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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네째주일낮설교 / 버림과 얻음 (September,Sunday Sermon)

 

제목 : 버림과 얻음

 

말씀:5:1-3

 

1.심령이 가난해 져야 합니다.

 

여러분,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한 선행조건이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지만 먼저 버리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뭔가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서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이나 가치관이나 습관이나 이런 것들을 과감히 버리고 그래서 뭔가가 새롭게 들어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오물이 잔뜩 들어있는 컵에는 깨끗한 물을 따라 마실 수가 없이 않습니까? 주먹에 돌을 쥐고 있으면 금덩어리를 집어 들 수가 없지 않습니까? 마음속에 미움이 가득 들어 있으면 어떻게 사랑의 마음을 담겠습니까? 마음에 거짓이 가득차 있으면 어떻게 진실을 담겠으며, 원망과 불평이 가득하다면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담겠습니까?

 

여러분, 성경에서 자꾸만 낮아지고 버리고 비워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이유가 뭡니까? 바로 이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먼저 버려야 새것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16:25절을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여기서 목숨이란 물론 그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을 말합니다. 즉 목숨을 버리라는 것은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생명도 바쳐야 하겠지만 꼭 생명을 바치라는 뜻이라기 보다는 예수님 안에 진정 생명의 은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작고 보잘 것 없고 한계속에 있고 죄와 무지속에 있는 우리 생각과 뜻과 그밖에 우리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심령 가운데 온전히 자리잡게 되고 그러면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게 된다는 말씀이지요.

 

