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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주일낮예배설교 /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말씀 : 엡2:1~9

제목 : 지극히 풍성한 은혜

1.놀랍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여러분도 잘 아시는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토끼가 길을 가다가 함정이 있어서 내려다보았더니 함정에 빠져 며칠을 굶어 다 죽어가는 늑대 한마리가 제발 나 좀 구해달라고 애걸복걸을 합니다. 그러자 토끼가 너를 구해 주면 날 잡아 먹을 것이 아니냐며 거절을 하자 늑대는 어떻게 생명의 은인을 잡아먹을 수 있겠느냐며 그런 배은망덕한 일은 절대 없을 테니 제발 한번만 살려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토끼는 늑대가 너무 불쌍해서 기다란 나무를 내려 주어 늑대는 겨우 함정 밖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함정 밖으로 나온 늑대는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더니 나는 지금 너무 배가 고파 다른 사냥감을 구하기도 어려워 어쩔 수 없이 너라도 잡아먹어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토끼가 세상에 생명의 은인을 잡아먹는 이런 배은망덕한 일이 어디 있느냐며 따졌지만 도무지 통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때 마침 여우가 지나가기에 토끼가 여우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판결을 좀 해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여우는 정확한 상황을 알아야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있으니 처음부터 상황을 재현해 보라고 합니다. 그러자 늑대가 함정에 뛰어 들어가서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함정에 빠져서 이러고 있을 때……” 그러자 여우는 늑대의 말을 조금 듣다가 말했습니다. “너는 거기서 계속 갇혀 있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토끼와 함께 떠나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뜻은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만 배은망덕한 자가 되면 도로 함정에 갇힌 늑대와 같은 신세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때는 바로 함정에 빠진 늑대와 같은 처지에 있었습니다. 죄와 무지의 깊은 함정 속에 빠져 아무리 발버둥쳐도 도무지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국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이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그 죄와 무지의 함정, 지옥의 함정에서 우리를 건져 주신 것입니다.

