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큐티] 감사의 예물

 

 

어느 시골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추수를 마치고 감사 예배를 드릴 때 한 여인이 많은 양의 곡식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평소 가난한 살림을 꾸려가던 그 여인이 많은 예물을 바친데 대하여 목사님은 의아하게 생각하며 물었습니다. “성도님, 특별히 감사할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러자 여인이 대답했습니다. “예. 사실은 저에게 열 살 난 아들이 있었습니다. 지난 해 그 애에게 병이 났을 때 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이 아이가 다시 살아날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 많은 예물을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밝은 얼굴로 “그러면 아들이 이제 회복이 되었나 보군요?”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아닙니다. 일 년 가량 시름시름 앓다가 한 달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목사님은 몹시 놀랐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의 약속은 무효가 되었을 텐데, 어떻게?”, “아닙니다. 주님께 선물을 드릴 때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제 아들을 하늘나라로 데려가셨고, 지금은 그 품에 안고 계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더욱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린 것입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라.”

모든 것을 잃은 욥의 고백입니다. 나의 소원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감사하십니까? 이미 주신 것과 앞으로 이루실 것에 감사하십니까? 그리스도인은 모든 상황에서 자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추수할 것이 없으면 앞으로 주실 것에, 추수한 것이 많으면 이미 주신 것에 감사하십시오. 그것이 진정으로 감사하는 삶인 것입니다.

* 기도: 주님, 제 삶에 이루신 모든 것에 감사하게 하소서.

* 묵상: 당신의 인생을 통해 놀라운 수확을 얻게 하실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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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 ​사탄의 유래

사탄이 사탄이 된 것은 그가 하나님의 권위를 넘어서 하나님과 비교했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대적이 되었다. 배반이 사탄이 타락한 원인이다.

이사야 14장 12절부터 15절과 에스겔서 28장 13절부터 17절까지 두 단락에서는

모두 사탄의 범죄와 타락을 말하는데, 이사야 14장은 사탄이 하나님의 권위를 범한 것을 말하고,

에스겔서 28장은 사탄이 하난님의 성결을 범한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권위를 범한 것은 배반으로서 하나님의 성결을 범하는 것보다 더욱 심각하다.

죄악은 행위의 문제로서 쉽게 사함을 받지만 배반은 원칙의 문제로서 사함 받기가 쉽지 않다.

사탄은 하나님의 보좌 위에 자기 보좌를 세우려 하여 하나님의 권위를 범했다.

그러므로 사탄의 원칙은 자고 함이다. 죄악의 유래는 사탄이 타락한 것이 아니다.

사실 죄악은 권위를 배반함으로써 하나님께 정죄 받아 산출된 것이다.

(생명의 양식 99-10)) 늘 푸른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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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와 선교] 빙산의 일각

 

 

 

세 명의 소경이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각자 손으로 코끼리를 더듬어 보았습니다.


먼저 한 사람이 코끼리의 뒷다리를 만져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커다란 귀를 더듬어보았습니다.
마지막 사람은 기다란 코를 더듬으며 만져보았습니다.


그리고 처음 사람이 “코끼리는 큰 기둥같이 생겼다.”고 하자,

두 번째 사람은 “아니야, 코끼리는 커다란 부채같이 생겼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자 세 번째 사람은 “너희들 둘 다 틀렸어, 코끼리는 기다란 고무관처럼 생겼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우화(寓話)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광활한 우주공간 속에서, 그리고 너무나 오묘한 생명과 죽음의 신비 속에서 그 실체를 보고 경험해보지도 못한 채 마치 우화속의 장님처럼 일부를 경험하고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여기며 살아갈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그 어떤 성인군자나 철인(哲人)이라도 이 광활한 우주와 오묘한 생명의 신비, 더더구나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하여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오직 이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은 천지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한분뿐입니다.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요, 백견이불여일행(百見而不如一行)이라 하였습니다. 이제 나름대로의 판단은 일단 접어두고 이 모든 일을 아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한번 그 말씀대로 행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분명 우주와 생명과 죽음의 신비가 풀릴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 영원한 생명의 길을 발견하고 그 길로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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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인도하시는 기도

 

 

 

 

 