여러분, 그렇습니다. 정말로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일단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내가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강제로 빼앗아 갈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눅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어떤 부잣집 아들이 부모에게 유산을 미리 달라고 떼를 써서 결국 자신의 몫을 가지고 집을 나갔습니다. 그러나 이 미련한 아들은 돈좀 있다고 진탕 먹고 마시고 세상 연락을 즐기며 허랑방탕하여 있는 돈 다 날려 버리고 그야말로 알거지가 됩니다. 그래서 남의 집에 돼지치기로 들어갔는데 하필 그해 따라 너무 큰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어서 주인집도 먹을 것이 제대로 없어서 돼지밥을 먹으면서 돼지를 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주목할 것은 바로 이때부터 반전의 드라마가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그는 빈털터리가 되었을 때 즉 그가 자발적으로 그랬든 강제적으로 그렇게 되었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가 자신의 모든 것을 몽땅 잃어버렸을 때 비로소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먹을 것이 많은데, 내 아버지 집에는 품꾼도 좋은 것을 먹는데 나는 여기서 굶주려 죽게 되었구나 하면서 내가 한 짓이 있으니 아들로 맞아 달라고는 못할 거고 품꿈으로라도 써달라고 하자 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갔을 때 아버지의 환대를 받고 아들로서의 지위가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비유의 핵심은 아무리 죄와 무지가운데 살던 인생이라도 하나님품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그 크신 사랑과 은혜로 큰 잔치를 베풀며 환영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부가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게 이 탕자가 지위가 회복되는 그 반전 드라마가 언제 펼쳐졌느냐? 그가 어떻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느냐? 하면 굶어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뭔가 자신이 가지고 있을 때, 그래서 뭔가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여길 때, 돈이 있어서 흥청망청 쓸 때, 술 친구들과 기생들이 아첨을 하면서 같이 놀아주니까 세상이 제 세상 같았을 때 그는 아버지집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돈 떨어지고, 술떨어지고, 친구떨어지고, 쾌락도 다 떠나고 그래서 철저하게 낮아지고 버림받고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었을 때 그는 비로소 자신이나 돈이나 세상 즐거움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두손두발 다 들고 아버지 품으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자꾸 우리에게 비워라 낮아져라 죽어라는 하는 것은 우리가 다 알거지라 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알거지를 만들기를 바라시겠습니까? 비우고 죽이고 낮아지라는 것은 우리의 지혜와 능력과 경험과 이성이 얼마나 작은 것인지를 인정하고 그것을 의지말고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하심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이 내 삶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고, 삶의 우선순위가 되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 내뜻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뜻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자신을 바르게 알고 겸손하게 낮아져서 가난한 심령으로 주님과 동행할 때에 천국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3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말입니다. 말씀 그대로 심령 곧 마음 혹은 영혼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란 자신의 죄와 무지와 연약함과 부족함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과 공급해 주시는 은혜가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며 그 뜻대로 힘써 살아가는 그 겸손한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가 이루어져 하나님 안에 있는 온갖 좋은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게 됨으로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정말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과 무지함을 인정하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무릎꿇어야 합니다. 내 생각과 경험와 이성과 능력과 지혜가 얼마나 작은 것인지를 인정하고 그런 것들을 앞세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고 그 원리와 그 방법과 그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생각은 나보다 천배만배억배 더 큽니다. 더 지혜롭습니다. 더 선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따를 때에 내가 생각하고 바라고 원하던 것들보다 천배만배억배 더 수지맞는 일이 생깁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지금 여기서도 얼마든지 천국의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은혜와 능력과 평강과 위로와 자유를 맛보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꼭 이런 은총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심령이 부유하면 진노의 대상이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분명히 주님의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심령이 부유하면 교만한 자가 되어 주님의 은총은커녕 도리어 주님의 책망과 진노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심령이 부유하면 그냥 주님의 은총을 누리지 못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분명한 책임추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눅12장에 보면 이런 어리석은 자들에게 주시는 경고의 비유가 있습니다. 소위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거기에 보면 어떤 마을에 큰 부자가 있었는데 어느 핸가 엄청난 풍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곡식을 쌓아 둘 창고가 모자라 곡간을 하나 더 짓고, 곡간마다 곡식을 잔뜩 쌓아놓았습니다. 그렇게 여러개의 곡간에 곡식이 잔뜩 쌓인 것을 보자 마음이 너무 든든하였습니다. 이제는 아무 걱정이 없었습니다.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말합니다. 12:19절입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그러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12:20절을 계속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그러니까 부자는 곡식을 잔뜩 쌓아 놓고 내 영혼아 이제 부러울 것이 무엇이냐, 걱정할 일이 무엇이냐, 이제는 남은 인생 실컷 먹고 마시며 멋지게 즐겨보자꾸나 그런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 미련한 인사야, 네가 그렇게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다만 만일 오늘 밤에 내가 네 영혼을 거두어 간다면 너의 쌓아둔 곡식이 다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오늘밤 그 양식을 내가 다 가져간다면 너는 무엇으로 평안을 누리겠느냐, 오늘 밤 너의 건강을 빼앗아 간다면 너는 정말 실컷먹고 마시며 즐거워할 수가 있겠느냐? 너는 너의 생명이 내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 이 미련한 인생아, 그랬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자는 마치 자기가 쌓아둔 양식이 순전히 자기 힘으로 농사지어 얻어서 순전히 자기의 것으로 알았습니다. 먹을 것을 잔뜩 쌓아 두었으니 이제는 먹고 마시며 즐기며 살기만 하면 될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그 많은 곡식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땅을 주시고 비를 주고 생명을 주셔서 자라나고 싹이트고 열매를 맺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서 지금이라도 가져가시면 그만입니다. 생명도 권력도 명예도 건강도 지식도 물질도 하나님이 도로 가져가시면 그것은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집니다. 결코 내 영혼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그런데 죄와 무지 가운데 있는 인생은 그만 어둠으로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무엇인가 좀 있으면 마치 자신이 다 얻은 줄로 여기고, 자신이 다 마음대로 할 수 있을 줄로 여기고 교만하고 미련하게 하나님을 찾지 못하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기 힘만 믿고 살아갑니다. 자기 지식이나 돈이나 권력이나 건강만 믿고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고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18:12에서는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가진 생명도, 먹고 입고 자고 하는 모든 생명의 활동들도,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 우리가 발딛고 살아가는 모든 삶의 터전들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과 보호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면 단 한시도 살 수 없는 연약하고 무지하고 곤고하고 어리석은 인생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정말 가난한 심령으로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렇게 정말 피조물로서의 자기 분수를 알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는 삶을 살 때 정말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속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마음껏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꼭 이런 인생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버릴 때 가장 좋은 것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버리라, 낮아지라, 심지어 죽으라 하심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버리라 하심은 가짜를 버리고 진짜배기로 채워주려 하심입니다. 낮아지라 하심은 우리를 진정한 의미에서 높아지게 하려 하심입니다. 우리에게 죽으라하심은 진짜 생명을 주시려 함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하나님의 은총과 능력을 입었을 때가 언제입니까? 그것은 그가 철저하게 낮아지고 자신의 것을 송두리째 다 버렸을 때입니다. 그는 애굽의 궁궐에서 왕자로 40년을 살았습니다. 애굽의 왕자로서 모세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명예도 권세도 부귀도 지식도 영광도 있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의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도 필요없었습니다.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그는 뒤늦게 자신이 히브리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동족들이 애굽의 노예가 되어 학대받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자기 동족을 괴롭히는 애굽 사람을 보고 분노하여 그 애굽 사람을 죽이고 말지요. 그리고 결국 이 일이 탄로나서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가는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하루아침에 왕자의 자리에서 가진 것이라곤 알몸둥이 하나밖에 없는 거지로 전락한 것입니다.

