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설교/완전한 승리의 부활( August Sunday Sermon)

 

제목 : 완전한 승리의 부활

말씀 : 요11:21-27

1.유일한 생명의 예수 그리스도

 


할렐루야! 오늘 예수께서 세상의 모든 어둠, 부정적인 것, 약한 것, 죽음, 마귀사탄, 지옥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온갖 멸시 천대 능멸 조롱 뺨맞음을 당하시고 그 모질고 잔인한 채찍질과 십자가의 죽으심을 당하신 것은 결코 힘이 없어서도 아니요, 지혜가 없어서도 아니요, 능력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오직 그것은 완전한 승리를 위한 과정일 뿐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죄와 무지와 어리석음과 약함과 추함 가운데 있기 때문에 그래서 죄와 무지 가운데 살다가 영원한 고통에 처할 수 밖에 없는 인생이기에 이 더럽과 악하고 추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류의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능력과 권세가 충만하시고 우주만물의 주권자이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따위 어둠과 무덤과 사탄과 죽음의 권세 아래 계속 머무실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주만물의 주권자가 되시는 그 권세와 능력으로 죄와 어둠과 사망과 사탄과 지옥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심으로 예수님이 유일한 구원자시오 생명의 주권자이시오 그 안에만 온전한 승리가 있음을 만천하에 명백히 드러내시고 그를 믿고 따르는 자마다 영원한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날 이 귀한 날, 복된 날, 승리의 날을 맞이하여 정말 온전히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알고 이 온전한 부활의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이 엄청난 은혜와 축복을 기억하며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동시에 이러한 인류의 유일한 생명의 이시며 능력이신 주님을 늘 심령 속에 모셔 들이고 살아감으로 정말 여러분의 삶이 언제나 부활의 능력과 은혜와 감사와 축복이 넘쳐나는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주님이 인류의 가장 큰 원수인 사망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과 지옥의 권세를 이기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하고 완전한 승리를 주셨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다른 그 어떤 것도, 어떤 사람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어떤 사람도 종교도 철학도 과학도 무기도 문명도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생명을 조금 연장하고 조금 더 건강하게 도울 수는 있겠지만 결코 죄의 문제 해결할 수 없고 생명의 살릴 수는 더더구나 없습니다. 오직 유일한 생명의 창조자이시며 주권자이시며 완전한 능력과 지혜자이신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당신 자신이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시기 전에도 죽음을 향하여 명령하셨고, 죽음은 예수님의 명령에 복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눅7장에 보면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죽어서 장사를 지내러 가는데 예수께서 가까이 가셔서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청년이 즉시 살아나 관 뚜껑을 벗기고 나왔습니다. 또한 막5장에 보면 야이로의 딸이 병들어 죽었을 때 예수께서 찾아가셔서 ‘달리다굼’ 즉 ‘소녀야, 일어나거라.’고 말씀하시자 죽었던 소녀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습니다. 또 요11장에 보면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과 같이 죽은 지 나흘이 지나 무덤에 장사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향하여서도 또 명령하셨습니다. 요11:43,44절을 보겠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여러분, 우리가 이걸 뭐라고 어떻게 말해야 하겠습니까?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죽은 자에게 일어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게 인간적으로 말이 됩니까? 만약 사람이 죽은 자에게 일어나라 그런다면 그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생명의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생명과 죽음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계시고 그래서 그런 것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죽음에게 명령하셨고, 그러자 죽음이 예수님의 명령에 복종하여 물러가고 생명이 역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 당신 자신께서 우리의 죄과를 대신하시고 십자가의 처절한 죽음을 당하셨다가 오늘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심으로 다시한번 당신 자신이 생명의 주가 되심을 만천하에 공포하시고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25,26절에서는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습니다. 세상의 것들은 별거 아닙니다. 제아무리 대단한 권력, 명예, 돈, 과학, 지식 이런 것들 진짜 별거 아닙니다. 인류의 유일하고 완전하고 영원한 진짜 능력, 진짜 소망, 기쁨, 승리는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 사망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고, 승리가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부활절을 보내며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심령 속에 더욱 온전히 모셔 들이기 바랍니다.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영접하여 그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이 주시는 생명과 기쁨과 능력과 승리가 충만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부활은 영원한 승리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세상의 승리와는 전적으로 다른 승리입니다. 세상의 사람이나 과학이나 철학이나 문명이 그 어떤 것이라해도 우리에게 진정한 승리를 줄 수도 없고 또 그나마 조금 준다고 해도 얼마 안 있으면 다 허물어집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완전하고 영원한 승리자이십니다. 주님의 부활이 바로 그러한 완전하고 영원한 승리의 상징이요 표본이요 증거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모든 어둠과 무지와 슬픔과 절망과 죽음의 권세를 깨트리신 완전한 승리인 것입니다. 인류의 마지막 원수인 죽음을 보기 좋게 정복하셨고, 그 영원한 승리를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도 그 부활에 동참하여 영원한 승리를 누리며 살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도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마르다의 오라비 나사로가 죽을 병이 걸립니다. 그래서 마르다와 마리아는 급히 예수님을 모셔오려고 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주님께서는 곧바로 오시지 않고 뒤늦게 오셨는데 그것은 이미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서였습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끝장난 상황이었습니다. 더 이상 그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금방 죽었다해도 아무 방법이 없을텐데 하물며 죽어서 나흘이 지나 시체가 부패하기 시작했으니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이제는 정말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절망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희망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예수께서 다가오셔서 실로 엄청난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앞에서 보았던 25,26절을 다시 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걱정하지 말아라. 슬퍼하지 말아라. 왜 두려워 하느냐, 왜 절망하고 있느냐?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죽지 않는다. 나를 믿으라. 그러면 나사로도 살 것이고, 너희들도 살 것이다. 그리고 부활의 생명으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런 말씀입니다.

 

그리고 나서 죽은 지 나흘이 지나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너라’고 명령하셨고, 그러자 죽은 지 나흘이 지나 냄새가 나던 나사로에게 생기가 돌아와 어정어정 걸어 나왔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죽어도 산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눈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명백히 알 수 있는 것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부활이 있기에 죽음은 더 이상 마지막 원수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더 이상 두려운 존재도 아니고, 절망도 끝장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그것은 완전한 영광의 나라에서의 새로운 시작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영광의 부활이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나면 영으로 주님과 함께 천국의 은총을 누리다가 주님이 재림 하실 때 우리의 몸도 영화의 몸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그리고 완성된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고전15:55~57절에서는 말씀합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여러분, 이 부활의 새아침에 다시금 부활의 주님을 새롭게 모셔들이기 바랍니다. 주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완전한 영원한 부활이 있어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예비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주님과 동행함으로 부활의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능력이 넘치는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아직도 세상은 죄와 무지속에 있고 우리의 부활은 그 부활이 완성되지 않았기에 세상에 살면서 마음적으로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 어렵고 힘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곧 지나갑니다. 이 세상도 지나가고 고통도 지나고, 병도 지나가고, 부귀영화도 지나가고 걱정염려 다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 때문에 너무 슬퍼하거나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있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부활의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분명히 부활의 주님께서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능력과 지혜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생명력이 넘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부활의 능력과 은혜가 넘쳐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부활은 현재적 승리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부활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만 관계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은 영광의 나라에 대한 보장이요, 소망일 뿐 아니라 오늘 여기서도 얼마든지 승리자로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인 것입니다. 오늘 나사로의 가정도 보세요. 나사로의 가정은 말 그대로 초상집이었습니다. 그 가정은 슬픔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절망에 삼킨바 되었습니다.

 

오늘 21절부터 24절까지 주님과 마르다의 대화 내용을 보십시오. 그 대화에 보면 마르다가 주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면서도 슬픔을 이기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먼저 마르다가 말합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주께서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 것이다.’ 그러자 마르다가 대답합니다. ‘마지막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아나이다.’

