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있었던 실화 ( "Marlboro"의 유래)

 

지금의 MIT공대 전신인

학교를 다니는 가난한 고학생이 있었는데,

지방유지의 딸과 사랑에 빠졌답니다.

 

여자측 집안에선 둘 사이를 반대해서,

여자를 멀리 친척 집에 보내 버렸습니다.

 

남자는 그녀를 찾기 위해

몇 날 며칠을 헤매 다녔습니다.

 

그러다 비가 내리는

어느 날 그녀를 만났습니다.

둘은 집 앞에서 반갑게 해후를 했습니다.

 

여자가 말 합니다.

 

"나 내일 결혼해"

남자는 말없이 있다가

"그럼 내가 담배 한 대 피우는 동안만

내 곁에 있어줄래?" 라고 말을 했고,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남자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습니다.

그 당시 담배는 지금처럼 필터가 있는 담배가 아니었답니다.

잎 담배였습니다.

 

몇 모금 피면 금새

다 타들어가는....

 

짧은 시간이 흐르고 둘은 그걸로 끝이었죠.

 

그 남자가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친구랑 동업을 해서 세계 최초로

필터가 있는 담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백만장자가 됐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남자는 그 여자 소식을 들었는데...

여자는 남편도 죽고 병든 몸으로

빈민가에 외로이 살고 있다는 거였습니다.

 

남자는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어느 겨울 날...

하얀 벤츠를 타고

그녀를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나는 아직도 당신을 사랑해...

나와 결혼해 주겠어?"

 

여자는 망설이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고...

남자는 다음 날 다시 오겠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갔지요.

 

다음 날 남자가 그녀를 찾아 갔을 때 발견한 건

목을 매단 채 죽어 있는 그녀의 싸늘한 시신이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남자는 자기가 만드는 담배에

"Marlboro" 라는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Man

●Always

●Remember

●Love

●Because

●Of

●Romance

●Over 의 약자

 

"남자는 흘러간 로맨스 때문에 항상 사랑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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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예화] 조선청년의 우정

(지고지순한 참 아름다운 우정)

 

 

내용이 너무나 감동적이라 전합니다.

 

 

“당신은 진정한 친구를 단 한 사람이라도 가지고 있는가요?”

 

"다음 세상에서 만나도 좋은 친구가 될 친구가 과연 있는가요?

 

조선시대 광해군(光海君, 1575~1641)때 나성룡(羅星龍)이라는 젊은이가 교수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효자였던 그는 집에 돌아가 연로하신 부모님께 마지막 인사를 하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하지만 광해군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나성룡에게 작별 인사를 허락할 경우 다른 사형수들에게도 공평하게 대해줘야 했습니다.

 

그리고 만일 다른 사형수들도 부모님과 작별인사를 하기위해 집에 다녀오겠다고 했다가 멀리 도망이라도 간다면 국법과 질서가 흔들릴 수도 있었습니다.

 

광해군이 고심하고 있을 때 나성룡의 친구 이대로(李大路)가 보증을 서겠다면서 나섰습니다.

 

“전하, 제가 그의 귀환을 보증합니다.

그를 보내주십시오.”

“대로야! 만일 나성룡이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찌하겠느냐?”

“어쩔 수 없지요.

그렇다면 친구를 잘못 사귄 죄로 제가 대신 교수형을 받겠습니다.”

"너는 성룡이를 믿느냐?"

"전하! 그는 제 친구입니다."

 

광해군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습니다.

“나성룡은 돌아오면 죽을 운명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돌아올 것 같은가?

만약 돌아오려 해도 그의 부모가 보내주지 않겠지.

너는 지금 만용을 부리고 있다.”

 

“전하! 저는 나성룡의 친구가 되길 간절히 원했습니다.

제 목숨을 걸고 부탁드리오니 부디 허락해주십시오"

 

광해군은 어쩔 수 없이 허락했습니다.

이대로는 기쁜 마음으로 나성룡을 대신해 감옥에 갇혔습니다.

 

교수형을 집행하는 날이 밝았습니다.

