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장례식 고 서윤희 성도 장례예배 용인추모공원(2018년 12월)
예식사
집례자 : 故 서윤희 성도님의 장례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순서지를 따라서 예배에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려울 때마다 힘을 주시는 하나님! 주님의 품으로 출발한 서희전 성도님의 영혼 위에 큰 은총을 베풀어 주시고, 서희전 성도님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분들을 위로하여 주소서.
회 중 : 하나님, 우리에게 영원한 소망을 주소서. 아멘.
찬송 /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1,2절
1.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2.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복음서의 말씀 / 누가복음 12장 22절-26절
(눅 12:22)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고,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눅 12:23) 목숨은 음식보다 더 소중하고, 몸은 옷보다 더 소중하다.
(눅 12:24) 까마귀를 생각해 보아라. 까마귀는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또 그들에게는 곳간이나 창고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먹여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으냐?
(눅 12:25) 너희 가운데서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제 수명을 한 순간인들 늘일 수 있느냐?
(눅 12:26) 너희가 지극히 작은 일도 못하면서, 어찌하여 다른 일들을 걱정하느냐?”
말씀의 증언 / 새로운 창조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인간은 ‘죽음으로 향하는 존재’(Sein-zum-Tode)라고 부릅니다. “현존재는 세계 속에 존재하자마자 죽음을 떠맡는 하나의 존재양식이 된다.”(존재와 시간, 317쪽) 죽음 앞에서 걱정이 시작됩니다. 소크라테스(Σωκράτης)는 죽음 앞에서 걱정을 이겼습니다. “몸(soma)은 몸대로 혼에서 떨어져 나와 그것 자체로만 있게 되고, 혼(psyche)은 혼대로 몸에서 떨어져 나와 그것 자체로만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게지? 죽음이란 이것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겠지?”(파이돈, Φαίδων, 64c, 「에우티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박종현 역주, 288쪽) 소크라테스는 혼의 불멸을 확신하면서 죽음의 걱정을 이겨냈습니다. 그러나 혼은 죽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인간을 영<스피릿(spirit), 프뉴마(πνεῦμα), 루아흐(רוח)>, 혼<소울(soul), 프쉬케(ψυχὴ), 네페쉬(נפש)>, 몸<바디(body), 소마(σῶμα), 게셈(גשמ)>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흠이 없이 완전하게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데살로니가전서 5.23) 이 세 가지는 구분은 되지만, 분리는 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어떤 행동도 영혼과 육체로 깨끗이 나누어질 수 없다. 양자는 구분되지만 결코 나누어질 수 없으며, 하나의 통일체, 곧 전체로서의 인간을 형성한다.”(죽음의 신학, 김균진, 289쪽) 사람의 몸과 혼과 영을 분리할 수 없다면, 인간의 죽음은 전 존재의 죽음입니다. 혼의 불멸이 아닙니다. 혼도 죽습니다. 혼이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면, 부활이 불가능해집니다. 예수께서 죽음의 걱정을 이기는 다른 차원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고,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22절) 목숨은 <프쉬케(ψυχῇ), soul, life>, 혼입니다. 목숨을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몸은 <소마티(σώματι), body>, 몸을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목숨과 몸은 하나님의 소관입니다.(24절) 걱정이 수명을 늘일 수 없습니다.(25절) 생명의 길이는 나의 소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목숨과 몸을 걱정하는 것은 감히 하나님의 소관을 걱정하는 것입니다.(26절) 하나님의 소관 안에 있는 가장 결정적인 것이 부활입니다. 죽음은 전 존재의 죽음이고, 부활은 전 존재의 부활입니다. “엘러트에 의하면, 부활은 죽음 후에도 남아있던 인간의 어떤 부분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한 ‘새 창조’이다.”(죽음의 신학, 김균진, 344쪽) 부활은 새로운 존재로의 새로운 창조입니다. “예수는 자기 안에 있는 어떤 불멸의 것으로 인하여 부활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새 창조의 능력으로 부활하였다. 그러므로 부활은 하나님의 독자적 은혜의 행위이며 ‘기적’이다.”(죽음의 신학, 김균진, 347쪽) 사람들이 부활한 예수의 몸이 보이지 않는다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고린도전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늘에 속한 몸도 있고, 땅에 속한 몸도 있습니다.>(고린도전서 15.40) 부활은 땅에 속한 몸으로 환생하거나, 재생하는 것이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늘에 속한 몸으로 완전히 새롭게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에, 눈 깜박할 사이에, 홀연히 그렇게 될 것입니다. 나팔소리가 나면, 죽은 사람은 썩어 없어지지 않을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5.52) 서희전 성도님은 1943년 2월 5일에 출생하셨습니다. 1970년 9월에 미국으로 건너가 홍인숙 선생님과 함께 뉴욕에 한국 여성들을 위한 퀸즈YWCA를 세우셨습니다. 평생을 약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은퇴하신 이후에 퀸즈YWCA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2014년 9월에 귀국하셔서 신앙생활과 봉사활동을 하시면서 아름답게 사시다가 지난 2018년 11월 1일, 밤 10시에 소천하셨습니다. 예수의 생명을 모시고, 예수의 말씀을 따라서 사신 서희전 성도님은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에, 썩어 없어지지 않을 몸으로,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부활할 것입니다.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으로 사신 서희전 성도님, 예쁜 우리 윤희 선생님, 주님의 품으로 잘 가세요. 선생님, 사랑합니다. 선생님, 축복합니다.
주님께 맡김
집례자 : 자비하신 주님! 우리가 주님께 故서윤희 성도님을 맡깁니다. 다시는 죽음과 고통과 애통이 없는,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이르도록 받아주소서.
회 중 : 아멘.
찬송 /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3,4절
3. 내 주는 자비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주시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 내 앞 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4.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하시니 /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하시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 내 앞 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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