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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서 본 세례예식 그리고 세례의 의미 

 

 

 

 

세례의 의미?

 
 
세례는 회개의 표시다. 자신의 죄를 씻고 새 삶을 찾는다는 의미다. 유대인들끼리는 대체로 세례를 베풀지 않았지만, 비유대인이 정식으로 유대교를 받아들이고자 할 경우에는 세례를 받아야 했다. 성서에 나오는 가장 유명한 세례자는 세례자 요한이다. 그는 전통을 깨고 동포 유대인들에게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말했다. 요한은 친척인 예수에게도 세례를 주었는데, 이것은 신학적으로 문제가 된다. 그리스도교에 따르면 예수는 죄가 없으므로 회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가 요르단 강(요단 강)에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는 요한에게 갔을 때 요한은 주저했다.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그때 예수는 묘한 대답을 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예수가 강에서 나오자 성령이 비둘기의 모습으로 그에게 내려왔고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태복음 3:13~17). 예수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것은 공식 활동의 시작으로 간주된다. (초기 그리스도교도들 중에는 예수가 신의 아들로 태어난 게 아니라 세례를 받음으로써 신의 아들로 간택되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늘의 목소리가 그 점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이런 믿음은 양자론이라고 불리는데, 이단으로 간주되었다.)

 

예수 자신은 누구에게도 세례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처형되었다가 부활한 뒤 그는 제자들에게 신앙을 널리 퍼뜨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말했다(마태복음 28:19). 이 말은 지금도 그리스도교 세례에서 늘 되풀이되는 관용 표현이다. 성부, 성자, 성령을 말했기 때문에 세례 의식은 흔히 삼중세례(threefold baptism)라고 부른다. 그런데 묘하게도 사도행전에서는 성부-성자-성령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만 세례를 베푼다. 그래서 일부 그리스도교파는 지금도 예수의 이름으로만 세례를 베풀고 있다.

 

성서의 세례는 물에 몸을 담그는 방식이었다. 즉 요한이 요르단 강에서 하던 대로 강이나 호수의 물속에 완전히 몸을 담가야 했다. 많은 그리스도교도들은 지금도 날씨만 허용된다면 옥외 세례를 좋아한다. 일부 교파는 물에 몸을 담그지 않으면 세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연중 어느 때든 세례를 베풀 수 있도록 설교단 뒤에 세례당을 갖춘 교회도 있다. 세례를 받는 사람은 순결한 새 삶의 시작을 상징하는 의미로 흰 옷을 입는 게 전통이었다. 세례당 뒤쪽 벽에 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베풀었던 요르단 강의 그림이 있는 경우도 많다.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을 특히 강조하는 그리스도교파는 세례 대신 침례(浸禮)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물에 몸을 담그는 대신 물을 뿌리는 교파도 있다. 성직자가 손을 물그릇에 담갔다가 세례를 받는 사람에게 뿌려주는 것이다. 또 어떤 교파는 약간의 물을 부어주기도 한다. 예수의 세례를 묘사한 그림은 수도 없이 많지만 사실적으로는 문제가 있다. 대부분 예수와 요한이 발목까지만 물에 담근 채 요한이 예수의 머리에 물을 부어주는 장면을 그렸기 때문이다. 화가들은 아마 성서의 세례가 침례라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날씨나 건강의 문제로 침례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형식과 무관하게 세례는 몇 가지 의미가 있었다. 우선 과거의 잘못을 씻어주는 정화의 의미였다. 또한 세례는 예수 자신이 겪은 죽음과 부활을 상징했다(로마서 6:4). 물속에 들어가는 것은 죽음의 상징이고, 물에서 나오는 것은 새 삶의 상징이었다.

 

대다수 그리스도교도들에게 세례는 교회의 성원이 되는 통과의례다. 세례를 받으면 완전한 신도가 되고 신앙 공동체의 일원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도들 간에 의견이 크게 엇갈리는 문제는 유아 세례다. 성서에는 유아 세례가 없기 때문에 일부 교도들은 '신도의 세례'를 주장한다. 즉 교회의 성원이 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을 때 세례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행전은 모든 '식구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세례를 받았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어린이나 유아도 세례를 받았다는 의미다.

 

예수의 세례는 그리스도교도들에게 중요한 날로서, 예수공현일로 정해진 1월 6일에 기념한다. 이날은 "이중으로 신성한 날"이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에게 선물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다 자란 예수가 세례를 받음으로써 공식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가 사람들에게 물이 아니라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 것이라고 예언했다(마가복음 1:8). 오순절교파는 '성령의 세례'를 특히 강조하고, 그것이 물로 베푸는 세례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요한의 예언을 고려하면 일리가 있다). 성령의 세례는 교회 의식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냥 "성령이 충만한" 상태를 자각하게 되면 그것이 곧 세례다. 그 상태는 보통 방언을 말할 수 있는 능력으로 증명된다.

 

세례는 육체가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남을 상징하는 의식인데, 새 신자들은 세례를 통하여 교회의 정식 구성원이 된다. 세례를 뜻하는 그리스어 밥티스마(βaπτσμ)는 '침수(浸水)한다'는 동사에서 나온 말인데, 원래의 세례는 몸통을 물속에 잠그는 침례(浸禮)예식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에도 동방교회·침례교회 등 몇몇 교파에서는 침례의식을 거행하지만, 가톨릭교회와 대부분의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는 머리에 물을 적시거나 이마에 물을 뿌리는 약식(略式)이 보통이다. 한편, 물을 사용하여 사람을 깨끗이 한다는 관념은 고대 동방종교에서도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새로이 태어난다는 신생(新生) 또는 재생(再生)의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를 한역(漢譯)에서 중생(重生:거듭난다)으로 번역하였으므로, 한국 교회에서는 이 용어로 많이 쓰이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세례예식은 고대 동방종교의 침수의식으로부터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직접적인 배경은 구약성서이며, 팔레스티나 지방의 종교적 세례단체로부터 받은 영향도 크다고 한다. 그리스도교의 교조인 예수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지만, 자신이 세례를 베풀었다는 기록은 없는데, 어쨌든 그리스도교의 세례의식은 초기 교회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구약의 과월제(過越祭) 사건(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탈출하여 기적적으로 홍해를 건넜던 사건) 및 예수의 십자가상의 죽음과 부활 사건을 기념하고 거기에 참여한다는 뜻에서 세례의식이 베풀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세례의 신학적 의미를 처음으로 명백히 한 사람이 사도 바울로이다.

 

바울로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 세례가 가지는 기본적인 의미이다. 교파에 따라서는 유아(幼兒)세례 제도가 있는 곳도 있는데, 유아세례를 받은 자는 성년(成年)이 되면 입교식(入敎式)을 통하여 교회의 정식 구성원이 된다. 그러나 성서에 명시적(明示的) 근거가 없기 때문에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는 교단도 많다.

 

출처 교양인을 바이블 키워드?와 두산백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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