그러나 나성룡은 돌아오지 않았고 사람들은 바보 같은 이대로가 죽게 됐다며 비웃었습니다.

정오가 가까워졌습니다.

이대로가 교수대로 끌려 나왔습니다.

그의 목에 밧줄이 걸리자 이대로의 친척들이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우정을 저버린 나성룡을 욕하며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그러자 목에 밧줄을 건 이대로가 눈을 부릅뜨고 화를 냈습니다.

“나의 친구 나성룡을 욕하지 마라. 당신들이 내 친구를 어찌 알겠는가?”

 

죽음을 앞둔 이대로가 의연하게 말하자 모두가 조용해 졌습니다.

집행관이 고개를 돌려 광해군을 바라보았습니다.

광해군은 주먹을 쥐었다가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렸습니다.

사형을 집행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때 멀리서 누군가가 말을 재촉하여 달려오며 고함을 쳤습니다. 나성룡이었습니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다가와 말했습니다.

 

“오는 길에 배가 풍랑을 만나 겨우 살아났습니다. 그 바람에 이제야 올 수 있었습니다. 자, 이제 이대로를 풀어주십시오. 사형수는 접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작별을 고했습니다.

나성룡이 말했습니다.

“이대로! 나의 소중한 친구여! 저 세상에 가서도 자네를 잊지 않겠네.”

 

“나성룡! 자네가 먼저 가는 것뿐일세. 다음 세상에서 다시 만나도 우리는 틀림없이 친구가 될 거야.”

 

두 사람의 우정을 비웃었던 사람들 사이에서 탄식이 흘러 나왔습니다.

이대로와 나성룡은 영원한 작별을 눈앞에 두고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담담하게 서로를 위로할 뿐이었습니다.

 

교수형 밧줄이 이대로의 목에서 나성룡의 목으로 바뀌어 걸렸고 교수형이 집행 되려는 찰나 또 다시 광해군은 사형집행을 중지시켰다.

 

그리고 광해군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높은 제단에서 두 사람 앞으로 걸어 내려왔다. 그리고 광해군의 바로 곁에서 보필하던 시중이 겨우 알아들을만한 작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부럽구나. 내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라도 너희 두 사람 사이의 그 우정을 내가 가지고 싶구나."

 

광해군은 두 사람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다가 다시 높은 제단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왕의 권위로 결정 하노라. 저 두 사람을 모두 방면토록 하라"

"비록 죄를 지었지만 저 두 사람이 조선의 청년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도다."

 

사형집행 장에 모였던 원로대신들과 조선백성들이 그때서야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두 사람의 방면을 기뻐했다.

 

시대는 바뀌고 세상은 변하여도 진리는 만고불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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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갈등 (조선 명종 때 실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더욱 심해진 고부갈등으로

고민에 빠져 있던 윤진사가 하루는

그의 아내를 불렀다.

 

"가정불화는 가정파탄의 원인이 되오.

어머니가 얼른 세상을 떠나셔야 할 텐데

아직 기운이 좋으시오.

그렇다고 병나기를 바랄수도 없잖소.

 

이런 생각이 불효는 되지만,

칠십 노인이 그만 사셔도

원통할 것이 없으시니

차라리 밥에 약이라도 타드려서

얼른 세상을 버리시게 하고 싶소.

 

그런데 고민이요.

병환이 없이 갑자기 돌아가시면

외삼촌이 벼락같이 와서 원님에게

검시를 해보자고 할 것이요.

 

만약에 독살로 증명되면,

매일같이 불화하던 며느리의 소행으로

인증할 것인데..

차마 그렇게는 못하겠소.

 

방법은 한 가지 있소.

부인이 한 달 동안 거짓으로

효부의 행동을 해서 동네 사람들에게

"그 집 며느리는 효성스럽다"는

소문만 나게 해주시오.

 

그럼 그때 가서 약을 타 돌아가시게 해도

동네 여론은 이럴 것이요.

