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설교] 감사의 축복

 

 


제목 : 감사의 축복

말씀 : 골2:6,7

1.이미 받은 은혜를 누립시다.

지난 주간에 저는 서울 장신대에 목회자아카데미에 다녀왔습니다. 여러분들이 기도해 주셔서 후원해주셔서 오랜만에 모교에도 가보고 또 교수님과 유명 강사들의 강의를 들으며 영적, 지적 양식을 새롭게 채우는 유익한 시간으로 잘 보내고 왔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가지 새삼스럽게 배운 것이 있는데 역시 내 집이 좋구나하는 것입니다. 물론 내 집도 아니긴 하지만 여하튼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좋구나. 역시 가정이 정말 고마운 곳이구나하는 것들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집 떠나면 철 든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집을 떠나보니 가정과 가족과 특히 아내가 정말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라는 걸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좀 쑥스러웠지만 전화로 좀 더 잘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말로 했으면 무언가 행동으로 좀 보여주어야겠다 싶어서 오다가 일부러 영천 시내를 한바퀴 돌아 겨우 꽃집을 찾아 빨간 장미꽃을 한 다발 사다가 아내에게 주었습니다. 안하던 짓을 하니까 좀 쑥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주는 마음은 역시 기뻤습니다. 여러분도 아무쪼록 있을 때 잘하시기 바랍니다.

무슨 말이냐, 은혜가운데 있으면 은혜를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떤 은혜속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은혜를 느끼지도 못하고 그래서 잘 누리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비록 좋은 집이 아니더라도 집을 나가보면 내집이 좋은 줄 알게 됩니다. 비록 진수성찬이 아닐지라도 집 나가보면 엄마가 혹은 아내가 지어주는 밥이 그리워 지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공기 좋고 물 맑고 초목이 우거진 아름다운 환경 속에 살고 있을 때는 이게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곳에 있다가 저 광야지대에 한번 나가보십시오. 그러면 그때서야 비로소 이 아름다운 고향산천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존재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저는 종종 샤워를 하면서도 하나님 감사합니다하며 속으로 중얼거리곤 합니다. 하루종일 앉아서 설교준비나 기타 사무적인 일을 하다가 좀 끈끈한 몸을 이끌고 들어가서 샤워기를 틀고 물을 뿌리면 얼마나 기분이 상쾌해 집니까? 야, 이렇게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콸콸 나오다니 참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우리나라 좋은 나라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감사하곤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정말 우리는 너무나 많은 축복속에 살고 있습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생각해 보면 정말 너무나 감사한 것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너무나 많아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늘 그런 은혜속에 살고 있어서 그걸 모르고 감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감사하기는커녕 뭐가 그렇게 부족하고 불만인지 맨날 싸우고, 머리띠 띠고 결사 투쟁을 외치고, 파업을 하고, 촛불을 들고 난리를 치는지 정말 저는 안타깝습니다. 이만하면 얼마든지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 수 있는데 왜 그럴까? 왜 이미 주어진 것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며 자꾸만 더 달라고만 아우성을 치는 것일까, 그거 주면 보나마나 또 다른 것 내 놓으라고 난리를 칠텐데 왜 그럴까하며 정말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그러지 마시기 바랍니다.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기뻐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다고다고 하는 사람은 평생 그러다 죽습니다. 여러분, 이미 주어진 것들을 먼저 감사함으로 누릴 줄 아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세요.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여러분, 잘 보세요. 그냥 감사하라는 것도 아니고 감사함이 넘치게 하라는 것입니다. 감사함이 넘친다는 뜻이 뭘까요? 아주 알기 쉽게 말한다면 100원어치를 받았으면 1,000원어치를 감사하고, 1,000원어치를 받았으면 10,000원어치를 감사하라는 뜻이 아니겠어요. 다시 말해 받은 것, 가진 것 그 이상으로 감사하라는 거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100원어치 받으면 1,000원어치 감사는 고사하고 왜 고작 100원어치만 주느냐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또 어떤 사람은 100원어치를 받았는데 그 받은 사실 조차도 알지 못한다는 거지요. 이런 사람은 참으로 미련한 사람이지요. 이런 사람은 하나님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요, 은혜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정말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생명을 받았습니다. 건강을 받았습니다. 지혜를 받았습니다. 물질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주님의 그 놀라운 사랑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도 받았습니다. 그럼 이제 뭐가 더 그렇게 필요한가요? 이만하면 너무 많이 받은 것 아닙니까? 우리가 받은 것도 사실은 이미 돈으로 환산한다면 천문학적인 액수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것을 받고도 받을 줄도 모르고 도리어 원망하고 불평하고 짜증내며 산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생각해 볼 일) 어떤 집사님 가족이 같은 교회 집사님의 초대로 식당에 가서 저녁 대접을 받게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초대를 받은 집사님은 식사를 하기 전에 정성껏 식사기도를 하였다.

