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이 알아야할  금식기도의 자세  

 

 

 

 금식기도  
 
금식기도는 예수님께서 친히 하셨고(마4:2), 가르치셨으며(마6:16-18, 막2:18-20), 초대교회 제자들도 하였습니다.(행9:8-9, 13:2-3, 14:21-23)

금식기도는 올바른 목적을 가지고 할때  신앙 성장에 큰 유익을 줍니다. 자신의 문제 해결이나 육신적인 응답을 받기 위해 금식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또한 바리새인들과 같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금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한 금식은 영적 성장을 가져오지 못하며 도리어 초보에 머무르게 할 뿐입니다.

그러면 왜 금식을 해야 합니까? 금식기도에 임할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시키실때에 금식은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금식 중 힘들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고 확신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2. 금식하는 영적 목표들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하십시오.(빌3:13-14)

3. 자신과 남을 위한 금식기도가 되도록 하십시오.(빌2:4)

3.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마십시오(마6:16-18, 렘14:12)

5.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슥7:5-7)

6. 애통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시69:10)

7. 겸허한 태도로 해야 합니다.(시35:13)

8. 금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으며 해야 합니다.(사58:1-12) 사랑의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다음의 말들을 명심하십시오.
"올바른 금식은 인간의 육체적 본능에 의해 생기는 것과 성령을 거스리는 두 개의 커다란 문제를 해결시켜 준다."

"올바른 금식은 자기의 뜻을 고집하는 영혼과 자기의 욕망을 고집하는 육제를 성령께 복종시킨다."

"금식을 통하여 변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다."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있게 서기를 기도하라"

"힘을 다하여 계속하라, 시름하고, 싸우고, 기도하라. 그래서 모든 어두움의 세력을 짓누르고 승리의 날을 받으라."(찰스 웨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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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인간관계를 위한 갈등 해결하는 삶의 원리
 

 

 

다른 사람과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첫 번째 원리는 나 자신도 언제나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나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 잠언에서도 “자신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지만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는다
.”고 격려해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갈등 앞에서 고통 받을 때마다 “주님, 저는 이 모든 갈등을 주님께 내어놓습니다.
주님께서 해결해주십시오. 그렇지만 저의 잘못을 고치는 일로부터 먼저 시작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해야겠지요.

 

그리고 두 번째는 상대방을 향해 내가 취한 감정적 반응에 대해 내가 책임지는 것입니다.
만약 내 기분이 나쁘다고 무조건 다른 사람을 탓했다면 그것은 상대방에 앞서 나의 내면의
성품이 잘못되어 있음을 스스로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세 번째 방법은 나와 갈등관계에 서있는 상대방의 입장에 내가
서보는 겁니다.


일단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면 왜 그가 그런 생각과 감정을 갖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과거 친구와의 갈등 때문에 고통 받았던 경험을 갖고 있는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자기를 이해시키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자기 자신을 매일
다그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주님, 이해받기보다 남을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이 애쓰게 해주소서.”라는 기도문으로
유명한 성 프란시스를 기억나게 하는 지혜로운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갈등은 각자의 다른 입장 때문에 생겨납니다.
따라서 입장이 바뀌게 되면 모든 갈등은 소리 없이 사라져버리지요.

그러니 이제부터는 갈등을 대할 때마다 그 해결에서 얻는 기쁨은 물론 그 갈등을 통해 배우게
되는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서도 함께 기뻐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복된 하루를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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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으로서 꼭 알아야 할 예수님과 십자가

 

 

 

예수님과 십자가  

 

요한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을 얻기 위해선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분께서 인류를 위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 알아야 기도로 대화할 수 있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닮아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그분이 어떤 분이고 어떤 삶을 사셨는지 잘 모릅니다. 그럼 구원의 유일한 문이요 길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의 이름 

 

요한 1/17 이는 율법은 모세를 통해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것이기 때문이라.
(For the law was given by Moses, but grace and truth came by Jesus Christ.) kjv

 

신약 성경에 나오는 '예수스'(Jesus, 지저스)라는 이름은 히브리 이름 '여호수아'의 단축형 '예슈아'의 헬라어 형태입니다. 이 예수님의 이름 '여호수아' 속에는 하나님의 성호 네 글자 야훼(YHWH)가 축소되어 담겨져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이름인 YHWH의 정확한 발음은 알 수 없으나 보통 '야훼' 또는 '여호와'로 발음합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는 구원하신다' 또는 '여호와는 도우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이 인류 구원의 주체요, 모든 도움과 은혜의 주체적 행위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主)로 고백하는 신앙공동체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 예수님의 영이 성령의 능력으로 함께 하는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요한 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것은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마가 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으며 새 언어들을 말하며 뱀들을 집어 올리며 어떤 치명적인 것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한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사도행전 4/12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 사람들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기 때문이니라, 하였더라.

 

로마서 10/13 이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임이라.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 이름으로 무엇이든 구하면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예수님이 시행하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능력을 받아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새 언어(방언)를 말하며, 악한 것으로부터 해를 받지 않고, 병든 사람을 안수하여 치료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 이외에 다른 구원자가 없으며, 하나님이 인간에게 구원할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나의 구원주로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라 했습니다.

 

 

2.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신 구세주 그리스도(메시야)입니다. 

 

구약시대 4000년은 아담의 범죄에 대한 형벌 기간으로 죄와 율법에 얽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메시야를 인류에게 보내 주셔서 온전한 구원을 이룰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사야 11/1~2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의 뿌리들에서 한 가지가 자랄 것이라. 주의 영이 그의 위에 머물리니 지혜와 명철의 영이요, 계획과 능력의 영이며, 지식과 주를 두려워하는 영이라.

 

다니엘 9/25~26 그러므로 알고 깨달으라. 예루살렘을 복원하고 건축하라는 그 명령이 나오는 때부터 메시야 통치자까지 칠 주와 육십이 주가 될 것이요, 그 거리와 그 성벽이 재건되리니 곧 고난스런 때들이라. 육십이 주 후에는 메시야가 끊어질 것이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요, 또 장차 올 그 통치자의 백성이 도성과 성소를 파괴하리니 그 끝은 홍수로 뒤덮일 것이요, 그 전쟁의 끝에는 황폐함이 정해졌느니라.

 

이사야 선지자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를 뿌리로 하여 메시야가 다윗의 혈통에서 나실 것을 예언했는데 마태복음 1장에서는 자세한 족보를 들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의 영'(성령)이 그에게 강림하심으로써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이상세계를 이루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인 메시야가 활동하고 죽는 시기까지 예언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10/38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께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 부어 주셔서 그가 두루 다니시면서 선한 일을 행하시며 마귀에게 억압받는 모든 자를 치유하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심이라.

 

누가 23/3 빌라도가 그에게 물어 말하기를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하니, 주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렇도다.”라고 하시니라.

 

히브리서 4/14 우리에게는 위대한 대제사장, 곧 하늘들로 올라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계시므로, 우리는 우리의 고백을 굳게 붙들어야 하리라.

 

마태 21/11 그 무리가 말하기를 "이분은 갈릴리 나사렛의 선지자 예수시라"고 하더라.

 

하나님 영이 강림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명자 역할을 한다는 것인데, 기름이 성령을 상징함으로 구세주를 그리스도(Christ, 기름 부음 받은 자, 헬라어) 또는 메시야(마쉬아흐, Messias, 기름 부음 받은자, 히브리어)라고 합니다. 구약 시대에서 기름 부음 받은 세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왕, 제사장, 선지자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자, 신약시대의 대제사장이자, 말씀을 전하는 선자자(대언자)의 역할을 모두 하셨습니다.

 

미가 5/2 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프라타야, 네가 비록 유다의 수천 가운데서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통치할 자가 너로부터 내게로 나오리라. 그의 나오심은 예로부터요, 영원부터였느니라.

 

누가 2/4~7 요셉도 갈리리 나사렛 성읍에서 유대 다윗의 성읍, 즉 베들레헴이라는 곳으로 가니 (이는 그가 다윗 가문의 계열이기 때문이더라.) 그가 자기와 정혼한 아내 마리아와 함께 등록하러 갔는데, 그녀는 아이로 인하여 배가 불렀더라. 그들이 그곳에 있는 동안 날이 차서 그녀가 해산하게 되었더라. 그리하여 그녀가 자기의 첫아들을 낳아 그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누이니, 이는 여관에 그들이 들 방이 없었기 때문이라.

 

미가 선지자는 유다의 작은 마을인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통치자가 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유대인 요셉이 로마황제의 명령에 따라 조세 등록을 위해 갈릴리 나사렛에서 고향 베들레헴으로 정혼한 아내 마리아와 함께 갔습니다. 그곳에 있는 동안 날이 차서 마리아가 아들 예수를 낳음으로써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는 예언이 이루어졌습니다.

 

누가 2/11 이는 다윗의 고을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분은 주이신 그리스도시니라.
(For unto you is born this day in the city of David a Saviour, which is Christ the Lord.) kjv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 주위에 있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다윗의 고을인 베들레헴에서 구주가 나셨는데 그분은 주(主)이신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이끌어 주는 주인이라는 의미에서 구주(救主, Savior, 구세주, 구원주, 구원자) 또는 주님(the Lord)으로 불립니다.

 

이사야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한 표적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보라, 한 처녀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마태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한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해석하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이라.

 

마태 1/18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러하니라. 그의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였으나 동침하기 이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그녀에게 나타났더라.

 

이사야 선지자는 한 처녀가 남자와 동침하지 않고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 예언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표적(sign)으로 하나님이 역사하신 징표입니다.
아들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는데 임마누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예언대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약혼)한 사이였지만 동침하기 전에 임신을 했습니다.

