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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정의(定義)

 

 

프랭크린 지글러(Franklin Segler)는 “신학이 없는 예배는 감상적인 맹종”이라고 했다.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아야 진정한 예배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으며(done), 무엇을 하고 계시며(doing),무엇을 하실 것인가(will do)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서는 자세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 예배는 하나님의 은총을 깨달은 사람만이 드릴 수 있다.이런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이 없으면 결국 방관자나 구경꾼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요4:22)라고 말씀하셨다. 무엇을 알고 예배한다는 뜻인가?

구체적으로는 다음의 세 가지를 분명히 알아야 진정한 예배자가 될 수 있다.

 

첫째, 예배의 대상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신 성부 하나님에 대한 인식

둘째, 기독교의 하나님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시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구속사에 대한 확신

셋째, 예배를 역동적으로 이끌어 가시고, 성도들을 예배자로 살아가게 하시는 성령님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진정한 예배자가 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총을 깨닫는 사람만이 예배자가 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 예배의 핵심은 “은총과 응답”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프랭클린 지글러(Franklin Segler)는 “기독교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사람들의 정성어린 응답이다”라고 했고, 폴 훈(Paul W. Hoon)은 “예배의 현장은 계시와 응답이 만나는 지점이다”이라고 했다.

 

예배는 근본적으로 하나님(Ɵeoς)과 그의 백성(λαος) 사이에서 발생된 사건(Event)이다.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이 없이 예배가 성립할 수 있겠는가? 예배를 받으시는 대상으로서 하나님이 반드시 거기 계셔야 하고, 동시에 예배자인 그의 백성들이 있어야 실재 예배가 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예배의 두 축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럼 먼저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어떤 은총을 내리셨는가? 크게 이야기 하면 두 가지인데

그 첫째는 ‘창조의 은총’이라고 한다.

이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 모두에게 베풀어주시는 보편적인 은혜이다. 예를들면 햇볕을 주시고, 비와 신선한 공기를 주셔서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이 살 수 있도록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신 창조의 은총이라고 고백하지만,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연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은혜’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 십자가의 은혜를 말한다. 하나님께서 이 두 가지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그것을 깨닫고 감격하여 응답하는 행위(Responsive Action)가 곧 예배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님께 응답겠는가?

이것이 곧 예배의 내용이다. 예배의 내용으로는 경배와 찬양, 감사, 참회, 헌금,기도가 있다. 이 다섯 가지는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 중에 자주 문제가 되는 것이 헌금과 기도이다.

 

우선 헌금은 하나님의 은총을 깨달은 그의 백성들이 마음의 중심을 담아 감사를 고백하는 행위이다.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이 헌금인데, 그것을 드리면서 복을 달라고 흥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십일조를 바치면서 60배 100배로 축복해달라 한다면 하나님이 부담스러워서 그것을 받으시겠는가? 도로 가져가라 하지 않겠는가?

헌금은 우리의 눈물과 땀과 정성과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거룩한 사랑과 감사의 고백이다. 이 거룩한 순서를 하나님과 협상하는 것 같은 시간으로 전락시켜서는 안된다.

 

또 하나 문제가 되는 것이 기도이다.

우리 기독교의 기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깨달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응답의 행위로서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독교의 기도는 이방인들처럼 무엇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베풀어주신 은총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의 가슴을 채우는 것이 기도이다.

 

그의 백성들이 베풀어주신 은총에 감사하여 경배와 찬양, 감사, 참회, 헌금, 그리고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면 이때 하나님은 세우신 종(목사)을 통하여 말씀과 성례전을 주시고 강복을 선언하게 한다. 말씀과 성례전 강복선언은 하나님이 예배시간의 그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은혜이다.

특히 강복선언은 일반 기도와는 달리 하나님께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그의 백성들에게 복을 부어주시는 아주 특별한 시간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예배자들에게 복을 주시는 시간은 바로 이때뿐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무엇이 그리 급한지 강복선언이 채 마치기 전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사람들도 있다.

 

일반적으로 강복선언을 축도라고 불러왔는데 엄밀히 말하면 축도는 적절하지 못한 표현이다.

축도라고 할 때 축(祝)자는 빌다는 뜻이다. 축도는 무엇을 비는 일반기도와는 전혀 다르다. 하나님께서 목사를 당신의 대리자로 세우셔서 하늘의 복이 있으라고 선포하는 것이지, 복을 비는 기도가 전혀 아니다. 하나님의 자신이 복의 근원이신데 누구에게 복을 달라고 빌겠는가? 그래서 축도가 아니라 강복선언(Benediction)이라고 해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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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학 / 예배의 정의(定義)

 

 

프랭크린 지글러(Franklin Segler)는 “신학이 없는 예배는 감상적인 맹종”이라고 했다.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아야 진정한 예배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으며(done), 무엇을 하고 계시며(doing), 무엇을 하실 것인가(will do)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서는 자세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 예배는 하나님의 은총을 깨달은 사람만이 드릴 수 있다. 이런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이 없으면 결국 방관자나 구경꾼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요4:22)라고 말씀하셨다. 무엇을 알고 예배한다는 뜻인가?