 

거기서 그는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을 철저히 버려야 했습니다. 왕자의 자리도 버려야 했습니다. 권세도 물질도 평안함도 호화스러움도 그곳에서 배웠던 학문도 기술도 모두 포기해야 했습니다.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이집트의 왕자의 신분에서 이제는 더 이상 내려 갈래야 내려 갈곳이 없을 만큼 인생의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그야말로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때가 곧 기회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기회였던 것입니다. 모세가 이집트 왕자에서 하나님의 왕자로 새롭게 시작하는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빼앗기고 잃어버리고 낮아졌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셨던 것입니다. 즉 그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게 하시고 그래서 그가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그를 이집트 왕장가 아닌 하나님 나라의 왕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인간의 모든 것을 완전히 잃어버린 다음에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게 됩니다. 세상적인 것을 완전히 제거하신 다음에 하나님의 권능으로 대신 채워 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시킵니다.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천하를 호령하는 바로왕 앞에 당당히 서서 대결을 펼쳐 애굽에 열가지 재앙을 이스라엘을 구원해 냅니다. 홍해바다의 넘실거리는 파도를 물리칩니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오고, 메추라기 떼가 몰려오고, 쓴 물이 단물이 되고, 반석에서 샘물이 터지고, 대적자들을 물리쳤습니다. 작은 것을 잃고 어마어마한 것을 얻은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보다 천배만배억배 더 지혜롭고 능력이 있고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여러분, 55:8,9절을 보십시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뭐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와 비교가 되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영광의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 그 안에 모든 생명과 부귀와 영광과 지혜와 축복과 평강과 위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작은 것들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따를 때 우리는 놀라운 은혜 가운데 살게 됩니다. 얼마든지 능력있는 삶을 살아갑니다. 어떤 적들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환경이나 상황의 적도 물리칩니다. 사탄의 궤계를 물리치고 능력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까짓 죄의 세력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고난과 핍박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더럽고 추한 것들로부터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세상 욕심과 향락과 명예와 권세로부터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넉넉히 천성을 향하여 달려 갈 수 있습니다. 마귀가 어떻게 교묘하게 유혹하게 당장에 간파해 낼 수 있습니다. 사탄이 유혹할 때 사탄아 물러가라고 큰 소리 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내 능력과 재물과 이성과 지식과 경험과 과학으로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마귀 사탄의 권세, 죄의 권세, 지옥의 권세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런 것들 의지하다가는 맨날 그런 것들에게 끌려다니며 노예 생활을 할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과 권능을 의지할 때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는 위대한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와 지혜를 덧입으려면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자신 안에 있는 모든 추하고 더럽고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인본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인 악하고 추하고 왜곡된 것을 비워내야 합니다. 성령의 불길로 태워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과 은혜가 내안에 들어오게 됩니다. 내 심령이 거룩하고 아름답고 의롭고 올바른 가치관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그러면 그 은혜와 능력로 지혜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정말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우리 자신의 작음과 나약함과 한계와 죄됨과 무지함을 인정하고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려 그것이 환경이든 상황이든 고난이든 핍박이든 유혹이든 죄이든 그 어떤 것이든 모든 어둠의 세력들을 주님의 은혜와 능력과 지혜로 이기고 왕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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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네째주일낮설교 / 순수한믿음 (September,Sunday Sermon)