 


보십시오. 분명히 주님이 계셨으면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과 설령 죽었어도 지금이라도 주님이 무엇이든지 하시면 하나님께서 들어 주실 것이라고 말을 해놓고는 막상 주님께서 네 오라비가 살 것이라고 하자 마지막 날에 부활 때에는 그렇게 되겠지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물론 마지막 날은 살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벌써 부패가 되어 냄새가 나는데요. 물론 나중에는 부활하겠지만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나중에 부활하여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때는 완전한 기쁨을 누리게 되겠지만 지금은 슬프고 어둡고 않습니까?’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그 유명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너는 어째서 머언먼 피안의 세계만을 생각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 말은 머언먼 미래의 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를 포함한 모든 날들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내안에 있는 자는 비록 죽어도 살 것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죽어도 산다는 말씀은 그래도 이해가 되는데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씀은 조금 어렵지 않습니까? 물론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은 불로장생이라도 한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죽기는 죽습니다. 그러나 죽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다시 살아날 것이기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기도 하고 동시에 지금 여기서도 부활의 주님의 능력으로 죽음이나 절망이나 아픔이나 고통을 이기고 근심 걱정 염려 원망 불평 낙심 절망 세상 환경 상황 뭐 이런 것들에게 사로잡혀 죽은 자와 같은 삶을 살지 아니하고 생명의 기쁨과 자유와 평화와 은혜와 소망과 감사가 넘쳐나는 그야말로 생명력이 넘치는 진짜 산 사람처럼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현재적 천국도 누리고 영원한 천국도 누리니까 죽어도 산자요 살아도 산자니까 나를 믿는 자는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 온전히 모셔들이고 사는 사람은 사나 죽으나 살아있는 삶을 삽니다. 은혜와 기쁨과 감격과 능력가운데 삽니다. 죄와 사망과 어둠과 슬픔과 고통과 미움과 시기와 욕망이나 환경이나 상황에 지는 삶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그것을 정복하는 삶을 삽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눅17:21에서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못한다고해서 실제적으로 임할 천국이 장소적으로 오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분명히 장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완성된 천국이 오기 전까지는 천국이 돈 많은 데 있는 것도 아니고, 권력이나 지식에 있는 게 아닙니다. 천국은 주님을 모신 우리의 마음속에 이미 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 그래요? 지금 여기서 우리가 걱정할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죽으면 천국가고 힘들면 주님 앞에 맡기고 기쁘면 주님께 감사드리고 어려우면 주님 앞에 아뢰고 어차피 죽을 인생이 이제 죄사함은 받았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의 티켓은 확실히 따 놓았겠다 뭐 근심걱정염려 할 일이 무엇이 있습니다.

여러분, 요14:1~3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거처를 마련해 놓았으니 나를 믿고 이 세상 사는 동안도 걱정 근심 염려하지 말고 사명감당하며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안에서 얼마든지 가능함으로 너희가 나를 믿는다면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오늘 예수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모든 죄와 어둠과 추함과 약함과 절망과 죽음의 권세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그 모든 어둠의 세력들을 무덤에 묻어버리고 무덤을 박차고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나오셔서 우리의 마지막 원수 죽음을 물리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완전한 승리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부활의 주님을 모셔 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 승리의 주님, 은혜의 주님을 모시고 그 주님을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활의 주님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합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힘주시고 은혜주시고 능력 주셔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모든 죄와 마귀사탄의 권세를 이기게 하십니다. 상황과 환경도 이기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승리의 기쁨을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이 시간 다시 한번 부활의 주님을 온전히 모셔 들이고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부활의 주님이 늘 여러분과 함께 하심으로 부활의 주님의 능력과 인도하심과 역사하심 가운데 세상의 모든 약한 것과 부정적인 것들과 상황과 환경과 세상의 왜곡된 가치관과 유혹과 도전들을 이기고 승리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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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주일낮설교/ 사모하는 믿음 ( August Sunday Sermon)

 

 

제목 : 사모하는 믿음

말씀 : 고전15:57,58

 

1.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기복신앙 즉 복을 비는 신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기복신앙이라는 말은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기복신앙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신앙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믿음을 세상의 물질이나 명예와 영광이나 건강이나 이런 세상적 물질적 육체적 복을 받기 귀한 위한 도구쯤으로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여러분 그렇다고 기복신앙이 다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물론 단순한 세상적 기복 신앙은 잘못된 것이지만 올바른 기복 신앙, 즉 올바르게 복을 받아 누리기를 원하는 신앙은 당연하고 도리어 필요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올바르게 복을 바라는 것도 자신의 책임이나 의무는 하지 않으면서 그저 천국에 가려고 하고 평안이나 누리려고 한다면 당연히 잘못된 믿음이지요. 그러나 참되고 올바르고 진정한 복을 사모하며, 그래서 더욱 열심히 주를 섬기고 수고하는 가운데 복을 받아 누리려는 것은 당연하고 도리어 우리가 꼭 가지고 있어야 할 신앙의 모습인 것이지요. 왜 그렇습니까? 그래야 열심을 내게 되고 그래서 신앙에 발전이 있고 성숙해 지고 그래서 주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며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뭔가 바라는 게 없다면 어떻게 열심히 힘쓰고 애쓰겠습니다. 뭔가 바라보는 것이 있고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 있어야 열심히 그것을 얻기 위하여 힘쓰게 되고 그러다보면 더 발전해 나가고 뭔가 역사를 이루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그렇지 않습니까? 공부를 해서 뭔가 좀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지요. 아무리 공부해도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다면 누가 공부를 하겠습니까? 열심히 논밭에 나가서 일을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뭔가 기대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피땀을 흘려 일해도 수확할 것이 없다면 누가 그 고생을 하겠습니까?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도 그렇지요. 열심히 일하는데 아무런 보상도 없다면 누가 일하겠습니까?


믿음도 그렇습니다. 솔직히 예수님 믿고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다면 누가 예수님을 믿겠습니까? 믿으면 뭔가 좋은 것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걸 바라고 믿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예수님 믿으면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물론 한두가지가 아니지요. 정말 예수님 안에서 바르게 진실하게 열심히 살아가면 분명히 이 땅에서도 평안과 기쁨과 위로도 받고 육체적 물질적으로 복을 받습니다.

 

