서 눅17:20,21절에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그렇다고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적으로 임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천국은 이 땅위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몸을 그대로 가진 상태에서 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국은 완전히 새롭게 창조되어 우리에게 임할 것인데 그 동안은 그 천국의 임재를 바라보며 그 천국에 합당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천국을 여기서도 앞당겨 누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분명 우리 안에 있습니다. 천국도 우리 안에서 있습니다. 믿음으로 천국에 합당한 마음으로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갈 때에 우리는 모든 조건에 관계없이 천국의 은총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여러분은 이 새롭게 밝아온 새해에는 천국을 누리기에 합당치 않은 모든 부정적이고 패배적이고 절망적이고 불신앙적인 것들을 제거하고 오직 믿음과 사랑과 은혜와 거룩함과 진실함과 성실함으로 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새롭게 다가온 이 새해에는 여러분 모두의 삶이 정말 행복하고 기쁘고 감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2.속사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행복하려면 행복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 행복한 마음은 어떻게 가질 수 있느냐? 죄와 무지속에 있는 옛것을 버리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죄와 무지속에 있는 그래서 불신앙적이고 부정적이고 패배적이고 추한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믿음과 사랑과 은혜와 기쁨과 감사와 선과 의와 거룩과 진실 등의 아름다운 마음으로 채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마음으로 어떻게 행복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부정적인 모든 것들을 추방하고 우리 주님의 마음인 사랑과 은혜와 진실과 거룩과 의와 선으로 채우면 그 인생이 어찌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엡4:22-24절에서는 말씀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마귀의 권세아래 있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버리고 생명과 진리의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심령을 채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두말할 나위도 없이 주님 안에 있는 생명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한번 해봅시다. 과거의 낡고 가치없고 부정적이고 어두운 것들은 벗어 던져버려 봅시다. 부정적이고 편협적이고 이기적인 과거의 잔재를 벗어 봅시다. 그거 그렇게 어려운 일 아닙니다. 주님 앞에 엎드리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마음먹고 주님 앞에 간절히 엎드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새 마음으로 살아가면 우리는 얼마든지 상황과 환경과 처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시면 가능합니다.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마른 지팡이에서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죽어서 썩은 시체가 살아나는데 무슨 환경, 상황, 나이 그게 무슨 대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새해는 정말 하나님 엎드려 성령의 도우심을 덧입어 과거의 모든 아름답지 못한 잔재들은 다 날려버리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아 아름답고 향기롭고 큰 기쁨과 은혜와 축복이 가득한 복된 날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삶의 목적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존재의 목적에 가장 부합되는 존재가 가장 가치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에 어긋난 것은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버림 받게 됩니다. 안 그렇습니까? 텔레비전이 아무리 좋게 보여도 화면이 안 나오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냉장고에서 시원한 바람이 안 나오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다 고물상으로 들어가 폐기되는 길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적이 있습니다. 그냥 무의미가 왔다가 가는 것이 인생이 아닙니다. 그냥 잘 먹고 잘살다가 가도록 만들어진 존재도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을 위하여 지음 받았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사43:7절을 보세요.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 인생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욕심쟁이라서 우리 인간을 만들어 놓고는 가만히 앉아서 자기 혼자 영광을 누리려고 지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우리에게도 영광이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우리가 나 자신을 비롯하여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들, 즉 모든 물질과 시간과 자연과 지헤와 능력과 감정과 영성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할 때 그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이 되겠습니까? 그 얼마나 아름다운 가치를 갖게 되겠습니까? 얼마나 바르게 사용하겠습니까? 얼마나 이웃에게도 기쁨과 유익을 주겠습니까?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겠으면 얼마나 풍성하겠습니까?

