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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설교 Sunday worship preaching

 

 

 


제 목 : 순진한 믿음

말 씀 : 고전2:1-5

 


1.순진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언젠가 어떤 유명한 배우가 ‘나는 개그맨들을 정말 존경한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유가 뭐냐고 했더니 자기들은 남이 다 써 준 각본대로 연기만 하면 되는데 개그맨들은 때로는 밤을 새워가며 머리를 쥐어짜서 뭔가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고 그 아이템을 가지고 어찌하든지 사람들을 웃게 만들기 위하여 끊임없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연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매 회마다 색다른 소재를 발견한다는 게 너무너무 어려울 것 같다고 하며 자기는 그렇게 못할 것 같다고 하며 그래서 개그맨들을 존경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그 말을 듣고 보니까 개그맨들이 다시 보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사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게 뭐냐하면 시키는대로 하는 것은 쉽고, 스스로 생각하고 연구하여 물질적인 것이나 지식적인 것이나 정신적인 것이든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이미 전부터 있었던 것, 남이 다하는 것, 이미 다른 사람들이 다 연구해놓아 지금까지 해 왔던 것들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냥 그대로 따라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이 하지 않았던 것, 아직 표준화 되지 않고 매뉴얼이 없고 스스로 뭔가 개발하며 표준화시키고 매뉴얼을 만들고 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요. 하다 못해 간단한 장난감을 하나 만드는 것도 뭔가 완전히 새로운 것을 혼자 연구해서 만들려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비로소 완성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말 중요한 것은 인생은 더욱더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우리가 알지도 못하고 경험하지도 못한 길이기 때문에 혼자 생각하고 연구하고 경험하여 개척하며 가려면 너무나 어렵고 너무나 많은 오류와 착오를 겪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너무나 고차원적이고 변화무쌍하고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는 인생의 문제를 온전하게 풀어낼 방정식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분들은 목사님, 왜 불가능합니까? 왜 혼자 연구하고 혼자 생각하는 길입니까? 우리 선인들이 오랜 세월의 경험을 통해서 생각하고 연구해서 만들어 놓은 매뉴얼이 있지 않느냐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아닙니다. 우리 선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그들이 알 수도, 경험할 수도 없는 길을 나름대로 연구해 만든 매뉴얼이기 때문에 물론 그 중에 옳은 것도 많지만 그러나 왜곡되고 잘못된 것도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인생의 완전한 매뉴얼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의 완전한 매뉴얼은 무엇입니까? 말할 것도 없이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대하여 말씀하신 성경 말씀뿐입니다. 오직 거기에 우리 인생이 무엇인지, 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궁극적인 목적지가 어디인지 완벽하게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매뉴얼인 성경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길만이 유일하게 완전히 안전한 길이고 가장 쉬운 길이고 완전하게 옳은 길이고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는 길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은 인간 자체가 죄와 무지와 한계 속에 있기 때문에 결코 완전한 매뉴얼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한번도 가보지도 않은 길이고 알지도 못하는 길인데 자꾸 혼자 이리저리 연구하며 자기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너무나 큰 시행착오와 낭패를 경험하고 그러다가 결국은 영원한 고통 속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그런 딱한 처지에 이르고 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안타깝고 어리석은 일입니까? 아니 도대체 죄와 무지와 한계 속에 있는 인생이 어떻게 인생의 완벽한 매뉴얼을 만들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매뉴얼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마다하고 자꾸 알지도 보지도 경험하지도 못한 일에 대하여 자기 마음대로 하다가 실패를 경험하고 고통을 맛보고 생명의 기쁨은커녕 멸망 길로 가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아니 이미 하나님께서 다 가르쳐 주신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로 가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에이, 목사님. 하나님이 정해주신 매뉴얼대로 사는 게 어떻게 쉽습니까?’하실지 모르지만 그러면 그게 쉽지 않으면 무엇이 쉽습니까? 알지도 못하는 길을 혼자 개척하며 연구하며 가는 게 쉽습니까? 혼자서 온갖 유혹과 어둠의 세력과 상황과 환경과 세상의 거센 풍파와 맞서 싸우며 사는 게 쉽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 놓으신 길을,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주님의 능력과 지혜로 모든 어둠의 세력들과 약한 것과 도전과 유혹과 시험을 이기며 가는 길이 쉽습니까? 전혀 모르는 길을 혼자 찾아가는 게 쉽습니까? 안내자를 따라 가는 게 쉽습니까?

