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설교] 감사하면 행복해 집니다
제목 : 감사하면 행복해 집니다.
말씀 : 마20:1~16
1.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여러분,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미고사’캠페인을 벌였다고 하는데 참 좋은 캠페인이라고 여겨집니다. 이 말은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의 약자인데 참 좋은 말 아닙니까? 얼마나 아름답고 은혜스러운 말입니까?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여러분, 우리 모두가 이런 말을 잘 할 수 있다면 이 사회가 얼마나 따뜻해지고, 사랑이 넘치고, 행복해 지겠습니까?
그리고 여러분, 세상에 이보다 쉬운 일이 어딨습니까?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되는 것도 아닙니다. 언제든지 아무 때나 공짜로 할 수 있고 시간도 1초도 안 걸립니다. 이렇게 돈과 시간과 노력을 안들이고 서로에게 위로와 따뜻함과 평안함과 행복을 주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지난 6개월 동안 가족이나 교우나 직장 동료나 이웃이나 국가에 대하여 얼마나 감사의 말을 하셨는지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 한번 해 보실까요? ‘성도님,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집사님,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여보,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엄마아빠,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아들아,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세월이 자꾸만 이와는 반대로 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되었으면 이제는 좀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만도 한데 자꾸만 불만의 소리만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뭐가 그렇게 불만이 많은지 툭하면 싸우고 못살겠다고 아우성을 치며 이혼도 쉽게 하곤 합니다. 회사에서도 그만하면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은지 툭하면 거리로 뛰쳐나와서 결사항쟁을 외칩니다. 국회의원들은 또 뭐가 그렇게 못마땅한지 툭하면 머리에 띠 두르고 거리로 나와 난리를 치고, 심지어 교회에서도 뭐가 그렇게 불만이 많은 지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감사와 은혜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자꾸 부정적이고 어두운 곳에 포커스를 맞추기 때문입니다. 누리고 있는 은혜는 생각지 않고 자꾸 부족한 것만 생각하고, 자신의 잘못은 생각지 않고 자꾸 남의 탓만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얼마나 귀한 존재로 창조되었는지 생각하지 못하고 뭔가 좀 모자라고 부족한 것만 생각하니까 자존감을 가지지 못하고 열등감속에서 쉽게 상처를 받고 좌절하고 낙심하곤 합니다. 그래서 남이 잘 되면 배가 아파서 시기하고 질투를 합니다. 그러니 원망과 불평과 갈등과 싸움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모습들은 정말 나도 불행해지고 남도 불행하게 만드는 심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감사해야 하고 사랑해야 하고 축복해야 하고 서로 격려하고 남이 잘되면 기뻐해야 합니다. 그게 옳은 일이고, 자신도 복을 누리고 남에게도 복을 가져다주는 지혜로운 인생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만 그 반대로 하니까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고 기쁘게 살 수 있는 상황에서도 행복하지 못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아시는 살전5:18절을 보십시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왜요? 그게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길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그 밖의 모든 사회 속에서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에 여러분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해주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늘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2.감사의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 늘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아가려면 우리의 생각을 감사의 관점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감사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감사이지만 불평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불평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먼저 오늘 말씀의 내용을 간단히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어떤 포도원 주인이 있었는데 포도 수확 철이 되어 이른 아침 즉 해 뜰 때에 장터로 나가 일꾼을 구하여 포도원에서 일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일손이 부족했든지 제3시 즉 오전 9시에 또 한사람을 불러왔습니다. 그래도 일손이 부족했든지 다시 제6시 즉 정오에 또 한 사람, 그리고 제9시 즉 오후3시에,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심지어 제11시 즉 해지기 한 시간 전에 또 한 사람을 데려다가 일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오후6시에 일을 마치고 품삯을 주기 시작하는 데 제일 마지막에 온 사람 즉 오후5시에 와서 1시간 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 1데나리온 즉 노동자 하루 품삯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먼저 온 사람들은 1시간 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을 1데나리온이나 주는 것을 보고 그 사람보다 몇 배 더 일한 자신들에게는 적어도 몇 데나리온은 줄 것으로 잔뜩 기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자기들도 1시간 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과 똑 같이 한 데나리온 밖에 안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들이 불평불만을 터트린 것입니다. ‘아니, 저 사람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는데 1데나리온을 주고 우리는 그보다 몇 배를 더 일했는데 왜 똑같이 주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말했습니다. ‘무슨 말이냐? 당신이 하루 종일 일한대가로 본래 정해져 있는대로 한 데나리온을 주지 않았느냐? 그런데 무엇이 불만이냐?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한테 한 데나리온을 준 것은 내가 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것인데 그럼 이 사람에게 은혜를 베푼 내가 잘못한 것이냐?’ 그러자 아무소리 못하고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불평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이 일한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뭐가 불만입니까? 남에게 더 주었다고 자기가 손해 봤습니까? 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푼 것이 잘못입니까?
