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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설교] 인생의 황금비율(설날설교)

 

 

 

제목 : 인생의 황금비율

말씀 : 요삼1:2~4

1.인생의 황금비율을 잘 유지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오늘 민족의 명절인 설날을 맞이하여 모든 성도 여러분과 고향을 찾은 모든 성도여러분의 가족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크신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온 가족 친지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큰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혈육 간에도 아름다운 사랑과 은혜와 기쁨을 마음껏 나누는 복된 설 명절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은 먼저 그림을 하나 보겠습니다. 자 화면에서 보는 것처럼 다섯 개의 사각형이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편안해 보이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사람마다 약간 다를 수 있지만 십중팔구는 5번을 꼽는다고 합니다. 이 사각형의 가로와 세로의 비율은 약1.6:1입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하여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음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집을 지을 때나 텔레비전을 비롯한 모든 공산품을 만들 때도 적용되고, 사람도 배꼽을 기준으로 하체와 상체의 비율이 1.6:1에 가장 가까울 때 가장 균형이 잡히고 아름답고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1.6:1이라는 이 비율을 황금비율이라고 합니다. 황금비율이란 수학, 기하학, 미술, 건축학, 과학 등에서 두루 통용되는 법칙으로 가장 안정적이고 편안해보이고 아름답게 보이는 비율을 말합니다. 이 비율이 대략 1.6:1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 인생은 어떨까요? 우리 인생에게도 분명히 이런 황금비율이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려 외형적으로도 가장 어울리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안정적인 비율이 있는 것처럼 내적으로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해주신 가장 아름답고 안정적이고 편안하고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는 비율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적인 황금비율은 꼭 1.6:1은 아니지만 분명히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이상적인 조합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그 비율을 잘 지키며 살아가는 인생이 가장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누리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럼 인생의 황금비율이 뭡니까? 그건 영과 육과 혼이라고 하는 인간의 전인격체의 가장 이상적인 조합을 이룬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영적인 영역과 육적 혹은 물적인 영역, 그리고 정신적인 영역이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비율대로 균형이 잘 잡혀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고 따라서 가장 안정적이고 편안하고 아름답고 생명력이 넘치는 삶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 그렇습니까? 만약에 돈은 엄청나게 많은데 인격이 엉망이거나 반대로 인격은 좋은데 돈이 너~무 없어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면 어찌 생명력 넘치는 삶이 되겠습니까? 혹은 지식은 많은데 인품이 엉망이거나 반대로 인품은 괜찮은데 아는 게 너~무 없다면 과연 풍요로운 삶이 될 수 있겠습니까? 혹은 육체는 건강하고 잘생기고 좋은데 정신이 온전치 못하거나 반대로 정신은 온전한데 육신이 병들거나 하면 어떻겠습니까? 혹은 지식도 돈도 인품도 건강도 좋은데 신앙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영과 육과 혼이 아름답고 고귀하고 멋있고 신비롭게 조화를 이룬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영역이 골고루 발달하여 잘 조화를 이룰 때 그 인생은 최상의 가치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피조물 중에서 오직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며 축복입니다.