반면에 그저 자신만을 위하여 사용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하다보면 결국 재물의 노예가 되고, 권력의 노예가 되고, 나아가 향락에 노예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저 더 많이 소유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고, 자연과의 관계가 깨지고. 이웃과의 관계가 깨져서 갈등과 시기와 거짓과 분쟁과 불만과 불평과 원망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바로 여기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이 목적을 가지게 되면 하나님과 물질과 시간과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물질과 권력과 소유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바르게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와 평화가 자유가 임합니다. 행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결코 자기 영광, 자기 만족, 자기 명예를 위해서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삶을 영위할 때에 세상의 모든 종노릇하는데서 해방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여러분 자신도 진정한 자유와 평강과 기쁨 속에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속사람이 새로워지고, 올바른 목적을 가질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오늘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어떻게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요?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님 만나면 가능합니다. 예수님 만나 성령의 능력을 덧입으면 우리는 얼마든지 내 영혼 속에 있는 모든 죄악된 것들, 무지한 것들, 거룩하지 못하던 것들, 어둡고 칙칙하고 부정적인 것들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환경, 조건, 상황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안 됩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죄의 뿌리를 뽑아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인격수양이나 과학이나 지식이나 무슨 물리적인 힘으로도 안됩니다. 그러나 예수이름으로는 가능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환경, 상황, 나이 그까짓 것 별거 아닙니다. 주의 성령의 능력으로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막9:23절에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어렵고 힘든 상황들이 있지만 그러나 주님 안에서는 그러한 것들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롭게 밝아온 이 새해에는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상황과 환경과 소유욕과 죄와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참 자유와 평화와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는 삶을 통하여 주의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건강의 복과 자녀의 복과 물질의 복과 형통의 복을 누리시기는 이 복된 한해가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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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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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예배 설교- 하나님의 방식으로 (To Live In God’s Way)

 


 

제목 :이제는 하나님의 방식으로 (To Live In God’s Way)

말씀 : 베드로전서 5:5-11

 

5 젊은이들은 웃어른께 순종하며 겸손하십시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6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 아래 자신을 낮추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때가 이를 때에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7 모든 걱정과 근심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돌보시고 계십니다.
8 마음을 강하게 하고 늘 주의하십시오. 원수 마귀가 배고파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9 마귀에게 지지 말고 믿음에 굳게 서 있기 바랍니다. 온 세상의 모든 성도들도 여러분과 같은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10 힘든 고난은 잠시 동안입니다.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바르게 세우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뒤에서 받쳐 주시고 든든하게 세워 주셔서, 결코 넘어지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여러분을 친히 부르셨으니, 그 영광이 영원토록 함께하기를 기도드립니다.
11 모든 능력이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하기를 빕니다. 아멘. (쉬운성경)

 
매년 이 시간이 되면 우리 마음이 착잡해 집니다. 마음이 착잡해 지는 이유는, 올 한 해에 대한 후회와 반성 때문입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좀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는데......” “좀 더 사랑할 수 있었는데......” 이런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 편 우리 마음 속에 다가오는 새로운 해에 대한 기대감이 있습니다. 이 기대감을 생각하면 우리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새해에는 무슨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아직 한번도 살아 보지 않은 시간에 대한 기대감과 희망이 우리 가슴을 뛰게 합니다.


여기까지는 누구에게나 다 이 맘 때가 되면 드는 생각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았는지 우리 자신들을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적으로 열심히 살았고, 업적을 남겼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삶을 살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크리스천으로 사는 데 실패한 것입니다.

놀랍게도 성경에는 우리 크리스천들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길이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길을 “좁은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걷는 “넓은 길”이 아니라, 길이 좁고, 험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걷지 않는 “좁은 길”이라고 했습니다. “넓은 길”는 걷기에 편한 길이지만 그 길은 멸망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반면에, “좁은 길”은 그 길로 가는 사람이 적지만, 그 길은 생명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7:13-14).

구약성경에도 이 길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는, 물이 넉넉한 요단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이 길은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이 보이는 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그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은 소돔과 고모라 성으로 가는 멸망의 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이 선택한 길과 반대편으로 난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길을 선택한 아브라함은 동서남북 사방을 바라보았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황량한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시는 길이었고,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이 있는 길이었습니다.

성경에 또 다른 길이 나옵니다. 하나는, “여로보암의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은 번영이 약속된 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중심적인 생각이 지배하는 우상숭배의 길이었고, 악한 길 (왕상 13:33, 15:34, 왕하 3:3, 10:29)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다윗의 길 (역대하 34:2)”이 있습니다. 다윗이 살아왔던 길입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는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의 길이 어떤 길인지 보여 주십니다. 저는 오늘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들이, “새해에는 이렇게 살겠습니다” 하고 여러분의 결심을 하나님께 올려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믿음 생활에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렇게 살겠다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심했다고 다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결단의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이 결단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면 우리가 결심한 대로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와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읽어 보면 우리가 따라서 살아야 할 하나님의 방식에 대한 삶이 네 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authority를 따라 살라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그 말씀이 5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In the same way, you younger men must accept the authority of the elders. And all of you, serve each other in humility, for ‘God opposes the proud but favors the humble.’” 이 말씀에 나오는 “elder”라는 말은 공동체 안에서 나이 많은 윗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의미에서 “elder of elders”는 하나님이십니다.  골로새서 4:1에 이런 말씀이 있는 것을 아십니까? “Masters, be just and fair to your slaves. Remember that you also have a Master in heaven.”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authority를 인정한다는 것은 내 삶에 대한 최종적인 권위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은 이렇게 결정할까 저렇게 결정할까 하고 망설여지고 혼란스러울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쪽으로 결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 순간에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 결정해 버리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중에 이런 종류의 크리스천들이 너무 많습니다. 너무 많은 게 아니라 거의 전부가 이런 식으로 삽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크리스천인 줄 압니다.

