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네째주일낮설교 / 버림과 얻음 (September,Sunday Sermon)
제목 : 버림과 얻음
말씀:마5:1-3
1.심령이 가난해 져야 합니다.
여러분,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한 선행조건이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지만 먼저 버리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뭔가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서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이나 가치관이나 습관이나 이런 것들을 과감히 버리고 그래서 뭔가가 새롭게 들어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오물이 잔뜩 들어있는 컵에는 깨끗한 물을 따라 마실 수가 없이 않습니까? 주먹에 돌을 쥐고 있으면 금덩어리를 집어 들 수가 없지 않습니까? 마음속에 미움이 가득 들어 있으면 어떻게 사랑의 마음을 담겠습니까? 마음에 거짓이 가득차 있으면 어떻게 진실을 담겠으며, 원망과 불평이 가득하다면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담겠습니까?
여러분, 성경에서 자꾸만 낮아지고 버리고 비워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이유가 뭡니까? 바로 이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먼저 버려야 새것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마16:25절을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여기서 목숨이란 물론 그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을 말합니다. 즉 목숨을 버리라는 것은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생명도 바쳐야 하겠지만 꼭 생명을 바치라는 뜻이라기 보다는 예수님 안에 진정 생명의 은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작고 보잘 것 없고 한계속에 있고 죄와 무지속에 있는 우리 생각과 뜻과 그밖에 우리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심령 가운데 온전히 자리잡게 되고 그러면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게 된다는 말씀이지요.
여러분, 그렇습니다. 정말로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일단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내가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강제로 빼앗아 갈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눅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어떤 부잣집 아들이 부모에게 유산을 미리 달라고 떼를 써서 결국 자신의 몫을 가지고 집을 나갔습니다. 그러나 이 미련한 아들은 돈좀 있다고 진탕 먹고 마시고 세상 연락을 즐기며 허랑방탕하여 있는 돈 다 날려 버리고 그야말로 알거지가 됩니다. 그래서 남의 집에 돼지치기로 들어갔는데 하필 그해 따라 너무 큰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어서 주인집도 먹을 것이 제대로 없어서 돼지밥을 먹으면서 돼지를 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주목할 것은 바로 이때부터 반전의 드라마가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그는 빈털터리가 되었을 때 즉 그가 자발적으로 그랬든 강제적으로 그렇게 되었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가 자신의 모든 것을 몽땅 잃어버렸을 때 비로소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먹을 것이 많은데, 내 아버지 집에는 품꾼도 좋은 것을 먹는데 나는 여기서 굶주려 죽게 되었구나 하면서 내가 한 짓이 있으니 아들로 맞아 달라고는 못할 거고 품꿈으로라도 써달라고 하자 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갔을 때 아버지의 환대를 받고 아들로서의 지위가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비유의 핵심은 아무리 죄와 무지가운데 살던 인생이라도 하나님품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그 크신 사랑과 은혜로 큰 잔치를 베풀며 환영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부가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게 이 탕자가 지위가 회복되는 그 반전 드라마가 언제 펼쳐졌느냐? 그가 어떻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느냐? 하면 굶어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뭔가 자신이 가지고 있을 때, 그래서 뭔가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여길 때, 돈이 있어서 흥청망청 쓸 때, 술 친구들과 기생들이 아첨을 하면서 같이 놀아주니까 세상이 제 세상 같았을 때 그는 아버지집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돈 떨어지고, 술떨어지고, 친구떨어지고, 쾌락도 다 떠나고 그래서 철저하게 낮아지고 버림받고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었을 때 그는 비로소 자신이나 돈이나 세상 즐거움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두손두발 다 들고 아버지 품으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자꾸 우리에게 비워라 낮아져라 죽어라는 하는 것은 우리가 다 알거지라 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알거지를 만들기를 바라시겠습니까? 비우고 죽이고 낮아지라는 것은 우리의 지혜와 능력과 경험과 이성이 얼마나 작은 것인지를 인정하고 그것을 의지말고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하심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이 내 삶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고, 삶의 우선순위가 되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 내뜻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뜻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자신을 바르게 알고 겸손하게 낮아져서 가난한 심령으로 주님과 동행할 때에 천국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3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말입니다. 말씀 그대로 심령 곧 마음 혹은 영혼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란 자신의 죄와 무지와 연약함과 부족함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과 공급해 주시는 은혜가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며 그 뜻대로 힘써 살아가는 그 겸손한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가 이루어져 하나님 안에 있는 온갖 좋은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게 됨으로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정말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과 무지함을 인정하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무릎꿇어야 합니다. 