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예배설교] 항상 선을 따르라
제목 : 항상 선을 따르라
말씀 : 살전5:15-18
1.귀한 신분으로 사는 일은 힘들지만 보상이 따른다.
우리는 거룩한 사람들이다. 거룩이란 다른 것이다. 다르다는 것은 세상의 가치, 목적, 방향, 의미, 영광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거룩한 삶은 영적으로만 아니라 육체적, 물질적, 정신적 모든 영역에서 동일하게 나타나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비그리스도인들보다 힘들게 여겨질 수 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세상에 속한 자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늘나라에 속한 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쪽 나라의 법과 원리와 규례와 법도에 충실해야 한다. 세상의 법도와 율례와 규례를 따르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한 가지 더 하나님 나라의 법도와 원리와 규범과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그걸 힘들게 생각하기 보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존귀한 하나님의 아들들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도 존귀한 자로 산다는 것은 마땅히 거기에 걸 맞는 삶의 자세가 있어야 한다. 의무도 있어야 한다. 거기에 걸맞는 규범을 지켜야 한다. 그래서 분명히 힘든 것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귀한 신분에 어울리는 삶은 다만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물론 한편으로는 무거운 짐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귀하고 가치있고 옳고 바르게 산다는 것은 그만한 권리도 따르게 된다. 분명히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고 명예와 영광도 따르게 되는 것이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이야 얼마나 더 하겠는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니 이보다 더 귀한 신분이 어디 있는가? 이렇게 귀한 신분을 가졌으니 얼마나 더 귀하게 아름답게 가치있게 거룩하게 옳고 바르게 살아야 하겠는가? 또 그렇게 고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람처럼 귀하게 살아갈 때에 얼마나 그 삶이 아름답고 귀하고 가치있고 의미있고 인정받고 귀히 여김을 받겠으며 얼마나 큰 상급과 영광이 있겠는가?
그래서 대하15:7절에서는 말씀한다.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너희의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라 하니라.” 또 잠13:13절을 보라.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자기에게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받느니라.”
그러므로 성도라는 거룩한 신분을 가지고 거기에 걸맞는 삶을 살아갈 때에 때로는 힘든 일도 있겠지만 그러나 도리어 그것이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신분을 가진 자라는 것을 반증하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동시에 그런 고귀한 삶에는 반드시 그 이상의 보상도 뒤따른다는 것을 기억하며 자부심을 가지고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의 법을 따라 거룩하고 진실한 삶을 살아감으로 주님의 은총 충만게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자.
2.항상 선을 좇으라.(15절)
살전5: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사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것만해도 상당한 수준의 선이다. 남이 나에게 악을 행할 때 악으로 갚지 안고 그냥 참고 용서해 줄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그러나 성경은 거기서 한 단계 더 나가서 선을 베풀라고 하신다.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란 가족이나 이웃이나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이나 미워하는 사람이나 원수나 내 민족이나 다른 민족이나 권세있는 자나 없는 자나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항상 선을 베풀라는 것은 조건이나 여건이나 상황에 관계없이 선을 베풀라는 말씀이다. 어떤 상황, 조건, 여건, 환경들이 선을 베풀지 않는 것에 대한 이유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시간이나 돈이나 여유가 있으나 없으나, 상황이 좋으나 나쁘나,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나 미워하나 선을 베풀라는 말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것만해도 대단한데 한걸음 더 나아가 선을 베풀라는 것이다. 좋은 조건에서 선을 베푸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나쁜 조건 속에서 선을 베풀라는 말이다.
그래서 롬12:17에서는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하셨다. 또 벧전3:9절에서는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다. 또 마5:44에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의 처절한 죽음과 멸시와 천대까지 참으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또한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며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서 원수까지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자. 그래서 결국 나와 네가 함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삶을 살아가자.
3.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5:16 항상 기뻐하라 /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주님은 우리가 기쁨으로 살기를 원하신다. 거룩하고 깨끗하고 성결하고 진실한 삶은 힘들고 어렵게만 여기는데 그렇지 않다. 그런 삶을 살면서도 얼마든지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 수 있다. 아니 그런 삶에 진정한 자유과 기쁨과 평안과 위로가 있다. 거룩한 진실하고 의로운 삶을 살아갈 때에 조건과 상황과 환경에 얽매이지 않고 진정한 생명의 기쁨과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종종 우리가 기뻐하며 살아갈 것을 말씀하고 계시다.