물론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 그야말로 완전한 복과 은혜를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바르게 만나서 믿고 따르는 사람은 이 땅에서도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생명과 자유와 평안과 기쁨을 누리면서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주실 것을 기대하고 사모하며 열심히 주님을 섬기며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올바른 신앙의 모습이고 그럴 때 더욱 은혜 충만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런 올바른 기복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 안에서 진실하게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갈 때에 영원한 영광의 나라는 물론 지금 여기서도 영육 간에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그리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도 더욱 큰 상급을 주실 것을 믿고 열심히 성실하게 소망가운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정말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 속에 살아가고 마침내 하나님 나라에 갔을 때에 영광의 면류관을 받아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정말 영광의 나라의 은총을 아는 자요, 이런 사람이 순수한 마음과 믿음의 사람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순진한 아이들은 먹을 것을 보면 그거 하나 먹고 싶어서 눈을 떼지 못하지 않습니까? 또 그러다가 사탕하나 받으면 얼마나 기뻐합니까? 그래서 사탕하나 얻어먹기 위하여 재롱을 떨기도 합니다. 그래서 1,000원 한 장을 사모하며 그것을 얻기 위하여 기꺼이 심부름을 합니다. 그러다가 1,000원 한 장 얻으면 너무나 기뻐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천원 알기를 우습게 여길지 모르지만 그것은 그 아이가 잘못된 것입니다. 적어도 천진난만한 아이들이라면 뭔가 작은 것이라도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것을 사모할 줄 알아야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예쁜 짓도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순수한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수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얻기 위하여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그대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삼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순수한 마음과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와 은혜와 복을 간절히 사모하게 됩니다. 그냥 단순히 간절히 사모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사모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열심히 봉사하고 충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순전한 마음으로 간절히 사모하며 열심히 주님을 섬기면서 주님과 동행할 때에 그 심령 속에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은혜와 능력이 넘쳐나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도 아름답게 이루어가며 주님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벧전2:2절에서는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갓난 아기에게 가장 좋은 것은 엄마 젖입니다. 속된 말로 엄마 젖만 있으면 장땡입니다. 그래서 갓난 아기들은 죽으나사나 엄마젖만 찾습니다. 그래서 결국 젖을 얻어먹고 만족함을 누리며 건강하게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에게 정말 생명을 주고 은혜를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더 나아가서는 우리에게 완전하고 영원한 생명의 기쁨을 주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사모하며 열심히 말씀을 묵상하고 그 나라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자신이 먼저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되고 주께 영광을 돌리며 주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복된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가운데 온전히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순진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주님과 동행할 때에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은혜가 넘쳐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순전한 믿음에 큰 상급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신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건 말할 것도 없이 이런 사람들이 진정한 복을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뭐 당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시고 생명이시고 기쁨이고 평안이시고 위로이시고 소망이신데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한 믿음으로 그 하나님과 동행할 때에 어찌 그 안에 있는 복을 받아 누리지 못하겠습니까? 그래서 순전한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복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하늘의 신령한 복입니다. 다시 말해 겸손히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경외하며 섬기며 주님과 동행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도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충성한 자들에게는 더 크고 영광스러운 상급도 보너스로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계22:12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즉 예수님께서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고, 그때에는 확실하게 우리가 행한대로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행한 대로 갚는다는 것은 물론 벌 줄 자를 벌주고 상 줄 자를 상 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상과 벌이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복은 현세적인 복입니다. 즉 지금 여기서 우리가 이 육신을 가지고 살아갈 때에 누리는 육체적 정신적 물질적 복입니다. 여러분 신28:2~4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한마디로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따라 사는 사람에게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으며,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으며, 자녀가 복을 받고 토지의 소산이 복을 받고 짐승까지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나지 않습니까? 열심히 일하면 일한만큼 주어지는 것입니다. 농부가 열심히 일을 하면 가을에는 풍성한 수확이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를 하면 좋은 학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열심히 운동을 하면 좋은 운동선수가 됩니다. 성실하게 열심히 사업을 하면 좋은 사업가가 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열심히 충성스럽게 일하면 반드시 인정을 받게 됩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갓난아기와 같이 하나님의 창조, 주권, 능력, 은혜, 축복을 믿고, 그 안에 생명과 복과 은혜가 있음을 믿고 주님을 따라가면 영원한 영광의 나라는 물론 이 땅에서도 좋은 것들로 채워주십니다. 하나님 자신께서 우리를 푸른 초장 잔잔한 물가로 인도해 주십니다. 죄와 사탄의 유혹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나아가 우리에게 지혜와 능력과 분별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환경과 상황을 이기게 하십니다. 진실한 마음과 성실한 자세를 주십니다. 그래서 열심히 성실하게 진실하게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인정받을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사랑받고 인정받고 존경받게 됩니다. 그러면 당연히 이 땅에서도 많은 것을 누리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데 귀하게 쓰임 받게 됩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복을 누리지 않을 수 없고 물론 당연히 영원한 영광의 나라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상급은 열심히 성실하게 진실하게 충성스럽게 살아가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당연한 보상입니다. 반면에 우주만물의 창조주시오 주관자이시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의 뜻을 거스리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벌이 주어지는 것도 당연한 대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주님 뜻대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복을 주실 것을 수없이 약속하셨고, 반면에 주님의 뜻을 거슬러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을 수없이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진정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으로 주님이 주실 상급과 칭찬을 바라보며 열심히 성실하게 진실하게 주님 뜻대로 충성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주어질 이 땅에서의 축복과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의 그 무한히 영광스러운 상급을 사모하면서 열심히 주의 뜻대로 살아갈 때에 여기서도 하나님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도 큰 상급도 받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복을 받으려면 열심히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순진한 마음으로 복을 받기를 원하고 상급을 받기를 원한다면 물론 그 상을 받기 위하여 열심히 충성해야 합니다. 오늘 58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을 줄을 앎이니라.”

 

고전 15장의 말씀은 소위 부활장이라고 불리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앞부분에서는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의 모든 육체는 부활한다, 불신자는 죽음의 부활로 나타나 영원한 형벌가운데 처하고, 예수 안에서 죽은 자들은 영광의 몸으로 부활하여 영원히 주와 함께 왕노릇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57절에서는 말씀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부활의 승리를 주신, 그래서 영원한 승리와 영광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바로 그러기 때문에 그날을 바라보며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수고에는 반드시 상급이 있을 것이므로 장차 주께서 우리를 생명의 부활로 일으키셔서 영원한 영광의 기업을 누리게 하실 그날을 바라보며 주님의 일에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부활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부활하게 됩니다. 어떤 이는 생명의 부활로, 어떤 이는 죽음의 부활을 하게 됩니다. 그때에는 상과 벌이 확실해 집니다. 어떤 이는 완전한 형벌 가운데 처하고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들은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믿음을 지키고 주님이 주실 큰 상급을 기대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순진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또한 그런 삶에 힘이 있습니다. 희망과 소망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래서 강하고 담대하게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주신 사명을 감사와 기쁨으로 열심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의 역사도 힘 있게 이루어가며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생명과 진리와 선과 의와 위로와 소망이 되시는 주님과 동행하는데 주님이 왜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능력과 위로와 소망으로 채워주지 않겠습니까? 또한 그 엄청난 영광의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를 바라보면 왜 희망과 소망과 힘과 용기와 위로와 기쁨이 솟아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지 못하는 인생은 진정한 평안도 기쁨도 소망도 누릴 복도 없습니다. 설령 나름대로는 평안과 소망과 복이 있는 것 같이 보일지라도 그것은 진정한 평안과 소망과 복이 아닙니다.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말 것들입니다. 그야말로 일장춘몽에 불과한 것이지요. 아니 그냥 일장춘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들이 바라보는 그것들의 노예로 살기 십상입니다. 혹시 끝까지 그런 희망과 소망 속에 기쁨을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그 모든 순간들이 일식간에 끝나고 마침내 주님 앞에 섰을 때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롬8:24절에서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또한 벧전1:24,25절에서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보이는 소망 즉 세상의 모든 물질과 권세와 부귀영화는 풀의 꽃과 같은 것이기에 금방 시들고 마르고 썩어 없어질 것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은 결코 소망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고 영원한 영광을 가져다 줄 그 하늘의 소망만이 완전한 소망이요, 그때 받을 상급만이 완전한 상급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결코 세상의 썩어 없어질 것들만을 바라보며 사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실 이 땅에서의 진정한 복, 나아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 주실 그 영광스러운 복을 간절히 사모하며 거기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대한 참된 기대와 소망 속에서 정말 갓난아기와 같이 순수한 믿음으로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진실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진정 어린아이와 같은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이 주시는 상급을 간절히 사모하는 가운데서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갈 때에 세상에서도 진정한 희망과 소망과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다가 마침내 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 주님의 약속된 축복을 풍성하게 받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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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주일예배설교/영혼이 잘 되어야 합니다( August Sunday Sermon)

제목 : 영혼이 잘 되어야 합니다.

