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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수요저녁예배설교] 억지로 진 십자가의 신비 (Auguest, Wednesday Evening Sermon)

억지로 진 십자가의 신비

마태복음 27장 27~32절

 

살다보면 하고 싶어서, 좋아서 하는 일도 있지만, 싫어도 억지로 해야 하는 일들도 많습니다. 밥, 억지로라도 먹어야 합니다. 공부, 억지로라도 해야 합니다. 효도, 억지로라도 해야 합니다. 직장생활, 억지로라도 해야 합니다. 운동도 억지로라도 해야 합니다. 누가 도와 달라고 하면 억지로라도 도와야 합니다. 사순절 고난주간입니다. 억지로 십자가 지다 축복받은 시몬을 통해 은혜 받으시는 고난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도 억지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자원해서 십자가 지신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자원해서 십자가 지셨지만, 억지로도 지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지려 세상에 오셨지만, 막상 지려니 끔찍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저주와 지옥의 형벌을 너무 잘 아시는 분 아닙니까.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십자가 지려 하니 고민되어 죽겠다. 나를 위해 기도 좀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시를 “하나님 아버지,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세요”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곧이어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십니다. 결국 주님은 자원해서, 그리고 억지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억지로 주님 지신 십자가로 우리가 구원 받고, 천국을 얻었고, 성령 받았고, 죄용서 받았고, 병고침 받았고, 평강을 누리며, 지혜를 얻었고, 만 가지 은혜를 입었습니다. 억지로 십자가 지다보면 거기에 만 가지 축복이 임합니다.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집니다. 구레네 시몬은 아프리카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 근처 ‘구레네’에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고 가시다 너무 힘들어 쓰러졌다 일어났다를 반복하시더니, 쓰러져 일어날 줄을 모릅니다. 로마 군인이 구경하던 사람들 중에 힘 꽤나 써 보이는 시몬에게 “너 이리 와!” 해서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워줍니다. 시몬은 주님의 십자가 억지로 졌습니다. 억지로 진 십자가 덕분에 시몬의 가문이 대대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늘 기쁨으로 살고 언제나 순종하면서 살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힘이 들 때가 있습니다. 교회에 나가기 싫을 때, 예배드리기 싫을 때야말로 억지로라도 교회에 나오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억지로 진 십자가가 가장 큰 축복입니다.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지고 골고다까지 갔습니다. 시몬은 그 덕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온 가족이 다 믿고, 두루 존경을 받았습니다. 시몬과 그 기족이 얼마나 존경을 받았는가하면, 마가복음 15장 21절에 보면 시몬을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소개합니다. 사도 바울은 시몬과 그 부인을 자기 부모로 모셨습니다(롬 16:13). 시몬이 억지로 진 십자가는 시몬의 온 가족이 구원받고 존경 받게 된 은총의 십자가였습니다. 이런 십자가는 억지로라도 져야 합니다. 성도들은 날마다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가야 합니다. 자원해서 기쁨으로 하면 좋겠지만 억지로라도 하시기 바랍니다.

억지로 진 십자가가 내게 주시는 최고의 복입니다. 억지로 시작한 일이 우리 인생을 바꾸어 놓습니다. 조금만 힘들어도, 마음 상해도 중단해버리는 시대에, 억지로 교회 다니고, 억지로라도 봉사하다보면 그게 최고의 복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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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수요저녁예배설교] 복의 근원 (Auguest, Wednesday Evening Sermon)

 

복의 근원으로 살아가라
창세기 12장 1~8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저마다 해야 할 일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양한 일을 하며 살아가는 모든 삶의 의미는 복의 근원으로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며, 모든 사람이 깨달아야 할 사실입니다.

모든 삶의 의미는 소명의식에서 비롯돼야 합니다(창 12:1∼2). 물론 삶 자체에 의미가 있는지 묻는 젊은이들도 있습니다.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고민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삶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살아갑니다. 삶의 의미를 찾아내지 못한 사람은 어둡고 지루하게 살아갈 가능성이 큽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삶의 의미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를 성경에서는 ‘복의 근원’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이 하는 일이 무엇이든, 그 일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받은 복을 전해주는 통로가 돼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높은 자리에 있든 평범한 자리에 있든 반드시 힘써야 할 것이 바로 복의 근원으로 살아가는 일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복을 누립니다(창 12:3∼8). 긴 삶 속에서도 삶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건강과 장수,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것이 복인 줄 압니다. 그런데 이런 복은 마치 모래알을 손에 움켜쥔 것과 같아서 시간이 흘러가면 다 사라지고 맙니다. 오랫동안 붙잡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사람을 ‘복 있는 사람’이라고 규정합니다(시 1:1∼6).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자신이 하는 일이 다 형통합니다. 또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자신의 의지나 욕망을 다 포기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두 아들 비유’(마 21:28∼32)는 순종의 삶이 어떤 것인지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제가 사는 서울 성동구의 구정 목표는 ‘사람 중심의 행복한 성동’입니다. 1910년대 러시아 혁명의 구호도 ‘인간이 주인인 세상을 건설하자’였습니다. 인간의 꿈과 의지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이런 사상은 창조 이래 계속돼 왔는데 하나님 중심의 세상과 맞선 주장입니다.

그래서 낙원에서 쫓겨났고, ‘바벨탑 사건’과 같이 계속 하나님께 반항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인간은 인간의 꿈과 욕망을 실현하려고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인간이 주인인 세상을 만들고 싶어한다는 말입니다. 이 사상은 날이 갈수록 맹렬하게 불타오릅니다. 슬프게도 희망은 보이지 않고 절망이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래서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고 탄식했습니다. 이에 대한 성경의 답은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요 14:26)입니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으며, 복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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