 

"그렇게 효성스러운 며느리를

죽일 년 죽일 년 하더니 이제 동네가

다 알게 되니까 무안해서 자살했다."라는

여론이 돌아 아무 일이 없을 것이요.

그렇게 해보겠소?

 

아내 이氏는 그 말이 반가웠던지

"효성을 어떻게 하란 말이요."라고 되묻는다.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될 것이오.

지금이 추수 시기이니까

날마다 일꾼을 부려서 타작하는 집에 가서,

 

어머니께서 요새 입맛을 잃어 진지를

못 드신답니다. 그래서 일집에 맛있는

반찬 좀 얻어 갑시다." 하고

밥까지 얻어오시오.

 

그리고 어머니께는

"일집에 갔더니 반찬이 좋아서 얻어왔으니

맛있게 잡수세요."라고 권하면 되요.

 

날마다 그렇게 하면,

집집마다 당신을 효부라고

칭찬하게 될 것이오.

 

또 내가 생밤 한말을 사다 줄 것이요.

그 밤을 매일 10개씩만 밥에 쪄서 두었다가

아이들 모르게 어머니 주무실 때에

잡숫고 주무시라고 하세요.

 

또 식전에 일찍이 밥 숭늉을 끓여서

아침이 늦겠으니 미리 잡수시라고 하세요.

 

그러면, 나는 만나는 친구마다

당신이 하는 일을 자랑할 것이요.

 

그러면 안팎이 모두 "출천대효"라고

하게 될 것이고 그 뒤에 어머니가

아무렇게나 돌아가셔도 당신에게 의심은

아니 가지 않겠소?

 

아내 이씨가 자세히 듣더니

"그럼 생밤이나 사와요."한다.

 

이튿날부터 남편이 지시한대로

철저히 실행하여 나갔다.

 

시어머니 김氏는,

며느리가 차차 달라져 가는 것이

고마워서 여간 잘못이 보여도 눈감아 주고

무슨 일이든 자신이 해가기 시작하였다.

 

날이 갈수록 기특하고

고마운 생각이 깊어져 갔다.

 

동네 집 잔치에 가서 국수 한 그릇만 받아도

며느리 생각이 나서 집으로 가지고와

며느리 불러 앉히고

 

"네 생각이 나서 혼자 못 먹겠더라."하고

같이 먹자 하였다.

 

어느 날은 대가 집에서 보낸

봉송음식에 귤병 한쪽이 있는 것을 보고

시어머니가 손에 감추었다가

얼른 며느리 입에 넣어 주었다.

 

며느리 이氏는

"제일 귀한 것인데 아들과 손자도

아니 주시고 내 입에다 넣어주신다."는

생각에 감격이 넘쳐났다.

 

날씨만 추워도 며느리가 식전에

아침 짓기에 춥겠다 싶어서

밤중에 나가서 물을 끓여 놓기도 하고,

 

"감기 들겠다. 옷 껴입어라."를

날마다 했다.

 

어느 날 윤진사가 어머니를 위해

저고리 한 감을 사왔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방안에서 늙은이가 아무러면 어떠냐.

네가 해 입어라."하고

 

며느리는

"젊은 놈이야 어때요.

노인네가 따뜻하게 입으셔야지요."하면서

시어머니의 옷으로 만들었다.

 

어느 날 김장을 담으려고

며느리 이氏가

식전에 저고리를 입어 보니까

 

자기 잠든 사이에 시어머니가

저고리를 갔다가 당신저고리 솜을 베껴서

두툼하게 솜을 두어 놓으셨다.

 

개천에 가서 김장거리 씻기에

추울까 해서 이렇게 하셨다는 생각에,

감사에 넘치는 눈물이 솟았다.

 

"나는 죽일 마음으로

거짓 효성을 부린 것인데

어머니는 진실로 나를 아끼시는구나.

내가 벼락 맞을 년이다."하고 각성하였다.

 

그리고 한 달이 되었는데

남편이 조용한 틈에 아내를 보고

 

"이제는 이 근방에서 전부 당신을

효부라고 하게 되었으니

오늘 저녁 진지에 약을 타 드립시다."