저는 결코 완전주의자가 아닙니다. 저는 인간성의 연약함을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제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연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까지 우리의 연약함만 내 세울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제는 우리의 연약함을 극복하는 승리의 기쁨을 맛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는 성경 말씀이 맞다, 성경 말씀이 진리라는 사실을 나의 삶을 통해서 증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디서 그런 말씀을 읽었습니다. 무디의 성경에 “T”와 “P”자가 군데 군데 무슨 암호처럼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T”자는 “tried”의 약자였고, “P”자는 “proved”의 약자였다고 합니다. “tried”는 하나님의 말씀에 그렇게 나와 있으니까 그대로 시도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proved”는 이 말씀이 사실로 입증되었다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authority, 하나님의 권위라고 할까요? 아니면 조금 의역해서 하나님의 주인되심이라고 할까요? 내 삶에 대한 나의 authority가 아니라 하나님의 authority를 인정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여태까지는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나의 권위를 따르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항상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자기 마음대로 살아서 그 삶에 만족한다면 계속 그렇게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내 마음대로 살아서 나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는 하나님의 방식으로 한번 살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방식은 다른 것 아닙니다. 너의 삶에 대한 최종적인 권위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오늘 말씀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방식은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So humble yourselves under the mighty power of God (6절)”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간성 자체가 교만합니다. 그래서 겸손하려고 애는 쓰지만 그 때 뿐이고, 여전히 우리는 교만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속적으로 겸손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훈련을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겸손한 삶의 비결입니다.

셋째로, 오늘 말씀에 나와 있는 삶의 방식은 모든 걱정과 근심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모든 걱정과 근심을 내가 안고 살았던 삶의 방식과는 너무나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걱정과 근심을 맡긴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자기 부모가 자기들을 돌본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어딜 가도 돈 낼 걱정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돈을 낸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하늘 나라는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마태복음 19:14)” 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에게서 보신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나의 부모가 나의 필요한 것을 공급하신다”는 믿음 아니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온갖 걱정과 근심을 합니다. 오늘 말씀에 “Give all your worries and cares to God, for he cares about you (7절)”라고 나와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보니까 구약성경에도 이와 똑 같은 말씀이 나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시편 55:22에 있는 말씀입니다. 이 시편은 다윗이 쓴 시편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다윗에게 얼마나 불안하고, 걱정되는 일들이 많았습니까? 생명의 위기를 느낀 적이 많았습니까?

언제부터인지 사울에게 악한 영 (evil spirit)이 들어갔습니다. 악한 영이 들어가면 사울은 괴로워했습니다. 그 때 사람들이 사울을 치료하기 위해서 추천한 사람이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이 수금 연주를 잘했기 때문에 그의 연주를 들으면 사울의 증상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증상이 악화될 때는 별로 효과가 없었습니다. 한번은 수금 연주를 듣던 사울이 갑자기 손에 들고 있던 창을 다윗을 향해 던졌습니다. 그 창은 다윗의 목을 겨누었습니다. 가까스로 다윗은 그 창을 피했고 창은 벽에 박혔습니다. 이런 일이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평생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사울이 실수할 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향한 사울의 창 끝은 두 번이나 빗나가 벽에 박혔습니다.

