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추감사주일설교] 감사할 줄 아는 인생
제목 : 감사할 줄 아는 인생
말씀 : 시103: 1-5
어느 목사님의 아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차를 운전하다가 그만 언덕 아래로 떨어지면서 몇바퀴를 굴렀습니다. 차는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심하게 찌그러졌고,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다 찌그러진 차로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가갔을때 정말 뜻밖에도 그 다 찌그러진 차안에서 어떤 사람이 스스로 걸어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가벼운 타박상과 찰과상을 입기는 했지만 우려할 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물론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정말 믿기 어려운 기적이라고 웅성거렸습니다. 목사님 아들 또한 정말 기적이라고, 하나님께서 나를 건져주셨다고 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외상을 치료하기 위하여 병원으로 갔을 때 아버지 목사님이 찾아왔습니다. 아들은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나서 정말 오늘 저는 큰 기적을 체험했다고 하며 다시 한번 능력의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오늘 여기까지 오면서 너보다 더 큰 기적을 체험했단다.?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아들은 깜짝 놀라서 말했습니다. ?아니, 아버지, 얼마나 더 큰 사고를 당하셨길래요? 저보다 더 큰 사고를 당하셨는데 이렇게 멀쩡하시다니 정말 기적중에 기적이네요.?라고. 그러자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무슨 소리냐, 나는 아무런 사고도 당하지 않았단다. 그러니 이렇게 아무런 사고없이 조그마한 타박상조차 없이 잘 왔으니 이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 있겠느냐, 이보다 더 감사할 일이 어디 있겠느냐??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별로 심감을 못 느끼시는 것 같네요.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우리의 일상 생활 전체가 얼마나 큰 기적입니까? 얼마나 큰 은혜가운데 살고 있느냐 말입니다. 여러분, 무엇보다도 정말 큰 기적이고, 정말 감사하고 영광돌려야 할 일은요 다른게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믿으며, 먹고 입고 잠자고 일하고 오늘 여기 모여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가장 큰 기적이요, 가장 큰 은혜인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기적, 이보다 더 큰 은혜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전쟁이 난 후에야 평화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평화시에는 평화의 소중함과 은혜를 잘 느끼지를 못합니다. 사람들은 다리가 부러져 봐야 다리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비로소 확실히 압니다. 먹을 것이 없어져봐야 식량의 소중함을 압니다. 먹을 것이 지천으로 쌓여 있을때는 양식의 소중함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병이 난후에야 건강의 소중함을 알고, 눈이 어두워져 봐야 눈을 소중함과 감사함을 실감하는 거예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부모님이 안계셔 봐야 부모님의 소중함과 은혜를 아는 거예요. 아내가 며칠 자리를 비워봐야 아내의 소중함을 압니다. 이웃이 없어져봐야 이웃이 얼마나 소중하고 필요한 존재인지 비로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없어져봐야 교회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곳인지를 비로소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많은 핍박과 환난과 압제를 당해봐야 비로소 우리가 이렇게 마음껏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감사요, 은혜인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그러기 전에 먼저 알아야 돼요. 없어지고, 약해지고, 마음대로 하지 못할 때 그때 비로소 전에 것의 소중함을 안다는 것은 참 억울한 일이예요. 있을 때 누릴 때 그것의 소중함을 알고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아야 되는 거예요. 그런즉 우리는 오늘 이 시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렇게 먹고 입고 잠자고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기적이요, 감사요, 은혜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들을 더욱 은혜롭게 누리며 더욱 더욱 감사하며 기뻐하며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맥추감사주일은 이른 곡식을 수확하고 나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기쁨과 은혜를 나누는 절기입니다. 요즈음에는 보리나 밀 농사를 많이 짓지 않아서 아직은 수확한 곡식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지난 상반기를 돌아보면서 오늘까지 때를 따라 돕는 은총으로 함께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절기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왜 굳이 우리에게 이러한 절기들을 지킬 것을 말씀하셨을까요? 왜, 맥추절, 오순절, 수장절을 지키라고 하시면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규례를 주셨을까요? 그저 헌금이나 얼마 드리고, 감사에 대한 설교나 한편 듣게 하기 위해서 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그 이유는 조금전에 말씀드린바와 같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속에 젖어서 너무나 은혜를 잊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잊고 살다보니까 감사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니까 기쁨도 만족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생활속에서 정말 너무나 많은 은혜와 기적속에 살아가면서도 그것이 일상화되다 보니까 그것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거예요. 그것을 잊고 살다보니까 감사와 영광은커녕 도리어 원망과 불평을 하기도 하고, 실망과 좌절속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미워하고 다투며 살기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미 주어져 있는 복도 누리지 못하며 살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메마르고 왜곡된 우리의 심령을 일깨워서 감사와 은혜의 삶을 살게 하려고 일부러 절기를 정해놓고 그것을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맥추감사주일을 보내면서 정말 감사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때로는 별다른 변화도 없고, 발전도 없고, 좀더 극단적으로는 별로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사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k일상들이 정말 큰 기적이요, 은혜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사람은 은혜로 사는 존재입니다. 