 

마태 1/20~21 그가 이 일들을 생각하고 있을 때에, 보라, 주의 천사가 꿈에 그에게 나타나 말하기를 “너 다윗의 아들 요셉아, 마리아를 네 아내로 삼는 일을 두려워 말라. 그녀에게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그녀가 한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주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니라.”고 하니라.

 

이에 요셉이 파혼하려고 하자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아기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 순종하여 마리아와 결혼했고, 마리아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아기의 이름을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해 줄 것이기 때문에 '예수'라 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하나님(여호와)은 구원해 주신다'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4/15 이는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할 수 없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이기 때문이라.

 

벧전 1/19 흠도 점도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기 때문이라.

 

예수님이 인간 유전이 아닌 처녀 상태에서 성령의 잉태로 세상에 오신 것은 아담의 원죄를 상속 받지 않고 하늘이 주신 깨끗한 몸으로 오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죄 없이 태어나셨고, 죄를 짓지도 않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죄를 가져갈 흠 없는 어린 양이 되신 것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생명을 낳으시며, 흙으로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에게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사야 53/5 그러나 그는 우리의 허물로 인하여 상처를 입었고, 그는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상하였도다. 우리의 화평을 위한 징계가 그에게 내려졌고, 그가 맞은 채찍으로 우리가 치유되었도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실 것을 암시하는 구절로 우리 죄를 대신해 고통을 받으실 것을 예언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악으로 몸이 상하셨고, 이를 믿는 사람은 저주에서 벗어나 치유되고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메시야 초림에 관한 구약의 예언 48가지를 성취하셨는데, 이는 확률적으로 우연히 일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많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정확히 성취한 것은 예수님이 메시야란 가장 큰 증거입니다. 이밖에 예수님이 하신 진리의 말씀, 그가 행한 다양한 기적, 십자가 죽음 이후의 부활과 승천 등도 증거가 됩니다. 예수님이 성취하신 대표적인 구약의 예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는 이스라엘로부터 오실 것이다(민 24:17-19). 
그리스도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이 될 것이다(창 12:3 ;17:19, 민24:17). 
그리스도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이다(미 5:2). 
그리스도는 처녀에게서 태어나실 것이다(사 7:14).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실 때는 상세히 예언되어 있다(단 9:25). 
그리스도의 오심은 그의 선두주자에 의해서 선포될 것이다(사 4:3-4). 
메시야는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다(사 9:6). 
그는 어린 시절을 이집트에서 보내실 것이다(호 11:1). 
그는 고난을 받고 속죄를 이루실 것이다(사 53장).  
그는 나귀의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것이다(슼 9:9). 
그가 고통 중에 있을 때 쓸개즙과 식초가 주어질 것이다(시 69:21).  
그의 뼈는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시 43:20). 
사람들은 그의 옷을 나눠 갖기 위하여 제비를 뽑을 것이다(시 22:18). 
그는 죽음의 고통 가운데서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기록된 어떤 말들을 할 것이다(시 22:1). 
그는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질 것이다(시 16:10). 
그리스도는 친구에 의해 배반당한 것이다(시 41:9). 
그는 은 삼십에 팔릴 것이다(슼 11:12). 
그는 거짓 증인에 의해 모함받을 것이다(시 35:11). 
그는 침 뱉음을 당하고 사람들에게 맞을 것이다(사 50:6).  
그는 이유없이 미움을 받을 것이다(시 35:19). 
그는 멸시와 조롱을 당할 것이다(시 22:7,8).

 

 

3. 예수님은 새로운 시대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각 시대마다 새로운 계명을 주시는데 그 계명을 지키면 구원 받고, 지키지 못하면 심판을 받습니다. 아담과 이브 때는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계명(명령)을 주셨고, 노아 때는 방주를 짓고 타라는 계명을 주셨으며, 모세 이후에는 율법과 제사법을 주어 지키게 하였습니다.


신약시대에 예수님이 오신 것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법, 즉 인류에게 생명의 말씀을 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누가 5/37~38 또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붓는 사람은 아무도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그 가죽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쏟아지고 가죽 부대도 망가지리라. 그러나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부어야만 하나니, 그리하면 둘 다 보존되느니라.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왜 금식하지 않는냐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넣어야지, 낡은 가죽 부대에 넣으면 가죽 부대가 터져 못 쓰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낡은 가죽 부대는 구약시대, 새 가죽 부대는 신약시대, 헌 포도주는 율법, 새 포도주는 생명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시대가 왔으니 이전 시대의 법인 율법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한 6/68 그때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여,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주님께는 영생의 말씀이 있나이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을 믿고 따른 것은 영생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영생이란 영원한 생명(Eterner Life)으로 죽었던 우리 영이 살아나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반해 구약 시대에는 영이 죽었기 때문에 육신의 계명에 관한 율법과 육신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법밖에 받을 수 없었으며 이로 인해 영의 온전한 구원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 그럼 구약 시대의 율법과 제사법이 신약 시대에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아 보겠습니다.

 

 

a) 형식에 얽매었던 육적인 제사가 하나님을 영적으로 섬기는 경배(예배)로 바뀌었습니다.


 

요한 4/24 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그 분께 경배드리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경배드려야만 하리라.고 하시니라.
(God is a Spirit : and they that worship him must worship him in spirit and in truth.) kjv


 사마리아 여인이 꼭 예루살렘에서 제사를 드려야 하느냐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영과 진리로 경배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이 살아 났기 때문에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영적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드리며 영광 돌리면 되는 것입니다. 제사(offering)는 신께 헌물을 드리는 의미가 있지만 경배(worship, 예배)는 신을 공경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마태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

 

신약시대에는 영이 살아 났기 때문에 제사장을 통하지 않고도 당당히 하나님께 우리가 원하는 것을 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화하듯이 기도로써 우리의 소원을 말하면 아버지가 자녀의 소원을 들어 주듯이 우리의 소원을 들어 줄 것이라 하셨습니다. 영이 죽었던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 필요한 것을 구하기는커녕,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에 급급했었습니다.

 

 

b) 육신에 관한 율법이 영에 관한 생명의 말씀으로 바뀌었습니다.


 

율법은 육체가 도덕적으로 타락하지 않기 위해 주신 법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십계명인데 우상 섬기지 말고, 살인, 간음, 거짓말, 도적질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육신에 관한 법으로 영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영에 관한 진리 말씀이 바로 생명의 법이며,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Ⅰ) 주 예수를 믿어야 구원 받습니다.

 

구약 시대 때는 모든 율법을 지켜야 복을 받고, 그 중 하나라도 어기면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율법은 그 종류가 613가지나 되어 외우고 실천하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 중에는 안식일법이나 제사법이나 정결례 같은 지키기 까다로운 법도 있습니다. 사람이 율법을 모두 지키기도 어렵지만 모든 율법을 지켰다 하더라도 영의 구원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요한 3/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마태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주는 그리스도,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하더라. 

 

 

요한 14/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

 

하나님이 그의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 가운데 보내신 이유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멸망(심판, 지옥행)하지 않고 영생(구원, 천국행)을 얻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유일한 아들이자, 나의 유일한 구원주임을 믿어야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요한 5/24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느니라.


요한 1/14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므로,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 6/48~51 나는 그 생명의 빵이라. 너희의 조상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죽었으나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니 그것을 먹는 자는 죽지 아니하리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니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리라. 또 내가 줄 이 빵은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줄 나의 살이라."고 하시니라.

 

마태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현명한 사람과 같아서
 

예수님을 나의 구원주로 믿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들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며, 그 말씀이신 예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니 나를 먹으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고 하신 것은 예수님의 실체가 말씀이니 예수님의 말씀을 영의 양식이자 진리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믿어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신앙의 집을 반석 위에 지은 현명한 사람입니다.

 

 

Ⅱ) 하나님과 이웃 그리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마태 22/37~39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며, 큰 계명이니라. 둘째는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예수님이 주신 계명 가운데 가장 핵심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형식적으로 섬기는 것이 아나라 나의 마음과 혼과 생각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십니다. 늘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두고 생각하고 의지하며 사랑해야 죄와 사탄이 틈을 타지 못합니다.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은 가까운 사람 뿐만 아나라 불우한 이웃들까지 사랑해 도우란 것입니다.

 

출애굽기 21/23~25 만일 어떤 피해가 따르면 그때는 생명은 생명으로 갚아야 하며,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인 것은 데임으로, 상처는 상처로, 매질한 것은 매질한 것으로 갚을지니라.

 

마태 5/44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천대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구약시대에는 내게 해를 끼치는 사람은 그대로 갚아 주었지만, 신약시대에는 나의 원수를 사랑하고. 나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를 잘해 주고, 나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내게 해를 끼치는 원수를 미워하지 않기도 힘든데 사랑한다는 건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고 원한은 나를 악하게 만든다는 걸 생각할 때 오히려 원수를 불쌍히 여기고, 더 이상 죄 짓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이 예수님을 본받은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진정한 영의 사랑은 육신의 감정적 사랑과는 다릅니다.


육신의 사랑은 외모나 일시적 기분에 의해서 좋아지고 시간이 지나면 싫증나며 여러 이유로 실망하거나 미워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의 사랑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거룩하고 숭고하며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이며 무한하고 영원한 사랑입니다.

 

고전 13/4~7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고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고 무례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지 아니하고 급히 성내지 아니하며 악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를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뎌 내느니라.

 

고린도전서 13장을 보면 사랑은 인내하고, 친절하고, 온유하고, 시기 질투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이기적이지 않고, 예의 바르며, 화내지 않고, 선하고, 진리를 기뻐하며, 모든 것을 바라고 믿고 참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점점 미움과 시기와 타툼이 심해지고, 이혼율이 높아가는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악하거나 이기적이지 않고, 선한 진리와 겸손과 인내와 믿음과 희생으로 다져진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Ⅲ) 내게 죄 지은 자를 무조건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마태 18/21~22 그때 베드로가 주께 나와 말씀드리기를 "주여, 내 형제가 내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그를 용서해 주어야 하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리이까?"라고 하니,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에게 일곱 번까지라고 말하지 않고,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라고 하노라.