여러분, 그러면 이 사람들이 왜 불평을 했습니까? 감사의 관점, 은혜의 관점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정당한 대가를 받았으면 일할 수 있는 터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고, 일을 시켜준 주인에게도 감사해야 하고, 일할 수 있는 건강과 지혜가 있음을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고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은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같은 노동자의 처지에서 주인이 얼마나 고마운 분입니까? 지금도 그런 분들이 계시지만 당시는 그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일할 데가 없어서 기다리고 있다가 늦게 일할 기회를 얻어서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주인이 은혜를 베풀어 한 데나리온을 받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으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이들은 자신의 것을 다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남이 좀 많이 받는다고 여기며 배가 아파 감사해야 할 일에 불평을 터트린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걸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매사에 자신에 대해서나 남에게 대해서나 감사와 사랑과 은혜의 관점으로 볼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분명히 자신도 아름답고 복된 인생이 되고 남에게 복을 가져다주고 주님도 기쁘게 해드리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수없이 감사할 것을 명령하시며 특별히 골3:16절에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여기에 보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하셨습니다. 감사하는 마음, 즉 모든 것을 감사의 관점으로 보고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말합니다. 그러면 감사할 것이 천지고 그러면 감사의 찬양이 나올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여러분, 따지고 보면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태어나고 먹고 입고 자고 생활하는 것 중에 은혜를 입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없이 살 수 있습니까? 부모님과 가족의 은혜 없이 살 수 있습니까? 또 이웃의 은혜 없이 살 수 있습니까? 누누이 말씀 드리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단 1초도 살 수 없습니다. 부모님과 가족의 은혜 없이도 우리는 존재 할 수 없습니다. 이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저 잘나서 제 힘과 능력으로 사는 것 같지만 실상 이웃의 은혜가 없어도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도 없고 누릴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평생을 감사하며 살아도 모자라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감사거리가 있는데 왜 하필이며 불평불만 거리를 찾아 자기도 힘들고 남도 힘들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매사를 감사의 관점으로 보고 해석하고 적용함으로 자신도 행복하고 남에게도 행복을 주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비교의식을 버려야 합니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 감사하며 살기 위해서 또 하나 가져야 할 태도는 비교의식을 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일찍 온 일꾼들이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은 것도 바로 감사의 관점은 없고 남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자신이 적게 받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10절을 보겠습니다.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보세요.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 사람에 비해서 나는 일을 많이 했으니까 더 받을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이나 자신이나 그보다 몇 배 더 많이 일한 자신이나 똑 같이 받으니까 상대적으로 자신이 손해 봤다는 생각에 그만 못마땅하게 여기고 불평불만을 털어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이건 전혀 불평할 일이 아닙니다. 자기는 정당한 대가를 다 받았지 않았습니까?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게 비난 받을 일입니까? 오히려 불쌍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준 주인에게 존경을 표해야 할 일이지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받은 것처럼 여기고 배가 아파 불평이 터져 나왔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사람들이 왜 행복하지 못합니까? 이 정도면 잘 먹고 잘 사는데 자꾸 못살겠다고 아우성입니까? 비교의식때문입니다. 누구는 부모 잘 만나 고생 안하고 호의호식하며 편하게 잘 먹고 잘사는 데 왜 나는 쎄가 빠지게 일해도 맨 날 이 모양 이 꼴이냐고 생각하고, 누구는 신랑 잘 만나서 명품 백 들고 다니며 자랑 질을 해대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이냐고 생각하고, 누구는 똑같이 일하고 한 달에 500만원 받는데 왜 나한테는 100만 밖에 안주냐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시기와 질투와 원망과 불평과 미움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렇게 늘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여기며 또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살아가는 태도는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원망과 불평과 갈등과 시기와 질투와 싸움의 덫에 걸려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물론 나나 너나 우리 모두에게 평안과 기쁨은 점점 멀어져가고 결국 모두 함께 불행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뿐인 것입니다. 