 존 오웬(John Owen, 1616-1683 ; 청교도의 황태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값을 치르셨으므로,
우리의 영혼에 큰 유익을 주시는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따라 늘 자유롭게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왜 개인적으로나 가정에서 기회가 있을 때나 필요를 느낄 때마다
기도하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관심이 있고 우리의 삶이 그분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 모두는 기도해야합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경험하며 모든 죄를 이기며,
모든 선한 것을 획득하며 매사에 순종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기도하려고 할 때 많은 어려움과 좌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또 올바로 기도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며 우리의 부패한 본성이 이를 가로막고,
우리를 산만하게 하고 지치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축복은 바로 이 기도에 달려 있습니다.
이 모든 어려움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시고 ,
우리가 은혜의 보좌앞에 자유롭고 담대히 나아갈 수 있도록 하시고,
우리가 자녀로서 기쁘게 '아바 아버지' 라고 부를 수 있도록 하신 분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내려 주시는 은혜와 간구의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그가 주시는 은사를 지속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며
 죄가 되는 일인지 말로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보다 더 '성령을 근심케 하고', 우리 영혼에 손상을 입히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와 간구의 영을 주셨는데,
우리가 기도한다고 하면서 그것을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우리가 그토록 경계를 받았던 "성령을 소멸치 말며"(살전 5:19)라는
명령을 어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날마다 이를 무시하면서 제대로 기도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은혜로운 도우심을 경멸하는 것에 대해
어찌 책임을 지겠습니까?
날마다 이 의무를 무시하며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을 책망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우리보다 더 책망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기도해야하는지 알지 못하고,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반면에 기도할 수 있도록 하시는 성령의 은사를 받고도
이를 무시하고 내적으로 평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더 큰 죄를 짓는 것입니까?

종이 울릴 때마다, 자신들이 배운대로 영적인 관심은 없이 오직 양심의 평화를 얻기위해
기도하러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도대체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진 성령의 도우심을 무시하며 기도하겠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비록 맹목적이며 미신적이기는 하지만 부지런히 기도하는 사람들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을 어찌 비웃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로마 가톨릭 신자들 중에서 종이 울리거나,
미신적인 어떤 표시들이 내걸렸을 때 한밤중에도
기도를 하거나 집에서든 거리에서든 관계없이 무릎을 꿇는
사람들을 때때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때를 따라 기도하도록 도우시는 성령의 역사와 안내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 나름대로의 기도의 방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정확히 지키려고 애를 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받을 수 없는 성령을 받고
그 성령께서 계속적으로 도우시는 사람들이
성령의 활동을 거부하고, 불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그 결과로 우리의 영혼에 생길 모든 불이익을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누가 감히 감사를 잃어버리는
무시무시한 죄를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를 좀 더 확대시켜 우리가 드리는 온갖 종류의 기도에 대해
곧 개인적인 기도이든 공적인 기도이든
관계없이 고려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유혹들과 위험들이
특별히 이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말을 줄이고, 좀 더 많이 기도한다면 상황은 더 나아질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는 그런 문제들에 대해 더 잘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우리의 역할을 보다 만족스럽게 감당했을 것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는 것은 안전을 멀리하고 파멸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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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시간]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

 


 
 

"아비를 구박하고 어미를 쫓아내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며 능욕을 부르는 자식이니라”(잠 19:26)
 

텍사스의 한 사내가 아내와 네 자녀를 버리고 캘리포니아로 가서
30년 동안 오직 자기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는 돈 한푼 없이 죽었는데, 자기의 시체를 고향 텍사스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텍사스에 살고 있던 자식들은 모두 그 소식을 듣고 “그 사람이
우리와 무슨 상관 있어? 그가 아버지로서 우리에게 해준 게 뭔데?
그 사람 때문에 어머니와 우리 모두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왜 우리가 그 시체에 수고와 돈을 들여야 하지?”라고 하면서 분개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심 깊은 큰아들은 아무 말없이 동생들의 불평에도 아랑곳 않고
캘리포니아로 가서 아버지의 시체를 운구해 오기 위해 자기 트랙터와
농기계들을 저당 잡혔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난 후 큰아들은 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씌어 있는 것을 난 실천했을 뿐이란다”

자식이 장성해서 늙은 부모를 부양하는 것은 효도가 아니라
자식으로서 마땅한 도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 중 다섯 번째 계명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
는 명령을 하셨으며,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와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출 21:15,17).