 

누가 17/4 그가 하루에 일곱 번이나 너에게 죄를 짓고, 또 하루에 일곱 번이나 너에게 돌아와서 '내가 회개한다.'고 말하면 그를 용서하라."고 하시더라.

 

베드로가 예수님께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일곱 번 정도 용서해 주면 되겠습니까? 라고 물어 보니 예수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 즉 490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했습니다. 또한 형제가 하루에 일곱 번이나 자신에게 죄를 짓고, 일곱 번 회개한(잘못했)다고 말하면 그를 용서해 주라고 하십니다. 이는 형제가 내게 행한 죄에 대해 복수하거나 원한을 품지 말고 무조건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마태 18/33 내가 너를 가엾게 여김 같이 너도 네 동료 종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아니하냐?

 


그리고 그 이유를 마태 18/23~35 에서 빚 탕감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 우리의 큰 죄(빚)를 은혜로 용서(탕감)해 주셨는데 우리가 형제의 작은 죄(빚)를 용서치 않는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지만 구원 받은 자는 최소한의 도리를 지켜야 계속 은혜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마태 6/12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를 용서해 준 것같이 우리의 빚진 것도 용서해 주옵시며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서도 우리에게 빚진 자를 용서해 준 것같이 우리의 빚진 것도 용서해 달라고 합니다. 다윗은 사울왕에게 쫓겨 다니면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맞았는데도 그를 미워하지 않고 용서했습니다. 사울왕을 죽일 기회도 있었지만 죽이지 않고, 그가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바랬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도 악행을 반복하던 사울왕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로마서 12/19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 스스로 복수하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은 나의 일이니 내가 갚으리라. 주가 말하노라."고 하였느니라.

 

로마서 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벧전 2/21~23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우리에게 한 본을 남겨 놓으시어, 너희로 그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셨느니라. 그는 죄를 짓지도 아니 하셨고, 그 입에는 간사함도 없으셨으며, 모욕을 당하셨으나 다시 모욕으로 갚지 아니하셨고, 고통을 당하셨으나 다시 위협하지 아니하셨으며, 오직 의롭게 심판하는 분께 자신을 의탁하셨느니라.

 

이와 같이 악인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이 하는 것이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에 대해 악으로 대항하면 악에게 지는 것이고, 악에 대해 선으로 대응하면 악에게 이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욕을 당하셨으나 다시 모욕으로 갚지 아니하시고, 고통을 당하셨으나 다시 위협하지 않음으로 원수를 사랑하고, 죄를 용서하며, 선으로 악을 이긴 본을 친히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Ⅳ)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겸손하라고 하십니다.

 
 

마태 7/1~3 "판단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도 판단받지 않을 것이라. 너희가 판단하는 그 판단으로 너희도 판단받을 것이며, 너희가 재는 그 자로 너희도 다시 측정을 받으리라. 어찌하여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생각지 못하느냐?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남의 허물을 비웃고 함부로 판단하거나 정죄해 상처를 주는 일이 많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다 똑같은 죄인인데도 자신의 잘못은 깨닫지 못하고 남의 탓만 합니다. 이는 남의 흉을 보면서 자신은 우월감을 느끼려는 심리적인 작용에서도 비롯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판단받지 않고 긍휼을 입으려면 나도 상대방을 판단하지 말고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마음에 안들거나 연약한 급우를 집단으로 따돌림 하고 괴롭힙니다. 집단 따돌림 당한 학생은 마음에 심한 상처를 입고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하기까지 합니다. 남을 언어나 행동으로 괴롭히는 것은 간접적인 살인행위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 중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상대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오히려 덮어주고 감싸줘야 겠습니다.

 

 

Ⅴ) 마음으로 범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 6/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한 보화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악한 보화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그 입이 말하기 때문이라.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결국 선한 행동을 하고,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결국 악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미운 마음이나 서운한 마음을 가지면, 결국 나도 모르게 그 사람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죄의 발생지인 마음을 바르게 다스리라고 하십니다. 구약시대에는 행동으로 범죄한 것이 것이 죄이지만, 신약시대에는 마음으로 범죄한 것도 죄가 됩니다.

 

 

야고보서 1/15 그러므로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느니라.

 

사람이 마음에 욕심이 생기면 죄를 짓게 되고, 점점 더 큰 죄를 지어 결국 영혼육의 파멸(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인간의 모든 욕심(물욕, 명예욕, 권력욕, 식욕, 성욕)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자전거 타면 소형차라도 타고 싶고, 소형차 타면 중형차 타고 싶으며, 중형차 타면 외제차 타고 싶어집니다. 그리스도인은 저급한 육신의 감정에 얽매이지 말고, '차원 높은'(영적인) 진리를 추구(사모)하며 살아야겠습니다.

 

 

4. 유대인은 왜 예수님을 배척했나?

 

 

유대인들은 자신을 구원할 왕이자 기다리던 메시야인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핍박하며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믿게 하기 위해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며, 죽은 사람까지 살리셨습니다. 그런데도 바리세인 서기관 같은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며 시기하고 미워했습니다. 죄인, 세리, 창녀, 어부 등 그시대 하층민만 예수님을 선지자로 여기고 따랐을 뿐입니다.

 

 

* 그럼 유대인들이 왜 예수님을 배척했는지 이유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a) 위선과 탐욕에 빠진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잘못을 예수님이 지적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3장에서는 예수님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잘못을 신랄(辛辣)하게 비판하십니다. 대표적인 잘못은 형식주의와 위선에 빠져서 겉으로는 경건한 체 하고 높임을 받지만 속으로는 각종 죄악과 탐욕이 가득한 회칠한 무덤과 같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은 희생하기 싫어하면서 남에게는 무거운 짐을 지우고, 말과 행실이 다른 것 등을 지적하셨습니다.

 

 

마태 23/14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희들이 과부들의 집을 삼키며 남들에게 보이고자 길게 기도하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더 큰 심판을 받으리라.

 

마태 23/25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하게 하나 속은 약탈과 방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라.

 

마태 23/27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희가 회칠한 무덤들처럼 실로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도다.

 

 

누구든지 자신의 잘못을 들추어 내면 싫은 법입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지적을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드리지 않고 오히려 분개했습니다. 민중의 마음이 언행 일치하는 예수님에게로 쏠리자 이에 밥줄이 끊길 것을 염려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세우게 됩니다.

 

 

b)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 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것이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한 10/33 유대인들이 주께 대답하여 말하기를 "선한 일로 인하여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모독하기 때문이라. 이는 네가 사람이면서 하나님으로 자처하기 때문이라."고 하니라.

 

요한 19/7 유대인들이 그에게 대답하기를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는데 우리의 율법에 따르면 그는 마땅히 죽어야 하나이다. 이는 그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기 때문이니이다."라고 하더라.

 

레위기 24/16 주의 이름을 모독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지니, 모든 회중이 분명히 그를 돌로 칠지니라. 타국인도 그가 주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 땅에서 난 자와 마찬가지로 죽을지니라.

 

 

예수님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니라"고 하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사람이면서 하나님으로 자처한 것은 신성모독이라며 예수님을 돌로 치려 했습니다. 또한 유대인들은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것은 율법에 따르면 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예수님이 하나님 내지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말이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요한 14/10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는 것을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에게 하는 말들은 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께서 그 일들을 하시는 것이라.

 

빌립이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하자 예수님은 나를 본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본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언행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안에 계셔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어 병자를 고쳐 주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등 엄청난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또한 성령(아버지께서 보내신 영)의 감동을 통해 우리를 구원할 온전한 진리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마태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주는 그리스도,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하더라.

 

시편 8/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깊이 생각하시오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찾아오시나이까?

 

마태 27/54 백부장과 그와 함께 예수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은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크게 두려워하며 말하기를 "참으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하더라.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합니다. 인간은 엄밀히 말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부모(사람)로부터 태어난 '사람의 아들'(the son of man, 人子)입니다. 예수님은 외모로는 사람의 아들이지만 내면으로는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과 형상을 그대로 닮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지진과 기적이 일어나자 백부장과 지키던 사람들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합니다.

 

 

c) 율법을 지키지 않는 예수님을 율법 파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6/7 그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주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를 지켜보고 있었으니, 이는 그에게서 고소할 구실을 찾으려 함이더라.

 

 

유대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을 보고 분하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 제자들은 일하지 말라는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먹었고, 떡 먹을 때 손을 씻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일하지 말라는 안식일에 손마른 사람, 귀신들려 꼬부라진 여자, 38년된 병자 등을 고쳐주셨습니다. 유대인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기 보다는 율법으로 그를 트집 잡았습니다.

 

마태 12/8 인자는 곧 안식일의 주니라."고 하시더라.

 

예수님은 새시대의 주인으로 새로운 말씀을 선포하러 오셨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었으니 이전의 법은 효력을 잃었습니다. 예를 들어 박정희 군사정권에서는 밤 12시 이후에 다니는 것이 통행금지 죄에 해당했지만 지금은 죄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시대 새로운 법을 선포하신 예수님은 구약시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라 하여 율법 모두를 폐하신 것은 아닙니다.