내 생각과 경험와 이성과 능력과 지혜가 얼마나 작은 것인지를 인정하고 그런 것들을 앞세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고 그 원리와 그 방법과 그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생각은 나보다 천배만배억배 더 큽니다. 더 지혜롭습니다. 더 선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따를 때에 내가 생각하고 바라고 원하던 것들보다 천배만배억배 더 수지맞는 일이 생깁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지금 여기서도 얼마든지 천국의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은혜와 능력과 평강과 위로와 자유를 맛보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꼭 이런 은총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심령이 부유하면 진노의 대상이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분명히 주님의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심령이 부유하면 교만한 자가 되어 주님의 은총은커녕 도리어 주님의 책망과 진노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심령이 부유하면 그냥 주님의 은총을 누리지 못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분명한 책임추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눅12장에 보면 이런 어리석은 자들에게 주시는 경고의 비유가 있습니다. 소위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거기에 보면 어떤 마을에 큰 부자가 있었는데 어느 핸가 엄청난 풍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곡식을 쌓아 둘 창고가 모자라 곡간을 하나 더 짓고, 곡간마다 곡식을 잔뜩 쌓아놓았습니다. 그렇게 여러개의 곡간에 곡식이 잔뜩 쌓인 것을 보자 마음이 너무 든든하였습니다. 이제는 아무 걱정이 없었습니다.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말합니다. 눅12:19절입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그러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눅12:20절을 계속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그러니까 부자는 곡식을 잔뜩 쌓아 놓고 내 영혼아 이제 부러울 것이 무엇이냐, 걱정할 일이 무엇이냐, 이제는 남은 인생 실컷 먹고 마시며 멋지게 즐겨보자꾸나 그런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 미련한 인사야, 네가 그렇게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다만 만일 오늘 밤에 내가 네 영혼을 거두어 간다면 너의 쌓아둔 곡식이 다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오늘밤 그 양식을 내가 다 가져간다면 너는 무엇으로 평안을 누리겠느냐, 오늘 밤 너의 건강을 빼앗아 간다면 너는 정말 실컷먹고 마시며 즐거워할 수가 있겠느냐? 너는 너의 생명이 내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 이 미련한 인생아, 그랬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자는 마치 자기가 쌓아둔 양식이 순전히 자기 힘으로 농사지어 얻어서 순전히 자기의 것으로 알았습니다. 먹을 것을 잔뜩 쌓아 두었으니 이제는 먹고 마시며 즐기며 살기만 하면 될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그 많은 곡식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땅을 주시고 비를 주고 생명을 주셔서 자라나고 싹이트고 열매를 맺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서 지금이라도 가져가시면 그만입니다. 생명도 권력도 명예도 건강도 지식도 물질도 하나님이 도로 가져가시면 그것은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집니다. 결코 내 영혼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그런데 죄와 무지 가운데 있는 인생은 그만 어둠으로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무엇인가 좀 있으면 마치 자신이 다 얻은 줄로 여기고, 자신이 다 마음대로 할 수 있을 줄로 여기고 교만하고 미련하게 하나님을 찾지 못하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기 힘만 믿고 살아갑니다. 자기 지식이나 돈이나 권력이나 건강만 믿고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고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18:12에서는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가진 생명도, 먹고 입고 자고 하는 모든 생명의 활동들도,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 우리가 발딛고 살아가는 모든 삶의 터전들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과 보호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면 단 한시도 살 수 없는 연약하고 무지하고 곤고하고 어리석은 인생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정말 가난한 심령으로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렇게 정말 피조물로서의 자기 분수를 알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는 삶을 살 때 정말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속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마음껏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꼭 이런 인생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버릴 때 가장 좋은 것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버리라, 낮아지라, 심지어 죽으라 하심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버리라 하심은 가짜를 버리고 진짜배기로 채워주려 하심입니다. 낮아지라 하심은 우리를 진정한 의미에서 높아지게 하려 하심입니다. 우리에게 죽으라하심은 진짜 생명을 주시려 함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하나님의 은총과 능력을 입었을 때가 언제입니까? 그것은 그가 철저하게 낮아지고 자신의 것을 송두리째 다 버렸을 때입니다. 그는 애굽의 궁궐에서 왕자로 40년을 살았습니다. 애굽의 왕자로서 모세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명예도 권세도 부귀도 지식도 영광도 있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의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도 필요없었습니다.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그는 뒤늦게 자신이 히브리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동족들이 애굽의 노예가 되어 학대받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자기 동족을 괴롭히는 애굽 사람을 보고 분노하여 그 애굽 사람을 죽이고 말지요. 그리고 결국 이 일이 탄로나서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가는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하루아침에 왕자의 자리에서 가진 것이라곤 알몸둥이 하나밖에 없는 거지로 전락한 것입니다.