그래서 돼지를 비롯한 짐승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짐승들에게도 본능적인 욕망이 있고 약간의 희노애락을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긴 하지만 그러나 그것들은 무슨 윤리니 도덕이니 품격이니 가치니 영성이니 이런 거 하고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저 먹을 것만 있으면 만사가 해결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야말로 전인격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곳도 물론 있어야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윤리와 도덕과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문화적 물질적 정신적 욕구도 충족되어야 합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 주님을 만날 준비도 해야 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요소 중에서 어느 한쪽이 탈나면 그 인생은 비틀거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2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보십시오, 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영혼이 잘 되는 것이 뭡니까?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과 기쁨과 은혜와 평강을 마음껏 누리는 삶을 말합니다. 범사에 잘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그대로 모든 게 잘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 평안하고, 경제가 잘되고, 타인과의 관계가 잘 되고, 육신이 건강하고 그래서 살아가는 데 문제거리가 없이 일이 잘 풀려 나가는 것입니다. 강건한 것은 무엇입니까? 정신적으로 건전하고 강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유혹이나 어려움이 닥쳐도 흔들림이 없이 굳건하게 서있는 것입니다. 또한 육체적으로도 건강하여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황금비율인 것입니다. 몇 대 몇 대 몇이라고 딱히 정해진 비율은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 모든 영역이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정말 우리의 영과 육과 혼이 균형있게 발달될 수 있도록 힘쓰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분은 죽어라고 일만하시는 분도 계신데 여러분, 그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또 반대로 어떤 분은 죽어라고 일하기 싫어하고 편하게 놀고 먹고 살려고 하는데 그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또 어떤 분은 죽어라고 육신의 건강을 챙기느라고 시간을 거기에 다 투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 몸 가꾸는데 정열을 바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또 너~무 몸을 안 가꾸고 소홀히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도 바보같은 일입니다. 또 어떤 분은 세상의 것은 무가치하고 속되고 심지어 악하다고 하면서 그저 도만 닦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정생활, 직장생활, 사회생활에 충실하지 못하고 맨날 기도나 하고 찬송이나 하고 예배만 드리면 장땡인줄 아는데 이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영과 혼과 육을 균형있게 사용해야 합니다. 균형있게 발달시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배생활과 말씀 생활과 기도생활에도 힘써야 합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열심히 자기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육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영과 육과 정신이 균형있게 발달될 때 그 인생은 가장 멋지고 아름답고 가치있고 풍요롭고 생명력이 넘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정말 영혼을 풍성케하는 일과 물질적인 필요를 채움받기 위한 일과 육신의 건강을 유지하는 일에 골고루 균형있게 사용하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함으로써 영과 육과 혼이 하나님께서 정해주신대로 황금비율을 이룸으로써 여러분의 삶이 안정되고 편안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좀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런 삶을 살게 됩니까?

