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자녀를 위한 기도 

 

 

 

"17.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18.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3:17-21)

 
어떤 "선교사님께서 중국인 조력자와 함께 거액의 선교헌금을 가지고 이동 중"이었습니다. 생각보다 "길이 멀어져서, 산적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임을 알고도 야영을 해야" 했습니다. 선교사님은 "거액의 선교헌금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하고 잠자리에 들었고, 다행히 다음 날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 후 "병원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님께서 부상으로 입원한 산적 두목과 대화 중, 산적 두목이 거액의 선교헌금을 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선교사님은 왜 약탈을 하지 못했는지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에 "산적 두목이 당시 야영지에 27명의 호위병을 보고 공격하지 못했다!" 말했습니다. 결국 "선교사님과 산적 두목은 호위병의 유무로 옥신각신했지만, 선교사님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 시간이 "지나서 선교사님께서 영국에서 이 일을 간증하는데, 간증 후 한 평신도의 말에 더 놀라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님! 바로 그날 저희 교인 27명이 선교사님을 위해 기도했었습니다!"

 

성경에서 "기도에 관련된 구절 모두는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유는 "신앙인이라면 반드시 기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런데도 너무도 많은 신앙인이 실제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민자들의 "가장 큰 기도제목 중 하나는 자녀를 위한 기도"입니다. 수많은 "이민자가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 자녀가 미국 주류 사회의 일원이 되길 원하고, 나보다 더 잘 되길 원해서 기도"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많은 이민자들이 영적으로 게으르고, 시험이 들어서, 먹고 살기가 바빠서 자녀를 위해 실제로 기도하는 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본문을 요약하면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구원이 있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이 있다!" 말씀합니다. 생각할수록 "내 구원도 중요하지만, 우리 자녀들의 구원도 너무도 중요하기에, 반드시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특히 "어린이 주일인 오늘, 우리가 우리 자녀를 위해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살펴봅시다.

 

1. 우리 자녀들이 타인과 세상을 살리는 삶을 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17절은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은 죽으셨지만 십자가로 모두를" 살리셨습니다. 특히 "구원 받다!"의 원어 "소사는 안전하게 지키다. 위험에서 구하다!"란 뜻입니다. 문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그저 나만 구원받게 하려 하심이 아니라, 내 자녀와 주변 모두를 세우고 살려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 지상명령으로 성부/성자/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제자를 삼아라!" 말씀하셨습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살리는 영혼과 무너뜨리는 영혼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속적으로 우리 자녀들이 살리고 세우며 살도록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녀들이 세상에서 살리며 살도록 기도하려면 먼저 부모 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할까요? 부모들이 "굳건한 믿음 위에서 기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에서 "쓰인 동사들 중에서 말과 연관된 동사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모든 동사들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해야 할 동사들 뿐"입니다. 본문 18절에서 "구원을 위해서는 삶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믿어야 한다! 믿음을 강조"합니다. 19절에서 "행위가 어두움이 아닌 빛이 되어야 한다." 말씀합니다. 20절에서는 "악을 미워하고 빛을 사랑하는 삶이 되어야 함을 도전"합니다. 21절에서도 "진리를 따르는 삶은 하나님 안에서 살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결국 "먼저 믿은 우리가 말이 아닌 삶으로 굳건한 믿음 위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 가운데 "굳건하게 서서 드리는 중보기도가 더 능력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삶은 전혀 아닌데, 열심히 기도만 하면서 어떻게 사람을 세우고 살릴 수" 있겠습니까? 결국 "우리 자녀들이 세우는 삶을 살려면 내가 먼저 굳건한 믿음 위에서 바로 구해야" 합니다.

 

딤후서 1:3절은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영적 아들인 디모데를 위하여, 밤낮으로 쉬지 않고, 감사함으로 중보"했습니다. 에베소에서 "목회하는 디모데가 많은 영혼을 살리고 세워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문제는 "당시 바울이 헌신 없이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어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며 굳건한 믿음 가운데 디모데를 위해 중보"했습니다.

 

디모데가 "바울의 굳건한 믿음과 헌신을 알았기에, 그 중보가 얼마나 힘이" 되었겠습니까? 이처럼 "굳건한 믿음으로 드리는 중보 기도는 사람을 세우는 힘이" 있습니다. 기도는 "말로 하는 기도와 삶으로 드리는 기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물론 "말이던 삶이던 기도하지 않음보다 기도함이 훨씬 더" 귀합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말로만 하는 부모의 기도는 모를 수도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삶으로 드리는 기도는 자녀들이 직접 보기에 훨씬 더 능력이" 있습니다.

