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감사의 생활화
제목 : 감사의 생활화
말씀 : 엡 5:15-21
어떤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이 교통사고를 당하여 두 눈이 모두 실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청년은 직장이나 다른 모든 꿈들도 접어 둔 채 실의와 좌절 속에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얼마동안 실의 속에서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이 청년은 결국 특수 맹인 학교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는 학교에 도착하여 교장선생님의 따뜻한 영접을 받은 후에 자세히 학교 생활에 대한 안내를 받게 되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학교에 대한 소개를 한 후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학교 건물과 교정을 자상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학교 현관에 서 있습니다. 이 현관은 모두 열 개의 계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자, 천천히 열 개를 세면서 내려가세요. 불안하면 내가 당신의 바로 옆에 서 있으니 나를 잡으십시오. 이제 열 개의 계단을 다 내려 왔습니다. 이제 오른쪽으로 돌면 화단이 있습니다. 꽃향기가 나지요? 여기가 화단입니다. 이제 조금 더가면 긴 등받이 의자가 있습니다. 나는 종종 이 의자에 앉아서 꽃향기를 맡으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쉬곤 한답니다.」
이런 식으로 학교 교정을 한바퀴 돈후에 교장 선생님은 식당을 거쳐 청년이 기거하게 될 방으로 안내하여 방의 구조, 화장실, 가구의 위치 등등을 자상하게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교장 선생님은 이제 좀 쉬라고 하면서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이때 맹인이 된 청년은 교장 선생님을 불러서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은 매우 친절하시고, 앞을 못 보는 저의 입장을 너무나 세심히 이해하며 도와 주시는군요. 정말 고맙습니다. 오늘은 선생님 덕분에 정말 오래만에 기분이 좋은하루였습니다. 이곳에 있으면 무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그러자 교장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예, 물론이고 말고요. 저는 당신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리고 당신을 누구보다도 잘 도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당신과 같이 두 눈을 못 보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정상인과 다를 바 없이 만족하며 살고 있거든요. 이곳에서 당신은 바로 그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비록 두 눈이 없어 앞은 보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은 틀림없이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란 결코 어떤 외적인 조건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감사란 그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 맹인 학교의 교장선생님은 비록 두 눈이 없어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없었고, 또 실제로 생활하는데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그러나 그것이 그를 좌절시키거나 원망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두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혹시 건강한 사지와 정상적인 이목구비를 가지고도 오히려 원망하고 불평하며 살았던 것은 아닙니까? 이렇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이렇게 아름다운 삶의 터전을 주시고, 때를 따라 따뜻한 태양과 비와 바람과 눈과 신선한 공기를 주셔서 우리에게 이처럼 귀한 생명을 주시는데도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과 짜증속에 살았던 것은 아니었습니까? 헬렌켈러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걷지도 못하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제대로 말하지도 걷지도 못하면서 발가락으로 시를 쓰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고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1.감사의 당위성
그러므로 우리는 정녕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나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절로 지키면서, 이제 한해의 농사도 거의 마무리 되어가고 벌써 이해도 한달 남짓 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한번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려 보며, 감사하며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두 눈을 잃고도 감사하며 기뻐하며 사는 사람이 있는데 사지가 멀쩡하고, 밝은 두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리고 이 좋은 삶의 터전들이 있는데 감사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앞에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꼭 추수한 것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꼭 무언가 물질적으로 많은 것들을 거두어 들여서도 아닙니다. 때로는 힘이 들고 어려울 때가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추수한 것이 많건 적건, 어렵고 힘들 때가 있었건 없었건 사실 오늘 이 순간까지 우리가 살아온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기에, 그리고 실제로 이 좋은 계절에 많은 것들로 채워 주신 것도 사실이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어떤 특별한 날들을 정해서 그 절기를 지키라고 하면서 하나님앞에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23:14절에 보면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찌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무교절을 지키라, 맥추절을 지키라, 수장절을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교절은 유월절과 같은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구원을 받아 해방을받게 된 것을 기념하여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맥추절은 이른 곡식을 거두어 들이고 감사하는 절기로 우리가 지키는 맥추감사절을 말하는 것이며, 수장절은 늦 곡식을 거두어 저장한 다음에 감사하며 지키는 절기로 오늘날 우리가 지키고 있는 추수감사절에 해당하는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특별한 절기를 정해주시면서까지 감사의 절기를 지키라고 하신 이유는 너무나 명백합니다. 