거기서 그는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을 철저히 버려야 했습니다. 왕자의 자리도 버려야 했습니다. 권세도 물질도 평안함도 호화스러움도 그곳에서 배웠던 학문도 기술도 모두 포기해야 했습니다.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이집트의 왕자의 신분에서 이제는 더 이상 내려 갈래야 내려 갈곳이 없을 만큼 인생의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그야말로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때가 곧 기회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기회였던 것입니다. 모세가 이집트 왕자에서 하나님의 왕자로 새롭게 시작하는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빼앗기고 잃어버리고 낮아졌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셨던 것입니다. 즉 그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게 하시고 그래서 그가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그를 이집트 왕장가 아닌 하나님 나라의 왕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인간의 모든 것을 완전히 잃어버린 다음에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게 됩니다. 세상적인 것을 완전히 제거하신 다음에 하나님의 권능으로 대신 채워 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시킵니다.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천하를 호령하는 바로왕 앞에 당당히 서서 대결을 펼쳐 애굽에 열가지 재앙을 이스라엘을 구원해 냅니다. 홍해바다의 넘실거리는 파도를 물리칩니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오고, 메추라기 떼가 몰려오고, 쓴 물이 단물이 되고, 반석에서 샘물이 터지고, 대적자들을 물리쳤습니다. 작은 것을 잃고 어마어마한 것을 얻은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보다 천배만배억배 더 지혜롭고 능력이 있고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여러분, 사55:8,9절을 보십시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뭐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와 비교가 되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영광의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 그 안에 모든 생명과 부귀와 영광과 지혜와 축복과 평강과 위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작은 것들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따를 때 우리는 놀라운 은혜 가운데 살게 됩니다. 얼마든지 능력있는 삶을 살아갑니다. 어떤 적들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환경이나 상황의 적도 물리칩니다. 사탄의 궤계를 물리치고 능력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까짓 죄의 세력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고난과 핍박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더럽고 추한 것들로부터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세상 욕심과 향락과 명예와 권세로부터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넉넉히 천성을 향하여 달려 갈 수 있습니다. 마귀가 어떻게 교묘하게 유혹하게 당장에 간파해 낼 수 있습니다. 사탄이 유혹할 때 사탄아 물러가라고 큰 소리 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내 능력과 재물과 이성과 지식과 경험과 과학으로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마귀 사탄의 권세, 죄의 권세, 지옥의 권세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런 것들 의지하다가는 맨날 그런 것들에게 끌려다니며 노예 생활을 할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과 권능을 의지할 때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는 위대한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와 지혜를 덧입으려면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자신 안에 있는 모든 추하고 더럽고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인본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인 악하고 추하고 왜곡된 것을 비워내야 합니다. 성령의 불길로 태워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과 은혜가 내안에 들어오게 됩니다. 내 심령이 거룩하고 아름답고 의롭고 올바른 가치관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그러면 그 은혜와 능력로 지혜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정말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우리 자신의 작음과 나약함과 한계와 죄됨과 무지함을 인정하고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려 그것이 환경이든 상황이든 고난이든 핍박이든 유혹이든 죄이든 그 어떤 것이든 모든 어둠의 세력들을 주님의 은혜와 능력과 지혜로 이기고 왕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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