말씀 : 골4:2~6


1.영혼이 잘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은 어디서 나옵니까? 물론 마음에서 나옵니다. 안 그래요? 마음에 미움이 잔뜩 들어 있으면 미워하게 되잖아요. 마음에 원망과 불평이 들어 있으면 원망하고 불평하게 되잖아요. 마음에 사랑이 들어있으면 사랑하고 나누게 되잖아요. 마음에 욕심이 잔뜩 들어있으면 어떻게든지 더 가지려고 난리를 치잖아요.

 

그러면 우리 마음속에 들어 있는 그것은 어디서부터 왔을까요? 말할 것도 없이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보고 듣고 배운 것들입니다.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이 뇌와 마음과 영혼 속에 축적되어 가치관과 인격을 형성되고 그렇게 형성된 가치관과 인격을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무엇을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하며 살고 있습니까? 99%가 사람과 교제하며 거기서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한 것들입니다. 즉 하나님과 교제하며 보고 듣고 배운 것은 별로 없고 거의 대부분을 사람과 교제하며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하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 속에는 주님의 가치관이 아닌 사람의 가치관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뜻대로 살지 못하고 자꾸만 왜곡된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일주일동안의 삶을 생각해 보십시오. 일주일이 168시간입니다. 그러면 그 중에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은 몇 시간입니까? 일주일 달랑 한번 예배드리는 사람은 불과 1시간이지요. 그러면 1/168입니다. 약 0.6%지요. 오후예배까지 드리는 사람은 2시간 즉 1/84 약 1.2%입니다. 수요예배까지 드리는 사람은 3시간 약 1/55 약 2%입니다. 매일 새벽기도까지 드리는 사람은 10시간 약1/16 약 6%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어떤 사람은 아예 하나님을 찾지 않고 세상과만 교제하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야 6%, 적으면 1%도 안되는 시간만 하나님과 교제하고 나머지 시간은 세상과 교제하며 거기서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 뇌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겠습니까? 우리 가치관과 인격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겠습니까? 물론 당연히 세상에서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한 것들로 가득차 있겠죠.

 

물론 그렇게 세상에서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한 것들이 완전히 옳고 바르고 선하고 의롭고 진실하고 거룩하고 하다면야 문제될 게 없겠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렇지를 못하지 않습니까? 인간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영혼이 죄로 심각하게 오염되어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와 무지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 영혼이 죄와 무지 가운데 있음으로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들이 심히 죄되고 왜곡된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그렇지 않아도 내 영혼도 이미 심각하게 죄로 오염되어 있는데 거기다가 또 죄와 무지 가운데 있는 사람들과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우리 영혼과 인격이 어떻게 올바르게 형성되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지극히 인간적 물질적 이기적 자기중심적 사고와 그 밖에 온갖 왜곡된 가치관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지극히 왜곡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서 선과 진리와 의를 따르지 못하고 그래서 결국 자신도 생명의 은총을 누리지 못하고 남에게도 아픔과 상처와 고통을 주는 그러한 삶을 살 때가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어찌하든지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그래서 어찌하든지 우리 영혼이 조금이라도 더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과 사랑과 선과 진리와 의와 진실 등의 하나님의 가치관, 예수님의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야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과 선과 진리와 의와 은혜와 사랑을 덧입어 내가 먼저 진정한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올바른 관계가 되면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물질 사이에도 올바른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러면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선과 진리와 의로 대하게 됩니다.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바르게 사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전인적인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됨은 물론 남에게도 생명의 기쁨을 가져다주는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함께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누리는 복된 사회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42:1절에서는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혼이 주의 은혜로 가득할 때에 진정한 생명의 은총을 누릴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 내 영혼에 은혜로 가득 채워 주시기를 간절히 사모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어찌 하든지 하나님을 가까이 함으로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온전히 회복되어 여러분 자신도 생명의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고 남에게도 생명의 기쁨과 은혜를 가져다주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럼 어떻게 우리 영혼이 늘 은혜가 충만한 삶이 될 수 있습니까?

2.말씀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영혼이 잘 되기 위해서는 먼저 말씀 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두말할 나위가 뭐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인류에게 완전하고 유일한 생명의 양식이며 동시에 완전한 나침반이며 규범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영혼이 살아나고 바른 길을 깨닫고 구원의 길, 생명의 길, 진리의 길, 영생 복락의 길을 가려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거기에만이 완전하고 영원하고 생명과 진리와 은혜가 있습니다. 우주와 하나님과 인간과 이 세상과 내세와 영원한 나라에 대하여 유일하고 완전하게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누가 우리에게 완전한 생명과 진리와 의와 영생 복락의 길을 알려 주겠습니까? 누가 우주만물에 대하여 다 알겠습니까? 그 어떤 철학이나 도덕이나 지식이 생명의 길을 알겠습니까? 무엇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과 가치를 가르쳐 주겠습니까?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제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다 죄인이요 무지한 존재요 한계 속에 있는 존재입니다. 그렇게 죄와 무지와 한계 속에 있는 인간은 그 아무도 자신이 길이요 진리가 될 수도 없고, 우리에게 생명의 길, 진리의 길 영생 복락의 길로 안내해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영생복락을 주실 수 있고 우리를 선과 진리와 의와 영생 복락의 길로 인도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만이 유일한 생명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시19:7,8절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 영혼을 소생케 하고 영혼의 눈을 밝혀 진리의 길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유일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말씀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압니다. 그래야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알게 됩니다. 그래야 지혜와 능력을 얻게 되고, 그래야 속지 않고, 시험에 들지 않고, 세상에 끌려 다니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모르면 인생을 모릅니다. 인생의 목적과 가치와 의미를 모릅니다. 인생의 종착역도 모릅니다. 온전한 지혜도 능력도 분별력도 없어집니다. 그러면 왜곡된 가치관에 판판이 속습니다. 세상에 질질 끌려 다닙니다. 유혹에 빠지고 시험에 듭니다. 그래서 자신이 죄와 무지 속에 있는 줄도 모르고 자기 마음대로 삶으로 세상에서도 볼품없는 인생이 되고 끝내 멸망의 길로 가는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우리의 작음과 무지와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자신의 생각과 지식과 경험과 이성을 따라 살지 말고 오직 인생의 유일한 참되고 영원한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가까이하며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에 순복하며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말씀이 주시는 능력과 은혜와 권세와 지혜로 세상의 모든 왜곡되고 악한 것들을 물리치고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잘 달려가 여러분의 영혼이 생명의 은혜가 넘쳐 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기도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영혼이 회복되어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누리기 위하여 또 하나 정말 중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육체가 육체적 호흡을 통하여 산소를 공급받음으로 육체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마음껏 활동하는 것처럼 우리 영혼도 기도를 통하여 영적 산소를 공급받아 영적 에너지를 얻어야 영적으로 생기 있는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단지 하나님께 무언가를 요구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우리 생각을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로 결단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랑과 은혜와 지혜와 위로와 평안과 능력이 내 영혼 속으로 흘러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면 모든 욕심과 시기와 질투와 미움과 원망과 불평과 근심과 걱정과 좌절과 더럽고 추하고 악한 것들이 물러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영혼이 생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온전한 분별력과 능력을 가지고 세상의 유혹을 이기게 되고, 마귀사탄에게 속아 끌려 다니는 일이 없게 됩니다. 세상의 유혹과 도전과 시험을 얼마든지 이기며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26:41절에서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고, 오늘 2절에서는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여러분 보세요. 계속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즉 언제 어느 때 어느 상황이라도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말씀에 보면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즉 맨 날 달라는 기도만하지 말고, 먼저 감사의 기도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요구만 하는 게 아니라 먼저 감사해야 하고 회개해야 하고 또 내가 주님을 위해서 이렇게 하겠다고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달라는 기도도 해야 하지만 그러나 그런 기도를 하기 전에 먼저 나 같은 죄인을 살려주신 주님, 때를 따라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신 주님께 먼저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기억한다면 당연히 내가 이렇게이렇게 하겠노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요구하는 것과 무작정 요구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요구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잘 알지 못하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기도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면서 먼저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은혜를 아는 사람도 요구하는 기도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요구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 아닙니다. 그 요구는 나와 내 가족과 이웃에게 정말로 생명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하기 위한 기도입니다.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가 나옵니다. 맨날 무엇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족과 이웃과 주님을 위해서 어떻게 하겠노라는 기도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난 자의 기도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응답해 주시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물론 그 기도자의 심령 속에 은혜를 주셔서 더욱 감사와 기쁨이 넘치고, 하나님께도 더욱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기도와 관련하여 한가지 더 생각할 것은 영혼 구원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3절을 보겠습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고 저들이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영혼 구원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당연하지 않습니까? 세상에 영혼 구원하는 것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가 어디 있습니까? 영혼 구원을 받지 못했을 때 당하는 고통과 아픔보다 더 큰 아픔이 어디 있겠습니까? 반대로 영혼 구원을 받았을 때 누리게 되는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평안보다 더 크고 기쁘고 즐겁고 복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가족에게 억만금을 주는 것보다 그 영혼이 구원받게 해야 합니다. 가정이나 국가의 경제발전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내 가족 이 나라 이 백성이 하나님을 알고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 여기서나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나 진정한 생명의 은총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정말 여러분의 영혼이 밝아지고 지혜로 충만하고 성령의 능력과 은혜가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고 특별히 복음의 역사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지역사회와 나라와 민족의 영혼이 깨어나고 살아나서 우리 모두 함께 주님의 생명의 은총을 더욱 풍성하게 누리게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 영혼이 잘되어 생명의 은총을 누리면서 그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가려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물론 먼저 예배와 말씀과 찬양과 기도를 통하여 직접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생명의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걸로 끝나면 안되고 그렇게 은혜를 받았으면 이제는 당연히 일상생활에서 은혜 받은 자로서 거룩하고 진실하고 의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생명의 은총을 누리고 다른 사람에게 생명의 기쁨을 가져다 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12:1절에서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하셨고, 오늘 5절에서도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세월을 아끼라는 것은 세월을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으라는 게 아닙니다. 세월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 그래요? 돈이나 시간이나 재능을 아끼는 게 뭡니까? 그냥 고이 간직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돈이든 시간이든 재능이든 그 본래의 목적대로 바르게 사용하는 게 아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월을 아끼라는 것도 그냥 가만히 있으라는 게 아니 원래의 목적대로 바르게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말할나위없이 하나님 뜻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시간이든 재능이든 돈이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될 때에 가장 올바르게 사용되어 우리 모두가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과 유익과 복을 주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풍성하고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6절에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여기서 맛을 낸다는 것은 세상에 기쁨과 평안과 은혜와 사랑과 소망과 위로를 주어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그렇게 맛을 내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우선 말을 예쁘게 곱게 긍정적으로 상냥하게 친절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로서 다른 사람에게 기쁨과 은혜를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말도 예쁘게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만 잘하면 뭐하냐, 행동을 잘해야지 그럽니다. 그러면 그렇게 말하는 너는 얼마나 행동을 잘하냐?