그것은 그만큼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절기를 정해 줌으로써 당신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삶을 통해서 더욱 당신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아 누리게 하려는데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오늘 우리 신앙인의 모습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요구하며, 간구하는 것들은 많지만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돌리는 것은 너무나 부족합니다. 물론 기도할때나 기타 어떤 대화를 할 때는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겠노라고 하지만 실제적으로 우리의 삶속에서는 감사의 모습이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뻐하며 찬양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기보다는 그저 내 욕심이나 채우며, 불평하며, 원망하며 사는 모습이 많습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서, 주의 영광을 위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이렇게 하겠습니다, 저렇게 하겠습니다 하는 것은 그다지 많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주십시오, 저렇게 해 주십시오하는 것은 왜 그렇게 많은지 모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교회를 위해서도 마찬가지요, 여기 서 있는 이 목사를 향하여서도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교회가 내게 대해서 이렇게,저렇게 해 주어야 한다고 하는 요구 조건은 많습니다. 그러나 내가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은 그다지 많지를 않습니다. 우리 목사는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우리 목사는 나에게 이렇게 해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목사가 교회를 이끌어 나가는데 있어서 이렇게 협력해야 되겠다, 저렇게 도와 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은 그다지 많지를 않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아직도 감사가 부족하다는 증거입니다. 감사와 은혜가 충만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나 교회나 목사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는 요구는 그렇게 많지를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이미 받은바 은혜가 족한데 무엇을 더 요구하겠습니까? 내가 이미 받은 바 은혜가 많은데 뭐가 또 부족해서 자꾸만 달라고 하겠습니까? 오히려 내가 이렇게 많은 것을 받았으니 이제는 나도 무언가 이 은혜에 좀 보답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와 은혜가 충만한 그리스도인은 나는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목사가 주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어떻게 좋은 협력자가 될 것인가를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며 우리가 받은 바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리면서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정성껏 예물을 드리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렇게 많은 은혜를 받았으니 나는 앞으로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드릴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감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입니다. 이 말씀은 앞부분의 말씀들과 연결해서 보면 그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봉독해 드린 말씀을 보면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지혜 있는 자가 되어 세월을 아끼라,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성령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나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주님을 찬양하며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충만함을 받아 주의 뜻을 따라 세월을 올바르게 사용하며 살아가야 하는데 이렇게 주의 뜻을 따라 성령 충만함 속에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목석도, 금수도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이성적 존재요, 감성적인 존재요, 인격적 존재요,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생각할 줄 압니다. 생각할 줄 아는 자는 은혜를 입으면 고마움을 느끼게 되고, 고마움을 느끼면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만약에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없다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직 잘 알지 못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감사가 없는 사람을 죄인 취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롬1:21절에 보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고 말씀하시면서 감사하지 못하는 삶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또 딤후3:2절에서는 말세에 배도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들의 모습을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다.”고 하시면서 역시 감사치 아니하는 자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앞에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앞에 감사할 수 밖에 없다는 말씀은 뒤집어 말하면 하나님앞에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지 못한 사람이며, 아직도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 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을 맛본 사람은 감사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입어서 영벌에서 영생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옮겨진 사람들입니다. 성도가 입은 이 은혜는 너무나도 커서 눈물로도 갚을 수 없고, 온 세상 만물을 가지고 다 갚을 수 없는 은혜요, 갚고 또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엄청난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은혜를 입고 사는 우리가 금수가 아니라면 어찌 그 생활 속에 감사가 없을 수 없단 말입니까?