이런 위기 속에서 그 무엇이 다윗을 지켜 주었을까요? 바로 시편 55:22 말씀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짐을 여호와께 맡기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여러분을 돌보실 것입니다. 그분은 절대로 의로운 사람을 넘어지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믿음이었습니다. 이 믿음이 다윗을 모든 불안과 위기의 순간에서 그를 구원하였습니다. “Give your burdens to the Lord, and he will take care of you. He will not permit the godly to slip and fall.” (New Living Translation) 이것이 다윗이 살아가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살아가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2016년 새해를 살아가는 너희들의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Stand firm against God, and be strong in your faith (9절)”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평안하고 걱정 없을 때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삶에 고난이 닥칠 때 더욱 중요합니다. 2016년 한 해 동안 우리의 삶에 아무 고난이 없을까요? 파도가 없는 바다처럼 고요하기만 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불어 닥칠 고난을 예상해야 합니다. 베드로도 신앙의 박해를 피해 소아시아 (지금의 터키) 지방에 피신해 있는 성도들에게 똑 같은 말을 했습니다. 고난의 삶을 예상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난을 겁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겁내지 말고 “Stand firm against God, and be strong in our faith”이라고 합니다. 그 뒤에 나오는 말씀을 보세요. “Remember that your Christian brothers and sisters all over the world are going through the same kind of suffering you are.” 너 혼자만이 아니라 온 세상에 있는 크리스천들이 같은 고난을 받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이 위로가 되시나요? 여러분의 학업, 새해에는 아무 일 없이 계획한대로 잘 되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고 있는 비지네스, 새해에는 잘 되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어쩌면 올해 보다 더 어려운 해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헬조선”이라는 말이 젊은 청년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헬 (hell)은 지옥이란 뜻입니다. 조선이란 말은 한국을 뜻하는 말입니다. 지옥과 같은 한국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말들이 청년들의 입에서 오르내린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픕니다. 지금은 헬조선이지만 내년에는 그런 말이 없어질 것이라는 보장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이보다 더 심한 신조어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이 때 필요한 것이 “Stand firm against God, and be strong in your faith” 이 믿음입니다. 힘이 들수록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이 더욱 강해져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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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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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 예배설교 (New Year's Eve Service)

 

 

 

말씀 : 고후5:17

제목 : 행복한 새해

1.행복은 마음에 있습니다.