오늘 1~3절을 보십시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보십시오. 우리가 과거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에는 허물과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공중 권세 잡을 자르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삶으로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입니까? 하나님의 진노를 당할 수 밖에 없는 그래서 영원토록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끔찍한 인생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모르는 인생의 현주소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의 실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런 우리를 불쌍히 여겨 찾아와 주시고 구원해 주심으로 이제는 반대로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영원토록 할렐루야 찬양하고 감사하며 빛과 같은 은혜를 누리는 특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다행입니까? 얼마나 은혜에 보답하며, 얼마나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하겠습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실상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나마 죄가운데 빠져 자연 상태로는 허물과 죄로 진노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찾아와 그 죄의 함정 속에서, 사망의 함정 속에서, 지옥의 함정 속에서 건져 주셔서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돌려드리며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갈 뿐 다른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말 그대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졌는데,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얻었는데 다른 무슨 필요한 것이 있겠습니까? 물론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것들이 있는 있죠. 그러나 그런 것들은 그렇게 대단한 것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실 세상에서 필요한 것들은 이미 있어야 할 만큼 주셨습니다. 그러면 됐지 우리가 뭘 그렇게 더 바랄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본질상 진노의 자녀에서 구원받아 거꾸로 영광의 자녀가 되었다는 이 엄청난 사실을 기억하며 정말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돌려드리며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좀더 구체적으로 과거의 우리의 상태는 어땠습니까? 어떻게 그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까? 이 엄청난 은혜를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2.허물과 죄로 죽은 인생의 모습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지 못할 때는 참으로 처참한 인생이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1절을 다시 봅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허물과 죄로 죽은 존재였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죽음은 물론 육체적 죽음이 아니라 영적 죽음, 즉 둘째 사망입니다. 즉 지옥에 처할 인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랬느냐? 허물과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허물이란 미끄러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허물은 의도적으로 잘못한 것이 아니라 실수로 잘못한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죄는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던 목적에서 벗어난 모든 것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부합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모든 것들이 곧 죄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허물과 죄란 고의든 실수든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지 않는 모든 생각과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는 모두가 이런 죄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궤계에 빠진 이후로 인간에게 대물림하여 내려온 원죄로 자연인으로의 인간은 누구도 이것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허물과 죄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제 아무리 법 없이도 살 만한 천사 같은 사람이나 성인군자라도 허물과 죄가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인생의 도와 목적을 알 수도 없고, 알아도 그것을 따라 살아갈 능력도 없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형벌에 처할 수 밖에 없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생은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였는데 그 허물과 죄가운데 있는 인생의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앞에서 보았던 2,3절을 다시 봅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이 말씀에 보면 허물과 죄로 죽은 인생이 살아가는 모습 세가지를 말씀하고 있는데 첫 번째는 세상 풍조를 따른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것이고, 세 번째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세상풍조를 따른다는 것은 한마디로 세상의 물결 따라 유행 따라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와 선과 의가 인생이 살아가야할 방향이요 목적이요 기준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은 뒷전이고 그냥 당장 눈에 보기에 편하고 좋고 유리한대로 세상의 물결을 좇아 흘러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 풍속이 다 나쁘고 악한 것은 아닙니다. 그 중에는 좋은 전통도 많고 미풍양속도 많습니다. 나름대로 진리와 선과 의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또 사실 세상의 문명의 이기나 문화나 과학이나 예술이나 스포츠나 우리가 함께 공유하고 누리고 따라가야 할 것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유감스럽게도 세상에는 너무나 왜곡된 풍조가 만연되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돈과 명예와 권세와 세상 즐거움을 추구하며 인본주의와 개인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 속에서 자기 마음과 생각과 지식과 경험과 이성을 따라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로 가는 모습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것들이 눈에 좋게 보이고 유익이 되고 기쁨이 되고 편하고 자유를 줄 것처럼 여기지만 그러나 이런 것들은 결코 우리에게 진정한 생명과 자유와 평안과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도리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함으로 생명의 은총을 빼앗아 가버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삶에 대하여 계속 경고를 보내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죄와 무지속에 있는 대부분의 인생들은 이걸 모르고 자기가 보기에 옳은 길로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세상의 대세가 되어버리고, 대세가 되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길, 진리의 길, 자유의 길, 평화의 길을 버리고 엉뚱한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리에서 구원받아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더 이상 그런 허물과 죄로 죽은 인생들이 따라가고 있는 세상의 풍조에 휩쓸려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가 생각하기에 옳은 것이 아니라 세상 많은 사람들이 달려가는 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의롭고 바른 것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당연히 거기에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자유와 평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결코 세상의 물결을 따라, 유행을 따라, 가치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주님의 말씀안에서 주님과 동행할 때에 진정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온전히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공중권세 잡을 자를 따른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한마디로 마귀를 따른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세상 풍조를 따르는 모든 것이 마귀를 따르는 일이지만 특별히 여기서는 온갖 종류의 우상을 섬기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 인생은 얼마나 우지하고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을 합니까?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어렸을 때만해도 떡을 하면 제일 먼저 한 접시 담아서 장독대로 가서 항아리 위에 올려놓곤 했습니다. 또 달에게 빌고, 해에게 빌고, 나무에다 빌고, 마을 앞 한길을 지나다가 마귀 어귀에 있는 서낭당에 돌을 하나 쌓고 가곤 했습니다. 나무를 베면 귀신이 노해서 화를 당한다고 나무도 못 베고, 못도 아무데나 못 박고, 결혼이나 이사도 제 맘대로 못 다니고 귀신한테 물어보고, 사랑하는 자녀의 이름도 제 맘대로 못 짓고 귀신한테 물어보고....... 얼마나 무지몽매한 일입니까? 이게 바로 마귀의 하수인이 되어 귀신을 섬기고 있는 어리석은 인생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렇게 마귀의 하수인이 되어 꼼짝 못하고 종노릇하다가 결국 영원한 형벌가운데 처하게 되니 이 얼마나 가련하고 불쌍하고 어리석은 인생의 모습입니까?

또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간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진리니 생명이니 의니 정직이니 성실이니 이런 것들은 뒤로 밀려나 있고 오직 육체의 욕심을 채우는 길로 달려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이게 동물과 다른 게 뭐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게 뭡니까? 영이 있고 이성 즉 정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영은 영적인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해서 섬길 자를 섬기고 버릴 것을 버려야 합니다. 이성은 정신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 옳은 일을 택하도록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육신은 우리의 영과 혼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산다는 것은 그런 영과 이성의 지배를 벗어던지고 오직 육신의 유익만을 구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영과 이성이 없는 동물과 같은 삶이고, 하나님의 고위한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생이 짐승과 같은 삶을 산다며 결국 하나님에게서 끊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6:3절 하반절에서는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육신이 되었다. 이미 육신을 가지고 있는데 뭘 또 육신이 됩니까? 영이 완전히 죽어 오직 육의 원리를 따라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겨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언젠가 뉴스에 보니까 강원랜드 카지노 주변에서 집에도 못가고 빌빌 거리고 있는 사람들이 7천명인지 몇 명인지 된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은 카지노에서 도박으로 보통 몇 억씩 날린 사람들인데 그래서 집에 가지 못가고 가족도 가정도 다 잃어버리고 쪽방 같은데 살며 식당 등에서 일하며 겨우 먹고 살면서 그나마 돈 몇푼 모이면 또 카지노에서 다 날리고 그러면서 산답니다. 참 기가 막힌 노릇 아닙니까? 이게 바로 영과 이성이 마비된 인생들의 모습이지요. 어디 이 뿐이겠습니까? 영과 이성의 지배를 받지 못하고 육신과 물질의 종이 되어 온갖 짓들을 다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우리고 과거에 바로 그런 자들이었는데 이제는 거기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과 혼의 지배를 받으며 주님과 동행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더 이상 세상 풍조를 따라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를 따르는 삶을 살아감으로 더욱 주님이 주시는 은혜의 충만함을 마음껏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인생