물론 우리에게도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도 있습니다. 광야와 같은 세상길에서 때로는 지치고, 실망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이 입고 있는 이 은혜는 너무나 큰 것이기에 우리에게 고통이 있다고 해도,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그 모든 것을 덥고도 남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다. 우리에게 조그마한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그 보다 훨씬 큰 기쁜 일이 생긴다면 조그마한 어려움은 쉽사리 사그러들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내 영혼이 구원받고,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 복된 삶의 터전들, 이 아름다운 땅, 자유, 평화, 일용할 양식, 정말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많은 감사의 조건들을 찾으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진실로 더욱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더욱 충만하신 은혜를 누리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감사의 실제적 생활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느끼며 감사하며 살아야 하겠는데 이렇게 감사의 생활을 하고자 할 때 실제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참된 감사의 생활이겠습니까? 물론 마음이 중요합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마음으로 감사하며 찬양하며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렇듯이 감사도 그저 마음속에 있는 것으로만 그쳐서는 안됩니다. 마음속에 진정한 감사와 은혜가 있다면 그것은 또한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떤 모양으로든 표현되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닙니다.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요, 사랑은 표현하고 실천 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며, 축복은 감사 할 때까지 축복이 아닙니다. 감사는 생활 속에 나타날 때까지 감사가 아닙니다. 노래는 불러야 노래이고, 사랑은 실천해야 사랑이며, 축복은 감사 할 때만이 축복이요, 감사는 삶 속에서 나타날 때 진정한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것은 밖으로 표현되어질 때에 그것이 진정한 것임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물질을 드리는 것이든 시간을 드리는 것이든 육신을 드리는 것이든 어쨌든 그 마음속에 진정한 감사가 있는 사람은 무엇으로든 어떤 방법으로든 그 받은바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고, 그 보답하려는 마음에 따라 어떤 행동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그의 전 생애를 주님을 위해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말씀에 주저 없이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을 향해서 갔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기에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주님의 그 구원의 은혜를 증언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향해 돌을 던지는 사람들은 원망하지도 저주하지도 않았습니다. 도리어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 루디아는 자신의 집을 교회로 제공하고, 복음 전도자 바울을 공궤하였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도 그들의 집과 재물을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드렸으며, 바울을 위하여 그들의 생명이라도 내 놓을 각오로 함께 복음의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 뵈뵈 자매는 복음을 위하여 기꺼이 바울의 보호자가 되어 주었습니다. 초대교회의 교부 폴리갑은 주님을 부인하면 살려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하고 스스로 불이 활활 타오르는 장작더미를 향하여 의연히 걸어가 불에 타 순교를 하였습니다.
이 위대한 신앙인들은 모두가 우리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을 느끼며 감사하며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은혜가 세상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기에 자신들의 모든 것을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의 복음이, 주님께서 주신 이 영원한 생명이,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가 너무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이기에 그것을 위해서는 다른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자신의 모는 것을 드리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교회의 실상은 그러한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과는 너무나 많은 대조를 보이고 있는 것 같아 정말 안타까울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신의 육체의 만족을 위해서는, 육체적인 안일함과 만족과 기쁨과 욕구 충족을 위해서는, 자녀를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정열을 쏟아 부으면서도, 있는 것 없는 것 다 동원하여 투자하면서도 주님을 위해서는 정말 인색하기 그지 없는 모습들을 우리는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을 위해서는 드리는 시간도 정말 보잘 것 없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드리는 물질도 그렇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일하는 시간들도 얼마 되지를 않습니다. 복음 전도도, 사랑의 실천도, 교회를 위한 봉사도 그저 귀찮고 나의 사생활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주님의 은혜를 진정으로 깨닫고 느끼는 사람들이라면 그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주님께서 주신 이 영원한 생명이 정말이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면 우리는 세상 무엇보다도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받고 있는 이 은혜가 세상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감사하는 자의 삶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에 더욱 우리의 삶속에서 감사가 넘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마음에 감사가 있고, 그 마음속의 감사가 생활속에 나타나는 것이 은혜를 받은 증거입니다. 그것이 구원을 받은 증거이며, 성령이 충만한 증거입니다. 감사 할 줄 아는 자가 진정한 성도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감사가 없는 성도나 감사 할 줄 모르는 하나님의 자녀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죄와 사망 가운데서 건져주신 그 구속의 은총을 생각하여 보아도, 오늘도 우리에게 변함없이 일용할 양식과 삶의 터전과 이 모든 삶의 환경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아도 우리는 감사하지 아닐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차 저 영광의 나라에서 우리 주님과 함께 거할 그 순간을 떠올리면서 우리는 감사하지 아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렇게 우리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엄청난 은혜를 기억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육체를 드려서 또한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특별히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보내면서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되새겨 보면서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영광과 감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 구원의 은혜와 오늘 이 순간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마음속으로 감사하고,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서 감사하며, 그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무한한 기쁨과 은혜와 보람 속에서 넘치는 축복을 누리면서 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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