 

제목 : 믿음으로 살리라

 

1:13-17

 

1.순수한 믿음을 회복합시다.

 

어떤 인터넷 블로그에서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에서 활동하고 있는 변성우선교사의 글을 보았습니다. 이 분이 활동하고 있는 카투만두 남쪽 가까운 곳에 수까우다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이곳은 너무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정령숭배에 빠져 세상 모든 것에 영혼이 깃들어져 있다고 여기며 그것들을 섬기며 가난에 찌들어 살고 있는 산골 마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쩐드라라는 사람이 세운 가정교회가 하나 있는데 교인이라야 그의 아내와 장인 장모 모두 네명뿐이었습니다. 쩐드라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고 결혼까지 하였지만 한쪽 눈은 보이지 않고 너무나 가난해서 동네에서도 무시당하며 살다가 카투만두로 상경하게 되었습니다. 카투만두에 온 그는 다행히 어떤 복음전도자를 만나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교회 다닌지 6개월만에 큰 은혜를 받고 고향에 가서 복음을 전하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생겨 고향 수까우다로 돌아와 가정 교회를 세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변성우 선교사님이 쩐드라가 다니던 교회 사람들에게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 교회 리더들과 함께 이 수까우다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수까우다 교회에 도착하여 기도회를 열어 쩐드라의 간증을 듣고나서 통성으로 간절히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약30분동안 간절히 기도를 드릴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들이 뜨겁게 기도하는 동안에 쩐드라의 한쪽 눈이 완전히 회복되어 정상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변 선교사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도 큰 은혜를 받아 할렐루야 찬양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합니다.

 

여러분, 불과 교회 다닌지 6개월 밖에 안된 이 쩐드라에게 어떻게 이런 역사가 일어났을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순수한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그 감격, 그 무한한 기쁨, 그 주체할 수 없는 은혜, 그 절대적인 심뢰감, 무한한 존중감,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가정교회를 세우고 감사와 기쁨으로 섬기던 그 사랑과 열정과 은혜가 그로 하여금 놀라운 능력을 맛보게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정말 이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감격과 은혜와 기쁨과 신뢰와 사랑, 그래서 정말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주를 따르며 의지하며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는 그 믿음말입니다.

 