 

여러분, 말도 나쁘게 하고 행동도 나쁘게 하면 빵점입니다. 그러나 비록 행동은 다 못할망정 말이라도 잘하면 50점은 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말만 잘하면 된다는 말씀이 아니라 우선 말을 예쁘게 하고 그 다음에 행동도 예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우선 말이 예쁘고 그 다음에 행동도 잘해야 합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의로워야 합니다. 성실해야 합니다.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느 곳에 있든지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의 기쁨과 유익과 소망을 가져다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소금으로 맛을 내는 인생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면 나도 행복하고 너도 행복하게 됩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삶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혼이 잘 된 자의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여러분, 세상의 것도 잘되기를 바랍니다. 가정이 화목하고 모두 건강하고 출세하고 물질적으로 부유해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영혼이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말씀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생활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받은 은혜를 삶에 적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자신이 먼저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고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살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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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주일낮설교/기쁨이 충만한 인생( August Sunday Sermon)

제목 : 기쁨이 충만한 인생

말씀 : 요15:5~11

 

1.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모든 부모들은 한결같이 자녀들이 기쁘고 즐겁고 감사하며 의롭게 선하게 아름답고 복된 가정도 이루고 서로 사랑하며 아껴주며 복되게 살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어떤 부모도 자녀가 슬프게 고통스럽게 원망하고 짜증내고 싸우고 죄짓고 무가치하게 살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시겠습니까? 물어보나마마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이 행복하고 기쁘고 감사하고 선하게 의롭게 아름답게 살기를 바라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그렇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여러분들이 그저 자나깨나 내 새끼 잘되고 밝게 기쁘게 감사하며 살기를 바라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도 우리가 정말 늘 기쁘고 즐겁고 감사하며 살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물론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구원이 뭡니까? 죄와 무지와 어둠과 슬픔과 고통에서 건져주어 천국의 은총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이 뭡니까? 물론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평안과 감사와 위로와 소망이 넘치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물론 우리가 모든 죄와 고통과 불안과 미움과 저주 속에서 해방되어 선과 진리와 의 속에서 참된 기쁨과 평안과 은혜의 삶을 살게 해 주시기 위한 것이지요. 이게 주님이 오신 목적이고 이게 천국의 삶이고 이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내는 삶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 믿고 구원받았으면 그 은혜를 누리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선과 진리와 의 가운데 감사하며 기뻐하며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며 생명의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천국은 죽어서만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도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여기서의 천국은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이 내 안에 있으면 천국의 모형을 맛보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천국에 근접한 삶을 살아다가 죽어서 완전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구원의 의미인 것입니다.

그래서 자주 말씀드렸지만 예수님께서 눅17:20,21절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천국은 이미 우리 안에 도래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11절 말씀에서는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있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 안에서 맺을 열매는 뭡니까? 물론 생명과 기쁨과 자유와 평안과 사랑 등의 주님이 주시는 온갖 좋은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면 이러한 내가 주는 온갖 좋은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될 것이므로 너희가 생명의 기쁨이 넘치는 복된 삶을 살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시16:1절에서는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정말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도말하시고, 무덤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님을 온전히 심령 속에 모셔들이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 지금 여기서도 주님이 주시는 그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위로와 소망을 마음껏 누리면서 주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인생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습니까?