2.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황금비율을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모든 우주만물에는 질서가 있고, 그 질서대로 잘 유지될 때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게 됩니다. 이게 깨지면 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황금비율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자연계도 보십시오. 태양과 지구 사이에도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거리가 있고, 공전 시간과 자전 시간이 주어져 있습니다. 만약 그게 조금이라도 흐트러지게 되면 지구는 멸망합니다. 지구 내에서도 그렇습니다. 바다와 육지가 적절한 비율을 유지해야 지구의 온도와 습도가 적정 수준이 유지되어 지구가 유지됩니다. 또한 공기 중의 여러 원소들이 적절한 비율을 유지해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땅과 물이 적절한 비율을 유지해야 합니다. 땅과 숲과 강과 바다와 동물과 식물과 사람이 적절한 비율을 유지해야 생명력이 넘치는 지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는 물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정말 풍요롭고 아름답고 가치있는 삶을 살도록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유지해야 할 황금비율을 정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잘 유지하면 생명력이 넘치는 삶이 되지만 이 비율이 깨지면 생기를 잃게 되어 이 세상에서도 참된 생명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나아가서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의 은총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가장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정해주신 황금비율은 무엇입니까? 저는 그것을 7:1, 10:1의 법칙이라고 생각합니다. 7:1의 법칙이 뭐겠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주일성수와 관련된 것으로 적어도 우리 시간의 1/7은 주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일은 하나님께서 순전히 우리를 위하여 정해 놓으신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의 양식과 평안과 은혜를 공급받는 날입니다. 그래서 우리 영과 육과 혼이 안식을 누리며 풍요로움을 누리는 날입니다. 그래서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은 주님 존전에 나와 예배드리며 영의 양식과 은혜를 공급받아야 우리 영혼이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날을 바르게 지키면 영과 육이 균형을 이루어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되고, 이 날을 범하면 이 황금비율이 깨져 뒤뚱거리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실상은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일이 우리를 지켜주는 것입니다. 주일을 바르게 성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우리의 심령을 채우면 생명의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모든 죄와 유혹과 왜곡된 가치관과 닥쳐오는 모든 어려움을 넉넉히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일을 지키지 않으면 점점 영적인 생명력을 잃게 되고, 그러면 더욱 세상의 물결에 떠내려가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서양교회가 힘을 잃어가는 원인이 바로 여기 있는 것입니다. 주일을 제대로 지키지 않음으로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살기 위해서 반드시 주일을 성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10:1의 법칙이란 뭐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십일조 헌금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물질의 황금비율을 말합니다. 십일조 헌금은 물질적으로 균형잡힌 삶을 살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최소한의 비율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신 물질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최소한의 신앙고백이며,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따른다는 신앙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이 땅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기를 원하는 소망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몸과 마음과 시간과 물질을 하나님께 드릴 부분은 드리고 자신과 이웃을 위해 사용할 것은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의 고백이기 때문이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요,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 존중과 신뢰의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바르게 사용할 때에 정말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며, 이웃에게도 기쁨과 위로와 소망을 주는, 그래서 자신의 삶도 아름답고 뿌듯하고 가치있고 의미있고 또 그렇게 할때에 세상은 정말 아름답고 복된 세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눅20:25절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마땅히 하나님께 드릴 것을 드리고, 사람에게 대하여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것입니다. 또 눅6:38절 전반부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하나님께 마땅히 드릴 것을 드리고, 이웃에게 줄 것을 주는 삶을 살 때에 하나님께서 그 믿음과 사랑의 고백을 보시고 복을 내려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그저 자신만을 위하여 산다고 풍요롭고 가치있고 귀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되는게 아닙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하나님과 사람앞에 볼품없는 인생이 됩니다. 오히려 드리는 삶, 줄줄 아는 삶이 넉넉하고 풍요롭고 아름답고 가치있고 생명력이 넘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하나님과 자신과 이웃을 위해서 올바르게 분할하여 아름답게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에게 사랑과 기쁨과 위로와 소망을 주며, 자신의 삶도 더욱 멋있고 아름답고 귀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사람과의 관계에서 황금비율을 잘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선은 하나님과의 사이에서 황금비율을 잘 지켜야 하고 그 다음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황금비율을 잘 지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살고 있으면서 동시에 사람과의 사이에서 사랑과 은혜와 기쁨과 위로를 주고 받으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황금비율 못지않게 사람과의 사이에서도 황금비율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과의 사이에서의 황금비율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개인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진정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고 귀히 여기며 그들을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적정한 수준에서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극단적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 덫에 걸려 살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자신만을 생각하고 사람보다 돈이 먼저인 왜곡된 모습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남편이나 아내나 자녀도 다 번거롭다고 하며 독신주의를 고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결혼을 인생의 무덤이라고 말하기도 있습니다. 심지어 가족을 돌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유인즉 차라리 자식이 없으면 정부에서 먹여 살려 주는데 자식이 있어서 생활보호대상자도 안되어 정부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자식도 돌보지 않아서 생계가 곤란하신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정말 가족과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딱 잘라 이런 비율로 해야 합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는 가족과 이웃을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물질과 시간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황금비율을 적용하지 못하고 그저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간다면 아무리 똑똑하고 잘나고 돈과 명예가 있다해도 그 인생은 절름발이 인생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앞에 인정받을 수 없는 인생입니다. 아니 그냥 인정받지 못할 뿐이 아니라 분명히 하나님께서 거기에 대한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명절이 대단히 의미있고 좋은 날이라고 봅니다. 물론 민족이 이렇게 대이동을 하며 도로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기름값도 많이 들고, 또 특히 여성분들은 음식 준비다 설거지다 하여 힘든 점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계기를 통하여 평소에 바빠서 혹은 너무 멀어서 찾아보지 못했던 사랑하는 가족들을 찾아 서로 만나 사랑의 교제를 나누게 되니 얼마나 좋습니까? 오랜만에 만나 사랑과 정을 나누고,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의지가 되고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되고 어려움을 이기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습니까? 또 좀더 시야를 넓혀서 이럴 때 쓸쓸하고 외롭게 지내시는 이웃을 돌아볼 수 있다면 이 명절이 얼마나 훈훈하고 아름답고 복된 날이 되겠습니까?

여러분, 막12:31절을 보십시오.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첫째는 하나님 사랑이요, 둘째는 이웃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또 딤전5:8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모든 이웃을 사랑하되 가족은 특별히 더 사랑해야 함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다 가족의 사랑과 희생을 먹고 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이 인류 사회의 핵으로 가족 간에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가 잘 형성되면 결국 인류사회 전체가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 설명절을 맞이하여 정말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더욱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간에 아름다운 사랑과 은혜와 기쁨을 나누는 복된 명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니 오늘 설 명절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삶 전체가 오늘 명절과 같이 늘 기쁨과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해 주신 황금비율을 잘 지키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결코 어느 한쪽만 발달하고 다른 한쪽은 퇴화되어 있는 절름발이 인생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정신적으로 건전하고 아름답게 잘 발달하여 황금비율을 이루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나와 가족과 이웃과의 관계속에서 하나님께 드릴 것은 드리고, 이웃을 위하여 사용할 것은 사용하고, 자신을 위하여 사용할 것은 합리적으로 사용함으로 진정 가장 아름다고 균형잡힌 황금비율을 이루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오늘 말씀처럼 여러분의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강건한 은총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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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설날)  /복된 동행, 복된 인생(Sunday Sermon)

