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란 무엇인가?
많은 이들에게 행복은 삶의 지상목표이다. 일하고 돈 벌고 멋 내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자녀를 키우는 등의 일들이 궁극적으로는 “행복해지기 위하여서”하는 일들이다. 행복, 행복감을 정의하기는 매우 힘든 일인데, 연구자들은 이 문제를 간단히 넘어가서 “당신은 행복합니까?”를 직접 물어보는 방법을 택한다. 보다 근래에는 행복이라는 너무 일상적이고 광고 문구에서 남용되는 단어보다는 (주관적)안녕(subjective well-being) 혹은 안녕감(sense of well-being)이라는 용어가 더 자주 쓰이고 있다(예, Diener, 1984; 이훈구, 1997).
행복이란 무엇인가? 만일 어떤 사람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바로 행복인 것이다. “행복이란 전반적인 삶에 대하여 느끼는 주관적인 자기만족이다”(이훈구, 1997, p.214). 행복이라는 말 앞에 주관적이란 말을 반드시 붙여야 할 만큼 행복은 본인이 스스로 삶을 즐겁다고 느끼는 넓고 일반적인 의미를 내포한 주관적인 생각이다.
행복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기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 전체를 놓고 볼 때 그것이 현시점에서 삶 전체가 얼마나 충만하고 의미 있는 것이며, 얼마나 즐겁고 만족스러우냐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마이어스, 2001, p.2). 만족이 인지적 판단의 결과인데 비해 행복은 감정과 느낌으로, 즉 매개된(mediated) 반응이 아니라 직접적인(immediate) 반응으로 이해된다(홍숙기, 1994). 그러나 만족감과 안녕감 그리고 행복도는 흔히 구별 없이 사용되고 있다.
행복이란 어떤 경험인가? Davitz(1969)는 성인 남녀에게 행복은 어떻게 느껴지는가를 말로 표현하게 했다. 응답자들은 “내적인 따듯한 환희와 희망이 넘치는 느낌”(82%), “미소 짓고 싶은 느낌”(72%), “안녕감과 내적 평화”(66%) 순으로 응답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 충만한 상태, 기쁨과 소망과 평안을 누리는 상태를 행복이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행복, 즉 주관적 안녕의 정의에 대하여 아직 심리학자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지 않다. 다만 Veenhoven(1991)의 정의가 현재로서는 가장 포괄적인 정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는 주관적 안녕을 크게 전반적 개념과 세부적 개념의 두 가지로 구분하였는데, 전반적 개념에는 생활만족(life satisfaction), 욕구충족(contentment), 그리고 기쁨수준(hedonic level)을 포함시켰고, 세부적 개념에는 직무만족(job satisfaction), 자긍심(self-esteem), 그리고 통제신념(control belief)을 포함시키고 있다.
Maslow(1970)는 생리적, 안전, 사랑, 자존감, 자아실현 등 5단계 욕구위계이론을 제시한 바 있는데, 그의 5가지 욕구는 크게 두 가지, 즉 결핍(defficiency)동기와 성장(growth)동기로 묶여진다고 주장하였다.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는 무엇인가 결핍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욕구로 결핍욕구에 해당하며, 반대로 자아실현의 욕구는 어떤 욕구가 결핍되어서 발생하기 보다는 자신을 개발하고 향상시키려는 욕구이므로 성장욕구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욕구충족과 주관적 안녕간의 관계를 연구한 최경희(1995)는 생리적 안전 욕구 보다는 성장욕구가 주관적 안녕과 더 높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밝혀냈다. 우리의 행복에는 생리적 욕구보다 성장욕구의 충족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이훈구, 1997, p.102).