요즈음 딸바보라는 말을 쓰는 것을 보았습니다. 딸을 너무 사랑하니까 딸을 위해서 바보처럼 무엇이든 하는 그런 태도를 말하는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그저 모든 것이 은혜요, 모든 것이 감사요, 모든 것이 사랑이요, 모든 것이 은총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곧이 곧대로 믿어지고,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내가 바보 멍청이가 되어도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순수한 믿음으로 살아갈때에 은혜와 능력과 생명력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11:39,4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예수께서 죽은지 나흘이 지나 냄새가 나는 나사로가 다시 살 것이라고 하자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때는 살 줄 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다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면서 지금 살 것이라고 하시며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마르다가 말한 것입니다. 아니 죽은지 나흘이 지나 냄새가 나는데 어쩌시려구요?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냄새가 나는 게 뭐 어쨌단 말이냐? 그가 살아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 썩어서 냄새가 나는 정도가 아니라 그 몸이 완전히 다 분해되어 없어졌다라도 그게 무슨 대수란 말이냐? 하나님께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 내가 누구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그러므로 너의 생각과 이성과 경험들일랑 집어 던지고 나를 믿으라. 그러면 은혜를 체험하리라.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 말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지혜와 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영혼을 소생시키고 육신도 소생시키고 마음도 소생시킵니다. 힘과 능력과 지혜와 권세와 용기와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을 믿으면 역사는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말씀드릴 게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세상을 떠나 육신의 장례를 치를 때에 화장에 대하여 제가 몇 번 말씀드렸는데 아직도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못 미더우신가요?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설령 총회장이 그랬더라도 아니 대한민국 총회장 아니라 전세계의 총회장이나 교황이 그렇게 말했더라도 그건 큰 실수한 것입니다. 아니 화장하면 하나님이 부활을 못시키시나요? 아니 또 화장과 매장이 뭐가 다릅니까? 백년 천년 후에 뭐가 다릅니까? 천년 후에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아니 설령 만에 하나 다른점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능치 못할 일이 있으십니까?

 

여러분, 화장하나 매장하나 매 한가지입니다. 화장해도 흙으로 돌아가고 매장해도 흙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화장해서 한줌 흙으로 돌아가나 매장해서 나중에 한줌 흙이 되나 뭐가 달라요? 매장해도 나중에는 다 썩고 분해되고 가스가 되어 땅과 공중의 원소가 되어 우주 공간 어디엔가 남아 있고, 화장해도 땅과 공기속에서 어떤 원소의 형태로 우주 공간에 남아 있는 거예요. 그러다가 하나님이 다시 원위치로 돌아와라 그러면 돌아와서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되는 거예요. 아니 설령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도 원상태로 돌아와라 그러면 돌아오는 거지 뭐 그렇게 어렵습니까?

 

여러분, 내 작은 생각과 경험과 이성과 지성과 논리의 틀속에 갇혀 있지 말고 권능의 하나님, 지혜의 하나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올 주님을 믿으십시오. 정말 순수한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십시오. 그리하여 정말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덧입어 세상의 모든 의심과 의문과 문제를 이기고 은혜충만 능력충만 감사충만 기쁨충만 생명충만한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순수한 믿음이 곧 능력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믿음은 우리의 가장 크고 영원하고 무한한 능력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반드시 큰 은헤와 능력으로 채워주십니다. 오늘 16절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여러분, 무엇이 능력이라고 하였습니까? 복음입니다. 복음이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입니다. 예수님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의 죽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 승천하셨습니다. 그래서 영광의 나라를 예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 다시 오십니다. 그때에 완전한 천국의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이게 바로 복음입니다. 이 복음이 능력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복음이 왜 능력입니까?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기 때문입니다. 오직 이 복음을 믿는 자만이 구원의 은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복음을 믿는 자는 죽음의 권세, 지옥의 권세를 비롯한 모든 마귀사탄의 역사를 이깁니다. 모든 환경과 상황의 권세를 이깁니다. 모든 어둠의 권세, 사람의 권세 다 이깁니다. 이게 바로 능력입니다. 세상에서는 돈과 명예와 권세와 지식과 기술과 스펙이 능력인 줄 압니다. 물론 그것도 능력은 능력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작은 능력입니다. 곧 무너지는 능력입니다. 마귀사탄에게 판판히 깨길 수 밖에 없는 그래서 죄와 사망과 지옥의 권세에 속절없이 무너져내리는 보잘 것 없는 능력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것을 이깁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깁니다. 환경과 상황의 권세를 이깁니다. 영적 육체적 물질적 정신적 모든 것을 이깁니다. 사람과 돈의 권세를 이깁니다. 모든 어둠의 권세를 이깁니다. 오직 이 복음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십니다. 이 믿음만이 영혼을 살리고 몸을 살리고 마음을 살리고 영생복락의 은총을 가져다 주는 유일무이한 능력인 것입니다.