은혜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삶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물론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큰 은혜는 말할것도 없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주신 은혜,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은혜,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신 은혜, 이 아름답고 축복된 삶의 터전을 허락하신 은혜, 오늘도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변함없이 공급해 주신 은혜, 생각할 수 있고 일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신 은혜 등등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은혜들을 주셨고, 오늘도 변함없이 공급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또한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의 은혜, 이웃의 은혜, 스승의 은혜, 국가의 은혜, 회사의 은혜, 종업원의 은혜, 농업인의 은혜, 상업인의 은혜, 공장의 은혜, 공무원의 은혜, 서비스인의 은혜, 고객의 은혜 등등 우리는 정말 은혜로 시작해서 은혜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은혜로 사는 존재인 것입니다.
저는 오늘날 하나님과 사람 사이,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부족하고 아쉬운 것은 은혜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분이신지를 잊어버리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를 망각하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귀하게 여기고, 고맙게 여기기는커녕 도리어 쓰러트리고 배격하고 이겨야하고 심지어는 저 사람이 죽어야 내가 산다고 하는 엄청난 과오 속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잘못된 인간관계 때문에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슬픔과 아픔을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얼마나 비극적인 일입니까? 우리 인생은 먼저는 하나님의 은혜요, 그 다음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까? 필연적으로 서로간에 은혜를 주고받는 관계속에서 살아가야 할 존재가 아닙니까? 나는 너의 은혜를 필요로하고, 너는 나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존재가 아닙니까? 또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정말 행복하고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까? 그런데도 그걸 잊어버리고 서로의 소중함을 모르고 비난하고 헐뜯고 속이고 싸우고 아프게 하고 넘어뜨리고 상처를 주면서 살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말 서로를 필요로하는 존재들입니다. 서로 도우며 사랑하며 살아야 할 존재들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의 이웃이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좀더 구체적으로 정부 조직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야말로 무질서와 혼란의 극치를 이룰 것입니다. 경찰조직이 없으면 어떻겠습니까? 기업가가 없으면 어떻겠습니까? 상인이 없다면, 농업인이 없다면, 과학자가 없다면, 노동자가 없다면, 공장이 없다면, 교회가 없다면, 병원이 없다면, 우체부 아저씨가 없다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봅시다. 만약 나 혼자 살면서 빵 한 조각을 먹으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과 수고가 있어야 할까요? 먼저 밭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고, 김을 매고, 추수를 해야 겠지요. 그러자면 거기에 필요한 연장들을 만들어야 할테고, 그리고 나서 방아를 찧고, 또 거기에 필요한 도구도 있어야 하고, 그것을 가루로 만들고, 부풀게하는 약이나 설탕도 구해야 하고, 불을 지필 나무나 기타 연료를 장만 해야 하고 대략 20여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각각의 단계마다 많은 도구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자면 빵 한조각을 먹기 위하여 엄청난 노력과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겠지요. 그런데 마음만 먹으면 당장 나가서 빵을 사먹을 수 있다는 것 정말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만약 나 혼자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면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이 좋은 옷들을 입으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겠습니까? 자동차를 운전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까요? 비행기를 타려면 어떨까요? 이건 아예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병들고 외롭고 슬플때는 어떨까요?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일상생활속에서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우리가 그저 별 생각없이 먹고 입고 잠자고 예배를 드리고 하는 그 모든 과정과 그 모든 일상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은혜와 이웃의 은혜를 받고 있는지를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절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림과 동시에 언제나 그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하여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오늘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지 말고 감사와 영광과 존귀를 돌리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이하에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보십시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져주시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는 것이니다. 