이때 이 모습을 물끄럼이 바라보던 초등학교 3학년짜리 아들이 말했다. ‘아빠,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그러자 아버지가 말했다. ‘보면 모르니? 감사기도 드리고 있잖아.’ 그러자 아들이 다시 말했다. ‘아빠, 집에서는 안하시면서 여기서는 왜 하시는 거예요.’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야, 넌 그것도 모르니? 우리 집에서 먹는 건 우리 돈 들여서 먹는 거고, 이건 공짜잖아.’ 그랬답니다.

여러분, 사실은요, 다 공짜로 주신 겁니다. 땅도 하늘도 바다도 태양도 비도 내 몸도 내 생명도 물질도 다 은혜로 주신 거지요. 그런데 밥 한그릇 얻어 먹은 것은 고마워하며(물론 그것도 다행이긴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모른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여러분, 정말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기뻐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받은바 은혜를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기 있는 여러분은 다 행복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감사는 더 큰 축복을 가져다줍니다.

여러분, 감사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게 할뿐더러 더 나아가서는 또 다른 축복을 가져다 준다는 측면에서도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으로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실 것 같습니까? 여러분이 주는 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두 사람에게 똑 같은 물질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걸 그렇게 고마워하고 감사하고 기뻐합니다. 그걸 잘 활용해서 행복하게 삽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에게 얼마나 더 주고 싶겠습니까? 주는 사람도 신이 나서 자꾸만 주고 싶겠지요.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은 감사한 줄 모릅니다. 기뻐할 줄도 모릅니다. 도리어 왜 요만큼만 주느냐고 불평을 합니다. 가지고 있는 것도 누리지 못하면서 욕심만 많아서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난리를 칩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에게 주고 싶겠습니까? 주고 싶기는커녕 준 것도 빼앗고 싶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이것은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를 누릴 줄 아는 자에게 주십니다. 기쁨으로 받아들이며 은혜를 은혜로 알고 감사하는 자에게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열 명의 문둥이를 고쳐준 사건이 나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나아와 멀리서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달라고, 우리를 고쳐달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고쳐주십니다.

그래서 결국 열명의 문둥병자가 다 고침을 받았는데 그들중 아홉명은 예수님께 감사의 말씀도 드리지 않고 집으로 달려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중 한명의 사마리아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자 이 모습을 본 예수님께서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눅17:18,19)하시며 그에게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잘 보세요. 이 예수님의 은혜로 눈을 뜬 소경은 사실 직접적으로는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내가 믿노라고 고백한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병고침을 받고 자신 앞에 엎드려 감사드리고 있는 이 사람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노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감사와 믿음을 동일하게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이건 다시 말하면 감사할줄 모르는 사람은 믿음이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한 것입니다. 사실 안 그렇습니까? 하나님께 대한,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있다면 어찌 그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요, 게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까지 주셨다는 것을 안다면 어찌 감사와 영광을 돌리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소경되었다가 눈뜬 사람은 감사할 때 그것으로 믿음으로 인정해 주셨고, 그래서 그는 결국 육적 소경에서 뿐만아니라 영적 소경에서도 건짐받고 구원의 은총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할 줄 몰랐던 다른 아홉명은 비록 육적 눈을 떠졌을망정 영적 눈은 떠지지 못함으로 영원한 축복을 누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심령에 은혜가 있고, 기쁨이 있고, 더 큰 축복이 찾아옵니다. 감사할 줄 모르고 도리어 원망하고 불평하는 심령에는 기쁨도 없고, 만족함도 없습니다. 복이 오기는커녕, 은혜가 임하기는커녕 있던 복도 달아납니다. 받은 은혜마져도 다 까먹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심령에는 성령이 역사하시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심령에는 마귀가 역사합니다. 당연한 거지요. 감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은총을 안다는 의미입니다. 감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이라면 그래서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렇게 하나님의 뜻안에서 감사하며 사는 심령에 어찌 성령이 임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원망과 불평과 시기는 마귀의 조종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게 만들려는 마귀의 수작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간질 하려는 마귀의 속임수입니다. 서로 짜증나게 만들고 피곤하게 만들고 낙심하게 만드는 사탄의 궤계입니다. 그러기에 그 자체로 이미 마귀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임과 동시에 그것은 마귀가 더욱 역사하도록 빌미를 제공하는 어리석은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살전5:16~18절 말씀을 보세요. “항상 기뻐하라. / 쉬지 말고 기도하라 /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라고요? 항상 기뻐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쉬지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거지요. 말하나마나 당연한 게 아니겠어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들이 울면서 짜증내며 불평하며 원망하여 살기를 바라십니까? 그럴 리가 없겠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울며불며 짜증내며 불평하며 낙심하며 맥아리없이 축 쳐져서 생기도 없이 의욕도 없이 살기를 바라시겠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뻐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감사하며 은혜가운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고, 그 하나님의 뜻가운데 살아갈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좋은 것으로 더 큰 것으로 맡겨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정말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기뻐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즐거워하며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의 은헤를 충만하게 덧입어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더욱 감사와 은혜와 기쁨과 능력과 생기가 넘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감사는 고난을 이기게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감사는 모든 고난을 이기게 합니다.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결국 감사하는 사람은 이기게 되고, 원망과 불평과 낙심하는 자는 지게 됩니다.