 

 

로마서 3/31 그렇다면 우리가 믿음으로 율법을 폐하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오히려 우리가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로마서 6/6 우리가 이것을 아나니 곧 우리 옛 사람이 그와 함께 십자가에 처형된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 더 이상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

 

율법 중 제사의식이나 형식적인 규례는 지킬 필요가 없지만 신앙과 도덕적인 계명은 여전히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지킬 수 없는 율법을 폐하시고, 더 높은 차원의 영의 법인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의 근원이 되는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난 새 생명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랑으로 가득찬 사람은 형제에게 거짓말 하거나 도적질 하거나 해를 끼치지 않으므로 율법이 저절로 지켜지게 됩니다.

 

 

마태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서를 폐기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기하러 온 것이 아니라 이루려고 왔노라.

 

 

따라서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신 것이 아니라 더 이상적으로 발전시켜 완성시킨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린 아이였을 때에는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서 종 노릇 하였으나

 

 

율법은 초등학문이고, 초등학문을 거쳐야 고등학문인 생명의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사람들도 초등학교를 나와야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육신에 관한 율법은 차원 높은 영의 법을 익히기 위한 과정이지 목적은 아닙니다. 또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지키지 않는다고 지적한 것은 율법도 아닌 장로들이 만든 전통인 유전이었습니다.

 

 

마태 15/2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어기나이까? 그들은 음식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라고 하니,

 

 

d)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교만에 빠져 예수님을 무시했습니다.

 

요한 7/52 그들이 대답하여, 그에게 말하기를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갈릴리에서는 어떤 선지자도 나오지 않는다고 했으니 찾아보라."고 하더라.

 

당시의 엘리트인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교만과 위선에 빠져 유대의 변방 지역이었던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학식을 갖추고 위엄 있다고 생각한 이들이 시골 출신이자 정통교육도 받지 못하고 누추한 차림의 예수님께 머리를 굽힌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마가 2/17 예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지만 병든 사람들에게는 필요하니라. 나는 의인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들을 회개에 이르게 하려고 왔노라."고 하시니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왜 예수님이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지 물으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건강한 자가 아닌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이 예수님은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려고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암환자가 암세포가 온 몸에 퍼지고 있는데도 나는 건강하다고 버티면 의사가 치료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잘나고 똑똑한 사람도 이런 상황에선 의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지시에 따라야 합니다.

 

야고보서 4/6 그러나 그가 더 많은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그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거절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느니라.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아갈 땐 나는 구제불능의 죄인이고, 결국 죽을 수밖에 없으며,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오직 예수님만 믿고 의지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예수님께서 우리를 치료하고 구원해 주십니다. 지극히 거룩하시고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은 교만하고 마음이 부유하며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절하시고,  겸손하고 마음이 가난하며 죄를 애통해 하는 자를 찾아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5. 유대인의 배역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거부인가?

 

 

예수님께서는 여러 비유를 통해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서는 혼인잔치 비유가 나오는데 임금이 아들 혼인잔치를 위해 종들을 보내서 사람들을 초청하나 다 자기 일에 바뻐 무관심 할 뿐만이 아니라 보낸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임금이 진노하여 군대를 보내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동네를 불사르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의 천국 복음을 거부한 유대인들의 심판을 나타냅니다. 마태 21/33~41에서는 포도원 비유가 나오는데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나가서 열매가 익을 때 소출을 받으려고 종들을 보내니 심히 때리고 죽이므로 '내 아들은 공경하겠지' 라고 생각하고 아들을 보내나 상속자 아들을 죽여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아들도 죽이니 포도원 주인이 돌아와 이 악한자들을 진멸하고 다른 농부들에게 농장을 줍니다. 이 역시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들과 예수님을 죽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거부한 유대인들의 심판을 나타냅니다.

 

 

살전 2/15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계시록 2/9 내가 너의 행위와 궁핍을 아노라. 자칭 유대인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모독을 아노니,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요, 오히려 사탄의 회당이니라.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사도들을 핍박한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초대교회 성도들을 복음사역을 훼방하고 박해한 유대인들의 모독을 아신다고 하시면서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라 사탄의 회당(synagogue, 유대인의 집회장소)이라고 합니다.

 

 

에스라 7/13 내가 칙령을 내리노니 내 영토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서 자원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고 마음먹은 자들은 다 너와 함께 갈지어다.
(I make a decree, that all they of the people of Israel, and of his priests and Levites, in my realm, which are minded of their own freewill to go up to Jerusalem, go with thee.)

 

 

이렇게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와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가진 '자유의지'(freewill) 때문입니다.

 
 

freewill은 '자유의지'로 내가 누구의 간섭 없이 내 마음대로 행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원격조종 로봇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아담과 이브도 자신이 가진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길 수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15/11 내가 사울을 세워 왕으로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이는 그가 나를 따르는 것에서 돌이켜 내 계명들을 이행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슬퍼하여 밤새도록 주께 부르짖더라.

 

사무엘상 16/7 주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나 키의 크기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이는 주가 보는 것이 사람이 보는 것과 같지 아니하기 때문이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주는 마음을 보느니라.

 

 

하나님은 사울을 세워 왕으로 삼은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행했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도 후회를 하십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자식 잘 못 되는 것을 어쩔 수 없듯이 하나님도 인간이 자유의지에 관여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후에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outward appearance) 보다 마음(heart)을 보시고 다윗을 왕으로 삼으십니다.

 

 

출애굽기 19/5~6 그러므로 이제 만일 너희가 참으로 내 음성에 복종하고 나의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백성보다 나에게 독특한 보물이 되리니, 이는 온 땅이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에게 제사장들의 왕국이 되며 거룩한 민족이 되리라.' 이것이 내가 이스라엘의 자손에게 고할 말이니라." 하시니라.

 

이사야 49/6 그가 또 말씀하셨도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의 보존된 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라. 내가 또한 너를 이방인들에게 빛으로 주리니 네가 땅 끝까지 나의 구원이 되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에 복종하면 모든 백성보다 독특한 보물이 되고, 제사장 왕국이자 거룩한 민족이 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을 이방인의 빛으로 삼아 땅 끝까지 구원을 베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아 온갖 죄악과 우상숭배에 빠졌고, 결정적으로 구원주이자 왕인 예수님을 받아 들이지 않아 심판을 받게 되었으며, 이방인에게 그 모든 복락이 돌아갔습니다.

 

 

로마서 5/10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도 그의 아들의 죽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으니 더욱더 화해하게 된 우리는 그의 생명으로 인하여 구원받게 되리라.

 

2,000년전 유대인의 불신과 무지로 예수님이 돌아가셨지만 유대인은 죄 많은 우리 인간을 예표합니다. 즉 죄인된 인간이 의인인 예수님을 미워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인간을 용서하셨고, 우리는 우리 죄를 대신해 흘리신 그의 피로써 죄사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인된 나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님의 깊은 사랑에 감사해야 합니다.

 

 

* 유대인의 배역은 다음 두 가지 결과를 초래합니다.

 
 

첫째는 유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마태 23/35~36 그리하여 의로운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모든 것이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

 

마태 27/25 모든 백성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하더라.

 

누가 19/43 그 날들이 너에게 닥칠 것이니, 너의 원수들이 흙언덕을 쌓고, 너를 에워싸고, 사면으로부터 너를 공격하여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죽인 의인과 선지자들의 의로운 피가 당세대에 유대인에게 돌아갈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스스로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이는 무죄한 피(보응)를 자신과 자손들에게 돌린다고 하였습니다. AD 70년에 로마 군대가 반란을 일으킨 유대민족을 진압하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는데 주위에 흙언덕을 쌓고 입성합니다.

 

 

마가 13/2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이 거대한 건물들을 보느냐?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않고 다 무너지리라."고 하시니라.

 

로마군은 성전의 금을 약탈하기 위해 성전을 모두 무너뜨리고, 유대인들을 대량학살 했으며, 나라 자체를 없애고, 남은 자들을 노예로 팔아 넘겼습니다. 또한 유대인은 2000년 가까이 전 세계를 유랑하며 온갖 핍박과 수모를 당했고,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600만명이라는 기록적인 학살을 당했으니 메시야를 죽인 죄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이방인(비 유대인)에 대한 선교입니다.

 

 

로마서 2/28~29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체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요, 할례는 마음의 할례이니 영에 있고 법문에 있지 않은 것이라. 그들의 찬사는 사람들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니라.

 

혼인잔치 비유와 포도원 비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본격적으로 이방인 선교가 시작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 선교를 위해 지중해 인근 여러 나라를 순회하였고,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랐습니다. 유대인은 구세주인 예수님을 죽임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으로서의 특권을 잃어버렸습니다. 신약시대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는 혈통적 유대인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요한 4/19~20 이것이 정죄라. 즉 빛이 세상에 왔으나 사람들이 빛보다는 오히려 더 어두움을 사랑하니 이는 그들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이라. 악을 행하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며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혹 자기의 행위가 책망받을까 함이라.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하게 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한 후에 어떻게 해서든지 내 자신이 버림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본능과 쾌락과 욕심에 빠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육신을 예표하는 민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였고, 참혹한 심판을 받았습니다. 어두움(죄, 거짓, 사탄)을 좋아하는 육신은 본능적으로 빛(의, 진리, 하나님)을 멀리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온전한 구원을 위해서는 반항적이고 이기적인 자기 육신을 억제해 복종시켜야 합니다.

 

 

6. 예수님의 십자가가 가지는 의미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드리면 구원이고, 거부하면 심판인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받아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은 온 인류를 심판하고 사탄에게 내어 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인과 인류의 죄를 용서하시고 새로운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그 대신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써 내 모든 죄가 씻어진다는 것을 믿어야 구원받습니다.

 

 

요한 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같이 인자도 그렇게 들려올려져야만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3/1 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가운데서 너희 눈 앞에 분명하게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어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를 설명한 구절로 출애굽 때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를 불신하고 불평 불만을 늘어 놓아 하나님으로부터 심팜을 받았지만 놋 뱀을 쳐다 보아야 불 뱀에 물리지 않았던 것처럼, 신약시대에 예수님을 불신했던 인류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쳐다 보아야지만 구원(멸망치 않고 영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눈 앞에 보이므로 거짓에 속지 말라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너희를 교란시키는 어떤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개시키려는 것이라.