옛날에 어느 나라의 임금님이 큰 병이 들어 나라의 용하다는 의원을 다 불러서 처방을 하였으나 백약이 무효이고 병은 점점 깊어져 생명이 위독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 소식을 듣고 한 지혜자가 찾아와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속옷을 입으면 임금님의 병은 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을 시켜 전국 방방곡곡에 다니며 가장 행복한 사람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대감들의 집을 찾아가 물었으나 누구도 내가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음에는 전국에서 이름난 부자집을 찾아다니며 물었지만 이들도 역시 제일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학문이 높은 사람을 찾아가 물어보았지만 역시 자신이 제일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권세자, 부자, 지식인 등 행복할 만한 사람들을 모조리 찾아 다녔지만 제일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낙심하며 돌아오며 산길을 걷다가 오두막을 발견하고 거기서 묵게 되어 주인 영감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는데 뜻밖에도 이 산골 오두막에 사는 노부부가 자신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신하는 너무 반가워 그러면 당신들의 속옷을 좀 달라고 하자 노부부는 우리는 너무 가난하여 지금까지 속옷을 입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행복은 결코 권력이나 지식이나 돈이나 잘 생긴 외모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행복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과 조건에 관계없이 행복을 담을 수 있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 행복하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마음을 갖지 못한 사람은 천하를 가지고도 행복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마음에 있습니다. 그래서 눅17:20,21절에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그렇다고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적으로 임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천국은 이 땅위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몸을 그대로 가진 상태에서 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국은 완전히 새롭게 창조되어 우리에게 임할 것인데 그 동안은 그 천국의 임재를 바라보며 그 천국에 합당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천국을 여기서도 앞당겨 누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분명 우리 안에 있습니다. 천국도 우리 안에서 있습니다. 믿음으로 천국에 합당한 마음으로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갈 때에 우리는 모든 조건에 관계없이 천국의 은총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여러분은 이 새롭게 밝아온 새해에는 천국을 누리기에 합당치 않은 모든 부정적이고 패배적이고 절망적이고 불신앙적인 것들을 제거하고 오직 믿음과 사랑과 은혜와 거룩함과 진실함과 성실함으로 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새롭게 다가온 이 새해에는 여러분 모두의 삶이 정말 행복하고 기쁘고 감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2.속사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행복하려면 행복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 행복한 마음은 어떻게 가질 수 있느냐? 죄와 무지속에 있는 옛것을 버리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죄와 무지속에 있는 그래서 불신앙적이고 부정적이고 패배적이고 추한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믿음과 사랑과 은혜와 기쁨과 감사와 선과 의와 거룩과 진실 등의 아름다운 마음으로 채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마음으로 어떻게 행복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부정적인 모든 것들을 추방하고 우리 주님의 마음인 사랑과 은혜와 진실과 거룩과 의와 선으로 채우면 그 인생이 어찌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엡4:22-24절에서는 말씀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마귀의 권세아래 있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버리고 생명과 진리의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심령을 채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두말할 나위도 없이 주님 안에 있는 생명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한번 해봅시다. 과거의 낡고 가치없고 부정적이고 어두운 것들은 벗어 던져버려 봅시다. 부정적이고 편협적이고 이기적인 과거의 잔재를 벗어 봅시다. 그거 그렇게 어려운 일 아닙니다. 주님 앞에 엎드리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마음먹고 주님 앞에 간절히 엎드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새 마음으로 살아가면 우리는 얼마든지 상황과 환경과 처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시면 가능합니다.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마른 지팡이에서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죽어서 썩은 시체가 살아나는데 무슨 환경, 상황, 나이 그게 무슨 대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새해는 정말 하나님 엎드려 성령의 도우심을 덧입어 과거의 모든 아름답지 못한 잔재들은 다 날려버리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아 아름답고 향기롭고 큰 기쁨과 은혜와 축복이 가득한 복된 날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삶의 목적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존재의 목적에 가장 부합되는 존재가 가장 가치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에 어긋난 것은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버림 받게 됩니다. 안 그렇습니까? 텔레비전이 아무리 좋게 보여도 화면이 안 나오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냉장고에서 시원한 바람이 안 나오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다 고물상으로 들어가 폐기되는 길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적이 있습니다. 그냥 무의미가 왔다가 가는 것이 인생이 아닙니다. 그냥 잘 먹고 잘살다가 가도록 만들어진 존재도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을 위하여 지음 받았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사43:7절을 보세요.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 인생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욕심쟁이라서 우리 인간을 만들어 놓고는 가만히 앉아서 자기 혼자 영광을 누리려고 지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우리에게도 영광이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우리가 나 자신을 비롯하여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들, 즉 모든 물질과 시간과 자연과 지헤와 능력과 감정과 영성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할 때 그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이 되겠습니까? 그 얼마나 아름다운 가치를 갖게 되겠습니까? 얼마나 바르게 사용하겠습니까? 얼마나 이웃에게도 기쁨과 유익을 주겠습니까?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겠으면 얼마나 풍성하겠습니까?

반면에 그저 자신만을 위하여 사용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하다보면 결국 재물의 노예가 되고, 권력의 노예가 되고, 나아가 향락에 노예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저 더 많이 소유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고, 자연과의 관계가 깨지고. 이웃과의 관계가 깨져서 갈등과 시기와 거짓과 분쟁과 불만과 불평과 원망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바로 여기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이 목적을 가지게 되면 하나님과 물질과 시간과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물질과 권력과 소유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바르게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와 평화가 자유가 임합니다. 행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결코 자기 영광, 자기 만족, 자기 명예를 위해서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삶을 영위할 때에 세상의 모든 종노릇하는데서 해방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여러분 자신도 진정한 자유와 평강과 기쁨 속에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속사람이 새로워지고, 올바른 목적을 가질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오늘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어떻게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요?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님 만나면 가능합니다. 예수님 만나 성령의 능력을 덧입으면 우리는 얼마든지 내 영혼 속에 있는 모든 죄악된 것들, 무지한 것들, 거룩하지 못하던 것들, 어둡고 칙칙하고 부정적인 것들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환경, 조건, 상황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안 됩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죄의 뿌리를 뽑아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인격수양이나 과학이나 지식이나 무슨 물리적인 힘으로도 안됩니다. 그러나 예수이름으로는 가능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환경, 상황, 나이 그까짓 것 별거 아닙니다. 주의 성령의 능력으로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막9:23절에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어렵고 힘든 상황들이 있지만 그러나 주님 안에서는 그러한 것들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롭게 밝아온 이 새해에는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상황과 환경과 소유욕과 죄와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참 자유와 평화와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는 삶을 통하여 주의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건강의 복과 자녀의 복과 물질의 복과 형통의 복을 누리시기는 이 복된 한해가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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