 

이런 능력이 우리에게 어떻게 주어집니까? 바로 믿음입니다. 우리 인류의 유일한 완전한 능력인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믿으면 그 복음의 능력이 완전히 내것이 되어 영적 육체적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 모든 것을 이기는 승리자가 됩니다.

 

여러분, 성경의 핵심주제가 뭡니까? 다른 거 없습니다. 믿음에서 시작해서 믿음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성경의 핵심은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바라보고, 의지하고, 사랑하고,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시작해서 예수님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18세기 계몽주의가 대두되면서 사람들은 믿음보다는 이성을 중시했습니다. 이성적으로 문화적으로 철학적으로 과학적으로 종교적으로 깨어났다고 여기면서 그 잘난 이성과 과학과 경험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점점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성경조차도 제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난도질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결국 서구 기독교문명은 지금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만약 서구 세계가 회개하지 않고 이대로 한세기를 지난다면 서구기독교문명은 종말을 고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하여 그 역사를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여러분, 11:6절을 보십시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어떻게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한다. 제아무리 잘나고 똑똑하고 유능하고 멋있고 심지어 성경을 달달 외워도 믿음이 없으면 헛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구원을 믿고 심판을 믿고 믿었으면 그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하니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능력과 권세와 은총을 마음껏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정말 순진한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 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고, 똥을 된장이라 그래도 믿어야 합니다. 이해가 안되고 믿고, 불가능해보여도 믿고, 경험에 맞지 않아도 믿고, 세상 이치와 거꾸로 말씀해도 믿고, 죽어도 믿고 살아도 믿고, 망해도 믿고 흥해도 믿고, 잘되도 믿고 안되도 믿고, 그냥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순수한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런 순수한 믿음을 가질 때에 정말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는 능력있는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여러분. 하나님은 경험이나 이성이나 과학이나 이런 따위에 얽매이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것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런 것들을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지식이나 지혜나 이성이나 과학이나 경험 따위는 내려놓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 믿음의 소유자가에게 능력이 있습니다. 구원이 있습니다. 은혜가 있습니다. 그 은혜와 능력과 지혜로 그 어떤 상황과 환경도 어떤 장애물도 이기게 됩니다. 어떤 죄의 권세나 마귀 사탄의 유혹도 이기게 됩니다. 사람이든 물질이든 문화이든 이성이든 그 어떤 것이든 주님의 능력과 지혜로 이기고 승리하게 됩니다. 모든 죽음의 권세, 지옥의 권세, 어둠의 권세, 물질의 권세, 죄의 권세, 유혹의 권세, 상황과 환경의 권세, 그 밖의 다른 모든 권세를 넉넉히 이기고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주님께 대한 순수한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심으로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세상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믿음이 우리 삶을 이끌어가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렇게 순수한 영혼으로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받아야 하는데 그리고 나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런 순수한 믿음의 삶의 원리가 우리 삶 전체를 지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세상이 아무리 왜곡되고 변질되고 죄악 가운데로 흘러간다고 해도 우리는 결코 그런 세상의 삶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원리를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은 그런 삶을 살기가 너무나 힘든 세대입니다. 세상이 너무나 변질되어 있어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죄되고 무지하고 왜곡된 가치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돈이 하나님보다 우선시되고, 인간의 욕구가 주님의 요구보다 우선되고, 감각적이고 쾌락적인 것이 진리보다 우선 되고, 주님의 말씀과 뜻보다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이 우선 되고, 하나님보다 사람을 우선시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죄악과 부조리와 왜곡된 가치와 사상과 현상들이 판을 치고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세상에 만연된 그런 왜곡된 풍조속에 그냥 묻혀서 휩쓸려 갈때가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박고 그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세월이 어떻게 변해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도, 환경과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어도 해도 우리는 오직 예수님께 대한 믿음안에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해 주신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영혼이 살고 생명의 은혜와 능력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하나님의 의는 말그대로 하나님의 옳으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죄에 대한 심판, 인류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모든 것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복음을 믿는 자는 그 하나님의 의를 덧입어서 의롭다 인정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침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혼이 살고 마음이 살고 육신이 살아 진정 살아있는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믿음으로 말미암아 몸과 마음과 영혼이 살아나면 또한 마땅히 그 살아있는 몸과 마음과 영혼을 가지고 그 믿음을 따라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영혼이 살아난다는 말씀이요, 이차적으로 그렇게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난 영혼을 가지고 믿음을 따라 살아감으로써 생명력있는 삶을 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습니다. 영혼이 살아나고, 마음이 살아나고, 육체가 영원한 구원의 은총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영혼이 살고, 마음이 살고, 육신이 살았으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두말할 나위도 없이 그 새롭게 산 영혼과 마음과 육신으로 세상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이든 환경이든 간에 예수님께 대한 믿음으로 그 말씀과 삶의 원리를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월이 어떻게 흘러가든지, 사람들이 어떤 삶의 양식을 가지고 살든지, 대세가 어떻게 흘러가든지, 심지어는 교회가 어떻게 하든지 우리는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께 딱 달라붙어서 그 말씀과 그 원리와 그 삶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과 삶을 이끌어가는 원리요 지침이요 푯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때 진정한 승리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녹은 그 왜곡된 세상에서도 철저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으로 옮겨졌습니다. 노아는 온갖 어려운 현실속에서도 믿음으로 120년간 방주를 지어 온 인류가 멸망하는 중에 온 가족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믿음으로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온갖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믿음으로 사명을 감당하다가 병거타고 승천하였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계속되는 핍박속에서도 오로지 믿음으로 신실하게 대처함으로 성왕이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믿음으로 왕의 산해진미를 거부하고, 믿음으로 기도하다가 사자굴에 던져졌으나 사자들의 입을 봉하여 승리하였습니다.