 

 

사도 바울은 십자가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각 시대마다 구원 받을 수 있는 계명을 주시는데 이는 인간 스스로 바꿀 수 없습니다. 아담 때에는 선악과 따 먹지 말라는 계명이 있었고, 노아 때에는 방주에 타라는 계명이 있었으며, 모세 이후에는 십계명과 율법을 지키는 것이 계명입니다.

 

 

에베소서 1/7 그 사랑하시는 이 안에서 우리가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 즉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느니라.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을 유일한 구원주이자 그리스도로 시인하고, 그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 죽으셨으며,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써 내 모든 죄가 씻어져 죄사함 받는다는 것을 믿는 것이 구원 받을 수 있는 계명입니다. 예수님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모진 고초를 당하셨습니다.

 

 

고전 1/22~24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처형되신 그리스도를 전파하노니 이것이 유대인들에게는 거치는 것이 되고 헬라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 되지만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유대인들에게나 헬라인들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또 하나님의 지혜니라.

 

계시록 7/14 내가 그에게 말씀드리기를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들은 대환난에서 나온 사람들이며 자기들의 옷을 씻어 어린 양의 피로 희게 하였느니라.

 

 

사도 바울은 십자가 복음이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에게는 걸리는(stumblingblock, 장애물) 것이고, 지혜를 찾는 헬라인에게는 어리석게 들리지만 누구든지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라고 합니다. 계시록에서는 말세 때 대환난을 피하는 사람은 어린 양(예수님)의 피로 자기 옷을 씻어 희게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즉 말세 때 구원 받는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 받아 거룩하고 의롭게 된 사람입니다.

 

 

*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 가지는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a) 대속 (代贖, substitution)

 

 

대속은 죄를 대신 받는다는 말로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의미입니다. 구약시대에 자신의 죄를 하나님으로부터 용서 받기 위해서는 성막에서 자신의 죄를 무죄한 염소나 양에게 안수해 전한 다음 제사장이 암염소나 어린 암컷양을 잡아 피를 번제단 뿔에 바르고 단 밑에 쏟은 다음 나머지를 번제단에 불살라 죄를 용서 받았습니다.

 

 

마태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골로새서 1/14 그 안에서 우리가 그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 곧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느니라. 

 

 

히브리서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피로 한 번 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느니라.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스스로 '흠 없는'(죄 없는) 어린 양이 되어서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피를 흘리심으로써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죄사함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내 모든 죄가 깨끗이 씻어져 용서 받는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b) 구속 (球贖, redemption)

 

 

구속이란 죄인을 속전을 내고 건져낸다는 말로 예수님이 죄인된 우리를 마귀로부터 건져내기 위해 피로써 죄값을 치루었다는 말입니다. 이는 죄로 감금된 사람을 보석금을 내고 석방시켜 주는 것이나, 노예로 예속된 사람을 '몸 값'(ransom)을 주고 해방시켜 주는 것과 같습니다. 

 

마태 20/28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몸값으로 주려고 온 것이라."고 하시더라.

 

고전 6/20 너희는 값을 치루고 산 것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딤전 2/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몸 값으로 내어 주셨으니 때가 이르면 증거되리라. 

 

우리가 예수님의 희생과 은혜로 사탄의 권세에서 건짐을 받았으니 우리 모두 예수님에게 빚진 자입니다.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구하기 위해 예수님은 엄청난 희생과 고초를 감수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 우리를 용서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피로써 값을 치루고 산 존재이니 구원 받은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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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양식 - 검소하게 사는 것이 풍요로운 삶

 

 

 

최근 재정적인 조언에 관한 책들을 보다가 흥미로운 경향을 발견했습니다.
그런 책들은 대부분 유익한 충고를 담고 있는데 많은 책들이 현재 우리가
아끼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훗날에 백만장자처럼 살기 위해서라고
암시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한 권의 책이 유독 참시하게 색다른 관점을
피력하고 있었습니다.
'검소하게' 사는 것이 풍요로운 삶을 사는 데 필수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이 기쁨을 누리기 위하여 더 많고 더 근사한 것들을 필요로 한다면
"당신은 살아가는 이유를 잃은 상태입니다."라고 그 책은 말합니다.

 

 


이와 같은 통창은 자신의 형제에게 유산을 자신과 나누도록 설득해달라고
부탁했던 한 남자에게 예수님이 주신 답변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일말의 동정도 없이 그 사람을 쫓아내며 "모든 종류의 탐욕"
에 대해 준엄히 경고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기"(눅12:14-15)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또 자신의 농작물을 저장하고 호화로운 삶을 즐기려는 한 부자의 계획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 그 결말은 참담했습니다. 그의 재산은 그에게
아무런 좋은 결과도 가져다주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날 그가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입니다.(16-20절)

 

 

우리는 우리의 재산을 지혜롭게 써야 할 책임이 있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동기를 확인해보라고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기보다는 주님을 알고 다른 이들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데 집중되어야 합니다.(29-31절)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살며 다른 이들과 너그럽게 나눌 때, 우리는 바로 '지금'
우리 삶의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32-34절)

 

 


주님, 우리에게 한량없이 주신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우리로
하여금 주신 것들을 어떻게 누리며 어떻게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는지
가르쳐주소서. 우리가 주님 안에서 안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하나님 나라에서의 풍성한 삶을 즐기기 위해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오늘의 성구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눅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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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간증 - 피아노 치는 변호사


 

 

 

[피아노 치는 변호사]라는

책을 낸

 박지영 변호사의 간증입니다.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답니다.

 

 예원학교와

서울예술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음악대학에서

 작곡이론을 전공한 분입니다.

 


아버지의 부도로

단칸방에서 살면서

 피아노까지 처분해야 했었고

 


 어렵게 어머니가

 피아노를 다시 마련하여

 피아노를 놓을 곳이 없어

 주인 집 마루에 놓고

피아노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생겼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만 19세에 림프암에 걸답니다.

 


지옥같은 항암치료를 받을 때

 몸 안의 장기가 모두 입으로

 딸려 나올 것 같은

 토악질을 10시간씩 해댔답니다.


물을 넘기기도 어려웠답니다.


 주사바늘을 하도 많이 꽂아

 혈관이 모두 숨어버렸고

 잠만 자면 가위에 눌렸답니다.


기도했답니다.

주기도문을 계속했답니다.


 어느 정도 인생 여정이

아직도 남아 있으리라는

 이상한 확신이 생겼답니다.


항암치료를 중단했답니다.

병원에서는 경고했지만

집에서 현미와 채소 등

 자연식을 먹으면서

1년여 동안 암세포와

 싸워나갔답니다.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놓기 까지

 하신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깨끗이 치유된 것입니다.


그 이후 15년 동안

감기나 타박상 등을

치료하러 병원에

 간 일 외에는

 림프샘 종양과 관련해

 병원을 간 적이 없다고 합니다.

 
기나긴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늘 함께 해주신 하나님께

 뒹굴고 울부짖으면서

사랑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서울대 음대를 들어갔다고 합니다.


한시적 삶

한정된 시간 동안

 분명히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인생의 목표가

 분명해졌다고 합니다.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이웃을 기쁘게 하는 삶입니다.

 
선교단체

‘한시미션’에 들어가

 농촌 오지, 도시빈민,

소년소녀 가장, 장애우 등을

 구체적으로 섬겼다고 합니다.


담임목사님께서 부르시더니


“지영아, 사법시험에

 도전해보면 어떻겠니?

건강만 받쳐주면

 정말 좋겠는데

그건 함께

 기도해보면서 말이야.”

 

구체적으로 섬기기 위해

 법대에 다시 편입하여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현재 법무법인

 로고스의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변호사로서 직업적 소명과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삶의

 궁극적 소명을 분리하지 아니하고


 세상 한복판에서

 사랑을 외치신

예수님을 닮고자

자신이 속한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합니다.

 

박지영변호사의

고백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잘 소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장 잘 변론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


내가 받은 예수님의 사랑을

 법과 음악을 통해

잘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박지영 변호사의

카카오 스토리:

[박지영변호사의

 설탕가득한스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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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에 들어간 금반지     


 


 


무덤에 들어간 금반지

 독일에서 전해 오는 이야기이다.
농촌에서 성실하게 사는 젊은 부부가 있었다.
이들은 착하게 살면서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하루는 밤에 꿈속에서 한 노인이 나타나 "동쪽으로 12km정도 가면
 큰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그 나무를 베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부부는 노인의 말대로 큰 나무를 찾아 베었다.
그러자 나무가 쓰러지면서 가지에 있던 둥지에서 새 알 두 개가 나왔다.
두 개의 새알 중 하나에서 새끼 새가 나와
"다른 새알을 까보면 금반지가 하나 나올 것인데 그 반지에게
 소원을 빌면 들어줄 것"이라고 말하면서 날아갔다.

젊은 부부는 금반지를 두고 무슨 소원을 빌까를 의논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참으로 희망찬 순간이었다.
집을 달라고 할까, 소를 달라고 할까, 땅을 달라고 할까,
돈을 달라고 할까를 의논하다가 그런 것은 열심히 일하면 얻을 것이니
 금반지를 잘 보관하고 열심히 일하자고 결정했다.