육신의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서
하나님 아버지를 섬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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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하는 삶

 

 

 


필자는 최근 어느 책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한 소녀가 길을 가다가 수풀 속의 거미줄에 걸려 퍼덕이는 나비를 보았다.
소녀는 가시에 찔리면서도 수풀을 헤치고 들어가 그 나비를 구했다.
나비는 날아가다가 다시 돌아와 말했다. “소녀야, 고마워. 나는 나비 천사야.
거미줄에 걸려 죽을 뻔한 나를 살려줬으니 소원 하나 들어줄게.”
“나비 천사님!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앞으로 무슨 일을 당하든지 ‘감사하다’고 말하면 평생 행복할 거야.”
소녀는 나비가 시키는 대로 하면서 평생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이처럼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로 행복해질 수 있는데
사람들은 행복이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것처럼 행복을 찾아 헤맨다.
만일 의사가 오늘 당장 사망 선고를 내린다면
지금 하려고 했던 일을 하기 보다 평범한 일상을 감사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 할 것이다.
문득 ‘돈을 잃어버리면 조금 잃어버린 것이고,
건강을 잃어버리면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이며,
감사를 잃어버리면 삶의 모두를 잃어버린 것이다’라는 성현의 말씀이 떠오른다.
일상에서 반복되는 평범한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되돌아보게 한다.
이남교 부총장/ 청암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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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일 당했을 때, 기도하라 

 

 

 

 

 

어찌할 바를 모를 때와 어려운 일에 직면하게 될 때에 인간에게 도움을 구하지 말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라. 다른 사람에게 어려운 사정을 말하는 습관은 우리를 연약하게 만들뿐 아니라 그들에게도 아무런 힘을 주지 못한다. 그러한 습관은 우리의 영적 연약함 때문에 그들에게 그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지워주게 된다. 우리는 절대로 실족함이 없으시고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실족함이 많고 유한한 인간의 도움을 구한다.

 
우리는 지혜를 구하기 위하여 땅끝까지 갈 필요가 없다. 이는 하나님이 언제나 가까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대가 성공하게 된다면 그것은 그대가 현재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앞으로 갖게 될 재능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께서 그대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 것인가에 달려 있다. 우리는 사람이 이룰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훨씬 적게 믿고, 하나님께서 모든 믿는 자를 위하여 하실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더욱 큰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분은 그대가 믿음으로 당신을 찾기를 바라신다. 그분은 그대가 그분에게서 보다 큰 것을 기대하기를 바라신다. 그분은 그대에게 영적 사물에 대한 것뿐 아니라 세속적 사물에 대해서도 총명을 주시고자 하신다. 그는 지력을 예민하게 하실 수 있으며 재치와 재주를 주실 수 있으시다. 그대의 재능을 주의 사업에 바치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 그리하면 그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그대의 보증으로 삼으라. 그분이 그대에게 오라고 초청하시지 않았는가? 결코 절망적이고 낙망적인 말을 하지 말라. 만일 그대가 그렇게 할 것 같으면 큰 손실을 당하게 것이다. 어려움과 압박을 당하게 될 때에 외적인 것만을 보고 불평하게 되면 그대의 믿음이 병약하다는 것을 드러낼 뿐이다. 그대의 믿음이 언제나 이기고도 남음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행하라. 주께서는 모든 것에 부요하신 분이시며 세상은 다 그분의 소유이다. 믿음으로 위를 쳐다보라. 빛과 권능과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을 바라보라.

 
참된 믿음에는 시간의 경과나 수고의 과중함이 쇠약하게 할 수 없는 탄력성(彈力性)과 원칙에 대한 확고함과 목적에 대한 견인불발성이 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 40:3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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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그들에게 나누어 줄 영적 능력이나 빛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도 그 구하는 바를 은혜의 보좌 앞에 두도록 하라. 그리고 성령을 부어 달라고 간구하라. 하나님은 당신이 하신 모든 약속의 배후에 서 계시다. 성경을 손에 들고, ‘하나님이여, 제가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행하였습니다’라고 말하고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하신 그분의 약속을 제시하라.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 뿐만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힘입어 기도해야 한다. 이 말씀은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9:26)는 말씀의 뜻을 해석한 말이다. 이와 같은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즐겨 응답하신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하고 열렬하게 기도할 때에 바로 그 열정에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엡 3:20)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보증이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요 14:13).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랑의 사도 요한은 아주 명백하고 확신 있게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5:14, 15)고 말했다. 그러므로 그대가 구하고자 하는 바를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줄기차게 구하라.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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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댓글중에서 ...