 


여러분, 신30:11절과 14절 말씀 보십시오. 11절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14절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보세요. 이 말씀은 어려운 것도 아니고 먼 것도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안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 저 미국이나 러시아라도 가야 있는 게 아니라 지금 바로 우리 눈앞에 있지 않습니까? 말씀을 따라가는데 억만금이 드는 것도 아니고, 피땀 흘리며 뼈 빠지게 일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머리 싸매고 골머리를 앓으며 연구해야 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 농사짓는 게 쉽습니까? 하나님 믿는 게 쉽습니까? 세가 빠지게 일하는 게 쉽습니까?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게 쉽습니까? 아니 얼마나 쉽고 평안하고 좋습니까? 그냥 교회에 와서 평안히 앉아서 말씀 듣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얼마나 쉽습니까? 하나님이 그렇다 그러면 네, 하나님 알겠습니다. 그러고 그냥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분명 하나님께서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능력과 지혜와 평안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놀라운 은총가운데 살게 하십니다. 세상에 이 쉽고 이 좋은 것을 왜 안하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 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자신이 알지도 가보지도 못한 길을 자꾸 혼자서 자기 마음대로 어렵게 가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신 길, 예수님이 우리의 인도자가 되셔서 이끌고 가시는 그 길을 그냥 예수님만 졸졸 따라 가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완전한 매뉴얼인 성경을 따라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 가운데 생명의 길, 복의 길로 잘 달려가 생명의 은혜가 넘쳐나는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자기 지혜를 의지하면 실패합니다.

 


오늘본문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보게 되는데요,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을 만난 후에 정말 자신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갔던 사람 바울이 한 때 실패를 경험한 사실에 대하여 말씀하며 그 실패를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또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보지는 않았지만 3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여러분, 보세요. 바울이 약하고 두려워하고 떨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심히 떨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이 누굽니까? 그는 빌립보에서 죽지 않을 만큼 맞고 쇠사슬에 묶여 감옥에 갇혀서도 찬송하고 기도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귀신을 쫓아내고, 그의 몸에서 앞치마나 손수건을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문에서 떨어져 죽자 기도하여 살게 한 사람입니다.

 


이런 천하의 바울이 약하고 두려하고 심히 떨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아덴에서의 실패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오기 전에 아덴에서 자신의 지식과 지혜로 사람들을 설복시키려다가 실패했던 것입니다. 아테네는 헬라제국의 수도로서 당시 철학, 문화, 학문, 종교, 정치, 경제의 중심지였으나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제단도 있을 만큼 우상이 득실거리는 곳이었습니다.

 