 

많은 "사학자들이 기독교 2,000년 역사 중, 최고의 신학자로 성 어거스틴을" 꼽습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처음부터 그렇게 신실한 신앙인은" 아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수사학을 배웠고, 젊은 날에는 이교인 마니교에 심취한 때도" 있었습니다. 불과 18세에 "사생아를 낳고 아데오다투스, 신의 선물로 부를 정도로" 타락했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어린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롬 13:13-14 말씀에 회심"합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문제는 "어거스틴이 이렇게 되기까지 어머니, 모니카의 간절한 기도와 굳건한 믿음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이 "방황할 때, 모니카는 매번 울면서 밀라노의 감독 암브로시우스에게 하소연"했습니다.

 

"우리 아들을 살려 주세요! 악의 구렁텅이에서 나오도록 기도해 주세요!" 이에 "암브로시우스가 모니카를 위로하며 했던 명언이"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기도하는 영혼의 자녀는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굳건함으로 기도하지 않음에 있지, 하나님의 능력이 없는 것"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너무도 자주 오락가락하며" 흔들립니다. 기분 좋으면 "친절하고 헌신적이지만, 마음이 상하면 교회에서 패륜아처럼" 살아갑니다.

 

어떤 가정에 "아이가 다섯이나 되는 다복함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어쩌면 이렇게 다복하세요?" 자주 물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기분 좋으면,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답했습니다. 그러나 "기분이 상해 있으면, 하나님의 심판이지요!" 답했답니다. 세상 "모든 부모들은 자녀들이 잘 되기 원하고, 적어도 나보다는 더 잘 되길 기도"합니다.

 

그렇다면 "기도하기 전, 먼저 내 신앙을 바로 점검하고 확인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가 "타인을 힘들게 하고 넘어뜨리면서 내 자녀가 사람과 공동체를 어떻게 세울 수" 있겠습니까? 내가 "먼저 굳건하게 믿음에 서서 공동체를 세우고 살려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자녀들이 그 모습을 보고, 훗날 영적으로 더 굳건한 믿음에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인생이 어떤 인생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성공했는데 자녀가 어려운 것이 성공일 수 없고, 자녀가 잘 됐는데 내가 어려운 것 역시 성공" 아닙니다. 복과 믿음 "능력은 은혜가 깊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향하는 내리 사랑에" 있습니다. 이를 "위해 부모인 우리가 먼저 주님을 철저히 의지하여 타인을 살리는 굳건한 믿음 위에 서야" 합니다. 그래서 "간절히 구하는 중보기도를 통해 우리 자녀들도 살리고 세우는 삶이되기" 원합니다.

 

2. 우리 자녀들이 항상 바른 선택을 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을 "묵상해 보면, 서로 대조적인 의미로 쓰이는 단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를 테면 "심판과 구원, 믿는 자와 믿지 아니하는 자, 빛과 어두움, 진리를 따르는 자와 악을 행하는 자, 빛을 사랑하는 자와 어두움을 더 사랑하는 자! 등이" 나옵니다. 성경이 "이처럼 두 가지 상황을 대조하여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둘 중 선하고 복된 것을 선택하고 결정하라는 도전"입니다. 모든 사람은 물론 "우리 자녀들의 인생에서 선택은 참으로 중요한 단어"입니다.

 