 

요셉은 또 어떠했습니까? 그는 형들의 시기 때문에 억울하게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같이 대항 원망 불평 낙심 절망 한탄 통곡 증오하지 않고 믿음으로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보디발 장군 집에서 종으로 팔려갔지만 역시 원망 불평이 아니라 믿음으로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주인의 신임을 받아 가정의 총무가 되지만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하는데 요셉이 꿈쩍도 안하니까 원한을 품고 도리어 요셉에게 누명을 뒤집어 씌워 또 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나 그래도 원망이나 불평이 아니라 믿음으로 묵묵히 성실하게 임하여 또 감옥의 총무가 됩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헤와 능력으로 바로의 꿈을 알려주고 그 대비책까지 세워주어 일약 애굽의 총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과 인도하심과 역사하심과 선하심을 믿고 모든 걸 하나님께 맡기며 그저 하나님의 말씀대로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고 이것이 승리의 비결인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순수한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능력과 지혜와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그래서 완전히 신뢰할만 하고, 완전히 따를 만하고, 그 안에 완전한 구원과 생명과 은혜가 있습니다. 이런 주님을 믿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능력과 지혜와 기쁨과 은혜속에서 세상 모든 것을 이기는 자들이 됩니다. 죄의 권세, 사망의 권세, 지옥의 권세, 마귀의 권세 뿐만 아니라 모든 상황과 환경도 이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정말 순수한 믿음으로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과 형편에서든 주님을 갓난아기와 같이 믿고 의지하고 따를 때에 정말 성령충만 은혜충만 능력충만 감사충만 기쁨충만 사랑충만 지혜충만함으로 세상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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