여러분, 우리는 정말 생각하면 할수록 감사할 것 뿐이고 영광 돌릴 것 뿐입니다. 우리는 정말 죽을 때까지 아니 영원토록 감사하며 기뻐하며 영광을 돌리며 찬양하며 살아도 모자라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도 앞에서 말씀드린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르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던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것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그래서 본질상 진노의 자녀에서 벗어나 영광의 나라를 소유한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종종 말씀드리지만 얼마나 다행입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내가 만약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면,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끔찍하고 몸서리가 처지지 않습니까? 여러분, 앞에서 보았던 3절에서 뭐라고 그랬습니까?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는 것입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니 얼마나 두렵고 끔직한 말씀입니까? 어떤 분들은 별로 느낌이 없는 것 같은데 여러분, 상상해 보기도 싫은 일이지만 상상해 보십시오. 이 몸이 죽고 싶어도 영원히 죽지도 못하고 영원히 활활 타오르는 불구덩이 속에서 살아야 된다면 그 고통과 아픔과 비참함과 끔찍함이 얼마나 하겠습니까? 어떤 분들은 이걸 무슨 상상 속의 이야기라고 착각하는데 천국과 지옥은 상상의 세계가 아니라 실제 상황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는 반드시 둘 중의 한 군데로 가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는 거기서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냥 불구덩이에서 구원받은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반대되는 세상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완전히 영원히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행복과 만족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만이 넘치는 천국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것도 우리가 무슨 잘나고 똑똑하고 의로워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입니다.

오늘 5절과 8절 말씀 보겠습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5절)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8절) 여러분, 이게 웬 떡입니까? 웬 은혜입니까? 웬 사랑입니까? 웬 축복입니까? 우리가 그럴만한 자격이 있습니까? 그럴만한 공로가 있습니까? 그럴만한 지혜와 능력이 있습니까? 그럴만한 선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죄과대로 갚으셨다는 우리는 속된 말로 찍소리도 못하고 영원한 형벌에 처할 수 밖에 없었던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 작은 믿음 하나 보시고 우리를 본질상 진노의 자녀에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며 그 은혜에 만분의 일이라도 갚기 위하여 애써야 하겠습니까?

고려 말의 충신 정몽주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의 아주 유명한 시조가 있지 않습니까? 먼저 이방원이 하여가(何如歌)를 지어 정몽주를 회유하려고 합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 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누구의 세상인들, 세상이 어떠한들 그게 뭐가 중요하냐? 그냥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 나와 손잡고 100년의 권세를 누려봄이 어떠하냐? 뭐 그런 정도의 뜻이겠지요. 그러자 정몽주가 그 유명한 단심가(丹心歌)를 지어 답을 하지요.

이 몸이 죽고 죽어 일 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

이 몸이 백번을 죽어도, 백골이나 넋이 있든 말든 임금을 향한 일편단심은 변할 수 없다는 거죠. 그리고 결국은 선죽교에서 이방원의 철퇴에 맞아 순교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잠시잠깐 세상에 왔다가 사라져 갈 세상의 임금을 위한 충신의 자세가 이러하다면 영원토록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신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마음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세상에서 은혜를 입은 임금의 은혜를 이와 같이 죽음으로 갚았다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를 구하여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주신 이 엄청난 은혜를 받은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은혜에 보답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이 귀한 말씀을 묵상하며 정말 저와 여러분은 우리가 얼마나 엄청난 은혜를 받은 존재인지, 우리가 얼마나 존귀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돌리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정말 세상의 왜곡된 풍조나 공중권세 잡은 자나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오직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만을 따라 주님과 동행할 때에 저 영원한 영광의 나라는 물로 지금 여기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그 놀라운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평안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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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혈과 육에 속하여 소망없던 저희를
  영원하신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는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희 믿음생활이 널리 전파되도록
  예수 십자가 사랑을 본받는
  성도와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작은 일 하나에도 마음과 힘을 합하여
  믿음과 사랑으로 행하므로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는 성도와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저희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 말씀과 성령으로 다스려
  거룩한 성도의 삶으로 보존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말씀이 모든 면에서 앞서는
  지혜로운 성도의 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범사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심을 경험하며
  감사하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지난 반년동안도 믿음으로 인도하사
  생명이신 예수 안에 살게 하심을
  감사하는 성도와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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