그들은 반지를 잘 싸서 옷장 속에 넣었다.
무슨 소원을 들어달라는 요구보다 반지가 있다는 사실에 든든해하며
 희망과 기쁨을 갖고 살았다.
그들은 힘든지도 모르고 전보다 열심히 일해 땅도 사고 논도 사고 소도 샀다.
나중에는 큰집도 장만해 부자가 되었고 아들 삼 형제까지 두었다.
이런 동안 소원을 들어주는 반지보다 더 귀한 것이 희망과 사랑,
성실과 믿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아들들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가 평화롭게 숨졌다.
아들 삼 형제는 부모로부터 "금반지 유언"을 듣고 금반지를 꺼내
 소원을 두고 의논을 했다.

그때 큰아들이 말했다.

 "우리는 지금 부족함 없이 살고 있다.
더 이상 무슨 욕심을 낼 것인가.
부모님은 소원을 풀지 않고 희망 속에서 행복하게 사셨는데 우리가
 소원을 풀면 되겠느냐?
금반지 때문에 서로 갈라질 것이 아니라 금반지를 그냥 부모님 묘소에
 묻어 버리고 희망 속에 살자"

이 의견에 모두 찬성했다.
그래서 그 반지는 부모의 묘소에 묻혔다. 
 

....
무모한 욕심을 채우는 것보다 소망속에 성실히 살아감이 더 행복함을 보여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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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성도의 현금생활 / 지갑이 회개해야 진정한 회개이다

 

 

 

 피 섞인 헌신

 

원주에서 차로 두어 시간 벗어난 시골에서 첫 목회를 할 때였다. 볼일이 있어 택시를 타고 원주 시장에 갔다. 시장을 둘러보던 중 한구석에서 물건값을 가지고 옥신각신하는 사람들이 있어 시선을 돌렸다. 자세히 보니 우리 교회에 다니는 원귀숙 집사님이 가게 주인과 나물값을 두고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며칠 동안 산에 가서 뜯은 나물을 상인에게 넘기려고 하는데 서로 가격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200원을 더 달라고 조르는 집사님과 못 주겠다고 우기는 상인이 서로 밀릴 태세가 아니었다. 집사님이 더 이상은 안 된다는 주인과 실랑이하는 것을 보고 달려가 내 돈을 주면서 끝내려고 하는데 마음속에서 강한 음성이 들렸다.

“이 나물은 주일 내내 산을 돌아다니며 고생해서 뜯은 것이다. 또 버스값을 아끼려고 시내까지 걸어와 주인과 어렵게 흥정을 하며 팔아 돈을 마련했다. 이처럼 피 같은 돈을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렸는데 이 헌금으로 쉽게 택시를 타고 다니는 목회자가 그까짓 200원 가지고 싸우지 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무 대답도 못하고 돌아오면서 다시는 성도들의 손으로 드린 피 섞인 헌신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김상현 목사(인천 부광교회)

 

 푼돈에 뭉치 마음

 

생활보호 대상자로 폐지를 주워 팔아 생활하는 할머니 집을 심방한 적이 있습니다. 가난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동네 한 켠의, 움막을 겨우 면한 집에서 살고 계셨습니다. 웅크린 자세로 들어가 무릎을 맞대고 함께 심방 예배를 드렸습니다. 할머니는 깨끗하게 펴진 낡은 만 원권 지폐 두 장을 수줍어 하며 내미셨습니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목사님인데, 책 사 보세요"라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몇 번을 사양하면서, 주일에 감사 헌금으로 드리시라고 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마지못해 받아 와서 그 할머니 이름으로 감사 헌금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잊을 수 없는 헌금입니다. 두 렙돈을 드린 과부와 같은 그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집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교회에 다니며 대접을 받으려면 매월 10~15만 원 정도는 헌금으로 내야 한다는 요지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일반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 교회가 참 안타까웠습니다. 언제부터 헌금의 정신은 사라지고 헌금의 액수만을 따지게 된 것일까요?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돈 이전에 마음입니다. 뭉칫돈일지라도 쥐꼬리 같은 마음으로 드릴 수 있고,

푼돈일지라도 뭉치 마음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뭉칫돈에 쥐꼬리 마음이 아니라 푼돈에 뭉치 마음입니다. 마음을 드릴 수만 있다면 처지에 관계없이 얼마든지 큰 헌금, 큰 헌신을 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딱! 붙어살자」/ 홍정근

 

* 금언: 지갑이 회개해야 진정한 회개이다. - 마르틴 루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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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이 없는 기도(눅 18:1-8)

 

 


응답이 없는 기도(눅 18:1-8)

 

18: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18: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18: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18: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18: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18: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사람들에게 기도에 있어 가장 많이 오해되는 것은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태도이다.

누가복음 18장에서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기도가 ‘매어 달리기 시합’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과부, 고아는 가장 약한 자라는 표현이다. 과부는 남편이 없고, 자식을 낳을 수도 없다. 그래서 남자가 발언권을 가지고 힘을 누리던 유대인의 사회에서는 배필이나 자식이 없는 과부는 가장 나약한 자의 표현이다. 여기 어떤 과부가 억울한 일을 당해서 재판관에게 그 원한을 풀어 달라고 간청하는데 재판관이 들어주지 않는다. 끈질기게 매어 달리자 결국은 귀찮아서 들어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에 열심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를 증명하기 위해 귀찮을 정도로 매어 달리면 하나님이 들어 주신다는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본문 1절을 보면 이 비유는 ‘열심’을 강조하기 위한 비유가 아니라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된다는 문제에 관한 비유라고 말한다. 기도를 들어주는 이유에 대한 비유가 아니라 들어주지 않는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 등장하고 있는 본문이다. 누가복음 18장 1-8절의 과부 사건은 어떻게 하면 응답을 받느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응답을 받아 마땅한데도 불구하고 응답을 받지 못하는 문제에 대하여 혼동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준 비유이다. ‘어느만큼 기도하면 응답을 받느냐’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느만큼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을 수 있는가’하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꺼내놓은 것이 누가복음 18장 과부 사건인 것이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이것은 낙망치 말 것에 대한 비유이다. 기도는 항상 하되 그러나 낙망치 말라고 하신다. 항상 기도하면서도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제시하는 이유는 늘 기도하는데도 불구하고 기도의 응답이 우리의 욕심껏 되어지지 않는 일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재판관이란 우리나라의 판사가 아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의 재판관이란 사사를 말한다.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다. 그에게 과부가 와서 원수를 갚아 달라고 하는데 갚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 번거롭게 함으로 후에는 들어 주었다.

 

18: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18: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본문은 전부가 앞의 사건과의 대칭이다. 앞에는 불의한 재판관이고 뒤에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다. 앞의 대상은 과부이고 뒤에는 사랑하는 자녀이다. 여기서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억울한 과부와 사랑하는 자녀가 재판관과 하나님께 와서 우리의 원한을 풀어주소서 하는 점이다. 만일 이 공통된 부분이 없다면 이 두 비유는 대칭을 이룰 수 없다. 이들의 요구는 정당한 것이다. 왜냐하면 재판관은 그 일을 위해서 부름받은 사람이고, 하나님 역시 우리에게는 우리가 우리의 요구를 아뢸 수 있는 그런 아버지시다. 이것만은 공통되는 점이다.

 

본문에서는 분명히 이 비유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이라고 못을 박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관이 번거로움을 느꼈다면 찾아오는 것 때문이 아니라 과부의 요구가 정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재판관이 이 과부를 찾아오는 것이 번거로울 수 있는 빌미는 찾아오는 횟수가 아니라 물고 늘어지는 정당함에 있다는 이야기다. 과부의 요구가 정당한 것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찾아와도 번거로울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에게는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녀들의 부르짖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원한이 문제이다. 7절을 보자.

 

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여기서 원한은 정당한 요구에 대한 원한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의 입장에서도 그것이 정당한 요구일 때는 일말의 양심에 걸리는 법이다. 하물며 사랑하는 자녀의 정당한 요구인 경우에는 어떠하겠느냐, 이것이 일차적인 대조이다. 불의한 재판관에 대해서 정당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 그리고 대상이 전자는 과부이고, 후자는 택하신 사랑하는 자녀들이다. 그런데 재판관 쪽에서도 그 꼬투리 때문에 할 수 없이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면 후자에서는 들어주는 것이 더욱 당연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 대조를 놓고 생각해보자.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어려움이 있을 때 많이 쓰는 방법 중의 하나가 떼를 쓰는 것이다. 그러나 정당한 근거없이 떼를 쓰는 것은 훨씬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요구가 정당할 때 떼를 쓰면 정당하기 때문에 귀찮아서 들어주는 일이 있다. 이와같은 우리 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을 여기서 대조해 보고 증폭된 비유를 이제 머리 속에 그려보는 것이다.

 

 


불의한 재판관과 공의로우신 하나님, 또한 돌보아 줄 필요없는 외면해 버려도 되는 가장 나약한 사람의 권리와 눈동자와 같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의 요구, 이런 증폭된 비유와 대조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런 기준에서 기억해야 될 점이 있다. 그런 하나님임에도 불구하고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결론이 나는 것이다. 사실은 누가복음 18장은 이 이야기를 쓰고 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는 이야기는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나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니 절대 절망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기도에 있어 이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은 시작하는 순간에 이미 다 알고 계시고, 우리가 우리의 간절함을 나타내는 것만큼 하나님은 내 기도에 간절히 응답하고 계신다. 그러나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하시는 말씀은 ‘네가 필요로 하는 것만큼 하나님이 안타까워 하시는데도 불구하고, 너를 가장 잘 알고 사랑하는데도 불구하고 안 들어 주시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왜 안 들어 주시는지에 대하여는 말씀이 없다. 각자의 경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어느 것이라도 신자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가지시는 기본적인 태도와 기본적인 안타까움이 무효화되거나 약화되거나 외면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 성경의 선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낙망치 말라고 하신다.