 

조용기 목사님은 과연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하나님의 사역자라고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도 많이 나타나셨고,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세우셨고 ,한국교회 전체의 부흥에 큰역활을 하셨으며, 1970년대~80년대에는 무명의 코리아, 한국을 전세계에 알리는 데에도 큰 역활을 하셨습니다..

 지난날 조목사님께서 2002년, 아들이 기독교신문 국민일보 회장으로 있을 때에, 국민일보를 활성화, 후원하기위해  국민일보의 주식을 매입 형식으로 국민일보를 후원하였었는데..,

그때는 문제를 제시하지 않다가  당회장권을 후임 목사에게 물려준 뒤인  12년정도 후인 지금에 와서,  반대장로들이 '당회의 논의, 합의 없이 당회장 권한으로 마음대로 교회의 돈을 손실이 되도록 투자했다.'는 명목으로  조목사님을 고발한 사건이 일어났었죠..

내가 보기엔,  조목사님의 개인착복도 아니고.. 또 국민일보 운영자체도  교회의 복음전도 사업인데..

이런 문제는 교회내에서 자체적으로 처리, 해결해야지.. 이런 것을 하나님 앞에서 죄인에 해당되는, 세상법 기준의 세상검사, 판사에 고발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옳지않은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또 교회의 일은, 세상 경영논리와는 달리.. "하나님의 종, 목사님께서 투자하라 하셨으면 지금은 손해보더라도.. 나중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복으로 축복하시면.. 합력하여 다 선함을 이루고 더 잘될줄 믿습니다."..라고 믿고 나아가는 것이 교회 축복의 원리인 것입니다..
 
 성경 고전 6장에, .."교회내에서 발생한 사건은,  하나님앞에서 죄인에 해당하는.. 세상법 기준의 세상 검사,판사에게.. 고발, 송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신앙의 성도로 구성된 자체 재판단체를 세워 성경말씀 기준으로 검토, 판단하여.. 믿음과 신앙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대한민국에 어떻게 저런 대단한 목회자가 나왔는지... 모든것이 하나님의 은혜...
여의도 순복음교회 욕하는 사람들은 순복음 교회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선한 일을 많이 하고 있는지
 절대로 모르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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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조용기 목사님의 휼륭하신 점만 볻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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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목사와 유언하는 사람

 

 


목사님이 환자의 임종을 맞이하러 병원에 왔다. 가족들도 모두 나가고 목사님과 환자만 남았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하고 목사가 묻자 환자는 괴로운 표정으로 힘을 다해 손을 허우적거렸다.
목사는 『말하기가 힘들다면 글로 써보세요』 하면서 종이와 연필을 주었다.

환자는 버둥거리며 몇 자 힘들게 적다가 숨을 거두었다.

목사는 종이를 가지고 병실 밖으로 나와 슬퍼하는 가족들에게『우리의 의로운 형제는 주님 곁으로 편안히 가셨습니다.
이제 고인의 마지막 유언을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하며 종이를 펴고 큰 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

 

 

 


『발치워, 너 호흡기 줄 밟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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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

 


 

 

무화과나무(막11:12-14)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주께서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베다니에 가셔서 주무시고 이른 아침에 성안으로 들어

오실 때에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고 저주하셨다. 이는 성전숙정,심판을 예고하신다.

 
1.겉과 속이 다른 신앙인이 되지 말라.
 

무화과나무는 잎이 무성하여 몹시 시장한 사람의 구미를 당 긴다.

이는 멀리서 보았을 때는 열매도 많을 것으로 생각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열매가 없었다.

이는 겉과 속 이 다른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종교행사에 머물러 있던 자들 을 두고 말씀한다.

신앙의 연조, 직분, 봉사와 헌신등을 자랑하나 신앙의 열매가 열매 가 없는 자를 말한다.

 


2.기다리는 자에게 실망을 주지 말라.
 

주님은 잎만 보고 열매를 생각하고 나아갔으나 실망하고 말 았다.열매가 없었기 때문이다.

잎이 무성하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번영을 상징한다.

그러나 겉으로는 선민으로 우월성도 가지 고 모든 특권을 다 누리나  여기에 맞는 

책임완수는 하지못했다.그리하여 기다리고 계신 주님을 실망 시킨다는 것이다.

겉으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삶속에서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이 되지말라.