한편, Averill과 Moore(1993)는 행복을 세 가지 체계에서 나누어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생리적 체계와 심리적 체계, 그리고 사회적 체계이다. 이들에게 행복이란 세 가지 체계 각각의 여러 수준의 목표를 최적화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예컨대, 생리적 체계에서 최고수준의 목표는 유기체를 존속시키는 것이고, 심리적 체계에서의 최고수준 목표는 자아실현이며, 사회적 체계의 최고수준의 목표는 사회적 관계의 유지이다. 오래 지속되는 행복을 위해서는 자신의 직장생활과 가정생활, 그리고 사회생활과의 조화된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윤리학자 고범서(1995)는 생리적 긴장과 심리적 긴장의 해소에 수반되는 쾌락(pleasure)과 풍요의 영역에서 인간의 경험하는 희락(joy)을 구별하면서, 희락을 행복과 동일시하고 있다. 굶주림(hunger)은 단순한 생리적 욕구를 나타내는데 비해, 식욕(appetite)은 맛있는 미각적 경험에 대한 예상이다. 즉, 음식에 대한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고 그것이 일정 시간 지속되면 강한 긴장을 자아내며, 그것이 충족되면 만족 즉 쾌락을 느낀다. 이와는 달리 식욕은 긴장을 유발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미각의 만족은 굶주림의 만족과 질적으로 다르다. 굶주림과 식욕은 다르다.
이런 의미에서 미각은 음악이나 예술의 맛처럼 문화적 발달과 세련의 산물이요, 풍요라는 말의 문화적 및 심리적 의미에서의 풍요의 상황에서만 발달될 수 있다. 굶주림은 결핍의 현상이며, 그것의 만족은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식욕은 풍요의 현상이며, 그것의 만족은 필요불가결한 것이 아니라 자유와 생산성의 현상이다. 식욕의 만족에서 수반되는 쾌락은 기쁨, 즉 희락이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Fromm, 1947, p.187).
Maslow(1970)는 Fromm을 인용하여 전자의 쾌락을 낮은 기쁨(결핍동기의 충족), 후자의 즐거움을 ‘높은 기쁨(성장 또는 존재동기의 충족)’이라 부른다. 낮은 기쁨은 단순자극(simple stimulus)을 통한 긴장해소에서, 높은 기쁨은 활성화자극(activating stimulus) 내지 긴장고조에서 나오는 것이다(홍숙기, p.50). 행복은 높은 기쁨, 즉 희락의 계속적 또는 통합적 경험을 말한다. Fromm(1947)은 희락에 비추어 행복을 다음과 같이 정의 한다:
“희락과 행복은 질에 있어서 다르지 않다. 양자는 희락이 단일한 행동에 대하여 말해지는데 대해서 행복은 희락의 계속적 또는 통합된 경험에 대해서 말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한에서 다르다. 우리는 (복수로) 희락들(joys)을 말할 수 있지만 (단수로) 행복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p.189). 희락은 자기실현의 목표를 향한 길에서 체험되는 것이다”(Fromm, 1976, p.117).
예술에서건 학문에서건 또는 사업에서건 직업에서건 인간이 그의 잠재적 가능성을 생산적으로 발휘하는 활동에 수반되는 만족감, 즉 즐거움이 희락이요 행복인 것이다.
과정이론 또는 몰입이론의 주창자 Csikszentmilhalyi(1990)는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면서 느끼는 황홀감 때문에 그 일에 매달린다고 주장하면서“한 활동에 너무 몰두해서 다른 아무 것도 상관이 없는 상태”(p.4)를 최적경험(optimal experience), 흐름(몰입: flow), 혹은 즐김(enjoyment)이라 불렀다.
행복을 이렇게 이해한다면, 인간은 음악과 미술에서 즐거움을 느낄 때, 한가하게 산책하며 자연에서 조화의 미와 우주의 미를 즐길 때, 독서에서 삶과 역사와 우주의 진리를 깨닫고 희열에 젖을 때 행복을 체험할 수 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하여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며, 거기에는 고생과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직업에서 잠재적 가능성을 생산적으로 발취하며 예술의 감상과 지적 이해와 자연이 주는 희락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범서, p.113).
1)객관적 삶의 질과 주관적 안녕(행복)과의 관계
과학기술의 발달, 경제성장, 자유와 개인주의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는가? 생활수준의 향상과 개인의 자유라는 밝은 현실의 바로 뒤에 존재하는 범죄, 마약문제, 가족의 해체, 정신병리 증가 등의 어려운 현실을 보는 사람은 이 물음에 ‘그렇다’보다는 ‘아니다’라는 대답을 하게 된다.
