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사도신경의 역사(1)
기독교 역사가들에 의하면 로마 카톨릭 교회 안에는 4세기경에 “로마교회 구신조” 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것이 사도신경의 모체가 되었다고 합니다. 전승에 따르면 12사도들이 작성했다고 하나 실제로는 초기의 세례예비자용 문답례에서 발전했다고 합니다. 200년경 로마에서 사용한 문답례의 한 실례가 히폴리투스가 쓴 〈사도전승 Apostolic Tradition〉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주교는 "당신은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십니까?" 와 같은 그리스도교의 주요신앙에 대해 질문하곤 했습니다. 긍정적인 명제로 씌어진 이 진술들은 신조(信條)가 되었으며, 이 신조들은 이후에 세례신조로 알려졌습니다.
현재의 사도신경 본문은 3, 4세기에 로마에서 사용한 세례신조와 비슷하며, 그 최종적인 형식은 6세기말 또는 7세기초 프랑스 남서부지방에서 확립되었습니다. 이것은 점차 세례신조를 대신하게 되었고,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1198~1216 재위)가 서방 로마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신앙 진술로 인정했습니다.
1991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출판국에서 발행한 ‘세계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 에 의하면 사도신경은 로마 카톨릭 교회를 통해 전수되었고,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공식적인 신앙고백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초기 사도신경은 아주 짧았고,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사도신경과 유사한 형태의 사도신경은 6~7세기에 나타 납니다. 거기에는 초기에는 발견되지 않는 구절과 단어들이 추가되어 8세기에 와서 비로소 현재와 같은 형태로 거의 고정되고, 12세기에 로마 카톨릭 교회에 의해서 공식적으로 인준됩니다.
사도신경
시도신경 사도들의 신앙고백이란 의미이며, 각 사도들이 한 구절씩 작성했다는 전설이 있기도 하지만, 신경 자체는 사도들로부터 직접적으로 유래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초대교회부터 신경은 정확한 교리를 수호하기 위해서,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현재와 같은 형태로 전해지게 된 것은 중세시기로 추정된다.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도신경의 형태는 처음부터 오늘날 우리가 고백하는 형태는 아니었다.
베스트라(Westra)는 사도신경의 기원과 변화에 대해 언어학적 분석을 시도했다. 그에 따르면, 사도신경은 세례자들이 그들의 세례식에서 고백하던 삼위일체적 구조의 기도문과 초대교회 방시 중요했던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고백을 함께 합쳐서 초기 형태의 사도신경이 이루어졌다. 먼저 세례식 기도로써 사도신경은 마태복음 28장 19절의 지상명령을 근거하고 있거나, 아니면 베드로의 신앙고백인 마태복음 16장 16절을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초대교회의 변증가들과 목회자들은 말씀을 기초로 자신의 교회의 고백을 추가하여, 신자들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 때 이 고백을 하며 세례의식에 참여하도록 요구했다. 이런 신앙고백서는 세례자가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 분의 소유라는 존재론적 현실을 고백의 용어로써 표현한 것이다.
한편으로 2세기 중반에 이르러 이 세례의식에서 행하는 고백이 좀 더 구체화되고 많은 내용을 담지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기독교회 안에서 신학적 논쟁과 이단의 세력이 커져감에 따라 신앙고백의 새로운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특별히, 가현설주의자들에 반대하여서,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하려는 요구가 커져갔다. 삼위일체적 구조를 지녔던 단순한 형태의 세례식의 신앙고백 기도문에서 그리스도의 삶의 순서를 따라가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오래된 신앙고백문들이 결합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단과 정통 사상을 평가하는 기준들에 교회는 '믿음의 규칙(the rule of faith)"이라는 명칭을 붙였는데, 사도신경도 이런 믿음의 규칙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의 공통된 신앙에 대한 고백서로 역할하게 되었다. 사도신경의 초기 형태는 2세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최초로 문헌에 등장하는 형태는 안키라의 마르첼루스가 로마 주교였던 율리우스에게 쓴 편지에서 헬라어로 등장한다. 대략 그 시기는 340년경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라틴어에서 번역된 것으로 보인다. 390년경, 루피누스는 사도신경해설(Commentarius in symbolumapostolorum)에서 라틴어 사도신경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오늘날의 형태는 8세기 초반에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Phillip Schaff는 "음부강하". "보편적(catholic)" "성도가 서로 교제함" "영원히 사는 것"과 같은 문구가 7세기 이후 추가되었다고 주장한다. Textus Receptus라고 부르는 최종형태의 사도신경은 수도사 피르미니우스(Pirminius)의 저서에 나타난다. 하지만 켈리는 이미 5세기경에 거의 현대와 비슷한 형태의 사도신경이 유럽지역에 사용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12세기에 이르러서는 서방교회 어디에서나 세례와 성찬시에 사도신경을 사용했고, 주일 예배에 시도신경을 암송하는 관례가 보편화 되었다.