라고 했다.

 

이 말에 며느리 이氏가 울면서 말하기를

"약을 주시면 내가 먹고 죽겠소.

내가 죽일 년이요.

전일의 불화가 모두 내 죄요."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남편이 말하기를

"천하에 부모는 악한 데가 없는 법이다.

부모를 죽일 마음을 먹고

잠시 동안 거짓으로 효성을 해보아도

얼마나 부모가 착하신가?

 

계속 효성을 극진히 해서

자식들이 모범하게 하면 훗날 자식도

자식들의 효를 받을 것이다."하였다.

 

이 글은 조선 명종 때,

파평윤씨 대언공파 8세손 윤명선의

실화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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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예화] 귀신들이 타죽은 교회

 

 

유명한 부흥사 무디가

무심코 길을 가다

가까운 어느 교회 지붕 위를

쳐다보니

이상하게 생긴 귀신들이

이상한 노래를 부르고

떠들고 들끓고 있었습니다.

 

신기하기도 하여

그 교회 안에 들어가

살펴보니

교회 안에는 썰렁하고

텅텅 비어있고

먼지가 가득하고

거미가 집을 짓고

살고 있었습니다.

 

무디는

“기도하지 않는

교회, 폐쇄된 교회로구나”라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나갔습니다.

 

얼마 후

다시 그 곳을 지나갈

기회가 있어

지나가며 교회지붕을

바라보았는데

이번에는 귀신들이

괴로워하며

발악을 하고

있었습니다.

 

궁금하여

다시 교회에 들어가 보니

몇 사람의 성도들이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한참 후에

다시 그리로 지나가다

그 교회 지붕 위를 보니

이번에는 귀신들이

새까맣게

타 죽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을 들어가 보니

교인들이 가득 모여

뜨겁게 기도하고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이 예화가

우리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열심히

기도하는 일만이

자신을 살리고

가족을 살리고

교회를 부흥시키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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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

 

세계적인 음악가 모짜르트에게는 무명 시절에 사귀던 여인이 한 명 있었습니다.

여인은 모짜르트와 약혼까지 했지만 도무지 모짜르트에 대한 애정이 생겨나질 않았습니다.

마침 그때 잘생기고 키가 큰 남자를 알게 되었고,

이로 인해 모짜르트와 파혼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짜르트는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고 탁월한 음악성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고

그저 키가 작고 무능력한 남자라고 오해하며 파혼했던 것을 후회했다고 합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녀가 다른 사람들 앞에 남긴 말 한마디였습니다.

나는 그때 모짜르트의 천재성을 알지 못했어요. 단지 키가 작은 한 남자를 봤을 뿐이에요”.

 

얼굴은 추천장이고 마음은 신용장입니다.

당신은 당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와 재능들을 알고 있습니까?

외모로 판단하기 좋아하는 우리들은 종종 실수를 하곤 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몰라봤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있는 귀한 보물들을 잘못 판단하곤 합니다.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그들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던 당신의 잘못된 생각들을 이제 새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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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름꾼이라도 좋아요

 

한 젊은이가 로버트 모리슨 박사의 중국 선교에 동행하기를 청했습니다.

선교 본부에서는 이 젊은이의 이력서를 검토해 보았지만 선교사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죄송하지만 당신을 선교사로 파송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모리슨 박사와 동행하여 중국에 가고 싶다면

모리슨 박사의 일꾼으로는 보내드릴 수가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젊은이가 대답했습니다. “일꾼으로 보내 주십시오.

저는 나무도 팰 수 있고, 물도 나를 수 있습니다.

아니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도 몸으로 하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보내 주십시오.” 선교 본부에서는 젊은이의 청에 따라 그를 심부름하는 사환으로 중국에 보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이 젊은이의 중국행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선교 사역으로 이어졌고,

후에 중국에서 가장 인정받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밀른 박사입니다.

사람과 하나님 앞에 겸손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을 위해서 당신이 포기할 수 것은 무엇입니까?