실제로 "우리 자녀들이 어릴 때 행한 선택은 그렇게 큰 차이가" 없습니다. 문제는 "성장하면서 어떤 아이는 선한 것을, 어떤 아이는 악한 것을 선택"합니다. 처음에는 "그 선택이 그렇게 크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차이는 더 커져가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부모 된 우리는 우리 자녀들이 바른 선택을 하도록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심판이 아닌 구원받도록, 또한 불신이 아니라 믿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어두움이 아닌 빛을 택하도록, 뿐만 아니라 악이 아닌 진리를 따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렇게 바른 선택을 위해서, 우리가 먼저 바른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본문에 등장하는 선택 상황에서, 우리가 자녀들이 바른 선택을 하도록 꼭 기도해야 할 제목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우리 자녀들이 악이 아닌 진리를 추종하며 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18절은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본문은 "믿는 자는 구원을 받지만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이미 받은 것으로 말씀"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악을 추종하며 살 수 없고,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 진리를 추종하며 살 수도" 없습니다. 문제는 "죄인 인 인간은 누구나 선이 아닌 악을 더 강하게 추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선교사님께서 첫 아이를 낳기 전부터, 간절한 기도제목이" 있었습니다. 선교사님은 "아이의 입에서 터지는 처음 말이 '하나님!'이 되길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말 할 때와 기도할 때마다 항상 하나님! 하나님! 세뇌시키듯 강조하며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첫 번째로 엄마! 두 번째 한 말은 싫어! 세 번째가 미워!" 말했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녀들이 진리를 추종하도록 항상 기도하며 훈련해야" 합니다. 여기서 "주의하실 것은 훈련을 잔소리로 혼동하시면" 안 됩니다. 비록 "나이 든 자녀라도 말씀에 합하지 않으면 책망이라도 하며 훈련해야" 합니다. 비록 "용돈을 받아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선하고 복된 일을 행하면 아낌없이 칭찬해 주고,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이유는 "나이가 든 자녀라도 하나님 나라에 가기까지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많은 제자 중에서 디모데와 디도를 많이 아껴서, 목회 서신을 기술"했습니다. 목회 서신은 "사역자들이 항상 악이 아닌 바른 것을 선택하도록 강조"합니다. 또한 "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 항상 훈련해야 함도 강조"합니다. 특히 "바울은 딤전 4:12-1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사도 "바울은 장성하고 영적으로 깊었던 디모데였지만, 악이 아닌 진리를 선택하도록, 항상 바른 선택을 하도록 훈련"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는 스스로를 훈련하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더욱 더 크고 힘 있는 일꾼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녀들이 악이 아닌 진리를 선택하도록 훈련하려면, 부모인 내가 먼저 훈련되어져야" 합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삶의 이치"입니다. 내가 "바르게 훈련받지 않았다면, 자녀들을 바르게 훈련할 수" 없습니다. 내가 "매사를 삐딱하게 보면서 어떻게 자녀들이 똑바로 보도록 훈련"하겠습니까? 세상이 "아무리 핵가족 시대라도, 자녀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세상과 친구가 아닌 부모"입니다. 특히 "자녀가 어릴수록 부모의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힘들고 어려워도 영적으로 훈련 받는 삶이 끊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2009년 "1월 15일, US Airway 여객기가 이륙 후 얼마 안 되어 갑자기 양쪽 엔진이" 멈추었습니다. 그러나 "기장이 당황하지 않고 여객기를 허드슨 강에 무사히 착륙시켜 승객 155명 전원이 무사"했습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기장 채슬리 설렌버그의 비행 경험에" 있었습니다. 무려 "19,000시간의 비행 훈련이 양쪽 엔진이 꺼진 위기를 극복하게" 하였습니다. 신앙생활도 "얼마나 오래 믿었는가? 직분이 무엇인가?" 이것도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훈련받았고, 지금도 내가 영적으로 훈련받는가?"에 있습니다. 헨리 나우엔이 "영적 훈련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훈련 없는 영적인 삶은 있을 수 없다. 영적 훈련은 우리 삶을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 앞에서 순종하게 하고, 세상의 악한 도전을 막아주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기도하게 하시며, 바른 선택을 하게 한다."

 

내가 "얼마나 영적 훈련을 받는가?"에 따라 "내 자녀들의 미래가" 달라집니다. 내가 "영적 훈련을 받으면 먼저 내가 살고, 우리 자녀들이 악이 아닌 진리를 택하며" 살아납니다. 결국 "나와 내 자녀가 진리를 택하며 살 수 있기에 영적 훈련이 꼭 필요"합니다. 불평과 "원망은 인간의 죄에서 나오고, 영적 훈련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평생 동안 영적 훈련을 받으며 살기" 원합니다. 영적 "훈련은 주 앞에서 겸손해야 하고, 더 나아지길 원해야 신실하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 자녀들을 어두움이 아닌 빛으로 인도하는 중보기도가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항상 "영적 훈련을 통해 더 깊어짐으로 우리 자녀를 빛으로 인도하는 승리가 있기" 원합니다.

 

인간은 "망각의 존재이기에 마음에 새겨도 적어두지 않으면 잊어버릴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에 "한 주간의 숙제로,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한 기도제목을 작성하여 실제로 기도하기" 원합니다. 이에 "우리가 항상 굳건한 믿음 위에서 우리 자녀가 살리는 삶을 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영적 훈련으로 우리 자녀들이 진리를 좇는 바른 선택이 있도록 중보 해야" 합니다. 이에 "우리 모든 가정이 주님 보시기에 힘 있는 믿음의 명문 가정으로 우뚝 서기" 원합니다.

 

출처 : LA새한교회 블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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