 

계 5: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계 8:3-5 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5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하나님 앞에 올려진 우리들의 향(기도)이 하나님 앞에 드려진다. 하나님 앞에 있는 금단의 불을 가져다가 쏟으니

땅에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는 이야기다. 기도의 응답이 그때쯤 되어지는 이야기로 보인다.

 

계 6:9,10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성경이 이야기 하는 가장 큰 기도의 응답, 보류된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의 공의가 온 천하 만민 앞에 햇빛같이 드러나는 마지막 심판 때문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개인적으로도 기도의 응답이 가장 잘 나타나지 않는 부분이 무엇인가 하면 아마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응당 받아야 할 축복과 칭찬과 영광이 나타나지 않는 것일 것이다. 지금 이 요한계시록 6장 9-10절까지 나타난 말씀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 이제 온 천하 만민을 심판하사 죄지은 자들을 불못에 던지시며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늘나라에 올려 의와 거룩과 영광과 존귀로 영접하실 그날까지 이 기도는 사실상 응답되지 않는 기도이다. 그것이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제가 이만큼 살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깁니까?” 이런 기도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먹는 것으로, 입는 것으로, 자존심에 관한 것으로, 영광에 관한 문제로, 능력과 건강으로 이렇게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그때마다 우리가 마음 속으로 이 문제를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는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혹시 나를 외면하신 것이 아닌가?”하는 이런 자리에 빠지지 않게 되기를 위하여 누가복음 18장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마땅히 응답되어야 할 기도임에도 불구하고 기도가 응답이 안 된다면 거기에 또 다른 뜻이 있는 것이지 너를 싫어하거나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복음 18장은 의외로 결론을 이렇게 내리고 있다.

 

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성경 전권을 다 뒤져서 가장 무서운 구절은 이 구절이다. “인자가 세상에 다시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이 구절을 외우면서 우리의 지금 삶의 모습이 내가 하나님의 참된 약속 속에서 건강하고 담대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주는 떡 받아 먹기 위하여 내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심각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몽땅 응답되어진 기도의 제목만 있는 것이 꼭 신앙의 최고 경지는 아니다. 많은 기도들은 응답되어지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내 인생과 온 천하 만민의 인생과, 온 우주의 경륜을 쥐고 계신 대장임을 마음으로부터 항복하는 기꺼운 신앙인의 자세로 기도를 하는 것이다. 이 기도의 자세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한다.

 

오늘 내게 필요한 기도의 제목을 “내가 열심히 기도하면 주시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자신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야 한다. “내게 오늘도 가시가 있고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를 응답해 주시지 않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하나님이 온 우주 만물의 주관자시요, 그분의 뜻과 지혜의 깊은 것을 내가 다 알지 못하지만 그것으로 나는 항복입니다. 오늘 저는 아픕니다만 하나님이 대장이어서 저는 말할 수 없이 좋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어느 것이 가능하고 어느 것이 보류될 것인지 잘 몰라도 내 모든 기도를 귀 기울여 들으시며 마침내는 넘치도록 응답하실 아버지이기에 기도하렵니다”

 

이 자세가 있어야 한다. 이쯤 하나님을 대접해 드려야 한다. 이것이 기도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점에 있어 회의적이다.

 

“인자가 세상에 다시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이 말씀을 마음 속에 기억하고 우리의 신앙생활을 정말 신앙생활답게, 기도를 기도답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는 승리된 생활을 영위하여야 한다.

 

누가복음 18장 7절 말씀을 다시 마음 속에 새겨 보자.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하물며’라는 단어를 꼭 기억하라.

누가복음 18장 1-8절까지 말씀은 ‘하물며’이다. 그 단어가 거기 등장하게 된 앞에서의 가장 부정적인 상황과 뒷부분의 가장 적극적인 상황의 그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는 단 하나의 지렛대인 ‘하물며’를 기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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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설교,기도,찬양이 있는 곳 (선교사를 교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언어 교육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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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간증 /   불신자를 위한 자료

 

 

 

성령세례를 받고 나면 나타나는 변화들!  불신자를 위한 자료

 
현재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불신자들이나 교회는 다니지만 일주일에 한번 겨우 왔다갔다 하는
일명 "썬데이 크리스찬" 모두에게 분명 도움이 될수있는 글이 될거라 믿습니다!!

우선 제가 이런글을 쓸수있게 인도해주신 성령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어떤사람들은 이렇게 질문을 하시는 분들도 가끔 있습니다...
"성령세례를 통해 구원 받았다는 것을 본인이 어떻게 알수 있나요?"

성령세례를 받고나면 분명히 나타나는 변화들이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찌니라.

(갈라디아서 5 : 22 ~ 26)


성령세례를 받고나면 우리는 마음속에 위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을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성령의 외적인 변화들이 있는데 저의 경우를 토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쉴새없는 눈물이 쏟아지게 됩니다!
그럼, 그렇게 잠깐 흘리고 마느냐??
아니었습니다~ 눈물이 계속 흐르게 됩니다..^^
저같은 경우, 한 4 ~ 5일을 밤낮 쉬지않고 눈물이 났던걸로 기억이 납니다.
도서관을 갔을때, 버스를 탔을때, 길거리를 지날때, 자기전에 등등,,,
그때 당시엔, 정말 "내가 왜 이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20년 가까이 교회를 다녀왔었지만 이런 경우는 첨이었거든요...

20년 가까이 항상 매주마다 주일날 교회가서 찬송 부르고,
다같이 일어나 주기도문 외울때 따라서 같이 외워주고,
성경말씀 읽을때 같이 따라서 읽고, 목사님 설교 하실때, 가끔씩 아멘! 외쳐주고 했었지만,

그땐 몰랐습니다...
제가 20년 가까이 교회만 왔다갔다 거리면서 그져 형식적으로만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을요....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는 것을
머리속의 지식의 하나로만 알았기 때문에, 제가 그런 신앙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의 죄를 회개하고 진정 가슴으로 믿고 알게 됨으로써,
내가 정말 죄인이었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둘째★
신앙생활을 매우 적극적으로 하게 됩니다!
저같은 경우, 겨우 오전예배 1시간 힘들게 드렸었지만
요즘은 주일학교 교사와, 성가대 활동등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없어도 교회활동에 적극적이신 분들 있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주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린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신다는 사실!!!
(마음이 있으면 행위는 저절로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구원을 받지 않고는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입술로는 누구나 고백을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을 받지 않고는 결코 진실된 마음으로 예수를 주라 부를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교회안에 있는 사람들,
즉,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서, 입술로는 믿는다고 말하지만,
진정으로 구원 받지 못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안에선, 다같이 성경읽고, 주기도문 외우고, 찬송하고, 아멘! 외쳐대고....
구별하기 굉장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나와 보면 알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하나님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세상속의 삶에서도 분명 그 모습이 나타나게 됩니다...
하지만, 교회를 다니고,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사람들은,
몸만 교회를 다닐뿐이지, 삶속에선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의 삶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성령)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수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2 : 3)


 

★셋째★
4복음서에 있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계명대로 살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4복음서(마태,마가,누가,요한)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세상을 살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령님이 우리안에 거하지 않고는, 즉 구원받지 않고는,
절대로 예수님 말씀대로 살수가 없습니다!!
하루, 이틀을 사는게 아닙니다,,,,  우리는 죽을때까지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의 성령이 그 안에 있지 않는 사람이
복음서에 나와있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수가 있을까요??
절대 불가능! 입니다.....

믿지않는 어떤사람은 종종
신실한 크리스찬들에게 이렇게 질문하곤 합니다...

"야 너는 어떻게 그렇게 살수 있냐?? 
세상에 좋은것(술, 담배, 각종 유흥 및 기타)이 이렇게나 많은데
이런거 안하고도 살맛이 나니?ㅋ" 이렇게 말이죠....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한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린도전서 2 : 14)


 

믿지 않는 사람들(육에 속한 사람)은 결코
하나님께 성령을 받지도 못할뿐더러(구원을 받을수 없다는 말이죠^^),
그런 사람들을 보더라도 이해하기는 커녕, 미련하고 어리석게 봅니다...^^

 

저는 요즘도 가끔 이런생각을 하곤 합니다....

내가 구원받기 전에, 누가 나에게 한 일주일 정도
술과 담배를 하지않고 살라고 한다면은.... 나는 과연 할수 있을까??
저는 과감하게 못한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ㅋ
술과 담배는 중독성이 그 어떤것보다도 강하기 때문에,
왠만한 정신력이나 인내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결코 끊을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같은 사람도 구원받고 나서는,
술과 담배는 지금까지 입에 전혀 대지 않았고, 또 대고싶은 맘도 완전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
과연 이웃을 내몸처럼 생각하며 살아가기가 가능하기나 한걸까요??

믿지 않는 사람 입장에선, 말도 안되는 소리로 들립니다,
하지만 자기안에 성령님이 거한 사람은 가능합니다.....

 

1948년 여수반란사건때 좌익 청년들에 의해 두 아들이 총에 맞아 순교 당해야만 했던 아픔을 겪었던
손양원 목사님은 아들을 총으로 쏴 죽인 공산당 청년(원수ㅜㅜ)을
그냥 용서만 하는것이 아니라, 자신의 양자로 받아드립니다....
그래서 결국 그 청년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키워냅니다...

믿지않는 사람들 입장에서보면, 말도 안되는 얘깁니다~!!!
"자기아들을 죽였는데 어떻게.....ㅡㅡ"
막 욕하면서 손가락질도 할수 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 : 44)

솔직히 저정도까지는 못 되더라도,
자기맘을 상하게 하거나,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고
자기도 똑같이 맘을 상하게 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육에 속한 사람은 오히려 똑같이 보복해야 그것이 정상이지만,
구원받은 사람으로서는 결코 옳은 행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워낙 성격이 안좋아서리...ㅡㅡ;;;

누가 나에게 해꼬지를 하면 나도 똑같이,,, 아니면, 더 심하게 되갚아줘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성격의 소유자였었습니다.... 쩝....