2.온전히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미 앞에서 얼마간 언급이 되었지만 우리가 진정한 기쁨의 삶을 살려면 말할 나위 없이 온전히 예수님을 심령 속에 모셔들이고 예수님 안에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확실히 생명의 은혜가 넘쳐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뭐 지극히 당연한 거 아닙니까? 주님이 누구십니까? 주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모든 마귀 사탄과 어둠의 세력들 물리쳐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 안에 있으면 그런 은혜들을 누리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안 그래요? 어두운 곳에 있으면 왠지 불안하고 두렵지 않습니까? 반대로 빛 가운데 있으면 마음이 밝아지고 따뜻해지고 편안해지지 않습니까? 따뜻한 곳에 있으면 따뜻하고 추운 곳에 있으면 춥습니다. 상처와 고통과 아픔이 있는 곳에 있으면 마음이 슬퍼지고,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곳에 가면 나도 덩달아 마음이 기뻐지지 않습니까? 분위기가 험악하거나 어두침침한 곳에 있으면 두려움이 생기고, 뭔가 음침하고 더러운 곳에 있으면 영혼이 더러워져 집니다. 그러나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곳에 가면 나도 은혜가 넘치게 되고, 깨끗하고 정결한 곳에 가면 마음이 정화가 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인생의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빛이신 예수님 안에 있으면 어찌 예수님 안에 있는 그 생명의 기쁨과 평안과 위로를 누리기 못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좌우단간 어찌하든지 죽으나사나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약4:8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즉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자꾸 세상의 것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갈리게 하지 말고 어찌하든 하나님을 향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가까이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해 주시면 당연히 하나님안에 있는 그 생명과 기쁨과 은혜와 평안과 위로와 소망은 저절로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바로 그런 말씀입니다. 오늘말씀에서 예수님은 당신 자신은 포도나무이시고 우리는 가지라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가지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건 말하나마나 죽으나사나 나무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삽니다. 그래야 영양분을 공급받습니다. 그래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안 그러면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으나사나 우리의 줄기이신 즉 우리의 근본이며 기초이며 생명의 주권자이시며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시는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로부터 영적 육체적 물질적 정신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좋은 것들을 충분하게 공급받음으로 생명의 은혜가 넘쳐나고 잎이 싱싱해지고 꽃이 실하게 피고 충실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5,6절에서는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주님 안에 있으면 주님이 주시는 능력과 지혜로 생명의 풍성한 열매를 맺어 생명의 기쁨과 은혜를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지가 줄기를 떠나면 말할 것도 말라 죽게 되고 그러면 아무 쓸모없어 불태워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으나사나 예수님께 붙어 있어 생명의 은혜가 넘쳐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온전히 예수님께 착 달라붙어서 온전히 주님과 동행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그 생명의 은혜를 풍성하게 받아 누리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주님께 딱 달라 붙어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건 여러분 7절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7절 보겠습니다. “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보세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고, 동시에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그러면 너희가 구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무른 말씀입니까? 내가 너희 안에 거한다면 내 말도 너희 안에 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든 원하는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면 주님의 말씀도 당연히 우리 안에 거해야 하고 그러면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게 되고 그러면 주님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죽으나사나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하고, 예수님을 모시고 산다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산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다. 이건 좀 추상적이예요. 예수님이 내 안에 있다는 걸 보여줄 수도 없고, 만져 볼 수도 없고, 예수님의 음성을 직접 들어 볼 수도 없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압니까?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선과 진리와 의와 거룩을 따르고 그러면 그게 바로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죽으나사나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하는데 그러면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모든 생각과 판단과 가치와 행동과 삶의 잣대여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 안에 있는 삶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가까이하는 자의 삶이요, 예수님과 동행하는 자의 삶인 것입니다. 그럴 때 진정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은혜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1:2,3절에서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죽으나사나 주님을 심령속에 온전히 모셔들이고, 주님을 모셔들였으면 더 이상 세상의 헛되고 왜곡된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지 말고 오직 유일한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이시며 인생의 유일한 등불이며 기준이며 안내자인 말씀을 따라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은혜와 기쁨과 평안과 위로가 넘쳐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어떤 은총을 누리게 됩니까?

3.천국의 은총을 온전히 누리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자는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천국의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천국은 두가지 천국이 있고, 예수님 믿는 사람은 이 두가지 천국을 동시에 누리게 됩니다.

물론 1차적으로 누릴 천국은 영원한 영광의 나라입니다. 예수님 믿으면 죄에서 해방되고 부활의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마귀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래서 지옥 백성에서 천국백성으로 옮겨집니다. 그래서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천지가 개벽을 해도 이것만은 먼저 얻어놔야 합니다. 그까짓 세상적인 부귀영화 영광 명예 아무리 얻어 놔봤자 별것 아닙니다. 진정한 생명의 은혜도, 영광의 나라도, 진정하고 영원한 자유와 평안과 기쁨과 소망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에게 완전한 생명의 은총을 주십니다. 영광의 나라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선해서 예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예수님이 믿고 구원받아야 합니다.

그 다음 두 번째 천국은 지금 여기서 누리는 천국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은혜받고 천국의 은총을 누리게 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능력과 지혜와 은혜를 주셔서 세상의 모든 어둠의 세력과 마귀 사탄의 유혹과 시험과 도전을 이기게 하십니다. 세상에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생명과 기쁨과 은혜를 주지 못하는 세상 영광이나 명예나 즐거움으로부터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에게 얽매이지 않게 되고 끌려다니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그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향하여 달려가게 하십니다. 그래서 진정 자유와 평안과 위로와 소망가운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상황과 환경과 환경에도 얽매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의 권세와 지옥의 권세와 세상의 모든 왜곡되고 추하고 악한 것들에게서 자유하게 되어 지금 여기서도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자유와 평안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적인 천국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영접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따라 살지 아니하고 세상의 것에 소망을 두고 그것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어둠의 권세에 얽매이고 상황과 환경에 얽매이고 온갖 시기와 질투와 욕심 가운데 살면서 아무리 가져도 만족함을 모릅니다. 도리어 싸우고 빼앗고 갈등하고 어떻게든지 더 가지려고 난리를 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러한 세상의 것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감격과 행복과 가치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다 썩어지고 없어지고 우리를 떠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은 엄청나고도 영원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정 영원하고 완전한 복과 은혜와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심지어 우리 믿음의 사람들조차도 그렇게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세상의 것은 대단한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엄청난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세상의 것을 얻으면 다 얻은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세상의 것을 갖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 가진 자처럼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믿음을 얻은 것, 구원을 얻은 것, 이것을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정말 기뻐하지도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영광을 돌려 드리지도 못하고 살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하찮은 것 때문에 걱정과 원망과 불평을 할 때가 많습니다. 심지어 믿음을 팔아먹고 세상의 것을 위하여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닙니다. 그건 정말 너무나 어리석은 일입니다. 실상은 정 반대여야 합니다. 믿음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세상의 별 것 아닌 것, 세상의 대단치 못한 것 그런 것은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얼마든지 버릴 수 있는 것들입니다. 세상의 것들은 예수님 때문에, 믿음 때문에, 구원의 은총 때문에 얼마든지 버려도 좋은 것들입니다. 그게 손해인 것 같지만 손해가 아니고, 그것이 잃은 것 같지만 실상은 모든 것을 얻는 길인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별 것 아닌 것 때문에 믿음 안에 있는 것, 대단한 것, 엄청난 것을 포기하는 사람은 껍데기를 위하여 알맹이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썩어 없어질 것을 위하여 영원한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더 나은 것을 위해서라면 덜 나은 것은 버릴 수 있지 않습니까? 더 좋은 것을 위해서는 덜 좋은 것은 포기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덜 좋은 것을 위해서 더 좋은 것을 버린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대단치도 않은 세상의 것을 얻기 위하여 참으로 가치있는 믿음의 행위를 포기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또 세상의 별로 대단치도 않은 것을 좀 잃었다고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생각하며 절망하며 슬퍼하며 원망하며 산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세상의 별 것 아닌 것을 좀 잃었다고 마치 천국마져 잃어버린 것처럼 탄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의 명예와 돈과 건강과 지식으로 부요하지 않더라도 설령 있는 것마져 빼앗겼다해도 천국을 놓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실제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마16:25,26절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예수님을 위하여 세상의 것을 포기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얻을 것이고, 세상의 것을 위하여 예수님을 포기하는 사람은 결국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결단코 영원한 영광의 나라는 물론 여기 누릴 현재적 천국의 은총을 누리기 위한 것들과 세상의 것을 바꾸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기억하면서 정말 예수님을 온전히 모셔들이고, 모셔들였으면 이제는 정말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오직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세상의 별 것 아닌 것들에 끌려다니거나 거기에 함몰되어 현재적인 천국을 누리기 위한 일들을 게을리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직 주님 안에 진정 생명의 기쁨과 자유와 평안과 위로와 소망이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며 오직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분명 진정 생명의 은혜와 기쁨과 능력과 평안이 넘쳐나는 삶이 되실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상황과 환경과 도전과 유혹을 이기고 자유의 평안을 누리시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행복하고 기쁘고 감사하고 은혜가 사랑이 넘치고 생기가 흘러넘치는 복되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생이 되실 것입니다 주의 영광 나타내며 주님 나라 이루어가는 삶이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정말 이런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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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주일낮설교/가정 천국을 이룹시다 ( August Sunday Sermon)

말씀 : 엡5:31~6:4

제목 : 가정 천국을 이룹시다.