제목 : 복된 동행, 복된 인생

본문 : 창5:21-24

 

1.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복된 인생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민족의 명절인 설날을 맞이하여 모든 성도 여러분과 고향을 찾은 모든 성도여러분의 가족과 일가친척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크신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귀한 설 명절을 맞이하여 온 가족 친지들이 함께 모여서 정말 하나님 앞에 큰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혈육간에도 진정 아름다운 사랑과 은혜를 마음껏 나누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저는 명절 때면 가끔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저희 집은 가난해서 초가 삼 칸에 살았는데 우리 이웃에는 안채는 커다란 ㄱ자 기와집이고 사랑채도 우리 집보다 훨씬 좋은 기와집인데다가 큰 대문이 있는 부잣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집을 부러워하는 마음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그 집에는 제 또래의 예쁜 소녀가 살고 있기도 해서 가끔 그 집 대문 안을 기웃거려 보곤 하였습니다. 그 집 안뜰에는 화단도 잘 가꾸어져 있었고 여기저기 꽃나무도 심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명절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성대하게 제사도 지내는 등 그 집은 저의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때는 제가 어린 마음에 철도 없고 예수님도 몰랐기 때문에 부러워하긴 했는데 그게 정말 부러움의 대상일까요? 물론 뭐 그런 것도 좋은 것이긴 하지요. 가난하고 초라하게 사는 것보다야 기왕이면 좋은 집에서 좋은 옷 입고 좋은 것 먹으며 좋은 환경에서 사는 게 좋기는 하겠지요.

그러나 여러분, 분명한 사실은 그러한 외적인 환경들이 우리를 정말 아름답고 귀하고 가치 있고 복되고 위대한 인생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말 귀하고 아름답고 대단하고 멋있는 인생은 말할 것도 없이 완전히 위대하시고 영광스러우시고 전능하시고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알고 믿고 섬기며 그 뜻대로 바르게 아름답게 살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인생의 가치가 있고 행복이 있고 기쁨이 있고 영광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 그래요? 대궐같은 집에서, 명절이면 시커먼 승용차가 몇 대씩 몰려오고, 뭐 가문에서 장관이 나고, 판검사가 나고 그래서 집안에 큰 일이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고, 제사를 성대하게 지내는 것들이 무엇이 그리 대단하겠습니까? 여러분, 그런 것들 정말 별거 아닙니다. 암만 그래봐야 그런 것들이 진정한 생명의 기쁨과 평안과 가치를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그런 것들을 얻기 위하여 거짓과 편법을 행하기 쉽고 그래서 상처와 고통을 주기 쉽고, 시기와 질투를 유발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런 것들 바라보다가 하나님과 멀어지고 그래서 결국 영원한 진노를 당하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떵떵거리며 잘먹고 잘사는 것이 멋있고 가치있고 위대한 삶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그건 죄와 무지와 왜곡된 가치관속에 있는 인생들의 잘못된 생각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정녕 중요한 것은 우주 만물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섬기며 그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천지의 주재이시며, 생명의 주관이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주님 안에서 성실하게 열심히 주님과 동행하다가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인생이라야 지금 여기서도 정말 아름답고 가치있고 의미있는 인생이요, 나아가서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누리는 복되고 영광스러운 인생인 것입니다.