 


3.때를 분별하며 살라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열매 없는 나무,그런데 실상은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다.

그러면 잎만 무성한 것은 웬일인가? 무화 과의 때는 6-7월인데 유월절은 4월이다.

이는 결실의 때도 아닌데 잎만 무성하니 때를 분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메시야가 왔는데도 영접하지 않고  겉만 자랑한다는 것이다.

자기네가 가르치는 말씀을 들어야 구원을 받는다든지,그리스도가 여기있다,저기있다.

전쟁이 일어나니 뭐니하는  소리에 휩쓸려서 경거망동한 어리석음을 버려라.

주의 재림은  늘 깨어 준비하는 자에게 도적같이 임하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4.심판받지 않게 살라
 

겉과 속이 다른 나무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노아홍수, 소돔과 고모라성의 심판,예루살렘의 멸망도 이런 류로 인해서 온 것이다.

고로  주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는  때와 시기를 분별하고 열매를 맺어

주님에게 실망을 주지 말고  그날에 심판받지 않게 살아야 한다.

 

 

열매 있는 신앙생활 (막11:12-14)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감하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직후에 있었던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하여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의 뜻이 무엇인가를 깨닫길 원합니다.

 

오늘 이 본문의 배경은 당시 유월절 절기를 지키려는 사람들로 예루살렘은 만원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특히 성전을 맡고 있는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 사람들은 매우 분주했습니다.

그런 즈음에 주님은 나귀새끼를 타고 호산나 외침의 소리를 들으시며 입성하여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셔서 유월절 준비에 바쁜 성전의 모습을 보시고 그날은 저물어 가까운 베다니 마을에 가셔서 주무셨습니다. 이튿날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성전으로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길가에 있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로 가셔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11장20-21절에 보면 그 저주를 받았던 무화과나무가 그 이튿날 뿌리째 말라죽어 있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사실을 교훈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주님은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경고하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무화과나무는 포도나무와 감람나무와 더불어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오직 열매만이 기대하며 심겨진 나무입니다. 그런데 무화과나무에 잎은 무성한데 열매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형식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형식만 있고 신앙의 열매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드리는 이 구역예배도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예배 속에 예수님이 계시지 아니하시면 이 예배는 외식적인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그 찬송과 기도 속에 예수님의 보혈의 피가 흐르지 아니한다면

그 찬송과 기도를 하나님은 받지 아니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 있어야 할 열매가 없는 나무에

대한 예수님의 분노하심을 신령한 눈으로 볼 줄 아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루하루 우리들은 늘 조용히 우리 모두를 한 번씩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무슨 열매가 달려 있는지 아무 것도 없는지 아니면 오히려 우리 주님께서 원하시지 아니하시는

열매가 달려 있지는 아니하신지 예수님 말씀에 비추어 살펴보시기를 축원합니다.

 
 

2.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특별한 계획을 가지시고 세상에 심어 놓은 무화과나무들입니다. 왜 심었습니까? 열매를 맺게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① 말씀에 의지하여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베드로 사도가 주님의 말씀대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서 많은 고기를 잡았던 사건을 잘 압니다. 베드로의 상식과 경험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아니하는 일입니다. 납득이 안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말씀대로 따릅니다. (눅5:5절) 주님의 말씀이니 믿고 따랐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런 베드로처럼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눅5:6-7)

 
 

② 성령의 감동하심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세상의 소리와 그 보다 적은 세미한 음성인 성령의 소리가 동시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세상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는 약함이 있습니다. 세상의 소리에 귀를 육체의 열매를 거둡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갈5:16절-17절) (갈6:7-8절)

 
 
지금세상에 심겨진 많은 무화과 나무가 있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추수때는 반드시 오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오시면 추수가 시작됩니다.

 

이제 오실 이가 오시는 순서만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무슨 열매가 달려 있습니까?

없다면 지금이라도 부지런히 준비하셔야 합니다.

 

쭉정이는 불살라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그러면서 열매 없는 쭉정이로 불살라지는 인생이 있다면 정말 불쌍한 인생입니다.

 
 
오늘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부족한 저를 통하여 우리 모두에게 가르쳐 주시면서 당부하고 계십니다.

 

뿌리째 말라 버린 무화과나무, 이제 다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무화과나무,

뿌리째 말랐다는 말씀의 상징성을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는 신앙의 결실(가을)이 될 때 즐거운 추수를 위해 풍성한 열매를 맺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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