오늘 16, 18절을 보라.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또 요15:11을 보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모든 것들은 결국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기 위한 것이라는 말씀이다.
물론 주님은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이제 우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도 하셨다. 그러나 이것도 애통하는 것,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 십자가를 지는 것, 우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애통하기 위하여 애통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기쁨을 누리게 하기 위하여 애통하는 것이다. 힘들고 지치게 하기 위하여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죽고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애통하고 울고 해야 하는 것은 생명의 은총을 누리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그런 과정이 없으면 생명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죄와 무지 속에서 무감각하게 살아감으로 생명의 은총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부인하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과 동행해야 진정한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인 것이다.
그렇다. 주님의 뜻은 우리가 기쁨으로 사는 것이다. 항상 기뻐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다.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다. 그러므로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모든 일에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라. 형통하면 형통한대로 불통하면 불통한대로 그저 기뻐하고 그저 감사하라. 나같은 죄인 살려주심을 기뻐하고 감사하라. 나를 사랑해 주심에 감사하고 기뻐하라. 일용한 양식이 있음을 기뻐하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기억하며 감사하고 기뻐하라. 지금 내 모든 것을 가져 가신다해도 지금까지 누릴 수 있었음에 감사하라. 설령 지금 나를 데리고 가신다해도 천국이 있음에 기뻐하고 감사하라.
4.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5:17 쉬지말고 기도하라.
이것은 항상 선을 좇고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기 위한 조건이라고도 볼 수 있다. 즉 쉬지 말고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늘 연결되어 있으라는 말이다. 그래야 성령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과 은혜가운데 기뻐하고 감사하고 승리하며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맨 날 교회나 방이나 산에 올라가서 기도만하고 앉아 있으라는 말은 아니다. 세상 은 다 팽개쳐 놓고 맨날 예배나 드리고 찬송이나 하고 기도나 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세상이 유지되겠나? 그러려면 뭐하러 육체를 주시고 지적인 능력과 감정과 의지를 주셨겠나? 그러려면 차라리 처음부터 그냥 영적인 존재로 창조하지. 신령한 삶은 결코 세상을 멀리하고 그저 기도하고 찬송하고 말씀묵상만 하는 것이 아니다. 신령한 삶은 영적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 생활에 균형을 잘 잡는 것이다. 일할 때 일하고 공부할 때 공부하고 돈을 벌 때 돈을 벌어야 한다. 건강을 위하여 육체적 활동도 해야 한다.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그 모든 일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즉 그 모든 활동들이 언제나 주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이 기뻐하시고 인정하시고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야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매사에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임해야하는 것이다.
물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일부러 시간을 내어 주님과 대화하는 정기적인 기도시간도 가져야 한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 매사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하는 것이다. 기도로써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 자신을 지키고 주님 뜻대로 그나마 살게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연약하다. 세상은 험하고 무수한 도전과 시험과 유혹과 핍박과 고난이 있다. 우리는 그런 시험들 앞에서 무기력할 때가 너무 많다. 내 힘으로 이겨나가기에는 너무나 벅찬 상대들이다. 또 우리가 늘 세상의 것만 보고듣고 하면서 영적 감각이 떨어지기 쉽다. 분별력이 떨어지기 쉽다.
따라서 깨어 기도하고 말씀 묵상하고 찬송하고 예배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런 삶을 통하여 그 자체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 그런 삶을 통하여 성화되어 가야 한다. 물론 구원은 이미 받았지만 우리는 인격적으로 영적으로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천국백성이라는 확정 판결을 받았지만 아직은 세상 속에 있고 세상은 너무나 죄와 무지 가운데 있다. 그러므로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26:41절에서 말씀하셨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물론 믿음을 따라 사는 일이 때론 힘들긴 하지만 그러나 그것만이 진정한 생명의 은총과 기쁨과 평안을 누리는 길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오직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자.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놀라운 신분을 가진 자로서 더 큰 은혜를 누리는 길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주를 따르자.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약하고 부족하여 시험에 들기 쉬운 존재라는 것도 기억하며 깨어 기도하며 말씀으로 무장하여 성령의 능력을 덧입자. 그리하여 성령의 능력과 주님의 은혜로 항상 기뻐하며 주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삶을 살다가 주님 앞에 섰을 때 큰 상급받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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