잠4:7~9절을 보겠습니다.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 /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느니라” 보세요. 지혜 즉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도를 따르는 것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다른 무엇보다도 지혜를 얻고 지혜를 높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여기서나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나 영화로운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든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며 주의 도를 따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복된 설명절에 오늘까지 하나님안에서 살아온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들에 감사하며 기뻐하며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며 이후로도 계속해서 그러한 삶을 살아갈 때에 정말 귀하고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정말 그렇게 귀하고 복되고 영광스러운 인생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2.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 주님의 자녀로서 주님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며 귀하고 복된 인생이 되려면 다른 무엇보다도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주님이 생명이시고 기쁨이시고 평안이시고 영광이신데 그 주님과 동행하면 그 은총을 누리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에게 생명의 기쁨과 은총을 주지 못하는 것들과 동행하면 어찌 그 은총을 누리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에녹이라는 사람은 온전히 주님과 동행함으로 놀라운 은총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인간적으로는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것도 아니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도 없습니다. 22절 말씀 보세요.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므두셀라는 그냥 보통 사람으로 밥먹고 일하고 결혼해서 아기 낳아 기르면서 그렇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에녹에게 큰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 이래로 오직 오늘 본문의 말씀에 나오는 에녹과 선지자 엘리야, 이 두 사람에게만 주어졌던 너무나 영광스럽고 특별한 은총이었습니다. 그게 뭡니까? 육체적인 죽음을 당하지 않고 천국으로 옮겨가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24절을 보겠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말씀그대로 에녹이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하니까 그를 산채로 데리고 가셔서 세상에 있지 않고 천국으로 옮겨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황홀했겠습니까? 산채로 그 몸이 영화의 몸이 되어 두둥실 떠올라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굉장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꿈속에서 가끔 새처럼 날아다닐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때 속된 말로 기분이 얼마나 째집니까? 그런데 여러분, 그건 속된 말로 새발의 피도 안됩니다. 에녹은 더 이상 세상의 시간과 공간과 모든 힘들고 약하고 어려운 것들의 지배를 받지 않는 영화의 몸이 되어 영광의 나라를 향하여 올라간 것입니다. 한번 그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가슴이 벅차오르고 황홀했겠습니까? 너무나 감격스러워 할렐루야! 할렐루야가 저절로 터져 나오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에녹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을까요? 그것은 앞에서 보았던 22절과 24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속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단어가 있는데 그게 뭡니까?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에녹은 365년을 살면서 온전히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하나님께서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으로 가는 특별한 은총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하면 분명히 은혜를 충만하게 받습니다. 당연하잖아요?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믿음과 신뢰와 의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 생명이 있고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고,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빛이라는 것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죽어도 하나님을 떠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런 믿음이 있다면 왜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과 동행이 안되는 것은 자꾸 세상에 뭐 다른 좋은 것은 없나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좋은 것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요? 하나님 안에 정말 좋은 게 있는데 왜 한눈을 팔겠습니까? 그런데 죄와 무지 가운데 있는 인생들이 자꾸 다른 것을 바라봅니다. 세상의 돈과 명예와 즐거움을 바라봅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동행이 잘 안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면 곤란한 거예요. 이건 결국 하나님을 잘 못믿는 거예요. 안 그래요? 아니 하나님 안에 생명과 기쁨과 진리와 은혜와 사랑과 평안과 축복이 있는데 왜 그걸 놔두고 엉뚱한데 가서 기웃거리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오직 하나님 안에 생명이 있고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언제 어느 때 어떤 상황에서도 이걸 잊지 말고 그저 갓난아기처럼 사나 죽으나 하나님 따라 가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 잘났다고 내 생각이나 가치관이나 경험이나 지식을 따라 내 눈에 보이는대로 살아가지 말고 주님이 가시는 길로 가시기 바랍니다. 그까짓 별것 아닌 세상의 돈이나 명예와 권세나 지식이나 이런 것들 따라가지도 말고 오직 우리의 유일한 생명이시며 길이시며 진리이시며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안에 있는 그 놀라운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며 살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되고 아름답고 귀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하나님의 목표와 방향을 따라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죽으나사나 하나님과 동행해야 하는데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목표에 우리의 뜻과 우리의 뜻을 일치시켜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려면 하나님과 뜻이 같아야 하고, 방향과 목표가 같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울이 목표인 사람과 부산이 목표인 사람이 함께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의사가 되려는 사람과 축구선수가 되려는 사람이 같이 공부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목표와 내 목표가 다르면 결코 동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하나님과 목표와 방향이 일치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건 내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하나님의 목표와 방향과 뜻에 맞추어 가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하나님 안에 생명과 진리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와 무지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보고 듣고 경험하고 배운 것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방향과 나의 방향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이걸 일치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날 따라오라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데,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나의 뜻보다 높고 깊고 완벽하신데 하나님께 나를 따라오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말씀입니다. 