1.가정천국을 만들어 갑시다.

여러분,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영원한 천국만 아니라 지금 여기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 여기서 누려야 할 천국은 결코 청와대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이건희회장집에 있는 것도 아니고 절세미인의 집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천국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눅17:21절을 보십시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보세요. 천국이 우리 안에 있다는 거예요. 물론 영원한 영광의 나라는 저 하늘나라 어디엔가에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의 천국은 외부적인 어떤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안 그래요? 어떤 사람들은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도 불행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람보기에는 초라해 보여도 천국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도 동일합니다. 가정이 천국이 되느냐, 지옥이 되느냐하는 것은 돈이나 명예나 권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의식주 문제는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천국을 이루는데 필수적인 조건이 아닙니다. 의식주문제가 해결되면 그 다음에는 우리가 어떤 마음과 삶의 자세를 가지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가족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사랑하고 귀히 여기고 아끼며 살아가면 거기 가정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닙니다. 안 그래요? 의식주 문제 해결되었지요, 마음껏 예배드릴 수 있지요,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 있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지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떤 분들은 그저 죽어라고 공부하고 일해서 돈 많이 벌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행복해 지는 것으로 압니다. 물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일도 열심히 하고 기왕이면 돈도 많이 벌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주일날은 하나님의 거룩한 존전에 모여서 열심히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실이 아무리 팍팍해도 가끔은 어떻게든 짬을 내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도 가져야 합니다.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여러분,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열심히 일해서 돈 버는 시간 보다 더 중요한 시간입니다. 안 그래요? 왜 공부하고 왜 열심히 일합니까? 행복하기 위해서 아닙니까?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랑과 은혜와 기쁨을 나누는 시간도 갖지 못하고 죽도록 돈만 번다면 그게 뭡니까? 어떤 분은 그러고 싶지만 돈도 없고 시간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일하고 남는 시간으로 가족하고 함께 시간을 갖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도 좀 쉬면서 사랑하는 가족과의 교제를 통하여 가정 천국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요즘 같이 정말 바쁠 때는 그럴 수 없겠지요. 그러나 농촌이라고 일년 365일 계속 눈코 뜰새 없이 바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또 그럴 돈이 어디있느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돈 별로 안 듭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저 양반하고 한 달에 한 두번은 바람 쐬러 갑니다. 여러분, 죄송하지만 제가 재주가 꽤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회사 다닐 때에는 서예 사진 바둑 탁구 낚시도 하고 글도 좀 써본다고 써봤고 여러 가지 취미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목회를 시작 한 후 돈이고 취미생활이고 심지어 운동까지 몽땅 다 버렸다가 몇 년 전부터 너무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지금은 운동도 조금씩하고 한 달에 한 두 번은 아내와 함께 바람도 쐴 겸 사진을 찍으러 갑니다. 우리는 어디 갈 때 사먹는 거 일절 없습니다. 김밥이나 주먹밥 싸고 물과 과일 몇 개 가지고 카메라 들고 나가면 돈 몇푼 안 들이고 몸과 마음이 힐링이 됩니다.

그러면 또 어떤 사람들은 기도하면 다 힐링되지 그런 게 뭐 필요하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죄송하지만 그건 무지한 말입니다. 인간은 영과 육과 혼의 전인적인 존재이므로 영적 육체적 정신적 양식을 골고루 섭취해야 하고 동시에 영적 육체적 정신적인 활동도 균형있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전인적으로 균형이 잡히고 건강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물론 일할 때는 열심히 일하고 예배드리는 날은 열심히 예배드리고 동시에 어떻게든 짬을 내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도 가지면서 여러분에게 주어진 상황과 환경을 잘 다스리며 천국을 만들어 누리는 지혜로운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예수님을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의 가정에 천국을 이루고 그것을 누리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일단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하나님을 가정의 중심에 모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극히 당연한 말씀이잖아요. 안 그래요? 천지만물의 창조주로서 모든 생명과 기쁨과 자유와 평강과 위로의 근원이신 하나님 없이 어찌 천국이 이루어지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모든 생명과 평강과 기쁨과 위로의 근원이신데 하나님이 없는 곳에 어찌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평안과 안식이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이것도 제가 누누이 드린 말씀이지만 요15:11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보십시오.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시고 구원해주시고 말씀을 주시며 그 말씀 안에서 살아가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뭐라고 했습니까?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고.... 즉 우리를 억압하고 힘들게 하려고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자유와 평안을 마음껏 누리게 하려고 주님이 오셨고 말씀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평안을 온전히 그리고 영원히 누리려면 오직 예수님은 우리 심령과 가정 속에 온전히 모셔야 합니다. 그래야 죄와 무지와 사탄과 지옥을 비롯한 모든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영적 육체적 물질적 정신적으로 전인적인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주님을 심령 속에 온전히 모셔들이면 주님의 능력과 인도하심으로 모든 상황과 환경과 조건을 초월해서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물론 이 기쁨만이 영원한 천국으로까지 이어지는 영원한 기쁨입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참되고 영원하고 온전한 기쁨인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에이, 목사님.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도 행복하게 잘만 살던데요.’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은 가짜 행복이요, 위장된 행복입니다. 마치 마약에 취하고, 술에 취한 자가 누리는 평안이나 기쁨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마약이나 술에 취하면 어떻게 됩니까? 감각이 무디어집니다. 그래서 근심걱정이나 슬픔이나 고통을 조금쯤은 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치유되어 없어진 게 아니고 마약이나 술로 마취를 시켜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치유하지 않고 마취를 시켜 고통을 없애주는 방법은 언제 쓰는 겁니까? 그건 살 가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순간이라도 좀 고통 없이 지내라고 써 먹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경우라면 마약과 술과 담배로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점점 문제가 심각해져 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마약과 술은 사람의 마음을 마취시켜 죄에 대해서도 무감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마약에 취하고 술에 취하면 용감하게 되고 부끄러움도 수치심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상방뇨도 하고 음란한 짓도 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왜요? 도덕적 윤리적 감각이 무디어져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기쁨이 바로 그와같은 것입니다. 죄와 무지에 취해서 있어서 감각이 무디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할노릇 다하지 않으면서도 심지어는 악을 행하면서도, 그리고 자신이 가는 길의 끝이 영원한 진노라는 사실도 알지 못한채 희희낙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없이 누리는 기쁨은 무지한 자아에 속고, 사탄에 속아 잘못 누리고 있는 기쁨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생명과 진리와 기쁨과 평강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심령 속에 모신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생명의 길, 진리의 길을 압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룩하고 진실하고 성실하게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고 위로하며 살아가기를 힘쓰게 됩니다. 하나님과 가족과 이웃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참 생명의 기쁨과 위로와 평강과 소망으로 채워 주십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도 참된 기쁨과 평안과 위로를 누리며 살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세상의 다른 어떤 것보다도 주님을 우리 심령과 가정 속에 온전히 모셔들이고 살아감으로 주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과 역사하심 가운데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이 넘쳐나는 복된 가정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가정천국을 이루기 위해 두 번째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고 위해주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2:24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여러분, 이 말씀은 명령입니다. 사람이 장성하면 반드시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고 도우면서 자녀를 낳아 양육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이런 명령을 주신 것은 이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에 인간의 삶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풍성하고 가장 행복한 상태가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장성하면 반드시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가정을 이루었으면 부부간에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뭐 너무 많지만 부부간에 서로를 자신의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33절 보세요.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여러분, 너무 당연한 일 아닙니까? 부부는 말 그대로 일심동체잖아요. 그러면 내 몸인데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또 부부만큼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부부만큼 늘 가까이하면서 서로 위로해주고 도와주고 아껴주고 하면서 좋은 친구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부부는 그야말로 죽을 때까지 함께하며 인생의 모든 희노애락을 함께하는 가장 가깝고 가장 소중하고 가장 친한 친구가 아닙니까? 그러니 얼마나 서로 사랑해야 하겠습니까?