겸손한 마음은 모든 은혜를 받는 그릇입니다.

나는 자질이 없어도,

그럴만한 재목이 못 되어도 주님께서 사용하시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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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기회를 잃지 말라

 

미국에 한 마을에 믿는다 하면서도 도박을 일삼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날도 두 사람을 도박을 하러 가게 되는데 가는 길에 교회당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게시판에 설교 제목이 죄 값은 사망이란 제목이 붙어 있었다.

 

한 사람이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며 죄 값이 사망이라하고 혼잣말처럼 했다. 그리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가는 길에 어쩐지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친구에게 오늘은 기분이 그렇지 않으니 자네 혼자 가게하고 말했다.

 

그러나 그 친구가 이 사람이 설교 제목을 보더니 감동이 됐나. 왜 갑자기 그래 하고 가자고 팔을 끌었다. 그러나 아니야 오늘만 자네 혼자 가게하고 사양했다. 그러나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내가 어제 밤에 좋은 꿈을 꾸었기에 가면 좋은 일이 있을 거야 하고 이 사람은 꿈 때문에 가던 길을 가고 한 사람은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기왕이면 오늘은 교회나 한번 가볼까 하고 망설이다가 길가에 그 교회에 들어갔다. 예배에 참석하고 은혜를 받고 그 후로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하여 나중에 대통령이 되었는데 바로 그 사람이 미국 제22대 대통령 클린브랜드 대통령이다.

 

똑 같은 인생길에서 한 사람은 순가의 선택으로 영광스러운 대통령 취임식에 영광을 누리고 한 사람은 교도소에서 그 취임식을 지켜보고 눈물을 흘리는 희비의 역사 드라마가 연출되었다.

 

클린 브랜드는 영혼이 잘 되므로 범사가 잘된 것이다. 우리 믿는 자들은 영혼이 잘 되어야 범사가 잘 된다.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혼이 잘 못되는 복은 주시지 않는다. 그러기에 삶의 순리가 영혼이 먼저 잘되어야 범사가 잘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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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준비는 평소에 되어져야 한다.

 

이조 21대 임금 영조대왕의 왕후 서씨가 죽은 다음, 새로 왕후로 간택이 된 이가 오흥부원군(鰲興府院君) 김한구의 딸 정순왕후(貞順王后)입니다. 오색이 찬란한 능라주단으로 몸을 감은 여러 재상의 딸들이 황홀하게 치장을 하고 즐비하게 수놓은 방석 위에 앉아서 영조대왕의 간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영조대왕이 시신(侍臣)들을 거느리고 나와 보니 즐비하게 고개를 숙이고 얌전히 앉아 있는 처녀 중에 한 처녀만 앉아 있지 않고 서 있었습니다.

 

영조대왕은 이상히 여겨서 '저 처녀는 누구의 집 딸인데 저렇게 서있는지 물어 보아라'하였습니다. 나인들이 서 있는 규수에게 우르르 몰려가서 "영조대왕께서 친히 간택하시는 자리에 서 있는 법이 아니니 좌정하시오"하고 독촉했으나 그 처녀는 여전히 서 있으므로 이상히 여긴 영조대왕은 직접 하문하였다. "그대는 어디 몸이라도 불편하여 앉지를 못하는가?" 이때야 비로소 처녀는 나인에게 귓속말로 "아무리 간택하는 자리라고 하지만 방석 위에 아버님의 성함을 써놓았으니 그것을 깔고 앉을 수가 있사오리까?"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인이 아래 방석을 내려다보니 각각 규수들의 아버지의 이름을 써놓았으니, 이는 영조대왕께서 간택할 때 누구의 집 딸인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영조대왕이 크게 감탄하여 "그렇구나, 아무리 방석 위라도 부모의 이름을 감히 깔고 앉을 수 없을 것이다"하였습니다. 간택하는 도중에 법도에 따라 사찬(賜餐)이 내리어 음식상이 나왔습니다.