1620년 102명의 영국의 청교도들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천고만신 끝에 신대륙 아메리카에 도착합니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아메리카는 처음부터 낙원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에 도착한지 얼마 못되어 그들 중 절반 이상이 굶주림과 풍토병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도 해마다 겹치는 흉년으로 고생이 막심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금식기도를 선포하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이렇게 금식기도를 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어려움이 계속되자 한 농부가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금식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하나님께서 아직 응답해 주시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생각을 달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비록 흉년이 들고 형제자매들이 병으로 쓰러지고 했지만 이런 상황속에서도 분명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식량이 풍족하지 않고 여건이 저 유럽보다 못하지만 신앙의 자유가 있고 정치적인 자유가 있습니다. 또 우리 앞에는 얼마든지 개척할 수 있는 광활한 대지가 열려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금식 대신에 감사의 기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 농부의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금식기도를 중단하고 대신에 감사를 선포했습니다. 이제부터 감사합시다. 감사의 기도를 드립시다. 감사의 예배를 드립시다. 우리에게는 신앙의 자유가 있습니다. 마음껏 찬양하고 예배드릴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광활한 대지가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힘들지만 머잖아 하나님이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걸 믿고 감사합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결국 그들의 믿음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 정신이 바탕이 되어 오늘날 미국이 건설되었습니다. 물론 요즘은 너무 풍요롭다 보니까 미국도 좀 변질된 모습도 있긴 합니다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신실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래서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믿고 감사할 때 하나님은 분명을 어떤 어려움도 이기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행16장 바울과 실라 이야기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은 그야말로 거의 죽을만큼 맞고 착고에 채워져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쯤되면 원망과 불평과 탄식과 절망이 나올만도 한데 그들은 도리어 하나님을 찬양했고, 그러자 감옥문이 열리고 도리어 간수가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즉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원망과 불평대신 감사와 찬양을 드렸을 때 하나님이 역사하심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영적으로만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으로도 동일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원망하고 불평하고 짜증내고 화를 내면 우리 몸에서 독소가 분출된다고 합니다. 여러분, 막 화를 내고 짜증내며 밥을 먹어 보십시오. 밥이 얹힙니다. 소화가 안됩니다. 신물이 막 올라옵니다. 위가 잘 움직이지 않습니다. 소화액도 잘 안나오거나 반대로 과도하게 나와 위를 망가뜨립니다. 혈액순환이 안됩니다. 세포의 활동이 약화됩니다. 그러면 온몸에 힘이 빠집니다. 병균이 침입하면 저항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만 병에 걸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쁜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밥을 먹으면 밥이 꿀맛 같습니다. 위가 왕성하게 움직입니다. 적당량의 소화액과 소화효소가 나와 말끔히 소화를 시킵니다. 혈액 순환이 잘됩니다. 그래서 산소와 영양분을 온몸으로 골고루 날라다 줍니다. 신진대사가 원활하게 됩니다. 그러면 세포가 생기가 넘칩니다. 심지어 춤을 춘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 온몸이 활력이 넘칩니다. 병균이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가버립니다.

여러분! 스티븐 호킹 박사에 대하여 들어보셨습니까? 그는 우주물리학 분야에서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과학자 중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21세에 루게릭병 즉 근위축증이라는 병에 걸려 불과 1,2년 밖에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현재 66세인데 아직도 생존하며 연구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가 스스로는 걸을 수 없는 것은 물론 고개도 가누지 못하고 육체적으로는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몸으로 생명을 지탱하며 연구활동을 할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저서 ‘시간과 역사’라는 책에서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는 매일 매일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고 또 그 힘 때문에 살아간다.”

바로 그것은 감사의 힘이었던 것입니다. 그 몸을 가지고도 하나님앞에 겸손히 엎드리며 그저 생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육체는 아무 쓸모없는 것처럼 되었지만 지적인 능력은 그래도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며 살았을 때 그는 다른 어떤 정상인보다도 더 위대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감사가 바로 행복의 원동력입니다. 감사가 승리의 원동력입니다. 감사는 영혼을 살립니다. 감사는 물질의 복도 가져옵니다. 감사가 우리의 육신의 건강도 지켜줍니다. 감사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이웃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행복하게 해 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맥추감사주일은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이미 주신 은혜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주실 은혜를 기대하며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참으로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아무것도 없어도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어떤 상황속에서도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아가시는 진정한 행복자가 되시길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Mission School

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