아마 우리 젊은 부부들은 보셨을지도 모르지만 인터넷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일본의 노부부의 감동적인 사랑이야기가 있어 잠깐 소개합니다. 뭐 영상은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우리 마음을 감동하게 만듭니다. (실명한 아내를 위한 꽃밭.mp4, 유튜브 다운로드 영상) 마지막 부분에 환희 웃으며 다정히 앉아 있는 노부부 보이시지요. 저 할머니가 당뇨로 실명을 하고 우울증에 빠지자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밖에 비록 눈으로 보지는 못해도 코로 향기라도 맡고 기분 전환도 하고 또 꽃을 많이 심으면 사람들이 찾아와 할머니의 말벗이라도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꽃을 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10년 이상을 꽃을 심고 가꾸었는데 그러는 동안에 할머니가 점차 밖에 나와 꽃향기를 맡으며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고 또 점점 사람들도 찾아오기 시작하여 지금은 일년에 3,000명 이상이 찾아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친구가 되어주며 즐겁게 해주어 결국 실명한 할머니가 저렇게 밝게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있는 할아버지입니까?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그렇다고 아내들은 또 남편한테 당신은 뭐했냐고 하면 곤란하지요. 남편과 아내가 서로가 저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정말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답고 복된 가정이 되겠습니까? 33절 다시 한번 보실까요?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부부간에 정말로 소중히 여기고 아끼고 사랑하며 서로 위로와 기쁨과 힘이 되어 가정천국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자녀를 말씀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가정이 천국이 되기 위해서는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자녀를 잘 양육해야 합니다. 자녀를 바르게 잘 양육하면 먼저 그 가정이 행복해지고 나아가서는 다음 세대의 가정이 바로 서고, 아름답고 복된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부모들 혹은 기성세대가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저 자녀들이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것에만 몰두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잘먹고 잘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도외시 한 채 그저 외적인 풍요로움만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올바른 영성과 인성과 지성을 가지고 위로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부모님께 효도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교육을 해야 하는데 그저 남보다 편하게 대접받으며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영성과 인성에 문제가 생기고 자녀자신도 행복하지 못하고,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문제가 생기고, 더 나아가서는 많은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4절의 말씀을 보세요.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무엇으로 양육하라고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즉 그저 맨날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면서 세상 공부만 시키는데 열정을 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힘쓰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내 사랑하는 자녀가 영적, 인격적, 지적으로 올바르게 성장하여 영성과 인성과 지성을 고루 갖춘 올바른 지성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물론 자녀 자신이 행복하고 가정에 평안과 기쁨과 소망이 있고 나아가 이 사회가 아름답고 복된 사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물론 여러분의 자녀들이 잘 먹고 잘 살게 하기 위해서도 열심히 가르치고 기도하고 힘써야 하겠지만 그에 앞서 여러분의 자녀들이 정말 성숙한 신앙인, 성숙한 인격자가 되게 하기 위하여 더욱 힘쓰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세상의 공부만 위하여 투자하지 말고 아이들의 영성과 인성을 길러주는데 더 많은 투자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든 자녀들이 영성과 인성과 지성과 감성을 고루 갖춘 올바른 인격체가 되어 주님도 기쁘시게 해드리고 남에게도 기쁨을 주며 자기도 진정한 인생의 가치와 기쁨과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는 우리의 모든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5.자녀는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가정천국이 되기 위하여서는 부부 진정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자녀를 사랑과 말씀으로 양육하고, 자녀는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가정은 정말 복된 가정, 아름다운 가정, 천국의 은총을 누리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6:2,3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약속 있는 첫 계명이란 십계명 중 인간에 대한 계명중 첫 번째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인데 그 계명을 따라 부모님을 바르게 공경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약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결국 부모님 공경이 첫계명이라는 것은 결국 부모님 공경이 인간 윤리의 기본이며 근간이며 뼈대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인륜의 근본이 되는 부모공경을 잘 실천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을 때의 공경은 마음으로만 하는 공경이 아닙니다. 여기서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것은 부모님을 존경하고 존경한다며 그에 합당한 예우를 해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부모님이 평안하게 기뻐하며 살아가실 수 있도록 마음도 평안하게 해드리고, 물질로도 봉양해 드리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부모님들에게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대하여 간곡히 말씀드려 주님을 영접하게 해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이렇게 부모님께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필요한 모든 것으로 봉양해 드릴 때 부모님이 이 땅에서도 평안과 기쁨과 은혜를 누리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의 은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효도이고 공경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부부가 정말 서로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아끼고, 또 부모는 자녀를 사랑과 말씀으로 양육하고, 자녀는 부모를 공경할 때에 가정천국이 이루어지고, 그러면 나도 너도 우리 모두가 행복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달 오월을 맞이하여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하나님을 가정 속에 온전히 모시고 부부가 정말 서로 사랑하고 부모는 자녀를 말씀과 사랑으로 양육하고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며 가족 간에 함께 하는 시간도 갖으며 가정 천국을 이루어 영원한 영광의 나라는 물론 지금 여기서 누려야 할 천국의 은총도 마음껏 누리는 복되고 아름답고 멋있는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 도 ) 거룩하시고 영화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계절을 우리에게 주시고, 그 아름다운 계절만큼이나 아름답고 복된 가정을 우리에게 주심에 감사와 영광을 돌리나이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많은 사람들이 가정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가족구성원들 간에 진정한 사랑과 은혜를 나누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나이다.

주여, 이 땅의 모든 가정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셔들이고 주님의 인도하심과 말씀안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가족구성원들이 서로의 필요를 채워달라고 요구하기 보다는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존재로 살게 하시고, 부모는 자녀를 기도와 사랑과 말씀으로 양육할때에 우리의 모든 자녀들이 영성과 인성과 지성과 감성을 갖춘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녀는 부모님의 권위와 사랑과 헌신을 인정하고 몸과 마음과 시간과 물질을 드려 공경할 줄 아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모든 가정들이 믿음과 사랑이 넘치는 천국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아름답고 복된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봉헌기도 ) 영화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이 아름다운 계절, 이 생명력이 넘치는 계절을 우리에게 주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은총을 덧입어 이 생명과 자유와 평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시오니 영광과 존귀를 돌리나이다.

오 주님이시여, 지금 이 시간 우리가 주님의 그 놀라운 사랑과 은총을 기억하며 예물 드리나이다. 주님의 그 은혜와 사랑과 인도하심에 감격하여 믿음으로 예물드리옵나니 드리는 손길 손길 위에 주님의 놀라우신 은총으로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것 거룩히 구별하여 십일조 예물 드리는 손길위에 축복하셔서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육체적으로 더욱 풍성하고 강건한 은총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임을 고백하며 감사예물 드리는 손길에도 복을 주셔서 더욱 감사와 은혜가 가득한 복된 삶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이 예물을 통하여 주님의 생명의 역사가 더욱 힘있게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축 도 ) 이제는 온전히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셔들이고, 부부간에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며, 부모는 자녀를 사랑과 말씀으로 양육하며, 자녀는 부모를 진심으로 공경하여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야 할 우리 모든 성도들과 이 땅위의 모든 가정들 위에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인도 교통 역사 충만케 하시는 은사가 이제로 영원까지 함께 하시옵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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