타인에게 내돈 쓰는것도 굉장히 싫어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내 자신보다 남을 위해 산다는것이 이렇게 보람되고 기쁜일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느끼게 된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한순간에 삶이 180도로 바뀔수 없습니다... 절대!!!

이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 교도소를 갑니다,
그런데 과연 그사람들이 교도소를 나오게 되면
정신을 차리고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나요??
전과 5범,6범, 10범 등등,,,   ㅡㅡ;;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사람의 힘으로 될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누가복음 18 : 27)


 

60년대 유명했던 살인마 "고재봉"이나 최근 "신창원"을 보더라도
사람을 변화시킬수 있는 힘은 결코 사람에게서 나오는것이 아니라는 거죠....


★넷째★
기도와 말씀읽기 등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가 저절로 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것은 저의 주관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구원받게 되면, 기본으로 해야하는것이 바로 기도와 성경 그리고 찬양입니다....
기도를 자연스럽게 하게되고, 성경도 하루에 1구절이라도 꼭 읽게 되어집니다...

 

교회다니는 사람들 중에서도
기도를 하지 않고 성경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매우 많습니다~!!
그런분들은 아직 구원을 받지못한 분들이라고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한번 체험하게 되면, 그때부턴,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것은 물론이고,
언제나,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인도하고 지켜주신다는 것을 알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과 대화하고 교제하며 살아야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하나님 뜻안에서 살수가 있습니다...

 

교제하며, 대화하는 것은, 바로 기도와 말씀묵상입니다...
기도를 통해 마음속에서 성령님께서 주시는 음성을 들을수가 있고,
또 말씀 묵상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음성을 들을수가 있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저도 20년 가까이 교회 다닌 사람이지만, 변화된 이후 약 3개월간 읽은 성경분량이
그 이전에 교회만 다니면서 읽었던 분량보다 훨씬 많습니다...
(사실 아예 안읽었죠... 예배시간에 공식적으로 몇구절씩 본것이 전부이니^^)

 

그리고, 기도를 할때에도 나 자신만을 위해 기도드리는 것보다,
다른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나라를 위해... 이세상을 위해...
자연스럽게 더 많이 하게 되구요,^^

자신이 하나님께 구했던 기도들도 응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체험하지 못한채 산다는건 있을수 없는 얘기겠죠?

우리가 그냥 머리속의 지식으로만 안다는 것과 체험을 통해 아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최소한,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이처럼 말씀을 읽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수 있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
하나님이 주시는 각종 능력의 은사들을 체험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은사가 바로 "방언은사" 입니다..
방언은 하나님과 기도하는 자만이 알수 있는 기도방법으로,
마귀,사탄이 알아들을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된 자로써의 특권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을 뜻합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고린도전서 14 : 2)


 

그외에도 병을 고칠수 있는 신유 은사, 예언은사, 방언통변의 은사, 등등...
무수히 많은 성령의 능력의 각종 은사들을 받을수 있습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변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2 : 4 ~ 11)
   

★여섯째★
예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가장 큰 사명중의 하나인 "복음"을 증거하게 됩니다.
저같은 경우, 교회를 오래 다녔지만, 왜 전도를 해야하는지를 몰랐습니다...
아니 나만 믿으면 되지, 왜 남에게 종교를 강요해야 되나??  이렇게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구원을 받게 되고 하나님이 확실히 살아 계신다는 것을 체험하게 된 이상,
과연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람 어느 누가 그냥 자기만 조용히 신앙생활을 할수가 있을까요??

믿지않고 살았던 삶과 믿고 사는 삶 모두를 경험한 상태에서
내 과거의 삶을 살고 있는 안타까운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 말이죠...^^

 

저는 요즘도 가끔 안타깝고 답답해서 정말 환장(?)할 때가 많습니다..

그냥, 욕하고 비난하고 조롱하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눈엔 왜 저렇게만 보이는건지...
도대체 뭐가 잘못되서 저런식으로 생각하고 판단을 하게 된건지...
너무나도 답답할때가 많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내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안 이상,
욕먹을거 각오하고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를 전파할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변화된 이후, 이렇게 세상이 줄수 없는 기쁨과 평안함을 누리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면서 삶을 살고 있는데,
그 삶을 자기만 누린다면, 그게 과연 하나님의 자녀 된 자로써의 올바른 삶의 자세일까요??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맡기신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믿지않는 저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라고 하셨습니다.. 
설사 예수님의 말씀이 없으셨더라도 내가 이렇게 은혜받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사는데 전해야 하는건 당연한거 아닐까요??

믿지않는 사람들은 자꾸만 귀찮게 군다고 기독교를 싫어합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한복음 15 : 18 ~ 19)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일을 전혀  깨닫지도 못할 뿐더러, 미련하게 보고,
핍박하고 멸시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성령세례를 통해 구원을 받게되면
이처럼, 세상이 우리를 아무리 핍박하고 멸시한다 하더라도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 하게 됩니다...


★일곱째★
가장 중요합니다~^^
앞에서도 잠깐잠깐씩 언급 했지만, 너무 중요해서 다시 한번 말씀 드립니다...
바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믿지않는 사람들과 교회만 왔다갔다 하는 "종교인"들은 그냥 자기뜻대로만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죄에 대한 경각심도 없고 의식도 없고 그져 세상에 속해서 자기가 살고 싶은대로 살기 때문에,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삶을 살아갑니다...^^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자신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결코 죽지 않을것 처럼 살아갑니다... 

 

하지만 성령세례를 받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결코 자기식대로 자기맘대로 삶을 살지 않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과 교제하며 성령님의 바른 인도함속에 하나님의 뜻대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삶 구석구석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며 살게 됩니다...^^

 

무려 5만번이나 하나님께 기도응답을 받은 조지 뮬러(George Muller,1805~1898)는
삶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교제하는 삶을 산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세계에서 제일 가는 고아원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고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그는 지금까지 "고아의 아버지" 라고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죠지 뮬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했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는 바른 동기로부터 시작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의 시간이나 형식보다 마음의 중심을 눈여겨 보십니다.

이처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대화하고 교제하며 또 응답을 받을수 있는 가장 큰 자격요건은 바로

우리가 성령안에서 세례를 받고 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위의 변화들 외에도....
자기도 모르게 집회같은곳에 가셔서 찬양을 하다보면,
손을 올리고 눈물로 찬양을 부르게 되구요,
진정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거죠^^
(그렇다고, 손 안올리고 눈물 흘리지 않는다고 가식으로 찬양한다는건 아닙니다..^^*) 

 

지금까지 제 자신의 경우를 바탕으로
구원을 받은후에 나타나게 되는 여러가지 외적 변화들에 대해 말씀 드렸습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구원을 받게되면, 자신이 확실히!!! 알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구원을 받았는지, 성령님이 내안에 계시는지 잘 모르겠다면,
그것은 아직 구원 받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구원을 받게 되면 무엇보다도 자신의 달라진 삶과 함께
하나님이 항상 나와 같이 계신다는 것을 몸소 느끼실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과, 하나님이 나에게 사랑을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지도 못한채,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제가 볼때에는 제일 안타깝고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성령세례를 받지 못하셨다면,,,
하루빨리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기도 드리십시오!!!

그리고 성경을 읽으십시오!! 
그속에는 하나님이 당신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놀라운 은혜가 들어 있습니다!!


아직 교회를 다니지 않고, 지금껏 믿지 않았지만, 믿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분이 계시다면...

늦지 않았습니다....

하루빨리, 교회를 나가십시오... 정말 간절히 말씀 드립니다...

위의 글을 다 읽으셨다면, 제가 얼마나 간절한지..

얼마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글을 쓰는지... 알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접기도를 드리시고, 하나님이 인도해주시는 좋은 교회로 나가십시오...


반드시 자신이 지금까지 지었던 모든 죄들을 회개하시고 영접기도를 드리십시오!

주위에 성령충만하신 신실한 크리스찬이 있으시면 요청하셔서 안수 기도를 받으십시오!!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인다는 진심어린 마음을 가지고 기도를 받으세요..


아직 구원의 확신이 없으시거나,
교회를 아직 다니지 않는 분들께서도 성령세례를 받으시고 변화된 삶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1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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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 지금이 바로 주께서 일하실 때니이다

 

 

 

 

지금이 바로, 여호와의 일하실 때입니다.

신자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세상에서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습니다. 오늘 성경본문은 우리에게 이 세상의 불신앙이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보여줍니다. 시인이 이 세상을 돌아보니,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고 율법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물러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된 상황에서 이 시인은 "여호와여 지금이 바로 주께서 일하실 때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만약 이 시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하는 사모함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세상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저버리고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그것을 자기의 패역의 기회로 삼았을 것입니다. 세상이 다 그러니까 하고 말입니다.

 

여기서 '주의 법을 폐하였다.' 라는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무법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시인이 이렇게 불법하고 무법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지금이 여호와의 일하실 때라는 마음을 갖게 된 이유는 시인 자신에게 주의 말씀을 경외하고 지키며 살고자 하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보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담력과 용기를 얻는 것은, 사실 우리 자신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시인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살아가는 상황이 되었는데 오히려 그 속에서 ‘여호와의 일 하실 때니이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이 백성들의 마음을 일 깨우셔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며 살아가야 된다는 이런 사실들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알려주셔야 할 때입니다.’ 라는 고백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다수가 자신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율법을 따라서 살아가는 소수처럼 변화되어야 한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고 살아가는 것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것은 귀중한 교훈입니다. 신자의 진정한 믿음은 거룩한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법 없이 살아가는 세속적인 상황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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