그래서 모든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영원한 승리자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모든 병을 고쳐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병이라함은 비단 육체적인 질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병이란 우리의 영혼의 병, 우리의 정신적인 병, 우리의 육체적인 병 등 인간의 전 영역에 걸쳐서 우리를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모든 질병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우리 인간에게 찾아온 모든 아픔과 고통과 슬픔을 치유해 주시는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믿고 따르는 우리들에게는 그 모든 것들을 이길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5절에서는 말씀합니다.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말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날마다 날마다 좋은 것들로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고 소망하는 기쁨과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수리가 힘있게 창공을 향해 날아오르듯이 우리가 기쁨과 은혜와 감사가운데 더욱 힘있게 저 높은 것올 향하여 달려가는 그러한 승리자로서의 삶을 살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주신 은혜를 말씀하심과 동시에 앞으로 주실 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과거에 이미 그런 은혜를 주셨으므로 그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더욱 우리를 어여삐 여겨 주시사 더욱 더 큰 은혜를 주시어 우리로 하여금 더욱 큰 은혜와 능력과 기쁨속에 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정말 너무나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인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유업으로 주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로 채워 주셨습니다. 삶의 터전을 주셨습니다. 이 믿음과 자유와 평화와 일용할 양식을 주셨습니다. 일할 수 있는 터전을 주셨습니다. 가정을 주시고 이웃을 주시고 나라를 주시고 태양과 비와 공기와 ...... 정말 너무나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영광과 찬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주신바 은혜들을 헤아리며 감사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누리고 있는 것들을 헤아리며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가지고 있는 것들을 감사하며 그것을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농촌경제가 어렵습니다. 때로는 고달프기도 합니다. 때로는 별다른 고통이나 어려움없이 사치와 호화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은근히 시기심이 생겨나는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몇 달을 수고하고 나서 몇억씩 벌어들이는 사람들, 한편의 광고를 찍고 무슨 십억을 받느니 하는 것을 보면 좀 속이 상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촌에서 이렇게 고생해봐야 별로 남는 것도 없는데 우리 같은 처지에 무슨 감사할 것이 그렇게 많으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감사는 일부 부유층이나 지도층이나 권력층이나 유명인사들이게나 어울리는 일처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감사는 어떤 특별한 계층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감사는 어떤 특권층에나 어울리는 사치품이 아닌 것입니다. 감사는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누구나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또 누구에게나 감사해야할 것들이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매튜헨리라는 사람은 도적을 맞고 나서 이렇게 감사하였습니다. ①지금까지는 도적을 맞지 않았으니 감사합니다. ②내 생명은 도적 맞지 않았으니 감사합니다. ③아직은 잠잘 수 있는 집이 있고 기타 여러 가지 것들을 남겨주셨으니 감사합니다. ④그 무엇보다도 내가 도적이 되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17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시인이며 사상가였던 John Milton(1608~1674)은 셰익스피어와 함께 영국문학을 대표하는 2대 시인으로 꼽히는 사람이었으며 청교도 혁명에도 기여한 정치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44세 때에 완전히 소경이 되고 말았습니다(1652).
그러나 신실한 청교도적 신앙인이었던 밀턴은 이 불행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끝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기도했습니다. 그때 그는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보다 더 더 신령한 눈으로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 내 시선을 어둡게 하신 것은 오직 주님만 볼 수 있도록 내 심령의 눈을 더욱 크게 열어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라고.... 그리하여 결국 그는 1667년 ?실락원?이라고 하는 전대미문의 대서사시를 완성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어느 누구에게나 어떤 조건에서나 감사의 조건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감사할줄 아는 자만이 진정 복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감사할줄 아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것들로 채워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온 성도여러분께서는 오늘 맥추감사주일을 보내면서 정말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주신 은혜들을 다시한번 헤아려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이미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을 늘 기억하면서 정말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돌리며 거기에 보답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도 동시에 언제나 우리들 곁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많은 도움과 은혜를 주고 있는 우리의 모든 가깝고 먼 이웃들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또한 감사하며 보답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말 우리 모두가 함께 서로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운데 더욱 큰 은혜를 주고 받으며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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