구체적으로는 다음의 세 가지를 분명히 알아야 진정한 예배자가 될 수 있다.

 

첫째, 예배의 대상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신 성부 하나님에 대한 인식

둘째, 기독교의 하나님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시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구속사에 대한 확신

셋째, 예배를 역동적으로 이끌어 가시고, 성도들을 예배자로 살아가게 하시는 성령님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진정한 예배자가 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총을 깨닫는 사람만이 예배자가 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 예배의 핵심은 “은총과 응답”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프랭클린 지글러(Franklin Segler)는 “기독교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사람들의 정성어린 응답이다”라고 했고, 폴 훈(Paul W. Hoon)은 “예배의 현장은 계시와 응답이 만나는 지점이다”이라고 했다.

 

예배는 근본적으로 하나님(Ɵeoς)과 그의 백성(λαος) 사이에서 발생된 사건(Event)이다.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이 없이 예배가 성립할 수 있겠는가? 예배를 받으시는 대상으로서 하나님이 반드시 거기 계셔야 하고, 동시에 예배자인 그의 백성들이 있어야 실재 예배가 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예배의 두 축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럼 먼저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어떤 은총을 내리셨는가? 크게 이야기 하면 두 가지인데

그 첫째는 ‘창조의 은총’이라고 한다.

이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 모두에게 베풀어주시는 보편적인 은혜이다. 예를들면 햇볕을 주시고, 비와 신선한 공기를 주셔서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이 살 수 있도록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신 창조의 은총이라고 고백하지만,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연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은혜’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 십자가의 은혜를 말한다. 하나님께서 이 두 가지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그것을 깨닫고 감격하여 응답하는 행위(Responsive Action)가 곧 예배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님께 응답겠는가?

이것이 곧 예배의 내용이다. 예배의 내용으로는 경배와 찬양, 감사, 참회, 헌금, 기도가 있다. 이 다섯 가지는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 중에 자주 문제가 되는 것이 헌금과 기도이다.

 

우선 헌금은 하나님의 은총을 깨달은 그의 백성들이 마음의 중심을 담아 감사를 고백하는 행위이다.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이 헌금인데, 그것을 드리면서 복을 달라고 흥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십일조를 바치면서 60배 100배로 축복해달라 한다면 하나님이 부담스러워서 그것을 받으시겠는가? 도로 가져가라 하지 않겠는가?

헌금은 우리의 눈물과 땀과 정성과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거룩한 사랑과 감사의 고백이다. 이 거룩한 순서를 하나님과 협상하는 것 같은 시간으로 전락시켜서는 안된다.

 

또 하나 문제가 되는 것이 기도이다.

우리 기독교의 기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깨달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응답의 행위로서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독교의 기도는 이방인들처럼 무엇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베풀어주신 은총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의 가슴을 채우는 것이 기도이다.

 

그의 백성들이 베풀어주신 은총에 감사하여 경배와 찬양, 감사, 참회, 헌금, 그리고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면 이때 하나님은 세우신 종(목사)을 통하여 말씀과 성례전을 주시고 강복을 선언하게 한다. 말씀과 성례전 강복선언은 하나님이 예배시간의 그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은혜이다.

특히 강복선언은 일반 기도와는 달리 하나님께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그의 백성들에게 복을 부어주시는 아주 특별한 시간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예배자들에게 복을 주시는 시간은 바로 이때뿐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무엇이 그리 급한지 강복선언이 채 마치기 전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사람들도 있다.

 

일반적으로 강복선언을 축도라고 불러왔는데 엄밀히 말하면 축도는 적절하지 못한 표현이다.

축도라고 할 때 축(祝)자는 빌다는 뜻이다. 축도는 무엇을 비는 일반기도와는 전혀 다르다. 하나님께서 목사를 당신의 대리자로 세우셔서 하늘의 복이 있으라고 선포하는 것이지, 복을 비는 기도가 전혀 아니다. 하나님의 자신이 복의 근원이신데 누구에게 복을 달라고 빌겠는가? 그래서 축도가 아니라 강복선언(Benediction)이라고 해야 맞다.

 

http://www.mspcs.org/mspcscgi/index.php?document_srl=12881&listStyle=viewer&mid=goodmessage

 

출처 : 바른신학 바른신앙 http://cafe.daum.net/correcttheology/1EvS/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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