삶의 질과 주관적 안녕 간의 관계는 두 수준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하나는 국가 간의 비교연구이고, 또 하나는 국가내의 연구이다. 최근 Diener와 그의 가족은 한국을 포함한 55개국의 삶의 질과 국민들의 주관적 안녕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는데, 지금까지 연구자들이 연구한 바에 의하면, 잘 사는 나라의 국민이 못 사는 나라의 국민보다 더 행복한 것도 아니었고, 한 나라 안에서도 국민총생산의 성장과 더불어 행복수준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었으며, 횡단 적으로 볼 때도 수입수준과 행복의 상관은 미미한 것이었다(Diener, 1984; 홍숙기, 1994; 이훈구, 1997).
객관적 삶의 질(예컨대 GNP, GDP, 사회복지수준, 교육수준, 인구과밀, 교통체증, 수명, 범죄율 등등)과4) 주관적 안녕과는 서로 일치하지 않으며 또한 상관관계가 높지 않을 수 있다.
2)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행복한 것은 아니다. 철학자 Bertrand Russel은 대부분의 사람은 행복하기 보다는 불행하다고 말했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의 저자 Dennis Wholey는 미국사람의 약 20%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한다. 『행복을 이루기 위한 15가지 비결』이라는 책에서 Archibald Hart(1988)는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20%보다 훨씬 적다고 보고 있다. 전국적인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약 1/3이 “매우 행복하다”고 답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정상적인 신체를 가진 사람들은 하루의 50%가 행복감을, 22%가 불행감을, 그리고 나머지 29%가 행복도 아니고 불행도 아닌 그저 그런 시간을 가진다고 한다(Myers, 1992, p.48).
① 한국인의 생활만족도
삶에 전체적으로 만족하느냐는 질문을 던질 때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갤럽의 국제비교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만족도는 비교된 나라들 중 가장 낮았다(5.5가 중심점인 10점 척도에서 5.34; 참고로 일본은 6.61; 미국은 7.60; 18개국 전체평균은 7.48, 한국갤럽, 1990). 그래도 반수가 만족 쪽으로 응답하였다. ‘아주’(8%), 혹은 ‘약간’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는 사람들의 비율(65%)도 절반이 넘었지만, 국제적으로는 가장 낮은 비율이었다(일본은 77%, 미국 92%, 18개국 전체평균 83%).
150편에 가까운 연구를 종합해 본 결과 남녀라는 성이 행복감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1%미만이며, 설사 있다하더라도 여자가 남자보다 조금 더 행복감을 느낄까 말까하는 정도이다. 적어도 행복감에 있어서는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남녀가 평등한 것 같다(Myers, p.80). 행복이란 자신의 흥미에 맞는 일을 하고 능력을 발취하고 성취하는 데 있다. 재산, 나이, 성, 부모의 사회적 지위, 주거지역, 교육수준 등이 행복수준을 점쳐주지 못한다(p.86).
불행을 경험하는 데는 남녀 간에 차이가 있다. 여자가 남자 보다 장기적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가 두 배나 된다. 여자가 우울증, 불안, 공포증에 걸리는 경우가 남자보다 배로 많은데 비해, 남자는 알코올 중독에 빠질 확률이 다섯 배나 높은 것은 남자의 자존감이 낮은 것과도 관계가 있다고 하겠다(Myers, p.86).
삶의 질에 대한 국내연구는 1980년대 이후에 이루어졌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1981)에서 12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만족과 행복의 평균점수는 50점 이하로 나타났다. ‘만족’은 31.5, ‘불만족’은 13.1, ‘기쁨’은 48.1, 그리고 ‘걱정’은 24.7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19%가 만족과 기쁨보다는 불행 쪽으로 응답했음을 발견했다. 한국 사람의 주관적 안녕감이 외국에 비해 비교적 낮게 나온 것은 한국이 불행한 과거를 겪어왔기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지난 2,30년 동안 우리나라의 생활수준은 엄청나게 높아졌지만, 삶에 대한 만족이 같이 높아지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주로 일과 사랑의 세계에서 만족과 행복, 불만과 불행을 체험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활만족도와 행복도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매우 낮으며, 직업과 가정생활에 만족하는 정도도 마찬가지로 매우 낮다(한국갤럽, 1990). 이는 가정과 직장을 포함한 우리의 생활환경이 우리에게 편안한 곳 이라기보다는 각박하고 살벌한 환경이라는 것을 시사한다(홍숙기, 1994).
(교회와신앙 /정동섭 교수/ 행복의 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