 

영조대왕은 규수들의 뜻을 떠 보기 위하여 "무슨 음식이 가장 맛이 있느냐?"하고 물었습니다. 규수들은 "떡이옵니다." "국수라고 아뢰오." "식혜이옵니다." 하고 식성대로 아뢰었습니다. 그러나 김한구의 따님은 "소금인 줄 아뢰오."하여 왕이 그 이유를 물으니 "만 가지 음식에 소금이 없이 맛을 낼 수 없으며, 상강님의 음식에도 소금이 없이는 잡술 수 없는 줄 아나이다."하였습니다.

 

영조대왕은 크게 감탄하여 김한구의 따님을 왕후로 맞아들였다고 합니다. 그가 정순왕후로 공 사간 구별이 엄격하고 영조대왕을 훌륭하게 보필한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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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방을 쓰는 두 젊은이

 

영국의 한 대학, 같은 과에 이스라엘 학생과 아랍 학생이 유학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교수가 두 학생을 자기 방으로 불렀습니다.

"오늘 이스라엘과 아랍사이에 전쟁이 발발했다.

너희들의 나라 상황이 이러하니 더욱 열심히 공부하여 나라발전을 위하여 힘을 다해 노력하기를 바란다.

"고 했습니다. 두 학생은 교수의 얘기를 다 들은 후 깜짝 놀라면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각각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이튿날 그 교수 수업시간이 둘 다 결석을 하였습니다.

 

그 교수는 걱정이 되어 기숙사 사감을 찾아 갔습니다.

교수에게 사감이 들려준 이야기는 이스라엘 학생은 짐을 정리하여 귀국수속을 밟는다고 떠났고,

아랍학생은 본국에서 징집영장이 올까 두려워서 하숙방을 옮긴다고 나갔다고 합니다.

전쟁의 승패는 여기서 결정되었습니다. 6일 전쟁 때의 일입니다.

 

이 시대에도 느혜미야와 같은 사람을 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

조국을 뜨겁게 사랑하여 공부를 일시 중단하고 귀국한 이스라엘 학생은

이스라엘 구원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한 느혜미야의 심정과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느헤미야와 같은 믿음과 심정으로

나라와 민족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며 충성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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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탓하지 말라

 

 

어렸을 때부터 기구한 환경에서 자랐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사생아 출신으로 동네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했습니다. 그가 네 살 때 어느 날 같이 놀던 동생이 갑자기 보이지 않습니다. 동생이 죽은 것이었는데, 너무 어려서 동생이 죽은 것도 몰랐습니다.

 

열 살 때 그에게 신앙과 용기를 주었던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철이 들 무렵인 열여덟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가장 사랑하고 가장 아꼈고 서로 위로하며 살던 여동생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얼마 후 메리 타드(Mary Todd)라는 여인과 결혼했는데 결혼생활도 고통뿐이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긴 했지만 그 아내가 자주 정신이상을 일으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가장 사랑했던 두 아들이 차례로 그의 품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너무 심한 고통과 외로움을 잊고자 군에 들어가 전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거기에서도 그의 슬픔은 연속되었습니다. 숱한 전우들이 그의 곁에서 죽어간 것이었습니다. 제대 후 그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하겠다고 정치에 투신합니다. 그러나 연거푸 주지사 선거, 하원의원 선거, 상원의원 선거, 부통령 선거에 낙선합니다.

 

그에게 고통과 실패는 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납니다. 죽음의 이별을 겪고, 선거에 낙선하면서 그는 인간의 존엄성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소외되고 좌절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에 대한 애착이 갈수록 심해집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이렇게 외치고 다녔습니다. "저는 노예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또한 주인도 되고 싶지 않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평등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 함께 노래하는 그런 사회를 저는 만들고 싶습니다."

 

결국 그분은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분이 누구일까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일컬어지는 미국 16대 대통령 링컨입니다. 아마 이 세상에 그분처럼 고통이 많았던 사람은 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고통을 위대한 인생의 자산으로 만들어갔습니다. 그처럼 고난과 역경은 인생을 단 맛 나게 하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잠시 어려움이 있어도 너무 불안해하고 두려워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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