요10:27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당연하지 않습니까? 주님이 목자이신데 거기에 생명과 평안과 안식이 있는데 무얼 따르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말씀 듣고 기도하며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주님을 따라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내 생각과 목표와 방향을 고집하지 말고, 자꾸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오직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목표와 방향에 맞추어 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과 온전히 동행할 때에 하나님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과정과 방법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목표와 뜻이 같더라도 방법이 다르면 동행할 수 없습니다. 안 그래요? 같이 제주도가 목적지라해도 한 사람은 비행기 타고 가고 한 사람은 배타고 가면 동행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백두산에 오르면서 한 사람은 중국 쪽에서 올라가고, 다른 사람은 북한 쪽에서 올라가면 동행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도 동일합니다.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하려면 목표와 뜻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루는 과정과 방법까지도 하나님의 뜻과 동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날과 같이 물질만능주의, 과학지상주의, 개인이기주의 풍조가 만연된 세대에서는 우리는 이점을 특히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돈도 많이 벌고, 출세도 하고, 권력도 얻고, 문명의 이기도 가능한 많이 누려야 합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과 문화적 혜택을 보다 많이 누리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공부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 인간들이 그렇게 물질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돈을 벌고, 지식을 쌓고, 권력을 얻고, 문화생활을 즐기되 그러한 것들을 획득하고 누리는 과정이나 방법들도 하나님 뜻에 부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실만한 방법과 과정으로 돈과 명예와 권력도 얻고 또 얻은 것들을 사용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만한 방법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현대인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렇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무엇인가를 얻는 과정에서도 꿩 잡는 게 매라는 식으로 방법과 과정을 무시한 채 얻으려고 할 때가 많고 또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사용할 때에도 하나님 뜻대로 사용해야 하는데 그저 자신의 기쁨과 만족을 위해서 사용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진정한 기쁨과 은혜를 누리지 못할뿐더러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와 고통과 아픔을 주고 시기와 질투와 갈등과 싸움을 유발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생은 결코 성공할 수도 없고 진정한 생명의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설령 인간적으로 성공을 한 것처럼 보여도 결코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다면 설령 많은 것을 가졌어도 물거품이 될 것이요, 더 나아가서는 결국 심판을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11:9절을 보십시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그러므로 여러분, 먼저 목표와 방향을 하나님의 뜻에 맞춤과 동시에 그것을 이루는 방법과 과정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추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설령 돌아가는 일이 있어도, 설령 늦게 성취하는 한이 있어도, 설령 성취하지 못하는 일이 있어도 오직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그저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생각대로 어떤 일들을 추진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그렇게 해서 얻은 것들을 오직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진정한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의 기쁨과 은혜를 가져다주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5.하나님과 연합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인정받고 동행하는 삶을 위하여 또 하나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과 연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보면 에녹은 무려 300여년 간이나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겠습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과 연합입니다. 하나님과 연합해 있으면 자연히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어떻게 동행이 가능합니까? 연합되면 가능한 것입니다.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영적으로 서로 한 덩어리로 묶여져 있으면 온전한 동행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따로따로 떨어져 있으면 기분이 좋고 사이가 좋고 상황과 환경이 좋으면 어느 정도 동행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뭔가 좀 상황과 환경이 좋지 않다거나 둘 사이의 관계가 소원해지면 동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히 묶여져 있으면 기분과 환경과 상황에 관계없이 함께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완전히 연합되어 있어야 합니다. 절대 분리되면 안됩니다. 주님을 심령 속에 온전히 모셔들이고 살아야 합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주님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주인과 종으로 연합된 것 아닙니까? 그렇게 주인과 종으로 연합되었으면 이제는 당연히 주님이 생각하는대로 생각하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말하고, 주님이 가시는 곳에 가고, 주님이 하시는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연합된 관계요 그러면 자연히 동행하게 되고 그러면 자연히 주님 안에 있는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요 15:5절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러므로 여러분, 주님과 온전히 연합되어 주님을 멀리하거나 따로따로 놀거나 세상의 것을 바라보며 엉뚱한 것과 동행하지 말고 오직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그래서 내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주님께 맞추시기 바랍니다. 그 목표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여러분의 뜻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사용하는 과정에서도 오직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이 주님과 온전히 연합되어 동행할 때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빛이신 주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기쁨과 감사와 위로와 평안이 넘쳐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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