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주님이 십자가를 지셨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에게 어떤 신체적인 증세가 나타나며, 또 그 고통이 어떻게 서서히 발전하여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지를 의학적으로 분석해 놓은 책이 있습니다. 그 내용이 너무 끔찍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고통은 우리의 상상을 훨씬 초월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소름끼치는 그 십자가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가장 저주스럽고, 고통스러운 그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왜 주님은 하필이면 그렇게 저주스럽고 잔혹한 죽음을 당하셔야 했을까요? 아무리 우리의 죄 값이 크다 해도 어떻게 이런 끔찍한 죽음을 당하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셨을까요? 우리의 상식과 논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하나님이 너무 잔인하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그 이유를 분명하게 들려줍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여기서 '저주를 받았다' 하는 말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왜 예수님이 저주를 받으셔야 했습니까?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기 위해서입니다. 율법을 범하여 율법의 저주 아래 놓여 있는 우리를 구해내기 위해 예수님으로 우리 대신 저주를 받게 하신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 저주받은 자의 죽음에 대한 한 가지 원칙이 나옵니다. 그것은 나무에 다는 것입니다(신21:23). 예수님은 우리가 율법을 어김으로 인해 받게 된 율법의 모든 저주를 한 몸에 다 짊어지시고 저주받은 자가 되셨습니다. 저주받은 자로서 나무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사람이 죄를 범하면 이 죄에서 나오는 결과는 죄의 삯만 있는 것이 아니고 죄의 저주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선언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구약의 제사제도에서 속죄제를 살펴보면 사람의 죄값을 속량하기 위해서 소나 양 같은 짐승을 속죄 제물로 바칩니다. 이 때 제물로 바치는 짐승을 죽일 때 제사장은 짐승의 급소를 찾아 될 수 있으면 고통 없이 죽게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제물 된 짐승이 사람 대신에 죽기만 하면 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죄를 지으면 죄의 삯 뿐 아니리 죄의 저주를 받게 됩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면 복을 받습니다.(신28:1-14)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너무나도 껌직한 저주를 받습니다.(신28:15-68) 신명기21장23절의 나무에 다는 저주는 바로 신명기28장 15절에서 68절에 기록된 모든 저주를 의미 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 죄의 삯인 사망을 속량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은 죄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신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속죄의 제사를 드리면 죄의 삯은 사함을 받지만 저주의 속량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의 삯인 사망과 죄의 저주까지 속량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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