이것을 본 바울은 의분이 일어나 너희가 ‘알지 못하는 신’이라고 생각하는 그가 누구인지 알려 주겠다면서 그게 바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이라고 역설하며 철학적 지식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설복시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덴 사람들은 그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말쟁이인가보다 하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관심도 갖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크게 낙담하여 그곳을 포기하고 고린도로 왔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실패하고 낙심하고 좌절했던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건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이성과 지혜를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늘 2절에 보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즉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바울은 아테네에서 자기 이성과 지혜를 의지했다가 철저히 실패하고 그곳을 떠나 고린도로 오면서 다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절대로 내 꼴 난 지혜를 의지하지 않으리라.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만을 증거하리라. 그리고 고린도에서는 오직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것과 부활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쟁이처럼 오직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결국 고린도에서 성공적으로 교회를 세우고 죽어가는 많은 영혼들을 구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참된 지식이나 능력은 결코 인간의 지식과 지혜와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자신의 그 죄와 무지와 한계 속에 있는 이성과 지식과 경험을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 앞에 엎드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그 도를 따라 살아갈 때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진정한 지혜와 능력 가운데 생명의 길로 달려가며 인간의 모든 문제를 이기고 생명의 기쁨을 누리는 진정한 능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설령 세상이 아무리 외적으로 좋아진다해도 인생의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 그래요? 여러분, 보세요. 오늘날 세상은 불과 10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습니다. 과학이나 문화나 교육이나 소득 수준이나 모두 백배 천배는 올라갔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얼마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까? 물론 가난과 질병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해결된 문제보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백배 천배 많습니다. 못먹고 못살던 옛날이나 잘먹고 잘사는 지금이나 병들고 늙고 죽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죄악은 오히려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고 빼앗고 사기치고 강도짓하고 간음하고 살인하고 성폭력을 저지르로 하는 일들은 더욱 많아져 가고 있습니다. 이만큼 잘 살게 되었으면 좀 감사하며 살만도 한데 힘들어 못살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극심한 이기주의와 물질주의로 말미암아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툭하면 싸우려고 대들고 폭언과 독설을 퍼붓고 투쟁을 하곤 합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아무리 과학과 문화와 지식이 발달하여 혹 물질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좀더 풍요로워진다해도 그런 걸 가지고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니 도리어 그런 것들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하고 더욱 죄의 길로 달려감으로 말미암아 더욱 멸망의 길로 치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지식과 지혜와 과학과 물질문명에 내 인생을 맡기면 안 됩니다. 세상의 지식과 과학과 물질문명이 좀 발전했다고 그것 의지하고 바라보고 그런 관점에서 살아간다면 세상에서도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결국 영원한 멸망길로 갈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만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게 참된 능력이요 지혜요, 그런 사람들이 여기서도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인생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5절에서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믿음은 인간의 지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꼴난 인간의 이성과 지혜와 경험으로 요리조리 백날 생각해봐야 참 생명의 도는 알 수 없다. 그저 우리의 약함과 무지와 부족함과 허물과 죄를 인정하고, 그저 순진한 아이처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러면 주의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그러면 영광의 나라를 알게 되고 그럴 때 생명의 능력이 넘쳐나는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별 것 아닌 지식과 이성과 경험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그런 거 내려놓으십시오. 죄와 무지와 한계 속에 있는 인생이 백날 연구하고 따져보고 해봤자 그야말로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맨날 거기가 거깁니다. 알 수 없습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알고 이해하면 그게 이상한 것입니다. 그건 우리가 하나님같이 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죄와 무지와 한계를 인정하고 그냥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는 것뿐입니다. 오직 예수님이 그리스도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다. 예수님 안에 영광의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그냥 어린애처럼 받아들이고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확실히 믿게 하십니다. 그러면 생명의 능력과 은혜가 넘쳐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삶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순종할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복음을 순진하게 받아들이고 따라가면 복음에는 생명이 있고 능력이 있기 때문에 분명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늘 4절을 보십시오. “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인간의 이성이나 능력이나 지혜나 이런 다 집어 치우고 그냥 단순무식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성령에 성령께서 역사하셨고, 성령이 역사하시자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분명한 것은 주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 앞에 순진한 사람이 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분명 은혜의 사람, 능력의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와 능력과 지식을 신뢰하고 그걸 따라가는 사람은 너 잘났으니 네 맘대로 해봐라 하면서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않으면 생명의 은총을 누리는 길은 요원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진정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며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순진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험한 풍랑 일어나는 바다위로 걸어오라고 하자 풍덩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 물위를 걸어서 주님을 향하여 걸어갔습니다. 주님의 말씀이니까, 주님이 지켜 주실 것을 믿고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물위로 뛰어내렸고 그리고 실제로 물위를 걸어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 가다가 험한 풍랑 일어나는 바다를 보자 그만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그러나 인간적으로 두려운 마음이 들기 시작하였고 그러자 능력을 잃어버리고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로마의 백부장은 어땠습니까? 하인이 병이 들자 예수님을 찾아가자 예수님이 가서 고쳐주겠다고 하자 그저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하고 말합니다. 주님이 수고스럽게 저희 집까지 가실 일이 뭐있습니까? 그냥 말씀 한마디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내 하인이 나을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이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하시자 그 즉시 하인의 병이 낫지 않았습니까?

 


열두 해를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대어도 낫겠다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만졌을 때 병이 나았습니다. 나면서부터 소경이었던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침으로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른 다음에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는 지시를 받고 그대로 하자 눈이 떠졌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니까 순진하게 드리자 하나님께서 이삭도 살려주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 순진하게 골리앗을 향해 돌진하여 결국 승리하였습니다. 나아만장군은 하나님의 사람의 말을 듣고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까 문둥병이 떠났습니다.

 

여러분, 믿음에는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아니 우리가 정말 우리 자신을 안다면 모든 면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안다고 하는 순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됩니다. 본다고 하는 순간 아무것도 못 보는 진짜 소경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요9:41)고 하십니다. 그들은 성경과 천국과 하나님에 대하여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아무것도 못 보는 소경이 되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부족하고 연약하고 미련함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더라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참된 생명과 진리를 알게 되련마는 그 꼴난 자신의 지식과 경험과 이성으로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하여 결국은 영원한 멸망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소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순진하게 주님의 복음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내 지혜나 이성이나 감정이나 경험을 일단 다 내려놓고 주님 앞에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뭐가 어떠니 저떠니 이야기하지 말고 그저 겸손하게 엎드려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 다시 오실 예수님을 믿고 저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향해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겸손하고 순진한 마음으로 예배드리고 설교 듣고 찬양하고 기도하며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성령의 능력이 여러분과 함께 하심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이기고 더욱 은혜와 능력과 기쁨이 충만한 복된 삶이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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