한국교회들이 보통 사용하는 사도신경에는 제외되어 있지만, 본래 고정된 형태로 전해진 사도신경에는 '음부(지옥)로 내려 가사"라는 표현이 있다. 이 표현은 베드로전서 3장 19절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에 대한 반영으로 보여 진다. 4세기경, 루피누스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이 구절은 지금까지도 세계 거의 모든 교회들의 사도신경 번역에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의 사도신경에는 왜 이 구절이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1894년 언더우드 선교사의 번역과, 1905년의 장로교 선교사 협의회의 번역에는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언급이 등장한다. 하지만 1908년 장로교와 감리교가 함께 연합하여 공인찬송가를 출판하고자 했을 때, 감리교의 사도신경 번역에는 이 음부강하 구절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언어의 일치를 위해서 장로교측이 양보하여, 출판되는 찬송가에 생략된 번역본이 수록되게 되었다. 이 번역본이 지속적으로 한국교회에 사용되어 현계에 까지 이르렀다. 그렇다면, 새로운 번역 또는 음부강하가 추가된 사도신경을 교회에서 사용해야 하는가?
이 부분은 전적으로 교회적 합의와 총회적 연구 작업과 논의, 그리고 합의가 필요한 작업이다. 공교회적 신앙고백으로 사도신경은 우리의 신앙의 표준으로써 가치가 매우 높다. 이 사도신경의 일부분이 개혁교회 역사에도 계속적으로 사용되었는데, 현재 한국교회에 사용되지 않는 이유를 좀 더 명확히 연구하고, 그 가치와 과오를 함께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평가의 과정은 개 교회보다는 사도신경의공교회적 특성을 살려서 총회 주도의 신학위원회에서 연구와 평가를 통해 합의하고 논의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도신경의 내용과 구조에 대해 신학적 분석을 제시하고자 한다. 사도신경은 구성적으로 볼 때 삼위일체적 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많은 부분을 성자 예수님에 관련된 교리를 논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성부 하나님의 경우 그 분의 전능성, 창조주로서의 고백이 언급된다. 이것은 윌켄이 지적한 것처럼, 신앙이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성자의 경우, 그의 위격, 탄생, 고난, 부활, 승천, 재림에 이르는 다양한 교리적 내용을 함축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성령은 철저히 교회론적 배경에서 제시되고 있다.
사도신경은 단지 오래된 신앙고백이기에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용어는 명료하고, 직관적이며, 또 성경의 역사적 개괄 순서를 따라 진행되고 있다. 창조에서 구속, 재림에 이르는 과정을 한 신앙고백에 간결하게 포함시킴으로, 아직까지도 거의 모든 교회들은 예배의 시작에서 사도신경으로 교회의 신앙을 고백하곤 한다. 다른 말로, 사도신경은 기독교 신앙의 요체를 간략하게 요약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사도신경의 내용에서 많은 부분이 기독론에 대해 소게하며 정리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한다. 사도신경의 구성에서 교회의 지도자들은 시대의 요구를 외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초대교회 당시 문제가 되었던, 가현설적 그리스도 이해, 즉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심으로 인성을 취할 수 없기 때문에, 실제 인성이 아닌 환영을 취해 육체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주장에 대해 사도신경은 명백히 반대한다. 사도신경은 그 당시 신학적 이단을 배격하고, 명확한 교리를 성도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토구였다.
또한 사도신경은 세례식에서 사용되는 기도로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믿어야 하는 바를 고백하고 있다. 그것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마리아를 통해 탄생하신 그리스도의 진정한 인성을 고백하며, 그 진정한 인성을 가지신 참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장차 다시 오실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사도신경은 복음의 요체를 성도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했던 것을 기억하며, 오늘날의 한국 개혁교회도 참된 교리를 정확하게도 명료하게 가르치는 교회로 서 가야 할 것이다.
-출처: ‘개혁교회 신앙고백’, 배광식. 한기승, 포커스북, p.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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