물론 세상은 본래 죄와 무지가운데 있어서 부조리한 현실이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고, 때론 투쟁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먼저 기억할 것은 그러한 피해의식이나 비교의식을 버리고 먼저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불공평한 일이 있더라도 우리가 받은 은혜가 더 크다는 것을 기억하며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모든 것을 감사의 관점으로 보는 사람은 설령 세상이 불공평할지라도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성실하고 진실하고 의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혹시 사람은 몰라줄지 몰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알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니 솔직히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결국은 사람들도 알아보고 귀하게 여겨주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우리가 어떤 삶의 자리에 있든 공연히 남과 비교하지 오직 믿음 안에서 진실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모든 상황과 여건을 떠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감사와 기쁨과 가치와 보람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보상을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먼저 온 사람들이 불평을 터트린 또 하나의 이유는 보상을 바랐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자신은 나중에 온 사람보다 더 많이 일했기 때문에 당연히 더 많은 것을 받아야 한다는 보상심리가 있었는데 그게 좌절되니까 그만 불평을 터트렸던 것입니다. 물론 정당한 보상심리는 악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당연히 열심히 일한만큼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건 다름 아니라 감사와 은혜의 측면은 무시하고 그저 더 많은 것으로 보상 받으려고 하는 왜곡된 보상심리가 문제인 것입니다.
오늘 불명 불만을 늘어놓은 사람들이 바로 그랬던 것입니다. 10절을 다시 보실까요?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보세요. 그들은 ‘더 받을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덜 주니까 그만 엉뚱한 불만을 늘어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본래 한 데나리온이 하루 품삯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충분한 보상을 받은 겁니다. 그러면 지금 그들이 가져야 할 자세는 앞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일할 수 있는 건강과 여건을 주신 하나님께나, 오늘 하루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주인에게나, 또 일을 할 수 있도록 내조해주고 동기부여를 해준 가족들에게나 우선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것을 시기하며 자기에게 더 많은 보상을 해주지 않은 주인을 원망하고 불평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정말 이걸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꾸만 자신에게 이미 주어진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자꾸만 더 달라고 할 때가 많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보다는 자꾸만 권리만 주장하기가 쉽습니다. 할 일은 작게 생각하고 받아야 할 것은 크게 생각을 합니다. 내가 남을 대접해 주지 못한 것은 생각지 않고 남이 나를 대접해 주지 않은 것만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교회에서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면서 왜 때때로 원망과 불평이 나옵니까? 그것은 다른 아닌 비교의식과 보상의식 때문입니다. 나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고, 저 사람보다 먼저 와서 더 많이 일했다고 여기고, 내가 이 교회를 세우는데 많은 공로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으면 그만 서운하고 화가 납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 그러면 제가 뭘 얼마나 했다고 하면서 고까운 마음이 듭니다. 나는 이제 할 만큼 했으니 이제는 네가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이미 보상심리와 공로의식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눅17:10절을 보십시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당연하지 않습니까? 나 같은 죄인 살려주셔서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주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한다면 우리가 생명을 바치고 전 재산을 다 바친들 할 만큼 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한들 주님의 은혜의 천만분의 일이라도 갚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저 나 같은 것 불러 주심에 감사해야 하고, 주님의 일을 시켜 준 것에 감사하고, 내 미약한 힘이나마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데 조금이라도 필요해서 사용할 수 있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할 뿐이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많은 적든 이미 주어진 것에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면 불평불만과 갈등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국가는 평안하고 행복해 집니다.
그러므로 오늘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하여 매사를 감사의 관점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교의식을 버리고 주어진 삶의 자리가 어떤 곳이든 감사와 기쁨으로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보상심리와 공로의식을 버리고 무엇이든 우리가 일할 수 있고, 기여할 수 있고, 누구에게인가 도움이 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주님의 거룩한 역사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일인지를 되새기며 가정과 직장과 교회와 사회 속에서 감사와 기쁨으로 열심히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먼저 여러분의 자신의 삶에 감사와 기쁨이 넘치고, 가족을 비롯한 모든 이웃들에게 행복을 주며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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